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속에 감춰진 대구경북의 '들끓는' 민심
[참언론 모니터] 여론조사, 형님예산·4대강·한미FTA '반대'도 만만찮은데...
새해 '연례행사'처럼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이래저래 말이 많습니다. 전국단위의 조사결과를 표면적으로만 놓고 보면 국민 과반수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지지했다고 합니다. 또 차기 대선 후보로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한다는 의견이 높게 나왔다고 하는데요.
<미디어오늘> 류정민 기자나 <뷰앤뉴스> 박태견 편집장 등은 "언론의 '신년 여론조사'가 바닥민심을 담지 못했고", "여론조사만 보면 MB는 '한국판 룰라'"라며 6·2지방선거 때 보인 여론조사의 오류가 이번에도 그대로 드러났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한국 정치여론조사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집 전화 조사(전화 면접)인데, 이런 조사방식에선 인터넷전화와 휴대폰만 사용하는 세대는 자연스레 배제가 되고, 평일에 집에서 전화를 받을 확률이 높은 주부와 무직자, 노인들 의견이 많이 담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조사 대상이 특정층에게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다는 지적인 거죠.
여론조사 결과에 회의적인 반응은 여당내에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은 "여론조사 결과에 몽환적으로 취해있었다, 그 여론조사는 우리 한나라당 지지층만 자신있게 응답하는 조사였다"고 말했고, 홍준표 의원은 "집에 있는 노인층만 응답하는 기존의 여론조사를 어떻게 믿겠냐"며 삼엄한 바닥민심을 읽어야 한다고 정부에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서 대구 경북권은 예외라고 생각했습니다. 6·2지방선거에서 들끓는 민심이 표심으로 연결된 곳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유독 이 지역에는 그 바람이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기초의회에 개혁적 인물 10여명이 입성한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었지만, 술렁거렸던 전국적 민심을 봤을 땐 조금 부족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궁금했습니다. 대구경북권 표심이 특정 정당 및 정치인에게 100% 지지율 또는 몰표를 줬다는 기억은 없는데, 겉으로 드러난 지지율에 포함되지 않는 최소 30~40%의 민심은 무엇이며,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그들의 왜 침묵하고 있는지 등등.
그런데, 이번 <매일신문> <영남일보> 신년 여론조사에서 드디어 숨겨진 그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신문의 절묘한 편집기술이 '부글부글 들끓는 지역민심'을 교묘하게 감추고 있었습니다.
<영남일보> 편집 속에 감춰진 민심은?
'제목 소비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쁜 일상에 신문, 방송뉴스를 차분하게 읽을 수 없기 때문에 기사의 제목 또는 자막을 통해 해당 기사를 선택한다는 것인데요. 조금 오래된 논문이지만 이를 증명하는 조사가 있습니다.
95년 경성대 신문방송학과 정태철 교수가 발표한 '목소비자 증가와 신문제목의 이해도'에서 소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독자들의 신문 읽는 습관은 '제목 위주로 읽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① 제목만을 읽거나 ② 제목을 읽어서 관심 있는 몇 개의 기사를 찾아 그 기사이 앞 부분만 읽거나 ③ 제목을 읽어서 관심 있는 몇 개의 기사를 찾아 그 기사를 다 읽는 구독 형태라고 볼 수 있는데요. 정 교수는 "제목 위주로 신문을 읽게 되면, 독자들은 역시 제목 위주로 기사내용을 기억할 것이라는 가정도 가능케 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제목 위주로 읽는 습관'이 자료가 발표된 시점에 비해 2011년 우리가 발딛고 있는 현실에서 더욱더 강화되었다 점에 반론은 없을 것 같은데요.
이번 <영남일보> 여론조사 결과는 기사의 제목만 읽는 습관을 가진 독자에게 '기사 제목이 결코 기사의 전체적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사의 가치관이 숨어있다'라는 주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여느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지역의 <매일신문>과 <영남일보>도 각각 1월 3일 신년 여론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매일신문>은 한국지방신문협회와 함께 전국 3천명, 대구경북 540명을 대상(전화면접 방식)으로 전국 여론과 지역 민심을 함께 조사했고, <영남일보>는 대구경북민 1천명을 대상으로 이 지역 민심을 조사했습니다.
'신공항 밀양 최적지 53%', 'MB국정 수행 잘잘못 '비슷'…차기 박근혜 대세론 '여전'', 'MB국정 지지도 대구 42.2%, 경북 50.7%', '2012년 대선 후보 지지율 박근혜 42% 압도적', '경제활성화·국방-서민정책 강화 우선 희망' 등 제목만 보면 기사를 읽고 싶은 의욕을 잃어버립니다. 별로 새롭지 않고, 평소에 언론이 강조했던 일들이 여론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생각에 무심히 신문을 넘기다가 우연히 작은 제목에 시선이 고정되었습니다. '한미FTA재협상 "2007년 원안보다 양보 반대" 46%'.
어? 이 지역에서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기도 하나? 한미 FTA 재협상은 '굴욕적 외교'라고 비판받고 있지만, 정권에 대한 지지가 정책에 대한 동의로 이어졌던 것이 이 지역 민심이었는데,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고? '숨어있었던 민심'이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인가?
여러 가지 생각에 기사를 꼼꼼하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한미FTA 재협상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으로 조사되었다. '2007년 원안에 비해 양보한 것으로 반대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46.3%, '국익에 도움이 도움되므로 찬성한다'는 답변은 40.4%였다"고 합니다.
기사를 읽으면서 곧 실망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정부의 정책에 대한 반발이 높다는 여론이 반영된 것이 아니라 '편집상의 오류'였습니다. 즉 두 응답의 차이는 오차범위(영남일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신뢰수준에 ±3.1%, 따라서 두 응답의 차이가 6.2%내에 있으면 어느 의견이 우세하다고 볼 수 없고, 오차범위내에서 접전이라고 표현한다) 내에 있었기 때문에 '한미 FTA재협상 "2007년 원안보다 양보 반대" 46%'라는 제목은 '한미 FTA재협상 '양보 반대', '국익 도움 찬성' 여론 팽팽'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는데요.
어쨌든 이 제목 때문에 무심히 넘겼던 <영남일보> 조사결과를 처음부터 끝까지 쭉 훑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그동안 찾을 수 없었던 '잃어버린 지역 민심 20~30%'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영남일보> 대구경북 들끓는 민심 왜 감추나?
'4대강 속도전 반대·우려 66%', '4대강 예산 삭감 복지예산 증액 56.9%'
'새해 예산안 강행처리 한나라당 잘못 36.7%'
'형님예산 | 특정지역에 예산 많이 배정 잘못 56.3%'
지난 2008년부터 현재까지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에 <영남일보>는 찬성 일변도였습니다. 지역사회에 숱한 문제와 민원, 불탈법 사례, 골재노동자의 생존권 문제가 불거져도 <영남일보>외면하거나 체면치레 정도만 했었습니다.
그리고 '형님 예산'논란이 생길 때마다 <영남일보>는 포항의 관계기관 및 지역 정치권의 목소리를 빌어 '억울하다'고 호소했고, '지역역차별' 을 운운하며 예산 논쟁을 무색화 시켰습니다. 또한 '형님 예산'때문에 냉혹하게 삭감된 사회복지 예산에 대해선 철처히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매일신문>도 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을 텐데요.
두 신문만 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지역 민심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물론 위 문제에 반대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극히 소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두 신문은 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해 이 지역출신 정치권 인사들의 '부적절한 행보'를 감싸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습니다.
근데 <영남일보>가 대구경북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에는 지역언론이 그토록 감싸려고 했던 지역출신 정치인 및 고위공직자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영남일보>는 지면편집을 통해 애써 이들의 목소리를 감추고 있는데요. 기사내용은 이렇습니다.
"4대강 사업 완공을 위해 '속도전'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신중하고 천천히 진행해야 한다(45%)는 답변이 많았다. 32.8%는 현재 방식에 찬성한다고 밝혔으며 21.0%는 '반대'입장을 내비쳤다".
즉 이 결과를 제가 해석해보면 '4대강 속도전에 반대 21.0%, 신중이 45%. 찬성이 32.8%'라는 점입니다. 한번 더 강조하면 4대강 속도전에 우려의 목소리가 66%.
"4대강 예산을 줄여 복지예산에 사용해야 한다(56.9%),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조차 '야당의 주장에 찬성한다'(45.2%)".
역시 이 결과를 제가 해석해보면 지역의 한나라당 지지층을 포함한 지역민심은 '4대강 예산을 줄여 복지예산에 사용해야 한다'에 약 60%가 동의했다.
"예산안 강행처리 과정에서 일어난 여당과 야당간 폭력사태에 대해 '한나라당 책임 36.7%, 야당 쪽 책임 25.6%, 잘 모름 37.7%".
"'형님 예산'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특정 지역에 예산이 많이 배정되는 것은 잘못' 56.3%, '야당 특집잡기' 36.6%/ 형님예산의 최대 수해지역이라 할 수 있는 동부 연안권에선 두 의견이 비슷하게 각각 47.1%, 46.4%."
즉 지역민심은 '형님예산'에 반발하고 있고, 특히 예산의 최대 수해지역민들도 이런 식의 예산배정에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여론조사 결과 이 문제에 대한 지역민들의 찬반양론은 팽팽했지만, 기존 신문보도에서 '강한 반발'만 접하다가 '특정 지역 예산 많이 배정은 우려'라는 목소리가 47.1%정도나 나왔다고 해서 꽤나 놀랐습니다.
이번에 조사된 대구경북권 1000명의 민심은 시사 하는 바가 많습니다. 기존에 논란이 되었던 굵직굵직했던 현안에 대해 지역의 <매일신문>과 <영남일보>가 얼마나 특정 여론만 대변해 왔는지, '사회복지', '지역출신 정치권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지역민의 들끓는 목소리를 얼마나 외면해 왔는지. 두 신문이 반영하지 않았던 지역의 바닥민심이 이번 조사에서 그대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앞서 '전화면접 여론조사 방식의 한계'를 감안한다면 '대구경북권의 보수층 민심도 현 정권과 추진 중인 주요정책에 대한 반발이 크다'고 결론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것에 민감해야 하는 것이 언론의 몫일 텐데요. 굵직굵직했던 현안에 대해 기존 <매일신문>과 <영남일보>가 제시했던 뉴스형태와 전혀 다른 민심이 나타났고, 신문을 열심히 읽고 있는 제게도 무척이나 새롭게 다가오는 이 뉴스를 <영남일보>는 왜 이리도 '인색하게' 편집했을까요?
대구경북권 바닥민심(그게 전화면접조사만 가능한 보수층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이 기존 언론이 취했던 방향과 다르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제목, 중간제목, 그래픽 등에 이들의 목소리가 편집된 곳은 없었습니다. 저 처럼 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어야만 겨우 찾을 수 있도록 편집이라는 숨은 그림 속에 꼭꼭 감추어 두었던 것이었습니다.
홍준표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언론의 여론조사에 우려를 표하며 걱정하고 있는데, 여론조사 방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구경북권에서 현 정권 및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영남일보>는 권력 해바라기식 편집만 선호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지역언론의 모습입니다. <영남일보>, 쫌~
<미디어오늘> 류정민 기자나 <뷰앤뉴스> 박태견 편집장 등은 "언론의 '신년 여론조사'가 바닥민심을 담지 못했고", "여론조사만 보면 MB는 '한국판 룰라'"라며 6·2지방선거 때 보인 여론조사의 오류가 이번에도 그대로 드러났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한국 정치여론조사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집 전화 조사(전화 면접)인데, 이런 조사방식에선 인터넷전화와 휴대폰만 사용하는 세대는 자연스레 배제가 되고, 평일에 집에서 전화를 받을 확률이 높은 주부와 무직자, 노인들 의견이 많이 담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조사 대상이 특정층에게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다는 지적인 거죠.
▲ <미디어오늘> 2011년 1월 5일<미디어오늘> 2011년 1월 5일 ⓒ 미디어오늘
여론조사 결과에 회의적인 반응은 여당내에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은 "여론조사 결과에 몽환적으로 취해있었다, 그 여론조사는 우리 한나라당 지지층만 자신있게 응답하는 조사였다"고 말했고, 홍준표 의원은 "집에 있는 노인층만 응답하는 기존의 여론조사를 어떻게 믿겠냐"며 삼엄한 바닥민심을 읽어야 한다고 정부에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서 대구 경북권은 예외라고 생각했습니다. 6·2지방선거에서 들끓는 민심이 표심으로 연결된 곳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유독 이 지역에는 그 바람이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기초의회에 개혁적 인물 10여명이 입성한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었지만, 술렁거렸던 전국적 민심을 봤을 땐 조금 부족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궁금했습니다. 대구경북권 표심이 특정 정당 및 정치인에게 100% 지지율 또는 몰표를 줬다는 기억은 없는데, 겉으로 드러난 지지율에 포함되지 않는 최소 30~40%의 민심은 무엇이며,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그들의 왜 침묵하고 있는지 등등.
그런데, 이번 <매일신문> <영남일보> 신년 여론조사에서 드디어 숨겨진 그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신문의 절묘한 편집기술이 '부글부글 들끓는 지역민심'을 교묘하게 감추고 있었습니다.
<영남일보> 편집 속에 감춰진 민심은?
'제목 소비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쁜 일상에 신문, 방송뉴스를 차분하게 읽을 수 없기 때문에 기사의 제목 또는 자막을 통해 해당 기사를 선택한다는 것인데요. 조금 오래된 논문이지만 이를 증명하는 조사가 있습니다.
95년 경성대 신문방송학과 정태철 교수가 발표한 '목소비자 증가와 신문제목의 이해도'에서 소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독자들의 신문 읽는 습관은 '제목 위주로 읽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① 제목만을 읽거나 ② 제목을 읽어서 관심 있는 몇 개의 기사를 찾아 그 기사이 앞 부분만 읽거나 ③ 제목을 읽어서 관심 있는 몇 개의 기사를 찾아 그 기사를 다 읽는 구독 형태라고 볼 수 있는데요. 정 교수는 "제목 위주로 신문을 읽게 되면, 독자들은 역시 제목 위주로 기사내용을 기억할 것이라는 가정도 가능케 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제목 위주로 읽는 습관'이 자료가 발표된 시점에 비해 2011년 우리가 발딛고 있는 현실에서 더욱더 강화되었다 점에 반론은 없을 것 같은데요.
이번 <영남일보> 여론조사 결과는 기사의 제목만 읽는 습관을 가진 독자에게 '기사 제목이 결코 기사의 전체적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사의 가치관이 숨어있다'라는 주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여느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지역의 <매일신문>과 <영남일보>도 각각 1월 3일 신년 여론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매일신문>은 한국지방신문협회와 함께 전국 3천명, 대구경북 540명을 대상(전화면접 방식)으로 전국 여론과 지역 민심을 함께 조사했고, <영남일보>는 대구경북민 1천명을 대상으로 이 지역 민심을 조사했습니다.
▲ <매일신문>2011년 1월 3일 3면<매일신문>신년 여론조사 ⓒ 매일신문
▲ <영남일보>2011년 1월 3일 7면<영남일보> 신년 여론조사 ⓒ 영남일보
'신공항 밀양 최적지 53%', 'MB국정 수행 잘잘못 '비슷'…차기 박근혜 대세론 '여전'', 'MB국정 지지도 대구 42.2%, 경북 50.7%', '2012년 대선 후보 지지율 박근혜 42% 압도적', '경제활성화·국방-서민정책 강화 우선 희망' 등 제목만 보면 기사를 읽고 싶은 의욕을 잃어버립니다. 별로 새롭지 않고, 평소에 언론이 강조했던 일들이 여론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생각에 무심히 신문을 넘기다가 우연히 작은 제목에 시선이 고정되었습니다. '한미FTA재협상 "2007년 원안보다 양보 반대" 46%'.
어? 이 지역에서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기도 하나? 한미 FTA 재협상은 '굴욕적 외교'라고 비판받고 있지만, 정권에 대한 지지가 정책에 대한 동의로 이어졌던 것이 이 지역 민심이었는데,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고? '숨어있었던 민심'이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인가?
여러 가지 생각에 기사를 꼼꼼하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한미FTA 재협상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으로 조사되었다. '2007년 원안에 비해 양보한 것으로 반대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46.3%, '국익에 도움이 도움되므로 찬성한다'는 답변은 40.4%였다"고 합니다.
기사를 읽으면서 곧 실망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정부의 정책에 대한 반발이 높다는 여론이 반영된 것이 아니라 '편집상의 오류'였습니다. 즉 두 응답의 차이는 오차범위(영남일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신뢰수준에 ±3.1%, 따라서 두 응답의 차이가 6.2%내에 있으면 어느 의견이 우세하다고 볼 수 없고, 오차범위내에서 접전이라고 표현한다) 내에 있었기 때문에 '한미 FTA재협상 "2007년 원안보다 양보 반대" 46%'라는 제목은 '한미 FTA재협상 '양보 반대', '국익 도움 찬성' 여론 팽팽'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는데요.
어쨌든 이 제목 때문에 무심히 넘겼던 <영남일보> 조사결과를 처음부터 끝까지 쭉 훑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그동안 찾을 수 없었던 '잃어버린 지역 민심 20~30%'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영남일보> 대구경북 들끓는 민심 왜 감추나?
'4대강 속도전 반대·우려 66%', '4대강 예산 삭감 복지예산 증액 56.9%'
'새해 예산안 강행처리 한나라당 잘못 36.7%'
'형님예산 | 특정지역에 예산 많이 배정 잘못 56.3%'
지난 2008년부터 현재까지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에 <영남일보>는 찬성 일변도였습니다. 지역사회에 숱한 문제와 민원, 불탈법 사례, 골재노동자의 생존권 문제가 불거져도 <영남일보>외면하거나 체면치레 정도만 했었습니다.
그리고 '형님 예산'논란이 생길 때마다 <영남일보>는 포항의 관계기관 및 지역 정치권의 목소리를 빌어 '억울하다'고 호소했고, '지역역차별' 을 운운하며 예산 논쟁을 무색화 시켰습니다. 또한 '형님 예산'때문에 냉혹하게 삭감된 사회복지 예산에 대해선 철처히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매일신문>도 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을 텐데요.
▲ <영남일보>2011년 1월 3일 6면<영남일보> 신년 여론조사 ⓒ 영남일보
▲ <영남일보>2011년 1월 3일 7면신년 여론조사 중 현 정부의 정책과 '형님 예산', '한나라당 예산 강행처리'에 대해 대구경북권 비판수위는 높지만, <영남일보>는 이 내용을 제목 등으로 부각하지 않은채 눈에 띄지 않게 편집했다. ⓒ 허미옥
두 신문만 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지역 민심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물론 위 문제에 반대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극히 소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두 신문은 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해 이 지역출신 정치권 인사들의 '부적절한 행보'를 감싸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습니다.
근데 <영남일보>가 대구경북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에는 지역언론이 그토록 감싸려고 했던 지역출신 정치인 및 고위공직자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영남일보>는 지면편집을 통해 애써 이들의 목소리를 감추고 있는데요. 기사내용은 이렇습니다.
"4대강 사업 완공을 위해 '속도전'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신중하고 천천히 진행해야 한다(45%)는 답변이 많았다. 32.8%는 현재 방식에 찬성한다고 밝혔으며 21.0%는 '반대'입장을 내비쳤다".
즉 이 결과를 제가 해석해보면 '4대강 속도전에 반대 21.0%, 신중이 45%. 찬성이 32.8%'라는 점입니다. 한번 더 강조하면 4대강 속도전에 우려의 목소리가 66%.
"4대강 예산을 줄여 복지예산에 사용해야 한다(56.9%),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조차 '야당의 주장에 찬성한다'(45.2%)".
역시 이 결과를 제가 해석해보면 지역의 한나라당 지지층을 포함한 지역민심은 '4대강 예산을 줄여 복지예산에 사용해야 한다'에 약 60%가 동의했다.
"예산안 강행처리 과정에서 일어난 여당과 야당간 폭력사태에 대해 '한나라당 책임 36.7%, 야당 쪽 책임 25.6%, 잘 모름 37.7%".
"'형님 예산'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특정 지역에 예산이 많이 배정되는 것은 잘못' 56.3%, '야당 특집잡기' 36.6%/ 형님예산의 최대 수해지역이라 할 수 있는 동부 연안권에선 두 의견이 비슷하게 각각 47.1%, 46.4%."
즉 지역민심은 '형님예산'에 반발하고 있고, 특히 예산의 최대 수해지역민들도 이런 식의 예산배정에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여론조사 결과 이 문제에 대한 지역민들의 찬반양론은 팽팽했지만, 기존 신문보도에서 '강한 반발'만 접하다가 '특정 지역 예산 많이 배정은 우려'라는 목소리가 47.1%정도나 나왔다고 해서 꽤나 놀랐습니다.
이번에 조사된 대구경북권 1000명의 민심은 시사 하는 바가 많습니다. 기존에 논란이 되었던 굵직굵직했던 현안에 대해 지역의 <매일신문>과 <영남일보>가 얼마나 특정 여론만 대변해 왔는지, '사회복지', '지역출신 정치권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지역민의 들끓는 목소리를 얼마나 외면해 왔는지. 두 신문이 반영하지 않았던 지역의 바닥민심이 이번 조사에서 그대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앞서 '전화면접 여론조사 방식의 한계'를 감안한다면 '대구경북권의 보수층 민심도 현 정권과 추진 중인 주요정책에 대한 반발이 크다'고 결론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것에 민감해야 하는 것이 언론의 몫일 텐데요. 굵직굵직했던 현안에 대해 기존 <매일신문>과 <영남일보>가 제시했던 뉴스형태와 전혀 다른 민심이 나타났고, 신문을 열심히 읽고 있는 제게도 무척이나 새롭게 다가오는 이 뉴스를 <영남일보>는 왜 이리도 '인색하게' 편집했을까요?
대구경북권 바닥민심(그게 전화면접조사만 가능한 보수층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이 기존 언론이 취했던 방향과 다르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제목, 중간제목, 그래픽 등에 이들의 목소리가 편집된 곳은 없었습니다. 저 처럼 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어야만 겨우 찾을 수 있도록 편집이라는 숨은 그림 속에 꼭꼭 감추어 두었던 것이었습니다.
홍준표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언론의 여론조사에 우려를 표하며 걱정하고 있는데, 여론조사 방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구경북권에서 현 정권 및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영남일보>는 권력 해바라기식 편집만 선호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지역언론의 모습입니다. <영남일보>, 쫌~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오늘, 평화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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