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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전쟁, 늙지 않는 군인

[리뷰] 조 홀드먼 <영원한 전쟁>

등록|2011.01.27 11:02 수정|2011.01.27 11:02

<영원한 전쟁>겉표지 ⓒ 행복한책읽기

'영원한 사랑'이나 '영원한 희망'이 아니라 '영원한 전쟁'이다. 전쟁이 1~2년만 지속되더라도 현실은 지옥으로 변할 텐데 그런 전쟁이 영원히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영원한 전쟁>에서 전쟁은 1990년대에 시작돼 무려 1143년 동안 계속된다. 이런 전쟁이 지구상에서 벌어진다면 지구는 완전히 초토화되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바뀔 것이다.

다행히도 이 전쟁은 우주공간에서 벌어진다. <스타쉽 트루퍼스>처럼 정체불명의 외계생명체에 맞서서 지구의 군인들이 끝없는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작품에 의하면 지구인들은 1990년대에 이미 우주의 다른 행성으로 이민자들을 보내고 있었다.

<영원한 전쟁>이 발표된 것이 1970년대 초반이니까, 작가는 20년 후에 실제로 인류가 우주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작품 속에서 우주개발이 본격화된 데에는 그럴만한 계기가 있다.

우주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인류

20세기 말에 인류는 블랙홀을 이용한 초광속항법을 발견한다. 블랙홀을 향해서 어떤 물체가 충분한 속도를 가지고 돌진하면 은하계의 다른 공간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글자 그대로 엄청난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하게 된다. 어디로 이동하는지는 계산을 통해서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해서 인류는 다른 항성계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하지만, 정체불명의 외계생명체 '토오란'의 공격을 받고 전쟁에 돌입한다. 주인공인 윌리엄 만델라는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두 살에 강제로 징집당했다. 그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달표면에서, 명왕성의 위성인 카론에서 훈련을 받고 실전에 투입된다. 블랙홀을 이용한 순간이동을 통해서 다른 항성계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토오란과 싸우는 것이다.

여기에 흥미로운 점이 있다. 군인들이 타고 있는 우주선은 초광속으로 이동한다. 이렇게 빠르게 이동하는 우주선 내부에서는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간다. '쌍둥이 패러독스'로 유명한 상대성이론에 의한 시간팽창효과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몇 세기가 흐르더라도 우주선 내부의 군인들은 몇 살 밖에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호기심이 생길 만도 하지만, 실제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주에 나가서 전투를 한 차례 치르고 돌아왔더니 지구는 몇 십 년 또는 몇 백 년이 지나 있다면 어떻게 그 환경에 적응할까. 이런 식의 전투가 몇 차례 반복되면서 윌리엄 만델라도 생각한다. 일 년을 온전한 일 년으로 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좋은 점도 한가지 있다. 전투를 치르는 동안 지구 시간으로 몇 백 년이 흐르기 때문에 군인들의 월급도 그 기간 만큼 누적된다는 점이다. 신병이 들어와서 전투를 한번 치르고 나면 통장의 잔고는 엄청나게 늘어나 있다. 전사하지만 않는다면 전역 후에 그 돈을 펑펑 쓰면서 남은 인생을 살 수도 있다.

이런 장점과는 상관없이, 만델라는 훈련과 실전을 거쳐서 조금씩 살인기계로 바뀌어간다. 군인이기 때문에 '난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라는 발언으로 모든 비인간적인 행위를 합리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명령이 자기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있는 어두운 본성으로부터 나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향을 잃고 영원히 싸워야 하는 병사

소설이건 영화건, SF에서 묘사하는 미래는 우울한 디스토피아인 경우가 많다. <영원한 전쟁>도 마찬가지다. 2023년에 지구의 인구는 90억에 달한다. 그중에서 50억 명 가량이 실업상태다. 무차별한 개발로 환경은 오염되었고 식량도 부족하다.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권력자들은 일반인에 대한 통제의 강도를 점점 높여간다. 그러면 디스토피아가 탄생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의학과 과학기술이 발달하더라도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가진 사람들 또는 군인들뿐이다. 전투 도중에 팔다리가 잘려나가더라도 거의 완벽하게 다시 재생시킬 수 있다. 간, 신장, 위 등 각종 장기도 새것으로 교체가 가능하다. 장기간 동안 술을 퍼마셔서 간이 거덜나더라도 새걸로 바꾸고 또 퍼마시면 되는 것이다.

도입부의 배경이 20세기 말이었지만,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3143년이다. 윌리엄 만델라는 몇 차례의 전투와 휴식기간을 거치고 나서 3143년을 맞이한다. 그래도 만델라는 시간팽창효과 때문에 늙지 않았다. 지구 나이로 1150살이 넘었어도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 지구가 어떻게 변해있을지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전역한 군인은 문화적충격을 겪으면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그동안 전투기계로 살아오면서 육체와 정신에 받은 상처를 씻고 일반인들과 어울려야 한다. 작가 조 홀드먼은 실제로 20대의 나이에 징집되어 베트남에서 전쟁을 치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전쟁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과거나 미래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가올 2023년의 풍경이, 작품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엉망이지 않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영원한 전쟁> 조 홀드먼 지음 / 김상훈 옮김. 행복한책읽기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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