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죽어나가는데 좋은 제품 나오겠나"
[직업병을 말한다 1] 산업안전보건 전문가 좌담
기자는 지난 주말 미국 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 방문연수 중인 노상철(42) 단국대 의대 산업의학교실 교수와 박재범(40) 아주대 의대 산업의학교실 교수, 미국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관인 탁상우(42) 박사를 미국 현지에서 만나 한국의 노동안전보건 수준과 정책에 대해 토론했다.
"한국타이어는 수백억 원 규모의 대형 복지 프로젝트를 발주하여 그중 350억으로는 환기시설을 개선하고 나머지는 위생 개선, 금연 프로그램 및 근골격계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쓰기로 했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환기시설 개선인가를 살펴보면,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악취를 내뿜는 공장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을 회피하기 위한 환기시설이다.
당장의 문제, 즉 노동자가 갑자기, 그것도 20대의 젊은 일꾼이 연이어 사망한 현실에는 묵묵부답이다. 원인 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원칙적 문제 접근 및 절차 개선은 하지 않으면서 외부 이미지 개선만을 위한 땜질 처방을 한다.
삼성도 최근 수원 반도체 공장 내에 반도체 근로자를 위한 건강연구소를 세웠다. 그러나,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사안 즉 직업과 관련하여 젊은 노동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질환에 대해 자체적으로 규명하고 밝히려는 노력들을 기울이기보다는 기업에 유리하게 발표하기 위한 연구를 하는 곳일 뿐이다."
앉자마자 쓴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아래는 통계가 말해주지 않는 진실을 알려야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역설하는 전문가들과 나눈 이야기다.
-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한국의 인식 수준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산재가 잘 예방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노: "산업안전보건법상 노동자들은 작업 중 건강에 유해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물질들에 대해서는 매년 실시되는 정기적인 특수건강진단을 받는 것 외에 임시(지방노동관서장의 명령에 따라 사업주가 실시하는 건강진단)와 수시(노동조합의 요청에 의한 검진)건강검진을 받도록 되어 있다. 특수건강진단 대상 유해인자 또는 기타 유해인자에 의한 질병의 이환 여부 또는 질병의 발생원인 등을 확인하기 위해 주로 직업병 발생 위험성이 높은 작업부서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긴급하게 역학조사를 요청하여 임시/수시 건강진단이 이루어지도록 제도가 마련돼 있다.
그렇지만, 노동청장이 임시건강진단명령을 내려도 조사가 엄정하게 이뤄지지 않으며, 그 횟수도 연간 수 건에 그쳐 실효적 차원의 접근은 아주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그러한 조사에서 위반 사항들이 밝혀지더라도 범칙금 수준이 낮아서 법적 강제성을 담보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 삼성전자와 한국타이어의 경우를 설명해 달라.
노: "10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에서 작업 관련성 질환들이 10명 나온다 치면, 1000명이 일하는 대규모 작업장에서는 100명 정도 사례가 나올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실정에서는 그 절반도 나오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경우 산재보험 외에 별도로 회사에서 가입해준 보험회사에서 의료비를 포함한 모든 소요비용에 대하여 보험금 보상을 해주거나 개인질병으로 처리해서 산재신청을 원천적으로 막기도 한다. 한국타이어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2008년 특수건강진단에서 직업성 질환 요관찰자(C1)와 직업성 질환 유소견자(D1)는 전체 근로자 4300여 명 중에서 8명으로 이들 역시 모두 소음성 난청 판정자였다. 일반적으로 타이어 제조 회사의 경우 사용하는 물질들이나 건강 유해 노출 인자들이 수백 가지에 이르지만 건강진단에서는 단 한 건도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건강검진의 문제점이다."
- 병원 등 검진기관의 입장에서는 검진 비용을 대는 사업주의 편의를 많이 봐주어야 다음 해에도 검진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데.
박: "사업주의 편의를 들어주지 못하는 경우, 검진결과 발송 후 계약이 끊긴다. 노동자들은 병원을 선택할 자기 선택권도 없으며, 사업주 편의에 따라 형식적인 건강검진을 받을 뿐이다. 수백 명 규모의 모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전에는 산재가 없던 회사인데, 소음성 난청 사례가 접수되었다. 회사 산업안전부 관리자가 하는 말이 가관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리해고를 시켜야 했는데, 직업병 유소견자들을 그만 일하게 해야겠다'고 한다. 언제나 계약파기가 가능한 보건관리대행 의사의 면전에서 일어난 일이다."
노: "예방을 우선으로 하는 공중보건을 수익을 바라보고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규모 사업장과 맺은 건강검진 계약을 해지한 후 모 교수가 산업의학과 직원들에게 '의기소침할 수도 있지만, 현상(고용불안을 걱정할 정도로 줄어드는 계약 및 매출)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이 사업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사명감에서 여러분들은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한 적이 있다. 어쩔 수 없으니 원칙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분노하고 싸워야 한다는 의미다. 현실과 손을 잡고 사업주가 원하는 결과를 내주며 병원 실적을 쌓는 것은 직업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에 제도 개선 노력이 이루어져 2009년부터 특수건강진단 비용지원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이는 해당회사-검진기관이 아니라 제3자인 산업안전공단이 건강진단비용을 대는 3자 지불제도이다. 처음 계획단계에서는 100인 미만 중소기업 사업장에 한해 검진기관은 공단에 검진비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산업안전공단에서 심의하여 검진비용을 승인함으로써 사업주의 편의에 따른 형식적인 검진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의 100인 미만이라는 기준은 50인 미만으로, 다시 10인 미만으로 최종 수정되어 검진비용을 청구하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대학병원검진기관이 10인 이하 기업을 찾아 검진하는 것은 운영면에서 힘든 측면이 있다.
현재는 이 사업에 소규모 의원급 검진기관들과 대한산업보건협회의 해당 지역 지사들만 참여하여 건강검진을 시행하고 있다. 과거 대한산업보건협회는 노동부 파트너이자 준정부기관이었지만 현재는 독립법인이다. 산재기금은 산재 규명과 예방을 위해서도 쓰여야 하지만, 연간 예산 약 5조원의 기금 중 산재예방기금으로 잡혀 있는 10%가 공단 운영자금, 특수건강진단 설비 지원 사업 등으로 쓰이고 있다. 그것이 산재를 줄이는 방법인가는 따져봐야 한다."
- 산재신청이 많이 기각된다. 판사의 판정을 통해서만 산재인정이 가능한 구조라면 문제가 있다. 모든 문제를 재판까지 가져가야 하는 상황인데 왜 그런가?
노: "법의 원리가 다르다. 판례는 약자우선이다. 업무 관련성은 문제가 드러났을 때 사회가 합의한 수준이지, 법도 의학도 과학도 아니다. 유사한 문제와 경험의 기록들이 있다면 산재는 인정되어야 한다. 산재는 사전에 예방하고 막아야 한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재판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맘고생, 몸고생을 생각해봐라. 못할 일이다.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은 자존심을 회복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재판 신청을 한다. 노동자들은 회사에 평생을 다해 일해줬으나 '왜 그러냐? 당신은 사기꾼이고, 회사를 음해하려는 사람이다'라는 소리만 되돌아온다. 이렇게 되면, 돈보다는 자존심 싸움으로 간다. 억울함을 풀고 싶다는 것이다. 산재신청이 억울함을 풀어주는 신문고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정상적으로 풀 수 없게 꼬아놓은 체제라서 문제다. 한 예로, 산재요양신청서 첫 장에는 산재를 당한 노동자가 서명하는 란이 있고 바로 옆에 사업주 서명란이 있다. 사업주가 날인을 거부할 경우에는 한 장짜리 사유서를 제출해야 한다. 산재를 예방하려는 것이 아니라 은폐하려는 노력들을 기울이는 상황이다.
가장 중요하게는 직업병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지배적이라서 문제다. 직업병은 직업으로부터 오는 결과다. 일하면 보수를 받는 것처럼, 작업장 환경이 내 몸에 이상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다. 직업병은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므로 개인적 측면에서 바라보아서도 안 된다. 몸 관리를 하면 개인질환은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직업병은 일을 하는 한 발생하고 재발한다. 전염병이 아니면서 전염병이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노출되어 있고, 한군데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곳과 연결돼 있는 인근 부서에서도 동일한 노출에 의한 직업병이 발생할 수 있다. 단일질환이 아니면서 단일질환일 수 있고, 전염병이 아니면서 전염병일 수 있는 것이 직업병이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탁: "직업병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돈이 드는 문제라서 그렇다. 직업병은 직업에서 생긴 것이므로 그 원인인자를 막아야 하는데, 직업병 예방을 위한 투자가 병원 치료비보다 더 많이 드는 경우 사업주는 산재를 은폐하거나 개별 노동자가 해결하기를 바라고 모르는 체한다. 미국의 경우, 회사의 회전율이 짧아서 2~3년이다. 이 기간 동안 사업주는 직업병을 고려할 이유를 못 느낀다."
노: "작업장 내 소음의 경우를 보자. 교과서에서는 소음원을 차단하거나 밀폐하기 위해 방음벽을 세우라 하지만, 그러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 한 부서에서 휘발성 용제가 문제라서 환기 시설을 하는 예를 보자. 음압처리며 환경을 위한 정화처리를 하려면 초기비용이 많이 든다. 소규모 사업자나 가내수공업자들은 시설 보수에 드는 투자를 투자로 생각하지도 않으며, 고비용이 드는 사업이라며 모르는 체한다. 고비용이 드는 예방책을 쓰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문제를 인지하고 현실적인 대처 방안을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노동부 관리감독 부서에서는 법적 측면에서 회사에 시설을 뜯어고치라고 권고할 뿐이다. 각 회사가 직업병을 일으키는 원인제공자를 인지하고 대처하는 과정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해 줄 필요가 있다.
직업병은 탄광의 카나리아처럼 첨병으로서 신호를 보내준다. 망루에 올라가 있는 사람이 신호를 통해 경고를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질환을 예고하는 것이다. 최근의 환경병이란 것도 역사적으로는 좁은 공간 내에서 특정 유해인자에 고농도로 단기간에 노출되어 생긴 직업병이 일반 사회로 퍼져나간 질환일 수 있는데, 이럴 경우에 직업병은 그러한 대중에게 발생 가능한 특정 질병의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직업병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여서 우회적인 방법을 택할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라고 보고 사회가 해결하려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작업환경 개선은 투자이므로, 돈 든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바꾸어야 한다. 사람이 우선이다.'라는 말씀인 듯하다.
노: "겉으로 보기에 무재해 사업장이고 직업병이 발생하지 않는 사업장이라 해서 좋은 회사일까? 진실을 속일 수는 없다. 자기 회사에 대한 자부심, 제품의 안전성은 노동자를 어떻게 대해 주느냐에 달려 있다.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회사에서 나오는 제품이 좋을 수 없다.
산재는 빙산의 일각이다. 하인리히의 재해 법칙(1:29:300)이라는 것이 있다. 중대재해를 1로 잡으면, 중간수준의 재해는 29건, 경미한 건은 300건 정도로 생긴다는 것이다. 빙산 밑의 많은 직업병은 어떻게 예방하고 관리할 것인가? 산재예방기금이 커버하는가? 규모나 질 모든 면에서 의문이다.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 직업병 위험을 가진 집단이 직업병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가 논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탁: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도 사업주나 노동자가 건강위해도 평가를 요청할 경우, 산업안전보건원이 역학조사를 하는 건강위해평가제도가 있지만, 신청이 엄청나게 몰려들 것을 염려하여 홍보가 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경우 1990년대에 MSNBC 방송이 실내공기질 문제를 방송한 이후 비슷한 사례 몇 천 건이 접수되었는데, 인원 및 자원 부족으로 모든 곳을 조사할 수 없었던 경험이 있다. 한국에도 같은 제도가 있고 소규모 사업장 보조금, 작업환경개선 비용지원사업, 3D 사업 지원사업 등도 있다. 이러한 여러 제도들은 본래의 시행의도가 현실에서 많이 훼손된 채 운영되고 있으며, 또한 이러한 제도가 포괄하는 영역은 여전히 전체 사업장 규모에 비하면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제도들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 제도들을 알려나갈 전문가들의 몫이 중요하다."
"한국타이어는 수백억 원 규모의 대형 복지 프로젝트를 발주하여 그중 350억으로는 환기시설을 개선하고 나머지는 위생 개선, 금연 프로그램 및 근골격계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쓰기로 했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환기시설 개선인가를 살펴보면,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악취를 내뿜는 공장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을 회피하기 위한 환기시설이다.
당장의 문제, 즉 노동자가 갑자기, 그것도 20대의 젊은 일꾼이 연이어 사망한 현실에는 묵묵부답이다. 원인 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원칙적 문제 접근 및 절차 개선은 하지 않으면서 외부 이미지 개선만을 위한 땜질 처방을 한다.
삼성도 최근 수원 반도체 공장 내에 반도체 근로자를 위한 건강연구소를 세웠다. 그러나,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사안 즉 직업과 관련하여 젊은 노동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질환에 대해 자체적으로 규명하고 밝히려는 노력들을 기울이기보다는 기업에 유리하게 발표하기 위한 연구를 하는 곳일 뿐이다."
앉자마자 쓴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아래는 통계가 말해주지 않는 진실을 알려야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역설하는 전문가들과 나눈 이야기다.
-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한국의 인식 수준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산재가 잘 예방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노: "산업안전보건법상 노동자들은 작업 중 건강에 유해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물질들에 대해서는 매년 실시되는 정기적인 특수건강진단을 받는 것 외에 임시(지방노동관서장의 명령에 따라 사업주가 실시하는 건강진단)와 수시(노동조합의 요청에 의한 검진)건강검진을 받도록 되어 있다. 특수건강진단 대상 유해인자 또는 기타 유해인자에 의한 질병의 이환 여부 또는 질병의 발생원인 등을 확인하기 위해 주로 직업병 발생 위험성이 높은 작업부서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긴급하게 역학조사를 요청하여 임시/수시 건강진단이 이루어지도록 제도가 마련돼 있다.
그렇지만, 노동청장이 임시건강진단명령을 내려도 조사가 엄정하게 이뤄지지 않으며, 그 횟수도 연간 수 건에 그쳐 실효적 차원의 접근은 아주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그러한 조사에서 위반 사항들이 밝혀지더라도 범칙금 수준이 낮아서 법적 강제성을 담보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 삼성전자와 한국타이어의 경우를 설명해 달라.
노: "10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에서 작업 관련성 질환들이 10명 나온다 치면, 1000명이 일하는 대규모 작업장에서는 100명 정도 사례가 나올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실정에서는 그 절반도 나오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경우 산재보험 외에 별도로 회사에서 가입해준 보험회사에서 의료비를 포함한 모든 소요비용에 대하여 보험금 보상을 해주거나 개인질병으로 처리해서 산재신청을 원천적으로 막기도 한다. 한국타이어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2008년 특수건강진단에서 직업성 질환 요관찰자(C1)와 직업성 질환 유소견자(D1)는 전체 근로자 4300여 명 중에서 8명으로 이들 역시 모두 소음성 난청 판정자였다. 일반적으로 타이어 제조 회사의 경우 사용하는 물질들이나 건강 유해 노출 인자들이 수백 가지에 이르지만 건강진단에서는 단 한 건도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건강검진의 문제점이다."
▲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 심규상
- 병원 등 검진기관의 입장에서는 검진 비용을 대는 사업주의 편의를 많이 봐주어야 다음 해에도 검진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데.
박: "사업주의 편의를 들어주지 못하는 경우, 검진결과 발송 후 계약이 끊긴다. 노동자들은 병원을 선택할 자기 선택권도 없으며, 사업주 편의에 따라 형식적인 건강검진을 받을 뿐이다. 수백 명 규모의 모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전에는 산재가 없던 회사인데, 소음성 난청 사례가 접수되었다. 회사 산업안전부 관리자가 하는 말이 가관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리해고를 시켜야 했는데, 직업병 유소견자들을 그만 일하게 해야겠다'고 한다. 언제나 계약파기가 가능한 보건관리대행 의사의 면전에서 일어난 일이다."
노: "예방을 우선으로 하는 공중보건을 수익을 바라보고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규모 사업장과 맺은 건강검진 계약을 해지한 후 모 교수가 산업의학과 직원들에게 '의기소침할 수도 있지만, 현상(고용불안을 걱정할 정도로 줄어드는 계약 및 매출)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이 사업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사명감에서 여러분들은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한 적이 있다. 어쩔 수 없으니 원칙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분노하고 싸워야 한다는 의미다. 현실과 손을 잡고 사업주가 원하는 결과를 내주며 병원 실적을 쌓는 것은 직업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에 제도 개선 노력이 이루어져 2009년부터 특수건강진단 비용지원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이는 해당회사-검진기관이 아니라 제3자인 산업안전공단이 건강진단비용을 대는 3자 지불제도이다. 처음 계획단계에서는 100인 미만 중소기업 사업장에 한해 검진기관은 공단에 검진비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산업안전공단에서 심의하여 검진비용을 승인함으로써 사업주의 편의에 따른 형식적인 검진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의 100인 미만이라는 기준은 50인 미만으로, 다시 10인 미만으로 최종 수정되어 검진비용을 청구하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대학병원검진기관이 10인 이하 기업을 찾아 검진하는 것은 운영면에서 힘든 측면이 있다.
현재는 이 사업에 소규모 의원급 검진기관들과 대한산업보건협회의 해당 지역 지사들만 참여하여 건강검진을 시행하고 있다. 과거 대한산업보건협회는 노동부 파트너이자 준정부기관이었지만 현재는 독립법인이다. 산재기금은 산재 규명과 예방을 위해서도 쓰여야 하지만, 연간 예산 약 5조원의 기금 중 산재예방기금으로 잡혀 있는 10%가 공단 운영자금, 특수건강진단 설비 지원 사업 등으로 쓰이고 있다. 그것이 산재를 줄이는 방법인가는 따져봐야 한다."
- 산재신청이 많이 기각된다. 판사의 판정을 통해서만 산재인정이 가능한 구조라면 문제가 있다. 모든 문제를 재판까지 가져가야 하는 상황인데 왜 그런가?
노: "법의 원리가 다르다. 판례는 약자우선이다. 업무 관련성은 문제가 드러났을 때 사회가 합의한 수준이지, 법도 의학도 과학도 아니다. 유사한 문제와 경험의 기록들이 있다면 산재는 인정되어야 한다. 산재는 사전에 예방하고 막아야 한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재판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맘고생, 몸고생을 생각해봐라. 못할 일이다.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은 자존심을 회복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재판 신청을 한다. 노동자들은 회사에 평생을 다해 일해줬으나 '왜 그러냐? 당신은 사기꾼이고, 회사를 음해하려는 사람이다'라는 소리만 되돌아온다. 이렇게 되면, 돈보다는 자존심 싸움으로 간다. 억울함을 풀고 싶다는 것이다. 산재신청이 억울함을 풀어주는 신문고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정상적으로 풀 수 없게 꼬아놓은 체제라서 문제다. 한 예로, 산재요양신청서 첫 장에는 산재를 당한 노동자가 서명하는 란이 있고 바로 옆에 사업주 서명란이 있다. 사업주가 날인을 거부할 경우에는 한 장짜리 사유서를 제출해야 한다. 산재를 예방하려는 것이 아니라 은폐하려는 노력들을 기울이는 상황이다.
가장 중요하게는 직업병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지배적이라서 문제다. 직업병은 직업으로부터 오는 결과다. 일하면 보수를 받는 것처럼, 작업장 환경이 내 몸에 이상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다. 직업병은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므로 개인적 측면에서 바라보아서도 안 된다. 몸 관리를 하면 개인질환은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직업병은 일을 하는 한 발생하고 재발한다. 전염병이 아니면서 전염병이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노출되어 있고, 한군데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곳과 연결돼 있는 인근 부서에서도 동일한 노출에 의한 직업병이 발생할 수 있다. 단일질환이 아니면서 단일질환일 수 있고, 전염병이 아니면서 전염병일 수 있는 것이 직업병이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탁: "직업병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돈이 드는 문제라서 그렇다. 직업병은 직업에서 생긴 것이므로 그 원인인자를 막아야 하는데, 직업병 예방을 위한 투자가 병원 치료비보다 더 많이 드는 경우 사업주는 산재를 은폐하거나 개별 노동자가 해결하기를 바라고 모르는 체한다. 미국의 경우, 회사의 회전율이 짧아서 2~3년이다. 이 기간 동안 사업주는 직업병을 고려할 이유를 못 느낀다."
노: "작업장 내 소음의 경우를 보자. 교과서에서는 소음원을 차단하거나 밀폐하기 위해 방음벽을 세우라 하지만, 그러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 한 부서에서 휘발성 용제가 문제라서 환기 시설을 하는 예를 보자. 음압처리며 환경을 위한 정화처리를 하려면 초기비용이 많이 든다. 소규모 사업자나 가내수공업자들은 시설 보수에 드는 투자를 투자로 생각하지도 않으며, 고비용이 드는 사업이라며 모르는 체한다. 고비용이 드는 예방책을 쓰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문제를 인지하고 현실적인 대처 방안을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노동부 관리감독 부서에서는 법적 측면에서 회사에 시설을 뜯어고치라고 권고할 뿐이다. 각 회사가 직업병을 일으키는 원인제공자를 인지하고 대처하는 과정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해 줄 필요가 있다.
직업병은 탄광의 카나리아처럼 첨병으로서 신호를 보내준다. 망루에 올라가 있는 사람이 신호를 통해 경고를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질환을 예고하는 것이다. 최근의 환경병이란 것도 역사적으로는 좁은 공간 내에서 특정 유해인자에 고농도로 단기간에 노출되어 생긴 직업병이 일반 사회로 퍼져나간 질환일 수 있는데, 이럴 경우에 직업병은 그러한 대중에게 발생 가능한 특정 질병의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미국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관인 탁상우 박사. ⓒ 전희경
- '직업병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여서 우회적인 방법을 택할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라고 보고 사회가 해결하려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작업환경 개선은 투자이므로, 돈 든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바꾸어야 한다. 사람이 우선이다.'라는 말씀인 듯하다.
노: "겉으로 보기에 무재해 사업장이고 직업병이 발생하지 않는 사업장이라 해서 좋은 회사일까? 진실을 속일 수는 없다. 자기 회사에 대한 자부심, 제품의 안전성은 노동자를 어떻게 대해 주느냐에 달려 있다.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회사에서 나오는 제품이 좋을 수 없다.
산재는 빙산의 일각이다. 하인리히의 재해 법칙(1:29:300)이라는 것이 있다. 중대재해를 1로 잡으면, 중간수준의 재해는 29건, 경미한 건은 300건 정도로 생긴다는 것이다. 빙산 밑의 많은 직업병은 어떻게 예방하고 관리할 것인가? 산재예방기금이 커버하는가? 규모나 질 모든 면에서 의문이다.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 직업병 위험을 가진 집단이 직업병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가 논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탁: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도 사업주나 노동자가 건강위해도 평가를 요청할 경우, 산업안전보건원이 역학조사를 하는 건강위해평가제도가 있지만, 신청이 엄청나게 몰려들 것을 염려하여 홍보가 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경우 1990년대에 MSNBC 방송이 실내공기질 문제를 방송한 이후 비슷한 사례 몇 천 건이 접수되었는데, 인원 및 자원 부족으로 모든 곳을 조사할 수 없었던 경험이 있다. 한국에도 같은 제도가 있고 소규모 사업장 보조금, 작업환경개선 비용지원사업, 3D 사업 지원사업 등도 있다. 이러한 여러 제도들은 본래의 시행의도가 현실에서 많이 훼손된 채 운영되고 있으며, 또한 이러한 제도가 포괄하는 영역은 여전히 전체 사업장 규모에 비하면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제도들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 제도들을 알려나갈 전문가들의 몫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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