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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이야기꾼 가시고, 책은 남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웅진닷컴)를 다시 읽고

등록|2011.01.26 16:03 수정|2011.01.26 16:03

박완서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 이명화



꽤 오래 전에 읽었던 박완서의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다시 읽었다. 이 소설은 1992년도에 출판되었으니 아마 그때쯤 읽었을 것이다. 얼마 전부터 내게 없는 박완서 소설들을 사모아야지 생각했고, 또 예전에 읽었지만 분실한 책 가운데 몇 권을 다시 구입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며칠 뒤에 박완서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막 읽고 난 후 며칠 뒤였다.

박경리 작가가 돌아가셨을 때, 그분의 부재가 아쉽고 허전해서 <김약국의 딸들>을 다시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불과 얼마 전에 그랬는데, 이제 소설가 박완서 선생도 돌아가셨다. 우리 문단의 두 기둥을 잃어버린 듯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하다. 편안하고 따뜻하고 구수한 옛 이야기 들려주시던 할머니를 잃은 아이처럼 황망하다.

한 많은 삶을 온통 소설의 용광로에 부어 넣었던 박경리, 6.25경험으로 꽃다운 청춘 스무 살에 성장이 멈추어버렸다던 전쟁의 참극과 아픔을 글로써 승화시켰던 박완서... 두 분 다 가시고 나니 참으로 아쉽고 그립다. 새삼, 두 분의 빈 자리가 너무 크다. 나무는 높이보다도 보이지 않는 뿌리가 더 크고 깊은 법인데, 두 거목이 뽑혀나간 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쉽게 메워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읽은지 며칠 지났지만 작가의 빈 자리가 아쉽고 허전해 책을 어루만져 본다. 사람은 가고 책은 남았다. 이젠 내가 좋아했던 작가들의 그 빈자리 허전하고 그립고 아쉬울 때마다 그분들이 남기고 간 책을 펼쳐보면서 대신 위안 삼아야겠지.

"세상에 우리 엄마만큼 삼국지를 재미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엄마가 '옛다 조조야, 칼 받아라" 하면서 그 동작까지 흉내내느라 바느질 하던 손을 높이 쳐들었을 때 엄마의 손끝에서 번쩍이는 바늘 빛은 칼 빛 못지않게 섬뜩하고 찬란했다."(p107)고 말했던 작가, 하지만 그 역시 타고난 이 시대의 이야기꾼이었다. 탁월한 이야기꾼 박완서 선생을 잃은 마음 허전하고 그립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웅진)는 1930년대 작가의 고향 박적골에서의 어린시절과 1950년대 6.25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20대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하였다. 개성에서 남서쪽으로 이십리 가량 떨어진 개풍군 청교면 묵송리 박적골, 20여 호도 채 안 되는 마을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등 가족들과 함께 8살 때까지의 따뜻한 기억들과 어머니의 극성으로 서울로 이사 온 뒤 어렵게 적응해 가는 이야기, 혼자 다니면서 독서에 눈떠간 이야기, 빨갱이로 몰려 겪었던 짐승의 시간들, 대학을 입학하자마자 6.25전쟁의 전운이 감도는 텅 빈 서울에 남아야 했던 이야기 등등 일제강점기와 6.25 등 격동의 시대를 살았고 그래서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성장이 멈추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순전히 '기억에 의지한 소설'이라했다. 소설이라는 집의 규모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기억의 더미로부터 취사선책하고 상상력으로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쓰여진 책이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어렵게 서울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문득 문득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홀로 서울 문밖에 살면서도 서울 문 안 학교에 통학했던 소녀는 혼자 고갯길 걸으며 고향에서 본 삘기, 찔레순, 산딸기, 칡뿌리, 메뿌리, 싱아, 밤, 도토리를 찾아보려 했지만 삭막하기만 한 했다. 어느 봄날 아카시아 꽃을 따서 포도송이 먹듯 통째로 먹는 것을 보면서 따라서 해보았지만 비릿하고 들척지근한 맛에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때 소녀는 생각한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 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p77)

소설의 클라이막스는 말미에 있다. 삼촌을 잃고 오빠마저 총상을 입어 모두 피난길을 올랐지만 텅 빈 서울에 남아야했던 가족, 언덕에 홀로 올라서서 텅빈 공포와 공허 속에서 전율처럼 훓고 지나가는 예감, 그것은 앞으로 글을 쓰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대학 입학 후 며칠 되지 않아 터진 6.25, 그리고 빨갱이로 몰렸던 짐승의 시간들, 1.4후퇴 때까지도 피난을 가지 못하고 텅 빈 서울에 가족과 함께 남아야 했던 이제 막 스무 살인 그녀가 거대한 공포와 공허를 목도하면서 '차고 푸른 비수가 등골을 살짝 긋는 것'처럼 소름이 쫙 끼쳐왔고 그 거대한 공포와 공허 속에서 한 줄기 예감이 사로잡는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획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는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냈다."(p268~269)

결국 이 소설은 이 말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박완서는 그의 작품 속에서 6.25를 작가의 말대로 많이도 울궈먹었다. 하지만 퍼내면 퍼낼수록 새로 솟는 샘물처럼 또 다른 소설 속에서 새롭게 솟아났고 녹아들었다. 스무 살에 성장이 멈춰버렸다는 작가 자신의 말대로 그때 그 짐승의 시간은 평생 동안 울궈먹고 쏟아내고 또 쏟아내어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였고, 또 그것이 작가의 소설의 동기요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말 했듯이 증언의 책무를 작가는 글로써 이행했다.

하지만 그것은 짧지 않은 세월을 필요로 했다. "6.25전쟁에 오빠와 삼촌을 잃고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을 때, 그걸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은 언젠가는 저자들을 악인으로 등장시켜 마음껏 징벌하는 소설을 쓰리라는 복수심이엇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나도록 증오와 복수심만으로는 소설이 써지지 않았습니다. '나목'으로 나이 마흔에 등단해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지요"라고 모 지면(?)을 통해 말했다.

생애 마지막 에세이집이 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도 그때의 상처를 기억하며 작가는 말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낸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할 것 천지였다"(p31)고. 뿐만 아니라 일생동안 아물지 않는 그 상처의 흔적은 곳곳에 드러난다.

"금년은 또 경인년이다. 나에게는 그냥 경인년이 아니라, 또 경인년이고 또 경인년이기 때문에 내 생전에 또 전쟁을 겪게 될까봐 두려운 것이다. 6.25가 난 해도 경인년이었으니 꽃다운 20세에 6.25를 겪고 어렵게 살아남아 그 해가 회갑을 맞는 것까지 봤으니 내 나이가 새삼 징그럽다. 더 지겨운 건 육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물 줄 모르고 도지는 내 안의 상처다. 노구지만 그 안의 상처는 아직 청춘이다."(p20,<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나는 다시 소설가 박완서의 유년시절과 6.25전쟁으로 인해 갓 피어난 스무 살 청춘을 짓밟은 전장의 참혹함과 아물지 않은 상처를 보았다. 그 상처는 '아직 청춘'이라는 말이 깊이 와 닿는다. 그 상처를 글을 쓰면서 비워냈던 것일까. 어쨌든 그는 따뜻하고 섬세한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잔디밭에 등을 대고 누우면 부드럽고 편안하고 흙 속 저 깊은 곳에서 뭔가가 꼼지락대는 것 같은 탄력이 느껴진다. 살아있는 것들만이 낼 수 있는 이런 기척은 흙에서 오는 걸까, 씨앗들로부터 오는 것일까. 아니 둘 다일 것 같다. 흙과 씨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적이 많다. 씨를 품은 흙의 기척은 부드럽고 따숩다. 내 몸이 그 안으로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말했던 작가는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일까. 박경리 작가가 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박완서 작가의 존재는 더 고맙게 느껴졌건만, '또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했던 작가는 이제 가시고 이 땅에 없다. 그의 부재가 아쉽다.

사람은 가고 책은 남았다. 그가 남긴 책들이 새삼 더 귀하게 느껴진다. 편안하고 구수하게 옛 이야기 들려주시던 우리들의 어머니 할머니 어머니를 잃은 것처럼 허전하다. 이젠 그리울 때마다, 그가 남긴 책들을 펼쳐들고 조근조금 옛 이야기 듣듯 자주 읽으며 그리움을 달랠 수밖에 없겠지. 그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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