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답에 답하고 있는 박노해시인'작가와의 대화'라는 제목처럼 아무나 질문할 수 있었고, 시인은 성실하게 답변해 주었다. 유머 감각을 갖춘 시인 덕분에 세 시간 동안 진행되었지만 지루한 줄 몰랐다. ⓒ 김영학
"여러분은 이곳 무각사 갤러리에서 시인이 그동안 찍은 사진 13만 장 가운데 고른 30점을 만나셨습니다. 삼천 분의 일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선택된 사진들을 만난 것이지요."
시인은 아프리카나 중동의 분쟁지역을 방문해 기아와 전쟁 공포에 시달리는 삶을 알리려 앵글에 담으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전한다. 셔터를 누르다가 붙잡혀 죽을 만큼 맞기도 했고, 여러 번 저격당할뻔했다고 한다. 그럼 무엇이 시인을 사지(死地)로 가게 했을까?
"티브이를 통해 분쟁지역 사람들의 죽음을 접하면서 느꼈던 고통보다, 직접 찾아가 함께 하는 것이 덜 고통스럽기 때문이었다."
이런 시인의 생각은 그의 사진으로도 읽을 수 있었지만 최근에 펴낸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젊은 시절 노동해방을 꿈꾸었던 혁명가가 이제 인류애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행사장을 찾은 사람 중 가장 어려 보이는 앳된 소녀가 "선생님의 시 스승은 누구세요?"라고 묻자 시인은 '노동'하는 분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대답한다. 특히 자신의 이모님처럼 성실하게 사는 이 땅의 농사꾼이 모두 스승이었다고, 그분들의 몸말이 모두 아름다운 시였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였다. "직장 생활을 하되 틈을 내 농사 지으세요. 그래야 영혼을 살찌울 수 있고, 미래에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시인과의 만남이 끝나고 '새해엔 한 평이라도 땅을 일구리라!' 다짐하며 무각사 경내를 걷는데 마침 눈이 내려 산사가 더욱 아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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