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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낮추면 모두가 스승!

해남 미황사 템플스테이

등록|2010.12.27 15:25 수정|2010.12.27 15:25

▲ 해남 미황사 모습. 뒷편 달마산의 아름다움은 남쪽 금강산에 비견되기도 한다. 신라 경덕왕 8년 (749)에 창건되었다 ⓒ 오문수



"야! 너 죽고 싶어? 너 이XX야 죽을래?"

어릴적 친구들과 싸우거나 장난치며 흔히 하던 말이다. 어릴적에 했던 이 말은 괜히 겁주기 위해서 였거나 장난기가 들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성인이 됐을 때 정말 미운 맘이 드는 상사가 생겨 그에게 폭언을 퍼부었고 열흘도 못 돼 그 상사는 교통사고가 나서 죽을 뻔했다. 그 때 떠올랐던 오만가지 생각이 나면 나는 절을 찾는다.

마음속으로야 미운 상사를 수십 번 죽였다 살리는 게 우리의 삶이다. 그만큼 삶이란 녹록치 않고 일상생활에서 평정심을 갖고 산다는 건 성자들이나 가능하다. 그 이후로 내 머릿속에는 삶에 대한 화두가 생겼다. 삶이란? 오욕칠정이란 뭘까? 꼭 올바로만 살아야 할까? 우리 사회에 정의가 살아있는가?

시간이 있어 22일 미황사 템플스테이에 참여했다. 해남 송지면에 들어서니 달마산이 보인다. 미황사를 굽어보는 달마산은 금강산 같기도 하고 알프스 산 같은 아름다운 산봉우리들을 간직하고 있다. 톱날처럼 날카롭게 생긴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다. 뾰족하게 솟은 바위 1만 개가 부처를 닮았다더니... 과연 1만불의 모습이다.

▲ 미황사 뒷편의 바위 모습. 1만개의 부처를 닮은 모습이라고 한다 ⓒ 오문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배낭과 가방을 들고 종무소 템플스테이에서 수속을 밟고 방을 배정받았다. 내가 1박 2일 동안 머무르는 숙소는 '향적당(香積堂)' 첫 번째 방이다. 2년 전에 2박3일 동안 머물며 좋은 추억을 쌓았던 그 방을 또 다시 배정 받았다. 불교에서는 모든 게 인연 아닌 게 없다더니 이것도 인연인가?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749년에 창건한 고찰로 창건에 얽힌 설화가 재미있다. 돌로 만든 배가 땅끝의 포구로 다가왔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더니 의조 스님이 기도 올리고 맞아들이자 바닷가에 닿았다.

그런데 갑자기 배에 실려 있던 흑석(黑石)이 벌어지면서 그 속에서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커다란 소가 되었다. 그날 밤 의조 스님 꿈에 "나는 본래 우전국(인도) 왕으로 경전과 불상을 모실 곳을 구하다가, 달마산에 이르러 1만불이 나타나기에 여기가 마땅한 장소라 생각하였다. 소에 경을 싣고 가다가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 경전과 불상을 봉안하라"고 하였다.

▲ 대웅전 대들보 위의 천장 모습. 천장은 산스크리트문자와 천불도로 장엄되어 인도의 아잔타 석굴과 중국 둔황의 막고굴 천불벽화에 비견되기도 한다. ⓒ 오문수



의조스님은 소가 누운 자리에 '미황사'를 지었다.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에서 '미'를 취하고, '황'은 금인(金人: 부처를 일컫는 말)의 금빛을 취해 '미황사'라 이름 지었다. 고려시대에는 중국의 남송에서 달마산의 명성을 듣고 일부러 참배하러 올 만큼 널리 알려진 절이었다. 지금의 대웅전은 1754년 영조 임금 때 지어진 법당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응진당, 대웅전 안에 안치된 괘불 또한 보물로 지정된 유물이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대웅전에서 예불이 있었다. 부처님 앞에서 오체투지! 미리 설명을 듣기도 했고 두 번째라 어색하지가 않다. 엎드려 절하는데 들려오는 범종소리! 뎅, 데 ~에엥 하며 산을 돌아 울리는 범종소리가 가슴속 깊이까지 파고 든다. 한글 반야심경을 따라 읽는 순서가 시작됐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

스님의 독경소리와 함께 떠오르는 잡념들. 잊어버리려 애써도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히는 분노가 또 다시 떠오른다. 속세에 사는 중생은 어쩔 수 없는 번뇌인가. "추잡한 짓을 하며 나를 짓밟았던 네놈들. 짓밟은 구두 밑창을 송곳으로 뚫고 나오리라"며 독기를 품었었다.

주지인 금강스님을 따라 도량석에 나섰다. 겨울  밤하늘에 유난히 밝은 별 하나가 빛난다. 저게 무슨 별일까? 깜깜한 겨울 밤 경내를 도는 느낌은 군대 시절 보초를 서던 시절로 나를 되돌린다.

▲ 차담 시간에 설법하시는 금강스님 ⓒ 오문수

▲ 동지 죽을 먹기 위해 열심히 새알을 만드는 불자들. 주지인 금강스님 솜씨가 가장 뛰어났다 ⓒ 오문수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차담시간이다. 몸이 아파서 광주에서 왔다는 사람. 경기도에서 아이들을 대학교에 합격시키고 나서 왔다는 아주머니는 50이 넘으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무작정 나섰단다. 스님이 차를 따르며 설법을 시작했다.

"잘 살펴보면 괴로움도 외부에서 오는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에서 옵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죠. 사람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데 고정관념으로 보기 때문에 불행하게 보입니다. 고정관념을 버리면 행복해집니다.

식당주인이 와서 좋은 말씀을 부탁하기에 손님을 돈으로 보지 말고 은인으로 알아야 한다. 은인으로 여기며 장사하는 것과 돈으로 여기는 것하고는 다르다고 말해줬더니 다음주에 와서 장사가 잘 된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판단으로만 고민해 문제해결이 안되고 경험과 학습된 지식으로만 판단하기 때문에 방어기제만 발달한다"는 금강 스님은 "스스로를 낮추면 모두가 스승이다"고 설법했다.

오체투지는 사람의 가장 높은 곳인 이마를 땅에 대고 양손으로 받들어 귀까지 들어서 올리는 것으로 상대방을 귀히 여긴다는 뜻이다. 자신을 낮추면 날아다니는 새도, 스님도, 목수도, 할머니까지도 스승이 된다.

▲ 도량석을 마치고 새벽 5시에 촬영한 모습. 남해 바다위에 드리운 새벽달이 천지를 깨운다 ⓒ 오문수



새벽 4시 아침 예불을 마치고 경내를 도는 도량석 시간이다. 절에서 새벽은 도량석에서 부터 시작한다. 모든 중생을 깨우기 위해 도량을 청정히 하고 목탁을 치며 도량 주위를 도는 의식이다.

도량석이 끝나면 불전사물이 울린다. 불전사물은 법고, 목어, 운판, 범종이다. 법고는 땅위의 생명, 목어는 물속 생명, 운판은 하늘을 나는 생명, 범종은 땅속 밑의 중생들에게 들려주는 법문이다.

겨울 새벽 예불은 그대로가 법문이다. 코끝이 매캐하고 이마가 띵할 정도로 차가운 바닷바람이 머리를 치며 안온함에 젖어 심드렁해졌던 일상을 깨운다. 편안함과 오욕칠정에 찌들었던 하늘, 땅, 바다, 땅속 중생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시간이다. 새벽 5시. 청운당에서 한 시간의 참선시간이다. 금강스님이 화두를 던졌다.

"100년도 못 돼 지, 수, 화, 풍이 되어 없어질 송장을 끌고 다니는 건 뭘까? 여기까지 나를 오게한 것은 뭘까? 내가 가는 곳에서 바로 내가 주인이어야 편안한 마음으로 사고합니다. 내 집도 크게 보면 한 순간 사는 곳일 뿐입니다"

갑자기 나에게 고통을 줬던 자들이 불쌍하게 보인다. 그래 이렇게나마 수행을 하게 해준 것도 당신들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희망제작소'와 '네통'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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