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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107회)

미치광이 유학자 <4>

등록|2011.01.25 09:26 수정|2011.01.25 09:34
속칭 한자(漢字)로 불리는 글문(契文)은 동이의 옛날 문자로 부수가 214자다. 옥편을 보면 가장 앞쪽이나 뒤에 붙어 있는 부수색인(部首索引)에 쓰던 것으로, 이것은 잃어버린 동이족(東夷族)의 옛날 문자다.

'이게 어떻게 한자(漢字)란 이름을 얻게 됐는가? 그것은 동이족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즉, 동이가 주(周)나라에 귀속됐다는 '동이귀주(東夷歸周)'란 문구에 근거한 것이다.
육조시대 이라(李邏)가 주해를 한 <천자문(千字文)>엔, 주나라가 상은왕조를 공격한 '주벌은탕(周伐殷湯)'의 설명이 나온다.

<은나라 마지막 왕 주왕(紂王)의 부인이 달기(妲己)다. 달기는 주왕이 동이족의 잔혹한 통치를 반대해 왔으며 무왕(武王)이 은을 멸하고 주(周)나라를 세우면서 은나라의 정통성과 동이족을 말살하려 했던 점에서 달기가 구미호(九尾狐)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이후 쏟아진 <봉신연의(封神演義)>엔 달기를 구미호정(九尾狐精)으로 나타내고 있다. 중국의 사천성에서 발굴된 진한시대의 전각화(篆刻畵)엔, 왼쪽에 다리가 셋인 까마귀가 오른쪽엔 구미호가 있다.

지금은 중국인과 왜인들이 역사를 조작해 구미호와 까마귀를 이상한 쪽으로 설명하지만 단군조선의 제2대 부루(夫婁) 단군은 <규원사화 단군기>에서 구미호에 대해 다음 같은 글을 올린다.

<이때, 신령스러운 짐승이 청구(靑丘)에 나타났는데 털은 밝고 희고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짐승이 서책(書冊)을 입에 물고 상서함을 나타내는지라 이에 고시 씨에게 상을 내리고 나라 안에 영을 내려 음악을 연주하게 해 매우 즐기고 또한 조천무(朝天舞)를 지었다. 時有, 神獸出於靑丘, 白毛九尾, 銜書作瑞, 內賞高矢氏, 今國中奏樂而致歡, 又作朝天之舞.>

이 부분에 대해 윤창하는 <한서(漢書)>의 편집에 참여한 반고(班固)의 기록, <백호통(白虎通)>을 끄집어냈다. 이것은 한나라 때에 쓰인 <백호통의>를 기록한 것으로 한나라 지식인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이다.

중원지역의 시원인 삼황에서부터 춘추시대의 공자나 한(漢) 대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문화적 삶이 마흔 세 가지란 점이다. <백호통>의 이런 기록이 시선을 끈다고 했다.

<군왕의 덕이 지극하면 새나 짐승에도 미치게 돼, 구미호(九尾狐)가 나타난다. 꼬리(尾)가 아홉(九)이라는 건 자손의 번식이 성대하게 되는 걸 말한다.>

정약용도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가 읽은 책이 떠올랐기 때문으로 한(漢)나라의 조엽(趙曄)이란 학자가 편찬한 <오월춘추 월왕무여외전(吳越春秋 越王無余外傳)>의 기록이다. 거기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우(禹)가 나이 서른이 되도록 장가를 못 올려 도산(塗山)에 이르러, 때가 저물고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할까 두려워했는데 구미호가 나타나자 우가 장가를 가게 될 징조라고 말했다. 구미호의 색깔이 흰 것은 우의 옷을 뜻하고 아홉 개의 꼬리는 우가 왕이 될 징조라고 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구미호는 조엽이 내용을 손질한 것이 분명했다. 즉, 구미호는 부루 태자를 의미하며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건 치수법(治水法)을 배우는 것이다. 장가를 가고 왕이 된다는 건, 부루 태자의 승인을 얻어 제후국을 통치하는 왕이 된다는 것이었으니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윤창하의 기록은 <규원사화> '단군기'의 기록을 더듬고 있었다.

<구미호가 나타나면 임금이 친히 큰 상을 내리고 음악을 연주하고 연회를 열어 태평성대를 경축했다. 위의 부루 단군시절에 나타나는 구미호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하우(夏禹)다. 하(夏)는 나라를 건국했으며 우(禹)는 홍수를 다스렸다.>

이렇게 보면 '구미호'는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요사스러운 짐승이 아니라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신령한 동물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주서(周書)>엔 달기가 구미호의 정(精)이었다고 몰아치고 있다. 이점에 대한 윤창하의 달변이 평범하지 않다.

<인생에는 행이 있고 불행이 있다. 그렇게 보면 달기가 행과 불행을 동시에 겪은 여인일 것이다. 그녀로 인해 동이족(東夷族)은 대가 끊기고 모든 게 주(周)나라로 넘어가는 '동이귀주(東夷歸周)'의 참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왜 윤창하는 참변이란 말을 썼을까? 그 이유는 달기를 이용한 미인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달기가 살았던 그 시대엔 그녀를 '달기(妲己)'라 했으나 후대엔 그녀의 성에 소(蘇)를 붙여 소달기라 불렀다.

그러나 이게 옳은 일인가? 아니다. 사실상 그녀의 성은 기(己)고 이름은 달(妲)이다. 하남성 온현에 있는 소부락(蘇部落) 추장 딸이므로 성이 소씨다. 그렇게 보면 성이 둘인 셈이다. 습관적인  호칭은 달기지만, 정확히 말해 소기(蘇己)라고 해야 옳다. 또한 그녀가 상은왕조의 제31대 제왕 자수신(子受辛)을 어떻게 만났는가?

그것은 소부락에서 반란을 일으킬 조짐을 보였기 때문으로 상은 왕조는 수만의 정부군을 거느리고 토벌에 나서자 소부락에선 급한 나머지 달기를 내놓으며 화평을 요청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달기의 용모가 무척 빼어났던 모양이다. 역사는 이렇게 기록한다.

<달기의 용모는 달도 부끄러워 모습을 감추고 꽃도 수줍어 고개 숙일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자수신은 달기에게 빠진 것이다. 달기가 그에게 동으로 가라 하면 동으로 갔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다.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은 신분여하를 막론하고 높은 자리에 앉혔으며 싫어하는 사람은 가차 없이 목을 쳤다.

그 다음엔 사치에 눈을 돌렸다. 가장 경악시킨 것은 상아로 만든 젓가락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자수신의 숙부 기부락(箕部落)의 추장 자서여(子胥餘)가 탄식한다.

"상아 젓가락은 뜨거운 부뚜막에 올려놓을 수 없다. 머잖아 옥으로 젓가락 상자를 만들어 보관할 것이다. 매일같이 곰 발바닥과 새끼 밴 표범만 먹는 사람은 오랫동안 초가집에서 거주하지 못하므로 필시 비단옷 걸치고 9층 누대에서만 살려 할 것이다."

과연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갖가지 모습의 나녀상이 조각된 경궁요대(瓊宮瑤臺)를 짓고 향락연을 베푸는 등의 폭정을 저지르자 천재(天災)가 일어났다. 폭정을 하면 탐관오리가 생기는 법이다. 그들은 자신의 주머니만 챙길 뿐 나랏일엔 관심도 없다.

대홍수가 발생해 둑이 무너지고 집과 전답이 침수됐으며 몇 해를 계속해 흉년이 들었다. 이러한 일은 상은왕조를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가 되었고 결국은 강태공이 이끈 연합군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자수신은 수많은 사람이 자신을 뼛속 깊이 미워한다는 사실에 적성루(摘星樓)로 달려가 산처럼 모아놓은 금은보화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질렀다.

역사가들은 그를 '주제(紂帝)'라 했다. 충신만 죽이는 군주란 뜻이다. 그래서 중국 문자엔 '주(紂)'란 글자는 쓰지 않는다. 사장된 글자다.

달기가 형장으로 끌려갈 때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은 마치 배꽃이 봄비에 흠뻑 젖은 것 같았고, 형장에 도착하자 망나니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절세가인을 본 적이 없어 혼이 달아나고 팔이 마비돼 칼을 들어 올릴 수 없었다고 했다.

달기의 아름다움은 만인의 연민을 받았다네
얼마나 가련했으면 형장의 망나니도 눈물을 뿌렸을까
복숭아꽃이 이에 비교될까
작약꽃이 아름다움을 견줄 수 있을까?
그녀가 덮은 이부자리엔 아직도 그녀 체향이 맴도는데
이제 그녀의 아릿따운 몸매가 간 곳 없으니
슬프도다 가인이여, 이 한 어이 풀려나
죽는 것도 억울한데 머리까지 걸리다니
기이한 노래와 묘한 춤은 어디가고 비구름만 맴도는가
이 한, 이 원 풀길 없어 해도 지지 않는구나

적성루에 불을 지른 자수신이 불에 타 죽자 거의 재가 된 자수신의 주검에 화살을 세 발이나 발사하고 세 번 칼질을 하고 도끼로 목을 베 백기를 꽂은 높은 장대 끝에 매달았다. 그러나 달기의 죽음은 중국인들이 참으로 애통해 하였다. 그런 연유로 3백년 후에 하마사시(荷馬史詩)가 발표됐고 2천6백년이 지나 허중림(許仲琳)이란 자가 달기를 주제로 한 <소설 봉신방(封神幇)>이 발표됐다.

정약용은 윤창하가 남긴 기록의 한 부분을 펼쳐들었다. 이 점에 대해 그가 지적한다.

<중원의 역사는 주(周)나라 때로부터 시작한다. 고대의 예법을 다룬 이 책엔,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나라의 이륜(彛倫)으로 삼았다는 문구가 있다. 즉,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상은왕조로부터 받아들여 휘찬(彙撰)한 것이다. 휘찬이란 게 뭔가? 이것은 좋은 것만을 가려 뽑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주서(周書)는 주나라 무왕의 동생 주공(周公)이 상은왕조의 좋은 점만을 뽑아 쓴 것으로 알려졌으나 나중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자가 휘찬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周)나라 역사의 근본을 이루는 주요한 기록을 쓰고도 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가? 그것은 상은왕조를 멸망시키기 위해 소부락(蘇部落)을 위험에 빠뜨리고 추장의 딸 '소기(蘇己)'를 달기로 둔갑시켜 궤도술(詭道術)을 쓴 자가 주공(周公)이었기 때문이다.

주공은 천하를 혼돈으로 이끈 상은왕조를 멸하기 위해 계책을 마련한다. 계략으로 자수신(子受辛)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였다. 사내의 가장 허약한 부분이 계집이란 걸 알기 때문에 소부락 추장을 찾아가 많은 재물을 주고 미색으로 소문난 추장의 딸 소기(蘇己)를 데려온다.

그녀는 자수신의 취향에 맞게 훈련을 받아 웃는 것이나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나 구슬같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나 방사(房事)를 치를 때 몸을 움직이는 방법이나 요본(凹本)과 감창(甘唱)의 훈련을 받은 후 주공으로부터 이름을 하사받는다.

주공의 이름에서 단(旦)과 계집을 뜻하는 여(女)를 합해 '달(妲)'이란 글자를 만들어내 결맹을 한 것이다. 만약 그녀가 상은왕조를 무너뜨리면 여생을 주공이 책임진다는 의미로 이름을 달기(妲己)로 바꿔 소부락으로 보내진 것이다. 천하에 소문이 난 건 그 다음이었다.

"소부락에서 상은왕조에 반란을 꿈꾸고 있다!"

소문은 곧 상은왕조에 전해졌고 제31대 제왕 자수신이 대량의 정부군을 이끌고 소부락 토벌에 나선 것이다. 소부락 추장은 자기의 딸을 내놓으며 화평을 요구했다.

달기의 용모를 보는 순간 자수신은 눈이 번쩍 떠졌다. 승리자의 입장에선 달기 외에 많은 재물을 요구할 수 있었지만 그녀의 용모에 넋이 빠져 기다렸다는 듯 화평을 받아들여 군대를 철수시켰다. 그것이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결국 상은왕조는 망했다. 이때의 상황을 <주서(周書)>는 은(殷)나라 마지막 왕 주(紂) 왕의 부인을 꼬리가 아홉 달린 구미호(九尾狐)로 표현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윤창하는 꼬집었다.

<조선 사람들은 구미호에 대해 부정적인 점을 가지고 있다. 달기가 나라를 망하게 한 요녀였듯 구미호는 둔갑을 하고 사람의 간을 빼 먹는 요망한 짐승이란 것이다. 그러나 허신(許慎)의 <설문(說文)>엔 보다 긍정적이다. 즉, 여우에겐 세 가지 덕이 있는데, 색깔이 중화(中和)인 것과 앞은 작고 뒤는 큰 것과 죽을 때 수구(首丘)한다는 점이다. 가장 오래된 지리서 <산해경>의 대황동경에도 '청구국엔 꼬리가 아홉 개인 구미호가 있다' 했으며 곽박의 주(注)에도 '구미호는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상서로운 동물'이라고 했다.>

이런 점 때문에 사천성에서 발굴된 진한 시대의 전각화에도 삼족오와 구미호의 모습이 보인 것이다. 달기는 주공(周公)의 계책에 따라 움직여 동이족의 모든 문화유산이 주나라에 귀속됐지만 그걸 당장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 보니 동이족의 문자 글문(契文)도 주나라 것이라고 밝히기 어려웠고, <주서(周書)>도 저자를 밝히지 못한 채 '휘찬한 것'이라고 꼬리를 내렸다. 이 일은 한(漢)나라 이후 정리돼 바꿔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때까지 자신들이 사용해 오던 문자를 한족들의 부산물로 삼기 위해 '한자(漢字)'라고 이름을 붙였다. 눈치껏 동이문자를 사용해 오던 중원인들이 아예 자기네 글이라고 억지를 쓰고 사방신수(四方神獸)까지 바꾸었다.

이것은 중원의 전각화(篆刻畵)에 나오는 신령스러운 네 동물로 <중국신화대사전>을 쓴 원가(袁珂)는 말한다.

"한나라 시대의 석각화상이나 전각화를 보면 항상 구미호와 백토, 두꺼비와 삼족오가 나란히 있는 데 이것은 매우 상서로운 일이다."

그러나 한(漢)나라 이후로 내려오면서 사방신수는 모양을 달리한다. 구미호는 청룡으로, 삼족오는 주작으로 변했다. 또한 백토는 백호로 바뀌었으며 두꺼비는 거북과 뱀을 합한 현무로 변해 버렸다.

설화도 바뀌었다. 은(殷)나라의 갑골문에 나오는 서모(西母)는 <산해경(山海經)>에서 서왕모로 전승된다.

전승에 의하면, 그녀는 중국 서쪽 땅의 동굴에 사는 데 사람 모습을 하고 표범의 꼬리에 호랑이의 이빨을 가지고 있다. 산발한 머리에 비녀를 꽂고 으르렁대는 괴이한 존재였다. 그런데 신선사상에 따라 그녀는 용모가 화려한 미인으로 변신해 거처 도 곤륜산으로 정해졌다.

동이족의 글문(契文)이 한자로 바뀌고 사방신수(四方神獸)와 역사기록이 왜곡되고 조작되어진 게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무거운 신음을 흘리며 정약용은 밀지를 품은 채 밖으로 나왔다.

[주]
∎전각화(篆刻畵) ; 나무나 쇠붙이 등에 글자나 그림을 새김
∎청구(靑丘) ; 지난날 중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달리 부르는 말
∎도산(塗山) ; 양자강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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