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최초의 대형 일식집 '박다옥'
일제 강점기에 들어선 우동집 박다옥, 등록문화재랍니다
▲ 구 박다옥전주 중앙동 번화가에 자리하고 있는 구 박다옥 ⓒ 하주성
길을 가다가 가끔은 횡재를 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뻔질나게 앞으로 지나다니면서도, 그 집이 '등록문화재'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저 주변의 집보다는 조금 동떨어진 건물 구조가 눈길을 끌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집이 '등록문화재'라는 안내판이 앞에 놓였다.
▲ 사거리쪽이 박다옥은 중앙동의 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는 가장 번화했던 곳이다. ⓒ 하주성
▲ 출입구건물 한편으로 치우쳐 출입구를 내었다 ⓒ 하주성
이 중앙동 일대를 현재는 '웨딩거리'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곳에 '박다옥'이라는 등록문화재 제173호가 소재한다. 지금까지 이곳을 지나치면서도, 이집이 등록문화재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다만 얼마 전에 그 앞에 등록문화재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세우기 전까지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선 우동집 박다옥
박다옥은 우동집이었다. 안내판에는 이 집이 '구 박다옥'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다. 지금은 1층에는 여러 가지 집안은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는 화초 등을 파는 가게가 들어서고, 몇 집인가 한복집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중앙통의 번화가에 자리하고 있는 이 집은, 1929년 무렵에 건립이 되었다고 한다.
등록문화재란 근대의 문화유적이다. 국보 및 보물, 사적이나 명승 등 기존 지정문화재가 아닌, 우리나라 근대 이후 제작, 형성된 문화재 중에서 그 보존 및 활용을 위하여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문물을 지정한 것이다.
등록문화재의 지정 기준은 건설·제작·형성된 후 50년 이상 지난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유산 중에서, 역사·문화·사회·경제 등 각 분야에서 근대사의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혹은 지역의 역사·문화적 배경이 되고 가치가 널리 알려진 것, 기술 발전이나 예술적 사조 등 그 시대를 반영하는 데 가치가 있는 것 등을 지정한다(다음 백과사전 참조).
▲ 외벽구 박다옥은 다른 건물과는 차이가 난다. ⓒ 하주성
▲ 박다옥페디먼트 기법을 이용한 춝입구 위편 ⓒ 하주성
구 박다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상업지역에 들어 선 우동집으로, 전주에서는 처음으로 생긴 대형 일식집이었다. 현재 구 박다옥이 들어서 있는 중앙동은 20여 년 전만 하여도 전주에서는 가장 번화한 상권을 형성하고 있던 곳이다. 아마 박다옥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을 때도, 이곳이 전주에서는 가장 번화한 곳이었을 것이다.
타일과 인조석으로 꾸민 외부
구 박다옥은 당시의 건물로서는 파격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외부는 타일과 인조석을 이용하여 건물을 꾸몄는데, 지금도 이 건물은 거리에서 제일 눈에 띄인다. 이 건물의 특징은 페디먼트(pediment)로 상부를 장식하였다는 점이다. 페디먼트는 고전건축에서 기둥으로 받쳐진 지붕이 있는 현관을 말하는 것으로, 삼각형의 박공이나 창문 위를 꾸미는데 쓰인 기법이다.
▲ 외벽외벽은 타일과 인조석으로 장식을 하였다 ⓒ 하주성
▲ 페디먼트1929년 무렵 건축이 된 박다옥은 페디먼트 기법을 사용하였다 ⓒ 하주성
이 구 박다옥 건물은 건물의 오른쪽으로 치우쳐 주 출입구와 계단을 설치하고, 주 출입구의 상부에는 타일과 인조석을 교대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특별한 양식을 1929년대에 건물을 짓는데 사용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모두 3층으로 꾸며진 구 박다옥 건물을 지나칠 때마다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런 전문적인 건축기법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낮 부끄럽다.
비록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집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 우리의 슬픈 역사도, 또한 가슴 아픈 사연도 많았을 것을 생각해본다. 그래서 구 박다옥 건물이 더욱 새롭게 보이는가 보다. 건물이 지니고 있는 많은 이야기를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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