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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도움 되게, KBS 장악할 수 있다" 참여정부에 충성다짐, 뜻밖에도 김인규?

2006년 양정철 비서관 만나 인사청탁...김인규측 "만난 적 있지만 그런 말 안 해"

등록|2010.12.29 16:44 수정|2010.12.29 18:27

▲ 12월 24일 자 <한겨레>에 실린 '기고' ⓒ 한겨레


[ 기사 수정 : 29일 오후 6시 30분 ]

성탄절 전날인 지난 24일 <한겨레>에 눈길을 끄는 '기고'가 하나 실렸다. 

"2006년 어느날 풍경이 떠오릅니다. 모 방송사 사장 선임을 앞둔 시기였습니다. 한 사장 후보가 만나자고 집요하게 연락을 했습니다. 청와대가 인사에 끼어들 일이 아니어서 피했습니다. 위계까지 써서 어쩔 수 없이 만났을 때 그가 던진 말은 충격이었습니다. 현재 사장이 방송을 장악 못해 비판적 보도가 많다, 확실히 장악해서 대통령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게 하겠다, 특히 노조 하나는 확실히 장악해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 그럴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나를 밀어 달라, 이런 얘기였습니다. 사실상의 충성맹세이자 은밀한 다짐입니다. '사장 선임 결정권을 가진 이사회 이사들을 만나 (선거운동) 잘해 보시라'며 돌려보냈지만, 씁쓸했습니다."

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론분야 핵심 참모였던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었다. 독자들의 궁금증은 양 전 비서관 앞에서 "충성맹세이자 은밀한 다짐"을 한 인사가 누구인지에 쏠렸다. 양 전 비서관이 "이 정권에서 아주 잘 나가고 있"다고만 언급한 채 그의 실명을 드러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기자도 궁금했다. 당시 양 전 비서관을 만난 인사는 '뜻밖에도' 김인규 현 KBS 사장이었다. 양 전 비서관은 김 사장이 자신을 만나 "'KBS를 장악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나를 밀어 달라'고 청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인규 사장 쪽은 "당시 양 전 비서관을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당시의 정황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2006년 11월 인사동 찻집에서 일어난 일... "내가 잘할 수 있어"

▲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자료사진) ⓒ 남소연

지난 2006년 11월 2일 저녁. 양 전 비서관은 청와대를 빠져나와 인사동으로 향했다. 언론계 선배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인사동의 한 한정식집에는 6∼7명의 언론계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양 전 비서관이 도착한 이후 초대받지 않은 '어떤 인사'가 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김인규 현 KBS 사장이었다. 한나라당 추천의 KBS 이사를 지낸 그는 당시 정연주 KBS 사장 후임 인선에 뛰어든 상황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김 사장의 방문에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당시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그가 KBS 사장에 선출되기 위해 다방면으로 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화기애애해야 할 자리는 예상보다 일찍 끝났다.

한정식집을 나서는데, 유력 정치인의 동생인 한 인사가 "단둘이 차나 한잔 하자"고 제안해 근처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찻집에 들어선 이후 화장실에 간다던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김 사장이 다시 나타났고 결국 찻집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양 전 비서관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정말 집요했다"고 기억했다. 양 전 비서관에 따르면 10여분 동안 나눈 당시 대화 내용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도록 KBS를 잘 장악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로비'에도 불구하고 '친한나라당 성향'으로 평가받던 김 사장은 KBS 사장에 임명되지 못했다. 이후 그는 이명박 후보 캠프에 들어가 공보팀장과 방송발전전략실장 등을 지냈고,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을 거쳐 2009년 KBS 사장 자리에 올랐다. 세 번째 도전으로 자신의 꿈을 이룬 셈이다.  

참여정부 인사들의 증언 "그는 동원할 것은 다 동원해서 로비해"

▲ 김인규 KBS 사장(자료사진) ⓒ 남소연

참여정부 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 사장은 KBS 사장 공모에 참여한 이후 여권 인사들에게 "나는 한나라당 사람이 아니다"라며 "내가 KBS 사장이 되면 조직을 잘 장악할 수 있다"고 호소하고 다녔다. 양정철 전 비서관과 단둘이 만난 자리에서 했던 발언도 특별한 게 아니라 일종의 '로비 레퍼토리'였던 셈이다.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A씨는 "당시 김인규 사장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다 동원했다"며 "특히 청와대 홍보사이드 쪽에 로비를 많이 했는데 내가 참여정부에 영향력이 있다고 판단해 나한테도 로비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여권에서는) 당신을 한나라당 색깔로 알고 있는데 누가 함께 일하려고 하겠느냐, 당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 뒤에 도와 달라고 얘기해라'고 했더니 김 사장이 '내가 무슨 한나라당 사람이냐, 아니다'라고 응수했다"고 전했다.

그는 "김 사장은 의지와 집념의 사나이"라고 평가한 뒤, "자기의 정체성이나 원칙은 없고 오직 자리를 위해서 뛰는 사람"이라며 "심지어 참여정부 시절 방송통신위 위원을 하기 위해 뛰어다니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 사장은 KBS 사장을 할 자격이 없다"며 "김 사장이 KBS에 몸담고 있는 것 자체가 공영방송인 KBS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참여정부 인사인 B씨는 "김 사장은 정연주 사장의 임기가 끝난 2006년 9월부터 연임에 성공한 11월 사이에 민주당·청와대 등에 로비 하러 다녔다"며 "당시 KBS 노조위원장이 김 사장을 밀고 있어서 그가 '노조를 잘 장악할 사람은 나'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KBS가 <동아일보> 다음으로 참여정부 비판보도가 많았다"며 "그래서 여권 일각에서는 '정연주 사장이 KBS를 장악하지 못해서 비판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던 때였다"고 말했다.

그는 "김 사장은 '조직 장악을 못 하는 정연주 사장보다 KBS 출신인 김인규가 더 낫지 않느냐'는 시각을 갖고 있던 일부 민주당 의원들을 찾아다녔다"며 "주로 서울대 정치학과 라인에 있던 의원들이 로비대상이었다"고 전했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Y씨가 김 사장을 적극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고 선후배 사이인 Y씨와 김 사장은 상당히 친하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장은 Y씨를 통해 청와대에 로비했다"고 전직 청와대 인사는 전했다.  

이어 B씨는 "김 사장은 나를 찾아와서 '수신료를 올리려면 내가 KBS 사장을 해야 한다, 나는 한나라당 사람이 아니다, 노조 등도 내가 장악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하면 확실하게 더 잘 할 수 있다,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 사장이 '한나라당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그것은 맞는 말"이라며 "김 사장은 한나라당 사람이 아니라 무조건 살아 있는 권력만 쫓아다니는 사람"이라고 꼬집었다.

양 전 비서관 "부적절한 처신 체크했어야"... KBS측 "그런 발언한 적 없어"

김 사장의 '감추고 싶었던 과거사'를 '익명'으로 폭로한 양 전 비서관은 28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그 저녁식사 자리에서 김 사장을 만나기 전에도 내가 무시할 수 없는 선배들을 통해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며 "하지만 KBS 이사회가 결정할 일인데 청와대 인사가 후보를 만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김 사장이 나를 만난 것만으로 '청와대로부터 내정을 받았다'고 밖에다 얘기할까 걱정됐다"며 "그런데 무시하기 어려운 한 선배가 그날 저녁 모임 일정을 알려줘 김 사장이 합석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저녁식사 자리에서는 별다른 얘기가 없었는데 찻집에서 만났을 때 김 사장이 칼럼에 쓴 발언을 해서 황당했고 겁도 났다"고 덧붙였다.

이어 양 전 비서관은 "당시 청와대에서 '도대체 김인규가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부탁전화가 많이 오냐?'는 소리가 나왔다"며 "그럴 정도로 아무개 인사를 통해 청와대 홍보·민정·인사·정무수석실 등에 로비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은 김 사장이 지난 정부에 충성 다짐을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발언을 했는데, 이런 그의 처신이 적절한지를 MB정부의 청와대에서 제대로 체크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상덕 KBS 홍보주간은 "김인규 사장이 양 전 비서관을 만난 적은 있지만 그가 주장하는 발언을 한 적이 전혀 없다"며 "김 사장은 '노조 장악'이나 '충성맹세' 등의 표현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한 주간은 "김 사장은 공영방송사의 수장이 정권 등 외부의 입김에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며 "그런 소신과 철학에 비추어 볼 때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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