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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그리고 한국 사회

[책] 고종석 <말들의 풍경>

등록|2011.01.08 14:59 수정|2011.01.08 15:02
아주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사회적인 특정한 기호이기에 사회문화적 제반요인의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최근 언어학에서는 사회나 문화의 제반요소와 언어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고종석의 표현을 빌리자면 언어를 언어의 속에서가 아닌 언어의 밖에서 보고자 하는 담론일 것이다.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 역시 언어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필자의 의도라기보다는 필자가 걸어온 길을 대변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종석은 언어학 박사이자 기자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언어가 가지고 있는 속의 규칙보다는 바깥에서 언어를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계급의 언어라든가, 성별의 언어라든가 혹은 정권의 언어들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인지 상당부분 이 책의 서술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말들의 풍경>이라는 제목처럼 말들 안의 풍경이 아니라 말들로 인해서 빚어지는 세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계급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말에는 계급이 존재한다. 고종석은 이 책에서 이 부분을 방언과 프랑스의 NAP 언어로 지적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도 말의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환자에게 의사가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사투리로 전했을 때와 표준어로 전했을 때 환자는 후자에 더욱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는 이들의 경우 열심히 표준어를 배우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사실 역시 언어의 차별이 존재한다는 반증이라 그는 말한다. 물론 경상도지역의 사투리의 경우 정치적인 문제 -이 지역 출신의 대통령, 국회의원 들이 많다는- 이유로 인해서 언어적 차별이나 동화를 경험하지 않기도 한다. 이를테면 언어의 내부 식민지론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이른바 행해지고 있는 국어순화운동에 대해서도 언급해 놓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영향이겠지만 우리에게는 한동안 국어순화운동이라는 것이 큰 붐을 이룬 적이 있다. 한자어를 배제하고 우리말로 해당되는 언어를 만들어 그것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국어의 품사를 우리말로 바꾸거나 의례적으로 쓰이는 한자 어투의 말을 고치자는 것인데 실제로 많은 국어 학자들이 이를 연구하였고 일부에서는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이 책은 이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한다. 일부만 사용하는 어렵게 바꾸어진 말이 말로서의 제 기능을 하는가? 에 대한 물음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저자의 말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 인위적이지 않을 것, 자연스러울 것, 말이란 세대에 따라 사라지고 생겨나는 유동적인 것임을 인식할 것,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말에 대한 자세인 것이다.

새로운 인터넷 용어가 등장할 때마다 소위 학자라는 분들 혹은 기성세대들 중 일부는 세상에 종말이라도 온 것처럼 말의 오염에 대해서 말한다. 늘 반복되는 그런 우려들의 중심은 결국 젊은 세대들의 말의 오염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속어와 비속어가 난무하고 폭력적이며 자극적인 언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젊은 세대들은 자극적이며 폭력적인 말을 즐겨 사용하는 우려되는 이들로 전락해버린다.

허나 그렇게 걱정하던 언어파괴적인 비속어들 중 일부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다른 언어로 대체된다. '하삼'이라거나 '아햏햏' 같은 언어들을 더 이상 사용하는 이가 없다는 것은 이러한 비속어들이 그저 유행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젊은 세대의 말들 역시 말이 가지고 있는 유동성과 사라짐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생겨나고 하는 것이다.

또한 사실 어느 세대에나 말의 유행은 있었다. 80년대에도 운동권 학생들만의 은어가 있었고 90년대 이른바 X세대에게도 그들만의 유행어는 있었다. 그 말들도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인터넷 언어에 대한 언어파괴성을 극단적으로 표출시키고 이에 대해 우려하고 걱정하고 또 때로는 모멸감까지 서슴지 않고 드러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말의 자세는 이들에게도 필요할 것이다. 인터넷 용어와 한 TV 프로그램에서 발생되는 비속어를 두고 언어의 파괴니 전파낭비니 등을 일컫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말이란 때가 되면 사라지고 태어나는 사실상 상당히 유동적인 녀석이니 말 하나를 두고 정치적으로 혹은 권력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등장하는 말들의 풍경은 이렇듯 계급이나 말의 운동과 국한되어 이야기 되는 것은 아니다. 말들의 풍경이라는 문학적 수사가 가득한 제목에 걸맞게 이 책은 말들이 빚어내는 풍경이나 혹은 말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문장이 빚어내는 풍경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야기하고 있다. 문학이라거나 혹은 평론가의 글의 특징, 그리고 나아가 한국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나 과학성에 대한 언급들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말의 바깥의 풍경, 언어의 사회학적 특성에 대한 이 책의 서술들은 사실상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기자로서 필자가 지내온 세월 속에서 갈고 닦아진 사회에 대한 통찰력과 언어학 박사로서 가지고 있는 언어에 대한 지식, 관심이 조합하여 상당히 흥미롭고 관심이 갈 만한 이야기들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어떤 경우 갈망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사회의 가치를 보여주기도 한다. 노무현정부 시절 가장 많이 세간에 오르락내리락 한말은 진중함일 것이다. 대통령이 진중하지 못하고 말이 많다는 평가이다. 그건 진중하고 무게 있는 그래서 말실수를 하지 않는 대통령에 대한 갈망의 반증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정부에 들어서 가장 오르락내리락 하는 말은 전혀 반대로 소통이다. 말 좀 해보자는 것이다. 네 말만 하지 말고 내 말도 좀 들어달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우리사회는 어느 때보다 정의에 대해서 말했다. 정의, 소통, 자유란 말이 갈망과 사회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보여준다면 앞서의 세 단어는 결국 한국사회가 나아갔으면 하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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