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 땅의 기독교인들, 베드로처럼 살아야 한다

[서평] 송광택의 <고전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등록|2011.01.05 14:05 수정|2011.01.05 14:05

책겉그림 〈고전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 평단



재밌는 말이 있다. 고전(古典)은 고전(苦戰)케 한다는 것. 그만큼 고전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찬찬히 짚어가며 읽는다면 그 깊이는 훨씬 깊다. 사람들이 고전을 탐독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기독교계에서는 어떤 책을 고전으로 생각할까? 대부분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라든지, 존 칼빈의 <기독교강요>,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꼽는다. 그것들 모두가 기독교 2천년 역사에 중심축인 까닭이다.

송광택의 <고전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나다>(평단)는 기독교계의 고전들을 강독한 책이다. 기독교인이라면 한 번 쯤은 읽어봐야 할 책 40권을 6가지 항목으로 분류하고 있다. 기도란 무엇인지, 지식과 행동하는 믿음은 무엇인지, 기독교 문학과 영적 거인들의 명저는 어떤 것들인지, 위대한 신앙인들의 일기와 전기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지가 그것이다.

"고전은 사실 가볍거나 쉬운 책이 아니라, 종류가 다른 책일 뿐이다. 고전은 인류의 정신적 영적 유산이기 때문이다. 그 작품들은 세월의 엄중한 검증을 거쳤기 때문에 '고전'이라는 명예의 전당에 그 이름이 올라갔다. 특히 교회사에서 우리는 뛰어난 기독교 고전을 만날 수 있다. 일반인들도 인정하는 세계적 고전 중에는 기독교 정신의 세례를 받은 문학 작품이 얼마나 많은가."(서문)

보통 사람들은 기도를 주문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인은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로 여긴다. 그 분 앞에서 자기주장을 남발하는 게 아니라 그 분의 음성과 뜻을 헤아리는 시간이 바로 기도다. 그러니 기도를 깊이 하는 신앙인들은 자기 뜻을 이룩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꺾으려거나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오 할레스비의 <기도>에는 기도가 "무력함을 자각하는 태도"라고, 아벨라의 성 테레사의 <기도의 삶>에는 기도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게. 자신의 무력함을 자각하는 자만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나아갈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자만이 타인을 배려하는 기도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기도와 관련하여 최근 보도된 소망교회 폭행사건은 교회의 치부다. 사건의 진상이 확실히 밝혀진 건 아니지만, 다들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다. 그들의 기도가 자기 강화에 있었다는 것. 하나님 앞에 자기의 무력함을 자각하거나 타인을 배려하는 기도가 결코 아니었다는 것. 이는 기독교인들 모두가 깊이깊이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늙은 사도가 흐느끼는 소리로 말했다. '쿠오바디스 도미네?' 나자리우스에게는 들리지 않았으나, 베드로의 귀에는 온화하면서도 슬픈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내 어린 양들을 버렸으니,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로마로 간다.' 사도는 꼼짝도 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그대로 땅에 엎드려 있었다."(205쪽)

이는 헨릭 시엔키에비츠의 <쿼바디스>제 70장에 나온 내용이다. 로마의 황제 네로가 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교도들에게 뒤집어 씌워 대학살을 시작하지만, 사악한 권력은 그것으로 끝내 멸망한다는 줄거리다. 그 박해의 현장 속에 빛으로 나타난 예수님을 본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쿼바디스 도미네)하고 물었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의 양들을 버리고 가니 내가 다시 돌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리라'고 답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1600년대의 작품으로 알려진 카라바조의 <성 베드로의 수난>이란 그림과 함께 덧붙여 놓은, 베드로의 고백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이 고백을 들어보면 왜 <쿼바디스>가 여전히 고전으로 남고 있는지 헤아릴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똑바로 달리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영광을 입었으니 내 머리는 땅을 가리키고 다리는 하늘을 향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나는 주님과 똑같이 십자가에 달릴 자격이 없으니, 십자가를 돌려서 내 머리가 아래로 오도록 매달아 주십시오."(203쪽)

사실 이 땅의 기독교인들은 베드로처럼 살아야 마땅하다. 십자가 위에 똑바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하기보다 십자가 아래로 머리를 향하는 삶 말이다. 그런 겸손과 내려놓음이 있을 때에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을 통해 참되게 되살아날 것이다. 그런 가치를 고전으로 여기는 자들에 의해 기독교는 더욱더 숭고한 지위를 부여받게 될 것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