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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정상에 가면 로또 준대요

[여행] 강릉서 기차 타고 제주도를 가다

등록|2011.01.20 20:48 수정|2011.01.21 09:55

강릉역에서 출발하는 제주도 관광 기차강릉역에서 출발해 목포역까지 10시간을 달린다. ⓒ 최원석


기차를 타고 제주도에 간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어쨌거나 속초에서 태백까지 강원도 동해안의 여행을 좋아하는 300여 명의 사람들은 지난 14일 기차를 타고 제주도로 향했다. 오후 9시35분 강릉역을 출발해 무려 10시간 동안 태백선~충북선~호남선을 달려 그 다음날 오전 6시30분 목포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새벽길을 더듬어 목포여객선 터미널까지 이동해서 제주도행 여객선을 탔다. 국내 최대 여객선이라는 1만7000톤 급 '퀸메리'호를 타고 5시간의 항해 끝에 제주항에 도착했다.

육지와는 다른 풍경에 어리둥절. 매서운 한파는 제주도에도 몰아쳤다. 옷깃을 여미어도 바람은 파고들고... 가이드가 하라는 대로 버스를 타고 내리고 그마나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제주도 사투리라, 귀를 기울였다.

여객선에서의 즉석 공연산악회등 다양한 여행객들이 여객선위에서 즉석공연으로 분위기를 띄운다. ⓒ 최원석


일출랜드의 돌 하루방제주도의 기후와 풍토를 잘나타낸다. ⓒ 최원석


성읍민속마을 입구막대기로 주인이 집에 있는지 여부를 표시했다고 한다. ⓒ 최원석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한라산 오르기. 국토의 남단에서 시작해 백두산까지 오르겠다는 일념이었다. 올 한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한라산 등반은 내일 오전 6시. 숙소배정 전까지는 제주도 관광이다.

첫 번째로 찾은 곳은 일출랜드. 1700m의 용암동굴인 미천굴, 폭포분수와 아열대산책로, 선인장하우스, 수목원, 제주돌 도구 전시장 등 다양한 테마관광공원이 작은 섬나라에 와 있음을 느끼게 한다.

다음에 들른 곳은 성읍마을. 입심 좋은 가이드도 여기서는 꼬리를 내린다. 안내를 맡은 이는 이곳에서 나고 자란이로 제주도 말로는 '큰 년'이란다. 맏이라는 뜻이다. 남자일 경우는 '큰 놈'이 된다. 고등학교까지 15년 동안 의무교육을 받았기에 자신도 그 기간 만큼 안내봉사를 해야 한단다.

물허벅과 애기바구니무더운 섬지방의 필수품 애기 바구니.바구니의 아랫부분에 끈으로 그물을 지어 통풍이 잘되게 했다. ⓒ 최원석


한라산 중턱에서의 일출8시가 조금 지난 시간 숲사이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 ⓒ 최원석


이 마을은 아무도 이사를 올 수 없는 곳이며, 이곳에 거주하면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다고 한다. 대한민국에 이런 곳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의 발견이다. '큰 년'은 체육관을 운영하며 당번을 정해 안내를 하고 있다. 이들의 주요 수입원은 건강식품 판매다. 말을 길러서 승마용이 아닌 약용으로 쓸 뼈와 고기를 얻는다는 것. 국내의 그 어떤 펀드보다 수익성이 좋다(?)고 투자권유도 한다.

마을 입구에 나란히 선 돌기둥에 구멍이 3개 뚫려 있다. 정낭이다. 정낭은 제주말로 대문을 상징한다. 강원도에서는 뒷간 즉 '화장실'의 의미로 쓰이는데 의미가 사뭇 다르다. 3개의 긴 나무가 걸쳐져 있는데 한 개가 올려져 있으면 집안에 사람이 없지만 근처에 있어서 금방 돌아온다는 뜻이고, 두 개가 올려져 있으면 인근마을에 외출중이어서 금일내로 온다는 뜻이고, 세 개가 올려져 있으면 장기 출타중이니 나중에 오시라는 뜻이란다.

돌 울타리로 만들어진 똥돼지를 키우던 제주도 화장실에는 반드시 막대기가 있어야 한다. 돼지가 엉덩이 밑으로 오지 못하게 쫓는데 쓰였다나. 특히 남자의 경우 큰일을 당할 수도 있어 휴지는 없어도 되지만 막대기는 꼭 있어야 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

지붕도 벽도 없는 높은 곳에 앉아서 볼일을 봐야 하는 건 왜놈들의 침탈이 잦은 곳이라 볼일을 보는 그 순간도 망을 봐야 했기 때문이란다. 왜놈들 눈에 띄면 노예로 잡혀 가기에 남자는 태어나자마자 다락에 감춰두고 키워야 했다는 제주도. 그래서 남자들은 집에서 애 키우고 살림을 했단다. 농사일 바닷일은 여인네들의 몫이고 그래서 여자가 많아 보였겠지.

길게 늘어선 등산객들수많은 등산객들이 눈이 내리는 한라산을 오르고 있다. ⓒ 최원석


한라산 정상바람이 심해 서 있기 조차 힘들 정도다. ⓒ 최원석


한라산 설경고목에 쌓인 눈 ⓒ 최원석


안내인은 물허벅 하나로 관광객을 웃겼다. 양쪽 어깨에 둘러메는 물허벅을 설명하고는 또 한가지 용도가 있다고 퀴즈를 낸다. 물허벅의 입구를 손바닥으로 치는 '둥둥' 마치 북소리가 난다. 그 반주에 맞춰
"한라산 올라 갈 때는 오빠 동생 하더니, 한라산 내려 올 때는 여보 당신하더라..."하는 구성진 노랫가락에 분위기 반전.

민속마을 전부를 둘러보지 못하고 그저 여행사의 입맛에 딱 맞는 코스인 것 같지만 어쩔까나. 시간과 비용이 허락하는 한도가 그런 것을.

폭설속의 산행앞을 가능하기 힘든 바람과 눈 ⓒ 최원석

어둠이 내리는 길을 재촉해 찾아간 곳은 해녀체험마을. 바닷가의 허름한 횟집에서 한 접시 만 원에 회를 맛보는 일정이다. 동해안의 자연산회를 먹던 사람들인데도 그 맛이 '달다'고 만족해 한다.

새벽 4시반, 숙소까지 찾아온 가이드는 해장국을 먹자고 한다. 한라산을 오르기 위해서 숙소로 흩어진 80명의 일행을 챙기고 6시부터는 산행을 해야 한단다. 등산로 입구의 주차장은 혼잡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도 경찰이 나와서 차량을 통제하는 관광지다움이 보인다.

한라산 쪽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있으니 등산장비를 잘 챙기라는 안내방송. 그리고 등산 모임마다 깃발을 들고 인원점검에 분주하다. 일행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사람들에게 떠밀려서 오르기 시작한 한라산.

등산로에 쌓인 눈이 다져지기를 거듭해서 30㎝는 훨씬 넘어 보인다. 옆으로 비껴 가기도 곤란한 좁은 길. 앞과 뒤 모두 검은 그림자의 사람들이다. 앞사람의 등만 보고 오른 지 2시간. 왼쪽 숲이 불그스레 달아오른다. 일출이다. 한라산 중턱에서 맞이하는 일출. 하지만 그마저도 잠시 산 모롱이를 돌아서니 눈발이 거세진다. 떠오르던 태양은 사라지고 함박눈이 내린다. 산을 오를수록 경사는 가파르고 눈길은 미끄럽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제주항을 떠나는 여객선풍란주의보는 내렸지만 여객선은 떠나고. 썰물때는 배가 많이 늦어진다. ⓒ 최원석


"이 고생을 왜서 한 대요?"
"정상에 가면 로또 한 장씩 준대요."
"그래요? 그러면 가야지."

산행은 일행이 있어야 즐겁다. 가다 서다를 반목하며 준비한 물과 간식으로 피로를 달랬다. 눈보라는 더해지고 배낭속의 물도 얼음으로 변했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거세지는 눈보라에 일행들은 밧줄을 잡고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려서 걸음을 옮기기를 반복한다.

드디어 정상. 한치 앞도 보기 힘들게 거센 눈보라. 눈마저 모두 휩쓸고 간 정상부에는 검은 바위들이 드러나 있다. 여기가 정상. 가슴이 벅차오른다. 백록담이 있다는 쪽은 바라볼 수 조차 없을 정도로 거센 바람이 휘몰아쳐 온다. 모두들 인증샷 한 컷으로 만족하고 서둘러 하산한다.

빙판으로 변한 등산로는 사람들을 쉽게 지치게 한다.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오는 하산길. 설천지다. 눈으로 덮인 천연의 숲. 길 옆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이 신비롭다. 이것이 겨울 산행이다. 뜻밖의 폭설에도 하산길에는 만족감과 여유가 있다. 눈 위에서 눈을 맞으며 먹는 컵라면과 도시락에는 정이 있다. 고수례를 하면 검은 날짐승 까마귀가 먼저 먹지만 그래도 산을 지키는 신에게 먼저 예를 표한다.

산행을 마치고 잠깐의 쇼핑을 즐긴다. 화장품과 감귤 초콜릿 등을 구매하면 매출액의 일부가 2일간 가이드를 한 수고료로 주어진다. 15년 가까이 제주도를 안내하는 일로 살아온 강옥수. 강냉이와 옥수수를 합쳐서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전표에 자신의 이름을 꼭 적어 달란다.

오후 4시 배에 올랐지만 풍랑이 거세다. 거친 파도에 배가 요동치자 화장실로 달려가는 사람들. 그래도 운항에는 지장이 없단다. 풍랑에 썰물 시간대까지 겹쳐 배는 1시간 30분 지연되고, 목포역에서 기다리던 기차도 출발시간을 늦추어야 한다. 11시 30분 기차에 올라 목포 역장이 준비해준 숭어회에 소주를 나누면서 여정의 마지막에 안도한다. 이제 아침에 눈 뜨면 1박 4일의 제주도 여행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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