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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반 걸린 비행길,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리스본

[지중해와 대서양을 끼고 있는 세 나라 기행 ③] 비행 루트

등록|2011.01.17 12:05 수정|2011.01.17 12:05
몇 번 바뀌고 연기된 비행기 편

▲ 눈 쌓인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 이상기


유럽에 폭설이 내렸다. 눈과 얼음으로 도시와 공항이 마비되었다고 한다. 유럽의 신문들은 '눈 대란(Schneechaos)'이라고 난리다. 유럽을 대표하는 공항들에 눈이 쌓여 치우느라고 정신이 없다. 독일의 뮌헨공항, 영국 런던의 히드로 공항,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이 심하다고 한다. 우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을 거쳐 리스본으로 들어가는 스케줄이라 별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출발 하루 전 연락이 왔다. 30일 오후 2시40분 발 암스테르담 행 비행편(KLM)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역시 항공대란으로 그동안 밀린 승객들을 소화하느라 KLM의 모든 일정이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오후 1시10분에 떠나는 대한항공으로 비행편이 대체되었으니 좀 더 일찍 공항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또 암스테르담을 경유하는 게 아니라 런던을 거쳐 리스본으로 들어간다고 알려준다. 유럽으로 가려면 어차피 하루가 소요되고, 조금 더 일찍 출발하면 조금 더 일찍 리스본에 닿을 수 있으니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 눈 덮인 인천공항 ⓒ 이상기


아침에 일어나보니 우리나라에도 눈이 꽤나 많이 왔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공항까지 가면 되니 크게 걱정은 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니 사람들이 차를 안 가지고 나와서인지 차가 비교적 잘 빠진다. 공항에 계획보다 조금 이른 시각에 도착했다.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10시쯤 약속장소로 가니 우리와 함께 할 가이드가 나와 있다. 그녀로부터 여행 일정과 내용에 대해 이런 저런 안내를 받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타고 가야할 1시10분 비행기의 도착이 늦어져 출발시각이 5시10분으로 지연된다는 것이다. 그것 참, 무슨 놈의 일정이 죽 끓듯 변경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오늘 중으로 리스본까지 가는 게 어려워진다. 인천공항에서 런던까지는 11시간이 걸린다. 그럼 런던에 밤 7시10분에 도착을 하게 된다. 두 세 시간 내에 연결편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다. 설사 연결편이 있다고 하더라도 리스본에 도착하면 새벽 서너 시는 되어야 한다.

독일에서 온 메일 속의 리스본과 포르투갈

▲ 런던 히드로 공항 ⓒ 이상기


결국 우리는 오늘 런던까지만 가고 히드로 공항 근처에서 하룻밤을 자기로 결정했다. 내일 리스본 일정이 걱정되지만 그것은 나중 문제이니, 우선 편안한 마음으로 런던까지 가기로 한다. 다 결정이 되고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다. 공항 내에 별 볼거리도 없고 해서 요즘 카드사들이 운영하는 라운지에 가서 휴식을 취한다. 또 무선인터넷이 연결되어 메일도 확인하고 카페에 들어가 글도 남긴다.

그런데 메일을 보니 독일의 '남서방송국(SWR)'에서 세계유산에 관한 소식이 하나 왔다. 남서방송국에서 1월2일 밤 11시45분부터 이튿날 새벽 5시40분까지 6시간 연속으로 세계유산을 소개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 포르투갈의 리스본이 있다. 제목이 "탐험가, 금과 노예 - 한 때의 세계제국 포르투갈"이다. 내용을 보니 한 때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가졌던 세계제국 포르투갈을 다루고 있다. 15/16세기 포르투갈은 수도인 리스본을 중심으로 그들 역사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리스본은 1255년 알폰수 3세에 의해 포르투갈의 수도가 되었다. 전성기는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항로를 발견한 1498년 이후다. 왕과 상인들은 리스본을 중심으로 향신료, 비단, 보석, 설탕, 황금 등 값나가는 물건을 교역하면서 큰 부를 축적했다. 이를 통해 리스본에는 대대적인 건축이 이루어졌고, 이때 만들어진 대표적인 건축물이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탑이다. 이들 건축은 포루투갈식 고딕양식인 마누엘 양식으로 지어졌다.

▲ 파두를 부르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쉬 ⓒ 이상기


    
포르투갈 사람들에게는 사우닷(Saudad)이라는 민족적인 정서가 있다. 영어로는 멜랑콜리가 되고 우리말로는 한(恨)이 된다. 그리고 이 사우닷을 반영한 대표적인 음악의 양식이 파두(Fado)다. 파두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는 노래와 가사 그리고 기타이다. 기타는 절절하게 뽑아대는 노래 소리와 절묘하게 잘 어울린다. 운명과 한으로 대변되는 어두운 이야기를 담은 우울한 노래가 바로 파두다. 파두의 중심 역시 리스본이다. 그것은 파두 가수들이 리스본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파두의 여왕은 누가 뭐래도 1999년에 세상을 떠난 아말리아 호드리게쉬(Amalia Rodrigues: 1920-1999)다. 그녀는 파두가 무엇이고 어떻게 공연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범서(rulebook)를 썼고, 19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파두를 국제적으로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들에 버금가는 파두 가수로는 마드레데우쉬, 둘체 퐁테스, 마리차가 있다. 현재는 이 중 마리차(1973-)가 가장 인기 있다.
   
메일 자료는 또한 15세기부터 포르투갈이 정복한 나라와 도시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다. 모로코의 세우타, 아프리카 서쪽의 아코레스 제도, 가나와 잔지바르, 인도의 고아, 남아메리카의 브라질, 아시아의 말라카와 마카우 등이다. 이들 중 고아는 한 때 인구가 30만을 넘어 리스본이나 파리보다도 더 번성했다고 한다. 중국의 남쪽 홍콩 근처에 있는 마카우는 1999년 중국에 반환될 때까지 포르투갈의 마지막 식민지로 남아있었다. 

런던 히드로 공항 근처 르네상스 호텔에서의 하룻밤

▲ 히드로 공항 출국장 ⓒ 이상기


히드로 공항에 도착해서 출국 수속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원래 EU 밖에서 EU 안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공항의 검색이 까다롭다. 그나마 가이드가 공항 담당직원에게 단체임을 알려서 한 30분 빨리 나올 수 있었다. 공항 밖으로 나와 시간을 보니 밤 9시26분이다. 대한항공 직원이 나와 우리를 안내해 버스에 태운다. 공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기로 예약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7시25분 리스본행 비행기를 타도록 모든 수속을 마쳤다고 말한다. 그럼 아침 5시에는 다시 나와야할 테고 편안히 잠자기는 다 틀렸다.

다행히 호텔은 비즈니스 호텔로 깨끗하고 괜찮았다. 늦은 시간이지만 우리를 위해 저녁도 준비해 주었다. 연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았다. 신문과 잡지도 제대로 갖춰 있고, 비즈니스 룸도 마련되어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는 런던에서 발행되는 신문 잡지와 <뉴스위크>를 한 번 훑어본다. 그 중 <where>라는 잡지가 눈에 들어온다. 런던을 소개하는 잡지로 2010년 12월호와 2011년 1월호가 있다.

나는 먼저 12월호를 살펴본다. 쇼핑, 오락(entertainment), 음식, 박물관과 미술관, 지도와 지하철 노선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사실 런던 시내로 나갈 시간이 없기 때문에 제목들만을 보면서 페이지를 넘긴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다음을 보고 체험하지 않고는 런던을 떠나지 마세요"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모두 7개 항목이 있다.

그것을 보니 첫째가 런던 타워와 대영박물관이다. 두 번째가 세인트 폴 성당과 같은 교회들이다. 세 번째가 인도 레스토랑인 모티 마할과 같은 음식체험이다. 네 번째가 라스코와 같은 곳에서 보석과 골동품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다섯 번째가 코톨드 미술관 같은 갤러리를 방문하는 것이다. 여섯 번째가 하이드 파크에서 말을 한번 타 보는 것이다. 일곱 번째가 로얄 씨어터 공연을 보는 것이다.

▲ 2010년 세상을 떠난 유명인사들: 영화 <겨울연가>를 통해 유명해진 박용하가 나온다. ⓒ 이상기


1월호에서는 한국 음식점 '명가(名家, Myung Ga)'가 눈에 띈다. 한옥 지붕 로고 밑에 명가라는 한자가 뚜렷하다. 그 아래로 오리지널 한국 음식인 갈비, 불고기, 군만두, 파전, 김치가 영어 철자로 표기되어 있다. 주소를 보니 Kingly Street 1, London W1이다. www.myungga.co.uk라는 인터넷 주소도 있다. 가볼 수는 없지만 런던을 찾는 한국 사람들을 위해 소개하고 싶다. '명가' 아래로는 인도 레스토랑과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소개되어 있다.

<뉴스위크> 2010 12/27, 2011 1/3 합본호에는 2010년에 세상을 떠난 유명 인사들을 소개하고 있다. 아니 그런데 그곳에 우리나라의 가수이자 배우였던 박용하(1977-2010)가 나오는 것이다. 재능 있는 가수 겸 배우가 동남아시아 팬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다 세상을 떠났다. 자신이 단시일 내에 인기를 얻는데 큰 역할을 했던 아버지의 병을 돌볼 수 없어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일본에서 열 개의 앨범을 발표했고, 죽기 전 콘서트 투어 중이었다. 그는 TV 시리즈 겨울연가(White Sonata)를 통해 유명해졌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리스본

▲ 공항 면세점의 화려한 의류 ⓒ 이상기


어둠을 뚫고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니 5시30분 밖에 안 되었다. 브리티시 에어웨이스 항공사 부스에서 수속을 마치고 공항 안으로 들어가니 6시다. 이른 새벽이라 사람이 별로 없어 수속을 빨리 끝낼 수 있었다. 탑승구역에는 면세점도 별로 열리지 않아 시간을 보내기도 마땅치 않다. 탑승시각이 7시5분이고 출발시각이 7시25분이니 1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우리는 몇 군데 면세점에 들린다. 금속재료를 덧붙여 만든 의류가 눈에 띈다.

이들을 보고 나는 서점으로 간다. 에스파냐, 포르투갈, 모로코와 관련된 책을 찾기 위해서다. 국내에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 대한 자료는 어느 정도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모로코에 대한 책은 구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모로코 항목을 읽어본 게 전부다. 그나마 그곳에 사진 자료도 있고 지도도 있어 모로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행히 서점에서 나는 모로코를 소개하는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책의 제목은 <The rough guide to Morocco>이다. 모로코 여행 안내서로 2010년에 발행된 최신판이다. 내용을 보니 여행과 관련된 기본사항들, 지역별 안내,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과 생태, 언어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앞부분의 사진과 뒷부분의 인덱스를 포함하면 여섯 부분이 된다. 그 중 앞의 도입부 사진을 대충 훑어보고 나서 비행기를 타러 간다.

리스본을 향해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 바로 동쪽 하늘로부터 붉은색 해가 떠오른다. 양털처럼 복슬복슬한 구름 위로 붉은 빛이 퍼져나간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제 두 시간 반쯤 후면 리스본에 도착한다. 날이 밝아오면서 우리가 가는 항로 아래로 풍경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항로는 프랑스의 브르타뉴 반도를 지나 비스케이만을 건너 에스파냐의 칸타브리아 산맥을 넘는다. 그리고 나서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국경지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 리스본 공항 ⓒ 이상기


비행기가 포르투갈 땅에 들어서자 구름 사이로 초록의 자연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12월의 마지막 날로 겨울이지만 기온이 높아서인지 풀이 파랗게 자라고 있다. 지난 밤 사이 비가 왔는지 무지개도 가끔 나타난다. 굽이굽이 도는 강 사이로는 마을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다. 마을이나 도시의 입지는 어디나 비슷한 것 같다. 산 위로는 하얀 풍력발전기들이 돌아가고 있다.

리스본에 가까워지니 대지가 더욱 선명해 보인다. 그런데 강과 들판에 물이 흥건하다. 유럽의 중북부 지역에 눈이 왔다더니 이곳 남유럽에는 비가 많이 온 모양이다.  흙탕물이 흐르는 강들을 볼 수 있다. 비행장을 내려다보니 활주로도 젖어 있다. 오늘 일기예보에 비가 올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조금 걱정이 된다. 비행기를 내려 공항 출국장으로 나오니 10시30분이다. 전날 아침부터 움직였으니 꼬박 하루 반이 걸린 셈이다. 정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리스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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