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역사의 남원향교, 진강루의 용도는?
남원향교 진강루엔 오르는 계단 없어, 특이한 구조 기억에 남아...
▲ 진강루남원향교 서 있는 중층 누각인 진강루 ⓒ 하주성
남원은 조선조에 들어서 종 3품의 수령이 관할을 하는 <남원도호부>였다. 당시 남원도호부는 1부 1군 9현을 다스리는 곳의 중심에 있었다. 9현이란 담양, 곡성, 구례, 순창, 임실, 창평, 무주, 진안, 장수를 말한다. 이 모든 고을을 다스리는 곳이 바로 남원도호부였다. 남원은 호남과 영남을 연결하는 주요한 교통, 역사, 군사의 요충지로, 정유재란 당시에는 2천의 군사와 8천의 남원성의 백성들이 왜병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모두 전사를 한 곳이기도 하다.
▲ 하마비하마비의 형태가 색다르다 ⓒ 하주성
남원향교 진강루,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나?
문을 연 지 600년이 지난 남원향교. 그만큼 남원항교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현재 향교 안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대성전과 동무와 서무, 그리고 명륜당과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동재와 서재가 있다. 또한 사마재와 전사청이 있으며, 명륜당의 뒤편에 중층 누각으로 구성된 진강루가 자리하고 있다.
남원향교를 찾아 여기저기 살펴보니 진강루란 누각에 자꾸만 눈길이 머문다. 진강루 앞에는 커다란 하마비가 서 있다. 일반적인 하마비와는 그 생김새가 조금 다르다. 그런데 향교나 서원 앞에 이런 누각이 있을 때는, 그 아래편에 중문과 좌우에 문을 둔다. 이 누각 밑에 난 문이 솟을대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남원향교의 경우에는 진강루 옆에 남원향교의 현판을 건 솟을대문이 별도로 설치돼 있다. 그렇다면 이 진강루는 도대체 어떻게 이곳에 서 있는 것일까? 혹 이 향교를 옮기면서 딴 곳에 있던 문루를 이곳으로 옮겨온 것은 아니었을까? 진강루를 돌아보면서 의문이 영 가시지를 않는다.
진강루에는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이 없다
진강루를 돌아보면 추녀마다 많은 용들이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선 진강루 안 대들보에도 용 조각이 있지만, 주심포계 건물인 진강루의 기둥 위마다 용이 입을 벌리고 있다. 이렇게 많은 용을 조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점으로 보아 이 진강루가 어느 시기에 혹 성문의 누각이나, 동헌 등의 누각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용을 조각하였다는 것은 향교의 건물에서는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진강루는 원으로 다듬은 주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형의 기둥을 세웠다. 그런데 이층 누각으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이 보이지를 않는다, 그렇다면 진강루를 오르려면 어떻게 했을까? 그러고 보면 이 남원향교에서 보이는 이상한 구조물이 눈에 띤다. 바로 명륜당 뒤편에서 진강루로 연결된 나무다리가 있다는 점이다.
▲ 용진강루 위 대들보에 조각한 용 ⓒ 하주성
▲ 용주심포계 건물인 진강루의 기둥마다 용이 조각되어 있다 ⓒ 하주성
풀지 못한 수수께끼 진강루 가교
이 나무다리는 둥근 주추를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워 가교를 구성하였다. 그 다리를 건너야만 진강루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왜 이런 구성을 한 것일까? 향교에 계신 분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다. 남원에 계신 몇 몇 분에게 질문을 했지만,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전국에 있는 수많은 향교를 둘러보았지만, 이런 구성은 처음이다. 그래서 남원향교가 더 오래 기억되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번 남원을 찾을 때는 다시 한 번 진강루를 찾아 누각 위에 올라보아야 할 것만 같다.
덧붙이는 글
남원향교의 답사는 지난해에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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