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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교실서 공부하는 6학년...부끄럽지 않아요

'수요자 중심 교육' 이뤄지는 파라과이 한국·한글 학교에 가다

등록|2011.01.02 18:28 수정|2011.01.0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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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 한국 한글 학교 전경파라과이 한국 한글 학교 ⓒ 최이삭


모든 한인동포사회에는 저마다의 동포 2세 교육이 있다. 영주권자와 2세들이 대부분인 파라과이의 한인 2세 교육은 오전과 오후 두 군데의 학교를 다니는 것에서 시작한다. 오전에는 현지인 학교에 가고, 오후에는 파라과이 한국·한글학교에 가서 한국 교과서로 수업을 듣는 것이다. 방과 후엔 학원 한두 곳에 다니기도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되도록 좋은 사립학교에 진학한다. 학교에서의 추억을
안고 졸업한 뒤에는 현지대학, 미국, 브라질, 한국 등으로 진학한다. 한국의 교육이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조금씩 다른 '유명세'를 가진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일방으로 나아가는 것과 비교했을 때 파라과이의 동포 학생들은 좀 더 넓은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다섯번째로 큰 파라과이 재외국민 규모

파라과이에는 전체 재외국민의 4.89%에 해당하는 5229명이 살고 있다.(2009년 7월 외교통상부 집계 기준) 이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과테말라에 이어 다섯 번째 규모이다.

파라과이에 한인이 정착한 것은 공식적으로 1965년부터다. 정부에 농장 부지 구입대금 150불을 지불하고 온 순수 영농목적의 이민이었다. 정부는 1962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이민정책을 추진했는데, 미국과 캐나다에 이어 중남미가 대상이 되었다.

45여 년이 지난 지금 파라과이의 한인들은 대개 제조업과 상업에 종사한다. 농업이민 당시 배정받은 땅이 대부분 황무지였고, 이민자들이 경작에 서툴러 농업을 그만두고 돌파구를 찾은 결과이다. 이에 대해 한 1세대 한인이민자는 "우리가 끝까지 농장을 고집했으면 모두들 박살나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업의 실패 이후 한인들은 도시로 나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물건을 판매하는 '벤데(vender: 팔다)'업을 시작했다. 이들이 처음 판매한 것은 이민 올 때 가져온 물건들이었다. 벤데업이 활황을 맞자 한인들은 시장에서 물건을 떼어다 팔기 시작했고, 그러다 직접 물건을 만들었다. 그 사이에
이민 수요가 1만 5000명으로 까지 늘기도 했다. 파라과이에서 돈을 번 사람들은 미국이나 브라질로 재이민을 떠나기도 했다.

이민 2, 3세대에 이르러서는 한국, 중국 등지와 직접 무역을 하는 한인들이 많아졌다. 남미경제가 수직상승하고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두 문화권에서 자란 한인 사업가들이 활약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진 것이다.

파라과이의 한인 2세 교육은 이러한 한인들의 정착 과정과 궤를 함께 한다. 이주 초기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경제 기반도 마련되어 있지 않던 한인 1세대들은 의욕만큼 자녀교육에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러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2, 3세대 시기에 이르러 한인 부모들은 자녀들을 파라과이의 좋은 사립학교에서 보냈고, 졸업한 자녀들이 미국, 한국, 브라질 등으로 진학하는 것을 지원했다.

그리고 부모들이 힘들게 일하는 걸 보고 자란 학생들은, 저개발 국가인 파라과이에서 자연스레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고 싶은 욕망을 품으며 성장했다.

"어제 무슨 한국 드라마 봤어?"... 한국 배우며 자라나는 아이들

파라과이 한국 한글 학교 이경연 교육부장파라과이 한국 한글 학교 이경연 교육부장이 교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최이삭


파라과이 한국·한글학교(이하 한국학교)는 현재 초등부·유치부 학생 120명이 재학 중인 한국 교과부 소속의 정식 교육기관이다. 한국학교는 1972년에 시작한 토요일 한글학교에서 기원한다. 토요일 한글학교는 현지인 학교의 교실을 임대해서 수업하다가 학생 수가 늘면서 교민교육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자 한인들의 성금과 정부 지원금을 합쳐 토지를 구입하고 교사를 건축해 1992년부터 전일제 정규학교를 운영했다.

한국학교는 스페인어와 파라과이 전통 언어인 과라니어 교육을 하지 않아 파라과이 교육기관으로의 자격은 없다.

스페인어와 과라니어 교육시수를 준수하는 국제학교로의 목적변경에 대해 한국학교 설립중기부터 의견이 있었으나 학교가 현지화 될 경우 한국어 교육이라는 한국학교의 주요 목적과 한인사회 화합의 장이라는 한국학교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어 정식 수요조사 끝에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이견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경연 한국학교 교육부장은 한국학교의 교육을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라고 요약한다. 아이들이 오전에 현지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되도록 수업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도록 숙제에 부담을 주지 않고, 준비물은 학교에서 준비한다.

수업은 현지학교 수업시간에 맞춰서 오후 3시 20분에 1교시를 시작한다. 조금 일찍 올 수 있는 학생들을 위해 2시 반부터는 특기정석 수업을 한다. 부채춤, 사물놀이, 태권도 수업 등이 개설되어 있다.

학생 수가 학년 당 10명 내외이기 때문에 교사들이 학생의 특성을 세심하게 파악해 개별지도에도 힘쓴다. 그 예로, 현재 한국학교에는 한글 실력이 부족한 6학년 학생이 개인적인 요청으로 1학년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담임교사가 언어를 배울 때는 저학년 수준에 맞춰서 가르치고 수학이나 영어 등을 배울 때는 원래 학년 교과서를 가지고 교육하고 있다.

6학년이면 한참 예민한 시기인데 1학년 교실에서 공부해도 괜찮냐고 질문하자 이 교육부장은 "문제가 많지는 않다. 한국학교의 학생들은 교회에서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고, 부모님들끼리도 대개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전체학년이 다 함께 어울린다. 본인이 원하면 자기 학년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경연 교육부장은 한국보다 학급당 학생 수는 적지만 아이들 개개인의 언어 수준이 차이가 많기 때문에 내용적으로는 한국에서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한글로 교습하기 때문에 한글 실력이 학습능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동포 1.5세나 한국에서 살다 온 아이들이 많아 언어 수준이 대체로 균질한 편이었지만 지금은 부모가 모두 파라과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이 많아 이전보다는 한국어 실력이 떨어진 편이라고 한다. 예비반부터 한국학교를 다니며 처음부터 한글을 배워온 아이들은 물론 한글 실력이 좋지만, 그렇지 않은 3세들의 경우 부분적인 한글 사용 문화권에서 살면서 불완전한 한글 실력을 갖추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라과이의 아이들은 다른 국가의 동포아이들보다 한국어 실력이 좋다. 수도 아순시온을 중심으로 동포들이 밀집해 살고 있으며, 파라과이보다 한국이 문화적·경제적으로 월등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이 발전하면서 사업, 문화, 학업 등의 이유로 교류가 지속되면서 한국어 사용이 단지 한인들끼리의 친화어 수준이 아니라 기능적인 성격도 담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파라과이 한국 한글 학교 학생들파라과이 한국 한글 학교 6학년 손예닮(좌), 이성구(우) 학생이 한글학교 놀이터에서 인터뷰를 마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최이삭


아이들은 한국의 웹을 검색하고, 한국의 드라마와 만화영화를 보며 성장한다. "어제 무슨 한국 드라마 봤어?"는 아이들의 일상주제다. 한국학교 6학년 손예닮, 이성구 학생은 "숙제 자료는 파라과이 웹에서 찾고, 한국 웹에서는 연예인들을 검색하거나 만화를 다운받아 보는 편이에요. 한국문화가 더 재미있어요. 한국학교에 도서관이 있어서 책도 많이 봐요. 현지학교에도 도서관이 있긴 한데 대출이 되지 않아요. 파라과이에서는 책을 모두 수입하기 때문에 너무 비싸요"라고 말했다.

한국학교에는 파라과이 유일의 공공도서관이 있는데, 보유고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아동서적은 꽤 구비되어 있는 편이다. 한국학교 졸업생 지우성씨도 한국학교의 도서관에서 뜻 깊은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녀는 "지금 한국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국학교 도서실에서 어릴 적에 책을 많이 읽었던 덕분인 것 같다. 한국학교에서 한국 친구들과 함께 성장기를 보낼 수 있어 즐거운 추억을 많이 남겼고,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글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어 유익했다"고 밝혔다.



끝없는 경쟁사회인 한국... "파라과이는 느리게 가는 것 허용되는 곳"


파라과이 한국 한글 학교 졸업생파라과이 한국 한글 학교 졸업생 지우성씨(남미동아일보 직원)가 인터뷰를 마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최이삭


'한국은 너무 빠르다', '한국은 경쟁사회다'. 이곳 한인들은 한국사회를 '경쟁'과 '빠름'으로 집약한다. 한국사회의 속도에 염증을 느끼고 다시 파라과이로 돌아온 교민들도 있다. 그것이 특기할 만한 것이냐고 질문하자 이경연 교육부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경쟁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파라과이에도 물론 경쟁은 있다. 한국의 경쟁이 지나치다고 하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단순히 뉴스에 나오는 숫자만 비교해도 한국은 몇 백대 일, 몇 천대 일이니까. 사회자체도 빨리빨리 회전한다. 빨리 돌아간다는 것은 변화가 많다는 것이고 변화가 많다는 것은, 빠른 적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문제도 마찬가지다. 초등교육부터 고등교육과정까지가 수능을 잘 봐서 수준이 약간씩 다른 비슷한 대학에 가기 위한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파라과이의 학생들도 물론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하지만 길이 다양하다. 현지학교에 진학하기도 하고 미국, 한국, 아르헨티나에 가기도 한다.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적기 때문에 경쟁이 덜한 편이다. 게다가 경쟁 상대라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없을 만큼 그 수가 적고, 길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 주도적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자기주도적인 학습이 한국학교 학생들의 특징이다."

한국학교 졸업생 지우성씨도 파라과이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젊은이들보다 더 여유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파라과이는 느리게 가는 것이 허용되는 곳이다. 한국에서는 꿈을 이루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지 않나. 많은 것들이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에 내가 가서 무언가를 한들 표도 그다지 나지 않고, 살아가는 것만 너무 힘들 것 같다. 나는 이곳에서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 내 꿈을 개척하며 살고 싶다."

파라과이 동포 학생들이 많은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한국인들보다 좀 더 많은 언어를 구사하고, 저개발 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길이 많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로에 대해 좀 더 여유롭게 생각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이곳에도 경쟁이 있고 내일을 위한 끝없는 노력이 존재하지만, '오르지 않으면 탈락'이라는 한국사회의 보편적인 공식이 이곳에는 희박하다. 경쟁은, 점수를 더 얻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정신적인 능력을 비교하는 것이라는 걸 파라과이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체득한 것이다. 나 역시 느림이 허용되는 파라과이에서 여유를 가지고 나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시간은 오늘도 천천히 흐른다.
덧붙이는 글 <파라과이 한인 이민 35년사>를 참고자료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글은 파라과이 기독교한인방송 GBS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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