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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표' 진보집권플랜은 무엇이었을까?

[서평] <게임 체인지> 오바마는 힐러리를 어떻게 이겼나

등록|2011.01.25 14:12 수정|2011.01.25 14:12
최근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의 대담집인 <진보집권플랜>이란 책이 화제다.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의 해석에 따르면 이는 한편으로 매력적인 '진보 지식인 스타'인 조 교수의 힘과 시민들의 간절한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을 예리하게 포착한 오 대표의 기획력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2012년 진보가 집권하기 위한 정책과 정치적 방안을 예리하게 제시하고 있다.


과연 진보(여기서는 넓은 의미에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을 가리킨다)는 2012년에 승리할 수 있을까? 혹시 이미 집권한 진보의 성공 플랜을 참조해 볼 수는 없을까? 2008년 오바마 기적을 만들어낸 미국 대선을 심층 취재한 신간 <게임 체인지>(존 하일언 외 지음, 정병선 옮김, 컬처앤스토리 펴냄)는 그에 대한 모든 비밀을 담고 있고 한국사회에 시사점을 주는 내용도 적지 않다. 마치 2012년 대선 직후 한국의 <게임 체인지> 책을 미리 보는 것 같은 초현실적 느낌도 준다. 미국 출간 당시 이 책은 비밀 장막 안에서 이루어진 선거 캠페인의 숨겨진 드라마들을 마치 도청이라도 한 듯이 생생히 드러내 큰 화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부시가 불러온 '진보세력 선거연합'

▲ ⓒ 컬쳐앤스토리


이 책은 '민주당의 대선 패배는 축복이다'라는 메시지로 시작한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야권 진영은 너무도 야비하고 극단적으로 미국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부시 대통령에 대한 불만과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컸다. 이 때 힐러리 여사는 심각하게 대선 출마를 검토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대선후보들은 힐러리가 보기에 자격미달이었다. 저자들은 힐러리의 속마음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인용하고 있다.

"이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우리 당 후보자들이란 말이야? 그들은 너나없이 모두 자격이 있음을 주장했지만 부시를 물리칠 수 있다는 희망은 고사하고 진지한 태도나 당당함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42쪽)

그러나 결국 미국의 야권은 2004년 부시에게 참패했다. 이길 수 있었던 선거에서 패배했다고 믿은 힐러리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인생의 아이러니는 민주당의 패배가 축복이었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부시의 미국 파괴와 약탈에 분노한 야권의 정권교체 절박함이 이제는 거의 강박 수준이며 힐러리의 야권 단일 대오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감은 진보로 하여금 선거연합 추진을 주도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교훈을 배우려는 이들은 흔히 미국 2008년 대선에서 오직 오바마에게만 집중한다. 물론 오바마는 미국 진보 집권 플랜의 핵심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2008년 미국 대선은 야권의 모든 힘들이 합쳐져서 가능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특히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오바마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상대적으로 중도적인 오바마보다 노동자층의 지지를 더 받고 있는 진보 후보였다. 이 책의 저자들은 에드워즈의 집권플랜을 위한 대담한 선거연합 제안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오바마 측근이자 민주당 다수의 상원의회에서 대표를 지낸 거물 정치인인 대술 상원의원에게 비밀리에 접근하여 누구든 간에 대선 민주당 경선의 첫 승부처인 아이오아 코커스에서 승리하면 즉시 패배자는 경선을 단념하고 부통령 러닝메이트가 되자고 제안하였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에드워즈는 야권단일무대이자 시민정치운동인 무브온의 온라인 경선에서도 대담하게 참여하여 오바마와 자웅을 겨룬 바 있다. 바로 에드워즈 같은 이들이 있기에 오늘날 오바마 현상도 가능한 셈이다.

과연 한국의 진보 진영은 진정으로 정권교체나 진보의 정치세력화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을 까? 그들은 자기 정당을 유지하면서도 야권단일무대에서 대담하게 자웅을 겨루고 이후 선거연합이나 연합정부를 이룰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주류 정치인들 대담한 실험이 '오바마 기적' 불러와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의원은 민주당의 거물 주류 정치인이다. 그런데 저자들의 비밀 폭로가 흥미로운 것은 당시 비록 비토 세력도 많아 불안감은 존재했지만 그래도 힐러리 대세인 상황에서 그가 은밀하게 정치 풋내기 오바마의 출마를 촉구하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뉴욕의 거물이자 힐러리의 경쟁자인 척 슈머 상원의원도 합류하였다. 사실 힐러리 상원의원도 신인 오바마에게 엄청난 열정을 쏟았다고 저자들은 흥미롭게 전하고 있다. 당시 힐러리는 의아해하는 측근들에게 ' 시카고에 슈퍼스타가 있어요'라고 만족해했다.

이렇게 시작한 오바마의 대권 행보가 점점 탄력을 받자 클린턴 부부는 민주당을 수년간 먹여 살린 자신들의 정치가문에 감히 이반을 한 이들이 그렇게 많았고 자신들이 키운 오바마에게 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미국의 주류 정치인들 중 통찰력이 뛰어난 이들은 긴 시야 속에서 미래를 키운다는 점이다. 긍정적 미래란 결코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결에 근거한 주체의 의식적 행동의 결과이다. 당장 눈앞의 대선만을, 그것도 표피 아래서 진행되는 민심의 지각변동에 눈과 귀를 가린 채 막연한 낙관주의 자기암시 속에서 정치를 이해하는 이들이 너무 많은  한국의 진보 진영이 배워야 할 점이다. 

결국 민주당 중진들의 통찰력 있는 준비는 민심의 위대함과 만나 집권 성공으로 귀결되었다. 민심의 위대한 기적을 믿지 못한 것은 비단 힐러리만이 아니었다. 당시 오바마는 무적함대인 힐러리호를 맞아 첫 승부처인 아이오와에 모든 것을 건 위험천만한 도박을 진행하였다. 마치 슈퍼스타 K처럼 지면 당장 짐을 싸야 할 처지였다. 이기려면 불가능한 기적의 공식이 전제되어야 했다.

즉 투표율이 역대 최고기록보다 적어도 50%는 높아야 한다는 말이다. 난생 처음으로 코커스 참여자가 마치 라스베이거스 도박판에서 잭팟이 터진 것처럼 우르르 쏟아져 나와야 하는데 그건 너무 달콤한 공상이었다. 더구나 캠페인 팀의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오바마는 3위를 기록했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오바마가 민심의 위대함을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누구의 꿈도 뛰어넘는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민주당 코커스에 참여한 유권자수는 무려 23만 9000여 명으로 4년 전 기록이었던 12만 4000여 명에 비해 거의 2배에 이르는 수치를 기록했다. 4년 전 민주당을 불임정당으로 만든 바로 그 야박한 민심은 정치 주체의 헌신적이고 대담한 실험에 위대한 기적으로 응답한 것이다. 

2012년, 진보는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 2008년 미국 대선 민주당 대선예비후보 시절의 버락 오바마(자료사진). ⓒ 버락 오바마 홈페이지


기층의 변화 흐름을 놓치는 전략가와 정치가는 반드시 몰락하게 된다. 미국에서 흔히 진보 정치논객들에게 가장 탁월한 선거전략가가 누구인가 물으면 전략가 이름 대신에 클린턴 전 대통령을 거명하는 이가 많다. 사실 클린턴의 가장 큰 취미는 선거 전략이나 정치광고 기획 회의이며 그는 걸어 다니는 정치 데이터 사전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걸출한 여론조사가는 누구인가?  당연히 마크 펜의 이름이 1, 2위로 거론될 것이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코카콜라 같은 저명한 기업의 브랜딩 전략과 클린턴 96년 재선 승리의 공신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들 모두 아이오아 코커스에서 오바마에게 패배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클린턴은 오바마의 잠재력은 높이 평가했지만 심지어 마크 펜은 오바마의 경선 참가는 절대 없을 것이라 공언하기도 했다. 더 심각한 것은 언제나 백악관 위기의 소방수였던 힐러리조차 오바마에게 패배하자 자제력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저자에 따르면 힐러리 최고위 참모 중 하나는 '이 여자, 대통령하면 안 되겠는데'라고까지 느꼈다고 한다.

힐러리는 왜 오바마에게 패배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원래 오바마는 정치신인 시절부터 탁월한 연설로 유명했다. 하지만 힐러리는 이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그야말로 극우 집단의 힐러리 죽이기 프로젝트 백병전에서도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가 아닌가. 저자들에 따르면 그녀는 말로 국민의 삶을 바꿀 수는 없다며 오바마를 과소평가했다. 오직 전투 속에서 단련된 이만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그녀는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그녀가 잊은 것은 오바마의 말은 단지 수만불의 정치마케팅 고수의 여론조사 작품이 아니라 오랜 세월 진심과 단련의 내공이 빚어낸 빛나는 명품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상원의원으로서는 정치신인이지만 오바마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전투 속에서 가치를 벼려낸 것이다.

미국 진보의 영원한 신화는 케네디의 동생 바비이다. 암살로 비극적 생을 마감한 그는 영원한 진짜배기 정치인이다. 미주리 주 상원의원은 '바비 케네디 이후로 사람들이 누군가에 이렇게 다가서려 하는 걸 본 적이 없다오'라며 바비 신드롬의 부활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 유권자는 '저 사람에게는 뭔가 대단한 게 있어'라고 놀라워했다.


비록 집권 기간은 불운했지만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제 한국 야권의 매력적 신화로 남아 있다. 과연 한국의 진보는 2012년이나 2017년에 '뭔가 대단한 게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통합을 추구하는 대선 후보가 승리한다

오바마는 진보의 희망으로서 대선에 승리한 것이 아니다. 그는 미국 민주당에 야박한 주들에서도 사람들을 열광시켜 슈머 상원의원을 경탄하게 했다. 이 선거지도를 다시 그려낼 가능성이 바로 힐러리에게 없고 오바마에게만 있는 비결임을 슈머는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다.

오바마의 선거전략가인 액설로드도 예리한 통찰을 이 책에 드러내고 있다. 그에 따르면 2008년 대선은 부시 대통령에 의해 규정되었다. 부시가 민주당에 일으킨 적대감을 고려할 때 자유주의 성향 강한 유권자들이 애타게 찾는 후보는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약속하는 후보라고 그는 보았다. 또한 독단적이지 않으며 워싱턴에 오염되지 않고, 이라크 전쟁을 원칙에 입각해 반대한 후보가 바로 그 주인공이란 것이다.


한국도 2012년은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 위의 문장을 고스란히 인용하자면 그가 야권에 일으킨 적대감을 고려할 때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유권자들이 애타게 찾는 후보는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약속하는 후보일 것이다. 또한 이념적이지 않으며 여의도에 오염되지 않고, 원칙에 입각한 후보가 바로 그 주인공일 것이다. 그게 누구일까? 무척 궁금해진다.

이밖에도 본선에서 대결한 멕케인과 페일린의 숨겨진 스토리 등 <게임 체인지> 의 시사점은 무궁무진하다. 지면상 이 책의 흥미진진한 본선 동학까지 다루지는 못할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담하게 혁신하고 단일 대오를 이루고 분열된 국가의 민주적 통합을 추구하면 민심도 감동하고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무적함대같았던 힐러리 제국조차 이 도도한 흐름 앞에서는 무너지고 말았다.

책 속에서 한 여성 유권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자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이번은 아닙니다.'(109쪽) 2012년 한국의 대선에서 민심의 향방은 어느 쪽일까?
덧붙이는 글 안병진 기자는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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