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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금지' 후 학생들과 만든 '유쾌한 소통시간'

지금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공감과 소통의 교육이 필요하다

등록|2011.01.07 20:05 수정|2011.01.07 20:05
한파와 많은 눈으로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지난 2010년 12월 29일은 서울 ㄱ고등학교 전문상담원인 ㅈ선생님(33)에게 무척 설레는 날이었다. 한 달 여 전부터 상담을 통해 라포(rapport; 상담이나 교육을 전제로 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루어진 인간관계)를 형성한 공감학생인 자칭 ㄱ고 F4들과의 특별한 문화 데이트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이용해 서둘러 도착한 곳은 아직 흰 눈이 소복한 여의도중학교의 강당. 오늘의 특별한 문화 데이트는 바로 서울시교육청 직원들이 직접 준비하여 공연하는 연극 '방황하는 별들'이었다. 약간 지체한 탓에 이미 합창 공연은 시작되었지만, 다행이 고대하던 연극 '방황하는 별들'은 아직 시작 전이다.

자리를 잡고 주변을 둘러보니 무대를 중심으로 550여 객석은 이미 중고등학교 공감학생들과 인솔자인 전문상담원들로 꽉 차 있었다. ㅈ선생님과 공감학생 F4 주변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흰 양말에 슬리퍼를 신고 와 다리를 흔들고 있거나, 빨강색, 노란색 등 색색으로 머리를 염색하였고, 어색한 사복을 입고 온 아이는 무표정하게 앞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또한, 머리카락으로 잘 가려진 귀 사이로는 귀걸이가 반짝이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이에 F4 중 한 아이는 "중딩(중학생) 때 저렇게 하고 다닌 적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괜히 그랬다"며 제법 철든 티를 내더니 이내 "저 아이들 너무 스타일이 구리다(형편없다)"는 둥 평가를 하기 시작한다. 한눈에도 많은 상담을 한 공감학생임이 드러나는 이 아이들은 벌써 두리번거리며 지루해하였고, 그 옆으로 나란히 앉아 있는 전문상담원과는 약간 서먹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준비된 합창과 바이올린, 플롯 등의 연주 순서가 끝나고,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를 뚫고 드디어 연극 '방황하는 별들'의 막이 올랐다. 연극이 시작되고 이미 40대는 훌쩍 넘긴 듯한 서울시교육청 직원들이 7명의 방황하는 청소년으로 분하여 극을 이끌어 나가자, 객석의 공감학생들은 "저게 뭐야", "얼굴이랑 너무 안 어울린다", "하하하.. 완전 웃겨" 등의 말을 하면서 연극에 몰입하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을 보였다.
         

가출하여 혼숙하다가 경찰서 보호서에 온 딸과 갈등하는 아버지 무조건 딸을 윽박지르는 아버지와 두려움에 한껏 움츠린 딸 ⓒ 정홍태


그러나, 이내 공연이 무르익으면서 현재 우리 청소년들의 고민과 내면의 상처, 방황 등이 이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지자, 하나, 둘, 공감학생들은 조용히 극에 빠져들었다. 이들은 조기 유학으로 적응 못하는 아이, 어린 나이에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아이, 가출하여 혼숙하던 아이들, 원조교제든 뭐든 남녀를 연결해주는 아이, 사회적으로 불만을 가진 아이, 가출을 시도한 중학생 아이 등 7명의 방황하는 청소년에 하나씩 감정 이입되었다가, 그들을 이해 못하고 다그치는 부모들도 되어보며,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시각이 있음을 모두 충분히 공감하기 시작하였다.

경찰서 보호소에 있던 7명의 방황하는 청소년과 그 부모님의 갈등 해소 부모님들이 방황하는 청소년들과의 소통을 통해 고민과 불만, 상처 등을 모두 보듬어 안고 박수로 격려하고 있다. ⓒ 정홍태



              
"나이도 많으신데 연극 잘 하신다", "가슴에 팍팍 와 닿아요", "어른들은 다 똑같나봐" 등 연극이 진행되는 사이사이 공감학생들의 표정과 이러한 반응들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던 전문상담원들 입가에는 절로 흐뭇한 미소가 흘렀다.

이날 우리 청소년들의 현재 모습과 내면의 상처들을 통해 세대 간 공감과 소통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연극 '방황하는 별들'은 '체벌 전면 금지' 조처 이후 서울시 중고등학교 225곳에 배치된 전문상담원과 이들이 가슴으로 끌어안은 공감학생들이 함께 관람하며 서로 또 한 번 공감과 소통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뜻 깊은 자리였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유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오길 잘 했어요"라며 공감학생들 저마다 세대를 뛰어 넘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속 시원히 대변해 주는 연극에 한없이 즐거워하였다. 이런 연극을 얼마나 보러 올까 반신반의하며 1시간 반을 전철타고 이 공연장에 왔다는 한 공감학생은 강당 객석을 꽉 메운 전문상담원과 다른 공감학생들을 둘러보면서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다"며 감동하였다.

공연 전 무표정하다 못해 졸린 듯한 얼굴에, 전문상담원 때문에 자리를 뜨지는 못하고 지루해서 이리저리 몸을 비틀던 그 아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다. F4 공감학생 중 한 명은 극에서 대사 실수를 하신 분 이야기를 하며, "얼마나 대사 외우기 힘드셨을까"라고 이해하면서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연극을 보고 난 소감과 나름의 평가 등을 서로 이야기 하며 화기애애하게 몰려나오는 공감학생들과 전문상담원들은 연극 관람 전에 보인 어딘지 모를 어색한 분위기와는 달리,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고민들하며 총총히 사라지는 모습이 너무나 다정했다.

특별한 문화 데이트를 즐긴 ㄱ고등학교 전문상담원 ㅈ선생님과 공감학생 F4들도 "이미 출발 전 사다리 타기로 저녁 메뉴가 결정되었다"며 선생님과 또 다른 추억을 만들기 위해 신나게 돈가스를 외치며 학교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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