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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 메뚜기 삶의 시작

서울 상경 5년째... 얼마 전 전세 계약을 하다

등록|2011.01.26 18:07 수정|2011.01.26 18:07
얼마 전 집을 계약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에 계약한 집도 제 집이 아닙니다. 4년 전에는 월세, 이번에는 전세.

세, 세, 세. 상경한 지 5년째, 저는 아직도 '-세'가 붙은 집만 전전합니다. 올해로 제 나이 24살, 이제 어엿한 어른이 되었지만 집을 구하는 동안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고 싶었습니다. 몇 천만 원이 몇 백 원인 것처럼 큰돈이 쉽게 오가는 서울 부동산에서 어머니와 저의 어깨는 발품을 팔수록 좁아졌기 때문입니다.

첫 상경은 19살 때. 2006학년도 수능이 끝나고 재수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어머니의 신조에 따라 양 손에 큰 가방 하나씩 들고 무조건 노량진역에 내렸습니다. 그 넓은 서울 하늘 아래에 내 작은 몸뚱이 하나 뉘일 곳 없겠냐 싶어 무작정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설마설마했지만 정말 제 몸뚱이 하나 뉘일 곳이 없었습니다. 습기 차고 냄새나는 고시원마저 수험생으로 꽉 들어차있었습니다. 결국 제 작은 몸뚱이를 받아주는 곳은 양팔이 다 벌려지지도 않는 지하 고시원이었습니다. 지하 고시방에서 바퀴벌레를 처음 보고 아버지에게 울면서 전화하던 날 다짐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으면 꼭 지하방에는 안 살 거야.'

그 다짐대로 대학교에 붙고 자취방을 알아볼 때 저는 무조건 햇빛이 들어오는 방만 찾았습니다. 그렇게 찾은 방이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1년 뒤 5만 원을 더 올려달라고 해서 지금은 35만 원. 학교 근처는 시세가 비싸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동네에서 겨우 찾은 방입니다. 미안해하시는 어머니께 "학교까지 걸어 다녀야 운동이 되지"라고 말씀드렸지만 사실 수업에 늦어서 뛸 때마다 '학교 근처에 살았더라면……'하고 후회를 하곤 했습니다.

작년 말, 이제 월세도 지긋지긋하고 좁은 방에 쌓이는 먼지 때문에 콧물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제가 안쓰럽다며 어머니는 전세방을 찾아 이사를 가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저는 신이 나서 어머니가 말씀하신 5000만 원에 맞는 전셋집을 알아봤습니다. 하지만 정말 5000만 원에 맞는 전셋집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아예 전세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전세대란'.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24살, 제 눈앞에 닥친 현실이었습니다. "5000만 원 정도 전세 생각하고 있는데요"라고 말하면 부동산 중개소마다 고개를 저었습니다. 정부가 지난 13일 전·월세 안정대책을 내놨다고 했지만 부동산은 정부의 정책을 못 들은 건지 정부의 정책과 상관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5000만 원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 년 내내 장사해서 얻은 수익의 전부입니다. 전 아직 5000만 원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지만, 아버지가 여름에는 땀 흘리며 겨울에는 덜덜 떨며 번 돈을 제 원룸 얻는데 고스란히 다 퍼붓는다 생각하니 미안해졌습니다. 결국 7000만 원짜리 원룸을 얻었습니다.

이제 2011년 한 해, 아버지와 어머니는 빌린 2000만 원을 갚기 위해 일을 하셔야 합니다. 결혼한 지 25년, 이제 빚 다 갚고 내 땅에 내 집 짓고 사장님 소리 듣던 아버지가 제 대학 입학과 동시에 지천명이 지난 나이에 또 빚을 지게 되셨습니다. 계약하던 날 밤, 아버지가 전화하셨습니다.

"너 이제 7000만원 먹고 떨어져. 삶아먹든 튀겨먹든 그걸로 시집가고 다 해. 이제 부모와 자식의 경제적인 끈은 이걸로 끝이다."

술을 드시고 농담으로 하신 말씀에 저는 "싫어, 아버지랑 평생 같이 살 거야"라고 애교를 부리긴 했지만 아버지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이 드넓은 서울 하늘 아래에,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 중에 내 작은 몸뚱이 하나 뉘일 곳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너무 두렵습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이렇게 부동산을 전전하면서 어른이 되어가고 싶진 않았습니다. 상경한 햇수가 늘어날수록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전세 대책에 귀를 기울이고 부동산 아저씨와의 대화가 자연스러워집니다. 돈 개념도 커졌습니다. 전셋집을 찾으러 돌아다니다 보니 5000만 원은 싼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만져보지도 못한 액수인데 말입니다.

저는 너무 일찍 메뚜기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앞으로 서울 하늘 아래에서 이 집 내놓고 저 집으로 이사 가는 메뚜기 생활을 얼마나 반복해야 할까요. 전세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요즘, 전세가 만기 되는 2년 뒤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얼마나 줄여 이사를 가야 할까요. 상경 햇수가 늘어날수록 살림살이는 불어나는데 평수는 줄어듭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자유칼럼그룹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자유칼럼그룹'이라는 사이트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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