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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반, 우리가 '아직도' 여기에 있다

[손바닥 르포] 눈 내리는 겨울, 두리반 첫 방문

등록|2011.01.14 17:07 수정|2011.01.14 17:07
눈 내리는 지난 11일 홍대입구역 5번 출구 앞. '만남의 메카'답게 그곳은 친구를 기다리는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놀고 마시고 즐기는 젊음의 문화, 번쩍이는 빛들이 지나가는 이들을 비추고, 펄떡이는 온갖 개성이 구석구석 살아 숨쉬는 곳. 아니 그냥 왠지 그래야만할 것 같은, 도시적 낭만이 눈처럼 흩뿌려지는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두리반'이 있다.

마찬가지로 눈 내리는 지난 11일의 홍대입구역 4번 출구. 공항철도로 연결되는 깨끗하고 차가운 지하 통로를 따라 걷다보면 자연히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소리에서 멀어진다. 고작 4분 내지 5분 떨어진 거리. 직선으로 연결된 통로의 끝과 끝에서 느껴지는 사뭇 다른 고요함에 묘한 긴장감까지 느껴진다.

4번 출구 바깥으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올라가자마자 눈에 보이는 것은 공사장 외벽, 그리고 그 너머의 빈 집과 빈 땅들이다. 딱딱하게 굳고 얼어붙은 흙바닥 위로 보송보송한 눈이 쌓이고 있었다. 군데 군데에는 조각난 콘크리트와 벽돌 자재, 크고 작은 쓰레기들 그리고 썩어가는 나무 판자와 마른가지가 쓸쓸히 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낮은 언덕들 옆으로 비껴 보면 어두운 가로등 옆으로 늘어선 낮은 주택들이 보인다. 환히 밝혀진 방 안의 불빛은 바로 옆 누추한 땅과는 달리 그 안에 따뜻한 체온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몸을 틀어 길가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다섯 걸음도 가지 않아 왼편에 서 있는 두리반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큰길 한 번만 건너가면 높고 깨끗하고 밝기까지한 현대식 건물들이 줄지어 섰는데 이 낡고 보잘 것 없는 건물의 1층 바깥은 EGI펜스로 둘러싸여있다. 공사현장에서 발생하는 비산 먼지, 그리고 자재의 추락 등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설치하는 펜스는 제 구실을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조립식 판을 단단하게 연결해야 할 볼트는 느슨하게 풀려있었고 바람에 흔들거려 틈을 보이는 각 판의 모양새는 위태로워 보였다. 그 안에서 공사 중이어야 할 죽은 건물은 벽면에 걸려 나풀거리는 현수막 때문인지 한층 생명력을 띤다.

펜스 바깥 쪽에 그려진 알록달록한 귀여운 그림들은 '투쟁장소'라는 사전정보에서 얻었던 느낌과 다른 발랄함을 보여줬다. 이것의 원래 기능을 조롱하듯 미학적이면서 메시지를 담아내는 도구로 탈바꿈한 듯했다. 그들 나름대로의 의미를 담아 꾸몄을 '아트펜스' 곳곳에는 자못 비장한 어구들이 적혀있기도 했고 펜스와 건물 축대를 연결한 파이프들 밑으로 건너간 건물 뒤편에는 언젠가 그 안의 사람들을 위해 한껏 타올랐을, 옅은 회갈색의 연탄들이 늙은 나무껍질처럼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속수무책으로 쓸려버린 토지들 가운데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건물이 제법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듯했는데, 때마침 시험방송을 시작한 '두리반 옥외방송'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건물 주변을 겉돌다 자리를 뜨기 일쑤였고 스피커와 건물을 향해 이리저리 궁금한 눈길을 던지며 걷다가도 건물의 가장자리에 이르러서는 금세 시선을 돌리고 휑하니 갈길을 가버렸다.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아주 익숙해보이는 사람들 빼고, 낯선 방문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그곳에 들어가는 것은 내가 그 건물 앞에 서 있는 10분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작정하고 찾아간 곳이었음에도 나의 가슴팍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이질감과 불편함이 스피커폰을 통해 울리는 '들어오시라'는 한마디에 금세 뭉개져버렸으므로, 나는 홀리듯 유리문을 열었다. 그 안, 그러니까 두리반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두리반 내부는 단출했다. 물론 외관만 보아도 화려하거나 깔끔한 신식구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상하게도 전혀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벽 모서리에까지 덕지덕지 붙은 사진들과 후원물품(으로 추정되는 갖가지 규칙성 없는 물건)들, 제 집 드나들듯 오고가는 사람들의(것으로 추정되는 산발적인) 개인물품들, 쌓여있는 두리반 소식지, 그리고 후원기금모금을 위한 판매음반 등이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내부 조명은 다소 침침했다. 일부러 조도를 낮게 깔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전기가 끊겨 옥상에 놓은 태양광 발전지와 경유 발전기로 빛을 내고 있다고 했다. 문 앞 1층 중앙에는 석탄 난로가 매캐한 냄새를 내며 지글지글 타고 있었고 보이지 않는 분진이 두둥실 떠다니고 있을 터였으나 이들은 그런 탁한 공기를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들은 행인의 관심을 끌 방송멘트를 상의하면서 무릎에 기타를 얹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거니받거니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첫 발을 내민 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이면 그들은 적절한 관심과 약간의 설명을 건넨다. 어느정도 알아들었겠다 싶을 때엔 적절한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그곳 사람들에게서 왠지모를 올드함과 별거없음이 느껴진다.

흔히 스스로를 '공동체'라 부르는 사람들에게서 발산되는 비(非)공동체인에 대한 배타성, 혹은 과도한 친절 따위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인으로서 느낀 첫 인상은 그곳엔 무심-관심, 닫힘-열림, 방관-환대 등의 복잡미묘한 상대개념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면서도 이상하게 의미를 찾게 만드는 그 어떤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여느 공동체보다 가장 평범했고 일상적이었으며 덜 부담스러웠다. 그들의 길고 긴 투쟁의 힘은 그러한 '일상성'에서 나온다.

비좁고 어두운 계단 위를 오르자 부식되어 쪼개어진 콘크리트 가루 조금과 사람들 신발 밑창에서 튕겨져 나온 흙모래가 발밑에 버걱거렸다. 매일매일 청소를 해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회갈색 벽면에는 1층에서부터 붙여진 사진들이 붙어있다. 익숙한 따뜻함이다. 2층에는 그곳에 살다시피하면서 두리반 사장님 부부와 함께 투쟁하고 있는 상근자들의 공간이 있다.
외부인의 출입을 감시하거나 행동을 제한하지 않는 것 같았으나 그들의 잠자리이면서 동시에 가장 기본적인 생활공간인 장소에는 차마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언뜻봐서도 깔끔해보이지 않았으나 썩 나쁘지는 않아보였다. 먹고 술 마시고 잡담하고 싸움판 벌이다 잠들기 위해 온갖 젊음들이 꾸역꾸역 기어들어가는 대학가의 아지트, 그런 후미진 자취방같은 느낌이다.

3층으로 올라가 그들이 공연을 벌이고 사회문화정치미학 등의 세미나를 하고 토론회를 여는 다용도의 모임장소를 둘러보았다. 7시부터 '싸우는 20대 공개집담회'가 예정돼 있었다. 공연장비와 그에 연결된 선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작은 무대 앞에는 줄도 맞추지 않은 채 성의 없이 펼쳐놓은 빈 의자들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듯한 의자들은 그 종류도 다양했다. 업소용 간이의자에서부터 플라스틱 보조의자, 등받이 부분의 천이 3분의 1이나 떨어져 나갔지만 바퀴가  달린 푹신푹신한 책상용 의자, 녹이 표면을 덮은 알루미늄 접이식 의자까지. 곧 흩어져있는 의자들은 알아서 빈틈 없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고, 이 공간을 에워싸고 있는 서늘한 공기는 끓어오르는 호기심과 불타는 열정, 아니면 그저그런 궁금증으로 모인 사람들로 인해 데워질 터였다.

옆 쪽에 자리한 커다란 스피커는 이후 있을 공연의 에너지를 미리 예고하는 듯 사뭇 긴장돼 보였다. 옥상바닥에도 눈이 쌓였다. 대로변쪽으로 난 난간 끄트머리에는 건설지역노조 깃발이 바람에 구겨져 걸려있고 옥상 입구 돌출된 외벽에는 "LOVE AND ANARCHY" 등의 문구가 휘갈겨 쓰여있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아 양탄처럼 눈송이들이 편편하게 깔린 옥상의 작은 공간에 내 첫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 새삼 미안해졌다.

상근자는 용역이 언제 들이닥칠 지 모르지만 그 경우엔 힘으로 안 되니까 "도망갔다가 마포구청을 점거한 후 돌아올 생각"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내뱉고 건물이 낡고 위태롭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떠날 생각은 전혀 없는 듯한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보인다. 왔다갔다하는 이들은 그닥 바쁘지 않은 모습으로 어슬렁거리고 있고 어쩐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두리반 사장님 부부도 마찬가지다.

바깥에 보여지는 평범치 못한 분위기와 달리 이 안에서는 평범한 삶에 대한 의지가 느껴진다. 그들이 피켓 들고 시위를 하고 구청을 점거하는 등의 직접적 행동을 하는 것도 투쟁이지만 이 역시 싸움의 일부일 것이다. '투쟁'이라는 말이 심어주는 허상을 실감했다. 그들은 단지 '현재'에 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시선은 지금 막 발 딛고 있는 땅에 가 닿아있으며, 새로 짓기 위해 부수고 금방 부수어지기 위해 새로지어지는 건물들 속에서의 일상적 삶은 그들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 어느 순간에 '투쟁'이 되어버렸다.

그 말이 무서워 떠나기 보다는 누군가 그들 삶에 붙여버린 단어를 받아들이기로 한 듯 보인다. 아니면 역으로 그 단어의 의미를 바꿔치기해버릴 요량인 것 같기도 하다. 언제나 미래를 향하는 막개발 현장에서 그들은 '우리가 아직 여기에 있다'고 말하며 먹고 놀고 생활하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상의한다. 발 붙일 틈도 없이 모두가 허겁지겁 떠나간 그 자리에 선 두리반은 어느 날 티비에서 불쑥 튀어나온 낡은 필름처럼 낯설고 케케묵은, 그러나 살냄새 나는 '현재'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깥에 나가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두리반이 어딘지 아느냐고 물었다. 두리반에서 5분도 떨어지지 않은 번화가에서 17명 중 16명이 그곳을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방금 그 앞을 지나온 사람도 곧 그 앞을 지나갈 사람도 5초 후에는 잊어버릴 그곳의 이름, 두리반. 바쁜 그들은 모두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그날따라 홍대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 발걸음이 유독 조급해 보였다.
덧붙이는 글 작은용산 두리반: http://cafe.daum.net/duri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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