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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차에는 4대강 반대 '함성'이 있습니다

등록|2010.12.27 15:26 수정|2010.12.28 11:56
내 승용차에는 4대강이 실려 있습니다. 그리움이 넘쳐흐릅니다. 문학의 고향이고, 음악의 세계이며, 미술의 원형인 강! 조물주의 작품인 대자연의 강입니다. 이명박의 사유재산이 아닌 우리 모두의 강입니다. 수만 년 이어져 온 강, 겨레의 역사와 삶의 실체이기도 한 강들이 작은 내 승용차 안에 가득 실려 있습니다. 

내 승용차에는 4대강의 신음이 넘쳐흐릅니다. 굴착기 삽날에 속속들이 파헤쳐지고 까뭉개지는 강들의 비명이 가득합니다. 천년의 비경들도, 선조들의 혼이 새겨진 문화유산들도, 역사의 숨결도 오늘 한 순간을 사는 인간의 오만과 탐욕 앞에 무참히 스러지게 되었습니다. 5천 년 역사를 통틀어 가장 분별없는 만행에 철저히 유린되어, 내 승용차 안에도 강들의 선혈이 낭자하게 되었습니다.

내 승용차에는 분노와 절규도 가득합니다. 강을 지켜내기 위한 비원들, 처참하게 파괴되는 강들을 보며 삼키고 내뿜는 한숨과 탄식들이 만재되어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결국 '함성'이 됩니다. 함성은 생명의 표현입니다. 함성은 또 민주주의의 표상이기도 하고, 민중의 동력이기도 합니다. 

4대강을 지키려는 민주주의의 함성, 민중의 함성이 내 작은 승용차 안에서도 계속적으로 분출하고 있습니다. 생명과 평화의 메시지인 함성, 4대강이 내지르는 참혹한 비명과 신음들을 위대한 만주주의의 함성으로 치환하고자 하는 의지가 내 작은 승용차에도 뜨겁게 어려 있는 것입니다.    

내 승용차의 손피켓들내 소렌토 승용차 뒷문에는 4대강파괴공사 중단을 절규하는 민주주의의 '함성'들이 내걸려 있다. 이 함성은 앞으로 조선팔도에 울려퍼지게 될 것이다. ⓒ 지요하


지난 11월 29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길가에서 거행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4대강사업 중단과 4대강예산 전액삭감'을 촉구하는 '생명평화미사'에 참례하였을 때, 갖가지 표어들이 새겨진 '손피켓'들을 보는 순간 나는 뜨거운 '함성'을 접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함성의 질감을 좀 더 생동적으로 오래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습니다.

미사 후 나는 내 손에 들려졌던 피켓들을 반환하지 않았습니다. 내 대학생 아이들이 들었던 피켓들도 모두 수거한 다음 봉사하시는 한 분 자매님께 부탁하여 여러 장을 더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4대강에는 생명을!
한반도에는 평화를!
강은 우리의 생명, 4대강 개발 중단!
생명말살, 혈세낭비, 4대강 사업 중단하라!
생명과 민생 파괴, 4대강 공사 중단!
흘러라, 강물! 들어라, 청와대!

등등의 표어들이 새겨진 그 손피켓들을 나는 소중하게 가슴에 끌어안고 지하철에 올랐고, 지하철 안에서도 손피켓들을 번갈아 펴들곤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유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았고, 내게 미소를 지어보이는 아가씨도 있었습니다.

나는 그 손피켓들을 내 차에 싣고 다음날 새벽 집에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날 피켓 세 장을 골라 내 승용차의 뒷문 유리에 부착하는 일을 했습니다. 세 장을 옆으로 나란히 붙이니, 백미러로 차 뒤를 볼 수 있는 공간도 충분하게 남았습니다.

손피켓들 내 승용차 안에는 4대강파괴공사 반대 손피켓들이 많이 실려 있다. 간혹 자기 차에도 붙이겠다고 여분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 지요하


차에 '4대강 함성'들을 부착한 뒤로는 차를 더 많이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평소 걸어 다니던 가까운 거리도 일부러 차를 이용하게 되고, 마누라와 조카아이에게 운전 봉사도 더 많이 하게 되고, 주말에 집에 내려오는 대학생 아들 녀석에게도 선뜻 차를 내주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지근거리인 태안군청 종합민원실에 차를 가지고 갔을 때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쉰 살은 넘어 보이는, 얼굴이 수염투성이인 낯모르는 이가 내게 와서 인사를 하며 차에 붙인 손피켓의 여분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반색을 하며 차 뒷문을 열고 내 차에 붙인 것과 똑같은 손피켓 세 장을 꺼내어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통성명을 하며 명함도 교환하였습니다. 그는 서울에서 내려와 청포대 해수욕장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2월 첫 주말에는 아들 녀석에게서 기쁜 얘기를 들었습니다. 주말을 이용하여 집에 내려온 아들 녀석이 친구들과 만나 당구를 치고 오겠다며 차를 달라고 했습니다. 차 뒷문 유리에 부착한 손피켓들을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차를 놓으라고 이르고는 선뜻 차 열쇠를 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들 녀석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열두 시쯤 당구장에서 나왔는데, 어떤 사람이 막 차에 오르려는 날 부르더니 차에 붙인 거 더 있느냐고 묻는 거예요. 서울에서 아빠가 차에다 여러 장 실은 것이 기억나서 얼른 차 트렁크를 열고 두 장 꺼내 주었지요. 그 사람이 고맙다고 하면서 내게 악수를 청하고, 피켓들에 입을 맞추면서 가더라구요."

아들 녀석의 말을 듣는 순간 반갑고 기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싸하게 아파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누군지 모를 사람이 아프게 안고 사는 '가슴'을 생각하자니 괜히 눈물이 날 것도 같았습니다.

매주 월요일 오후 서울에 갈 때는 꼭 세차를 하곤 합니다. 세차장 직원들도 내 차 뒷문을 보게 하려는 뜻이고, 깨끗해진 유리를 통해 손피켓들이 좀 더 명료하게 보이도록 하려는 뜻이기도 하지요.

서해안고속도로와 서울 서부간선도로에서 심한 정체를 겪을 때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차 뒷문을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곤 합니다. 때로는 내 옆을 추월하면서 살짝 경적을 내며 내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볼 때는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태안성당 마당'예수성탄대축일' 교중미사에 참례하러 갔을 때 성당 마당에서 여러 교우들이 보는 가운데 사진 한번 찍었다. 마누라가 어깨 좀 펴라고 핀잔을 했지만, 날이 워낙 추워 충분히 펴지 못했다. ⓒ 지요하


나는 오늘도 오후에 서울을 갑니다. 7시 30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길거리에서 거행되는 '전국사제시국기도회'에 참례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은 차를 가지고 가지 않고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눈이 많이 내려서 차를 가지고 가기는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집사람과 조카아이 모두 방학을 맞아서 내가 내일 아침에 운전 봉사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버스를 타고 가면 편하지만, 내 차 뒷문 유리에 부착된 4대강의 '함성'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주지 못하는 것이 적이 아쉽습니다. 그 대신 중학생 조카 녀석을 데리고 가기로 했습니다. 이제 중1인 조카 녀석이 뭘 알겠습니까마는, 큰아빠를 따라 사촌언니 오빠와 함께 국회의사당 앞의 거리미사, 전국사제시국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아이에게 평생 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

4대강을 지키기 위한 싸움, 4대강의 '함성'은 일시적인 것이 될 수 없고, 참으로 오래오래 지속되어야 할 것이기에, 나는 오늘도 내 아이들과 함께 천주교 사제들의 시국미사에 참례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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