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지금은 없는 덕수궁 구여당, 이렇게 생겼구나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4)

등록|2011.01.10 18:55 수정|2011.01.10 18:55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덕수궁'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이 석조전이다. ⓒ 정만진


1930년대 중반에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위의 사진은 유명한 석조전이다. 석조전은 궁궐에 지어진 유일한 서양식 석조 건물이다. 1900년에 기공하여 1909년에 완공되었다. 1938년에 서관(西館)이 준공되면서 함께 이왕가박물관(李王家博物館)이 되었다. 사진에서 석조전 뒤편에 보이는 철탑은 경성방송국의 송신탑이다.

덕수궁의 본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이다. 본래는 왕족의 집이었는데 임란 때 궁궐이 모두 불에 타버렸기 때문에 선조가 거처하는 임시 궁으로 쓰이다가 광해군 때에 이르러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덕수궁이 궁궐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는 것은 뒷날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으로 옮겨오면서 다시 왕궁으로 사용된 결과이다. 고종황제가 1907년 왕위를 순종에게 물려주고 이곳에 계속 머물자 순종이 부황의 장수를 기원한다는 뜻에서 덕수궁으로 그 이름을 바꾸었다.

1904년 큰불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길에 휩싸여 없어지자 뒷날 덕수궁의 이미지가 되어버리는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들이 들어서게 된다. 궁궐 공간의 조화가 무너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덕수궁은 조선 후기에 와서 비로소 궁궐로 갖추어진 곳이지만 대한제국의 역사적 현장이었고, 전통 목조건축과 서양식 석조건물이 함께 남아있는 곳으로서 조선왕조의 궁궐 가운데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1938년 이후에 촬영되었다. ⓒ 정만진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은 본래 이름이 대안문(大安門)이었다. 대한문의 기둥에는 '李王家美術館'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사진에서 보면 문 안쪽으로 보이는 흰 건물이 바로 이왕가미술관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궁궐 침전 중 가장 늦게 지어진 건물이다. ⓒ 정만진


함녕전은 덕수궁의 침전인데, 궁궐의 침전 중 가장 늦게 지어진 것이다. 1897년에 건립되었다가 1904년 화재 이후 중건된 것이 지금 현존하는 건물이다. 1919년 1월 22일 고종이 이 건물에서 승하하였다. 위의 사진은 1920년 이후에 촬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일제강점기 때 촬영 ⓒ 정만진


구여당은 함녕전 뒤편에 있었던 2층 건물로서 건축 양식이 독특하다. 이 건물은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히 확인되지 않으며, 지금은 존재하지 않아 볼 수도 없다. 다만 이렇게 사진으로 생생하게 남아 우리에게 그 면모를 잘 분명하게 각인시켜 주고 있으니 유리건판의 사료적 가치를 특히 확인하게 해주는 사진이라 하겠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 ⓒ 정만진


1928년에 찍은 위의 사진은 창경궁의 정전(正殿)인 명정전인데, 1616년(광해군 8)에 중건된 건물로서 현존하는 궁궐의 정전 중 가장 오래되었다. 다른 궁궐들의 정전이 남향인데 비해 동향인 것도 특이하다. 품계석(品階石)이 없어지고 그 대신 나무들이 줄지어 심어져 있는 모습을 사진에서 볼 수 있다.

창경궁은 1483년 성종이 3명의 대비를 모시고자 수강궁(壽康宮) 터에 증축하여 지은 궁궐인데, 조선 시대 궁궐 중 유일하게 동쪽을 보라보며 서 있다. 처음에는 크게 사용되지 않았던 창경궁은 임란 때 불에 탔다가 창덕궁과 함께 다시 지어진 이후에는 조선 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된다.

1909년 궁궐 안의 건물들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서면서 궁의 이름이 낮아져 창경원이 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그러다가 1984년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본래 이름 창경궁을 되찾게 되고, 동물들이 서울대공원으로 이주되면서 벚나무들도 모두 잘라버린다. 장조, 정조, 순조, 헌종을 비롯한 많은 왕들의 탄생지이며, 광해군 때 다시 지어진 정문과 정전들이 보존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일제강점기 촬영 사진. 창경궁 안에 설치된 이왕가막불관 앞에 있던 이 앙부일구는 일종의 해시계로, 받침돌의 윗부분을 앙부일구의 모양대로 파내고 그 속에 끼워넣은 모습이 주목된다. 앙부일구의 본모습을 고증할 수 있는 귀중한 사진자료이다. ⓒ 정만진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나무를 깎아만든 봉황 조각이 호화로운 명정전 천장. 일제강점기 때의 사진으로 정확한 촬영 연대를 알 수 없다. ⓒ 정만진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창경궁의 정문이다. 1928년 사진. ⓒ 정만진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은 명정전과 마찬가지로 1616년에 중건되었고, 명정전과 마찬가지로 동향이다. 기둥에는 '昌慶苑'이라는 현판이 아직도 붙어 있다. 주위에는 일본어로 된 광고가 여럿 붙어 있다. 아직 일제의 잔재는 망령처럼 살아서 여전히 한반도를 떠돌고 있는 모양이다.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대형 걸개가 걸린 대구박물관 천정사진전은 3월 6일까지 계속된다. ⓒ 정만진




덧붙이는 글 사진은 전시된 것을 재촬영하였으므로 본래 작품과 크기, 구도, 이미지, 색깔 등이 다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