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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버지가 조밥을 하라는데 어찌 하겠느냐"

김규동 시인의 독립군 자금 이야기... 하늘에 계신 어른께 새해 큰 절 드립니다

등록|2011.01.01 11:46 수정|2011.01.01 16:19

▲ 이희호 여사의 연하장 ⓒ 박도


해마다 연말에 연하장을 받으면 대체로 답장을 하고는 새해를 맞이하였는데 2010년에는 받기만 하고 답장도 못한 채 얼떨결에 새해를 맞이하였다. 해가 갈수록 받는 연하장도 나이에 반비례하여 줄어드는데 수십 년째 변치 않고 줄곧 보내주는 반가운 분도 더러 있다. 이희호 여사도 그 가운데 한 분이시다. 한때 당신 아들을 가르친 인연으로 해마다 빠트리지 않고 보내 주신다.



나는 아직 음력 설날이 한 달은 남았다는 핑계로 이 달 내로 보내도 늦지 않았다고 자위하면서 그동안 받은 우편물을 가려 보관코자 우편물 보관함 상자를 책장에서 내렸다.

우편함 상자에서 지난 우편물을 정리하는데 한 우편물이 눈에 뜨이기에 속지를 꺼냈다. 그 편지는 시인 김규동 선생이 육필로 쓴 것으로, 내가 펴낸 <항일유적답사기>에 대한 독후감을 적어 보내셨다. 나는 이 책에서 선생의 시 <두만강>을 전재하였다.

▲ 중국 도문과 북한 남양을 잇는 두만강 철교 ⓒ 박도




두만강

얼음이 하도 단단하여
아이들은
스케이트를 못 타고
썰매를 탔다.

얼음장 위에 모닥불을 피워도
녹지 않는 겨울 강
밤이면 어둔 하늘에
몇 발의 총성이 울리고
강 건너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 멀리 들려왔다.

우리 독립군은
이런 밤에
국경을 넘는다 했다.

때로 가슴을 가르는
섬뜩한 파괴 음은
긴장을 못 이긴 강심 갈라지는 소리

이런 밤에
나운규는〈아리랑〉을 썼고
털모자 눌러쓴 독립군은
수많은 일본군과 싸웠다.

지금 두만강엔
옛 아이들 노는 소리 남아 있을까
강 건너 개 짖는 소리 아직 남아 있을까

통일이 오면
할 일도 많지만
두만강을 찾아 한번 목 놓아 울고 나서
흰머리 날리며
씽씽 썰매를 타련다

어린 시절에 타던
신나는 썰매를 한번 타보련다.


지전 곱게 인두로 다려 독립자금으로 내놓은 아버지

▲ 김규동 선생의 편지 ⓒ 박도



김규동 선생은 당신의 시를 새삼 읽으니 옛 생각에 눈물이 난다고 하시면서 명동교회를 세운 김약연 목사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셨다.

김약연 선생은 너그럽게 생기신, 머리가 하얀 노인으로 일 년에 두어 번 함경도 종성 우리 집에 오셨지요. 약국을 경영하시던 아버님이 김약연 선생님 오실 때는 그때 돈 200원, 혹은 300원을 독립자금으로 내놓곤 하시는 걸 저는 어릴 때 보고 자랐습니다. 제 아버님은 문익환 목사의 선친 문재린 목사와 명동학교 동창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시는 우리 어머니는 "너희 아버지는 돈 없는 사람한테는 약값도 받지 않고 치료하고, 겨우겨우 먹고살 만큼 돈푼이나 모아 놓으면, 너희 아버지는 그 지전을 곱게 인두로 다린 뒤, 흰 수건에 곱게 싸서 무릎을 꿇으시고 김약연 선생님에게 드렸다.

그래서 너희들한테는 된장국이나 조밥만 먹였다. 규동아, 너는 입쌀밥이 그토록 먹고 싶다고 하지만 아버지가 조밥을 하라는 데 너만 입쌀밥 어떻게 먹일 수 있겠느냐?"



어머니는 이와 같은 하소연 같기도 하고, 탄식 같기도 한 이야기를 더러 하셨지요.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는 독립운동이 어느 만큼이나 중하고 급한 것인지를 모르시는 탓으로 하신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


▲ 김약연 선생이 세우신 용정의 명동교회 ⓒ 박도



짧은 글이지만 한 세기 전 일제강점기의 일들을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증언해 주는 글이다. 영하 30~40도의 강추위에도 두만강을 넘나들며 일본군과 싸우고, 독립지사에게 지전을 곱게 인두로 다린 뒤, 흰 수건에 곱게 싸서 무릎을 꿇으시고 드린 그 어른들은 이제 모두 저 세상에 계실 것이다.

새해를 맞으면서 나는 하늘에 계신 그 어르신들께 먼저 큰절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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