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녹으면, 울 사장님 배 아프지 않을까?
[사진] 경북 구미시에 눈 오는 날
▲ 하얀 눈이 소복하게쌓였습니다. 아침에 눈 떴을 때만해도 멀쩡했는데, 갑자기 눈이 쏟아졌어요. 금세 저렇게 쌓였네요. ⓒ 손현희
아침에 눈을 뜨고 버릇처럼 창을 열었어요. 눈 소식은 있었으나 역시 말짱합니다. 하늘을 봐도 눈 올 것 같지는 않은 날씨였지요. 기대를 접고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는데, 얼마쯤 지났을까? 남편이 들뜬 목소리로 나를 부르네요.
"에이, 거짓말!"
"아니야. 진짜라니까? 빨리 와봐!"
조금 앞서만 해도 하늘이 멀쩡했는데, 눈이 온다고 하니 믿을 수 없었어요. 게다가 남편이 짓궂은 장난도 잘 치기 때문에 장난인 줄 알았지요. 그래도 워낙 들뜬 목소리로 말하기에, 뛰어가서 창밖을 보니 진짜로 눈이 내리네요. 그것도 '내린다'고 말하기엔 넘칠 만큼 그야말로 펑펑 내립니다. 아니, 하늘에서 눈을 마구 쏟아 붓듯이 내립니다. 뛸 듯이 기쁘네요. 참으로 얼마 만에 눈다운 눈을 보는 건지 모릅니다. 얼마 앞서도 눈이 오긴 했는데, 그저 땅만 살포시 적시다가 말았거든요.
냉큼 사진기를 가지고 와서 동영상도 찍고 사진도 찍습니다. 눈 오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이리도 호들갑을 떨까 하겠지만, 이 지역에서는 진짜 제대로 된 눈 구경하기가 쉽지 않답니다. 온 나라에 눈이 많이 와서 난리가 났다 해도 이곳만큼은 언제나 비껴가는 가거든요. 아예 구경도 하지 못하니까요.
▲ 눈길 전쟁경북 구미시에도 눈이 무척 많이 왔습니다. 아침에 갑자기 쏟아지듯 펑펑 퍼붓는 눈 때문에 찻길에는 차들이 엉키고 오도 가도 못하고 서버린 차들이 많습니다. ⓒ 손현희
며칠 동안 날도 추운데다가 감기까지 몹시 걸려서 일터에 갈 때 자전거를 타지도 못했답니다. 오늘은 자전거 타고 가보나 했는데, 갑자기 눈이 저리도 많이 오니 방법이 없네요. 하는 수 없이 일터 식구 차를 얻어 타고 갑니다.
아뿔싸, 집 앞을 나와서 찻길로 나가자마자 이내 발목이 잡히고 맙니다. 차선은 구분도 할 수 없고, 차들은 저마다 이리저리 뒤엉켜서 오도 가도 못하고 콱 막혀버렸네요. 게다가 얕은 오르막길을 올라가야하는데, 어떤 차든지 올라가지도 못하고 빙그르르 돌다가 미끄러지고 맙니다.
"누님, 이거 어쩌지요? 저기로 못 올라가는데요. 돌아가려고 해도 저렇게 많이 밀려있으니 방법이 없어요."
"큰일이다. 그나저나 오늘 이래갖고 장사를 하겠나?"
"이런 날엔 화물차는 더 못 다녀요. 암만해도 안 되겠는데요?"
"그럼 어쩌지? 가만있어봐 다른 식구들은 어떤지 전화 한 번 해보자."
"아마도 아직 집에서 나오지도 않았을 걸요?"
▲ 강아지도 신이 나요눈이 오면 바둑이도 신이 나서 뛰어다닌다고 했던 가요? 강아지도 함께 나와서 하얀 눈을 밟으며 갑니다. ⓒ 손현희
▲ 그리 높지도 않은 오르막길그러나 차들이 올라가지를 못합니다. 저 앞에는 미끌려서 빙그르르 도는 모습도 보여요. 다른 길로 돌아서 가자니, 뒤쪽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차들이 많이 밀려있어요. ⓒ 손현희
▲ 빙판길길이 매우 미끄럽습니다. 조금 경사진 오르막인데도 올라갈 수가 없어서 저렇게 한쪽에 비켜나서 세워둔 차도 있어요. 난 차에서 내려서 걸어서 출근을 합니다. ⓒ 손현희
아니나 다를까 일터 식구들한테 하나하나 전화를 해서 물으니, 아예 집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오늘 일은 접어야 할 듯했어요. 물론 이런 결정은 사장님이 내려줘야 하겠지만 오늘 같은 날씨에는 방법이 없네요. 난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내려서 걸어가기로 했답니다. 그리고 동료는 다시 집으로 돌려보냈어요.
오르막길 하나만 올라가면 이내 닿을 일터였지만, 화물차를 끌고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 동료들은 아무래도 오늘은 쉬어야 할 듯하네요. 차에서 내려서 온통 차로 엉켜있는 찻길을 가로질러 건너왔어요. 걸어서 가는 길도 만만치 않네요. 눈 쌓인 바닥은 얼음판이 되어서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닙니다. 자칫하면 뻥~ 엉덩방아를 찧겠더군요.
▲ 눈 오는 날 출근길길이 매우 미끄럽습니다. 내려오는 차들은 그래도 조심조심 천천히 갈 수 있는데, 올라가는 차들은 꼼짝도 못하고 서있습니다. 저 고개만 넘으면 되는데... ⓒ 손현희
▲ 거님길차에서 내려 걸어서 갑니다. 거님길 곁, 나무에 쌓인 눈이 멋스럽네요. ⓒ 손현희
▲ 놀이터에 쌓인 눈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놀이터엔 하얗게 눈이 쌓여서 매우 멋지네요. ⓒ 손현희
▲ 사진 찍는 아빠와 아이들눈 오는 날 걷는 게 무척 기쁩니다. 출근시간은 벌써 지났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이 즐거워 마음이 넉넉합니다.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사진을 찍어주네요. ⓒ 손현희
▲ 눈 치우기다른 일터에는 일찍 출근을 했는지, 직원들이 나와서 길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습니다. ⓒ 손현희
아예 올라가기를 포기했는지 길 한 쪽에 그냥 세워둔 차도 여럿 눈에 띕니다. 걸어서 한참 만에 닿은 일터에는 팀장님이 혼자 나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막 왔다는데, 15분이면 닿을 거리를 한 시간 반이나 걸렸다면서 오늘은 아무래도 장사를 못하겠다고 하네요.
덕분에 급한 일만 마무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아침에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출근했다가 돌아오기까지 한 4시간 쯤 걸린 것 같네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다행스럽게도 해가 나서 눈이 많이 녹고 있어요. 몇 시간 앞서만 해도 전쟁을 치르듯 엉망이었던 찻길도 뻥 뚫렸어요. 아침에 오르막길을 오르지 못해 길 한쪽에 세워두었던 차만 몇 대 보이고 보통 때랑 다름없네요.
지금도 눈발은 계속 날리고 있습니다. 더 춥지만 않다면 괜찮을 텐데, 그렇지 않으면 이 눈이 꽁꽁 얼어붙어 내일이 더 걱정일 수도 있겠네요. 구미에서 아주 오랜만에 제대로 된 눈 구경을 하니 무척 기쁘고 즐거운데, 차타고 다니는 이들한테는 그리 반갑지 않겠네요.
그나저나 우리 사장님은 이 눈이 녹으면 배 아프지 않을까요? 직원들이 출근조차 못했으니 말이에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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