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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퀴로 만나는 제주의 풍경화

[서평] 김병훈님의 <제주 자전거 여행>을 읽고

등록|2011.01.28 19:49 수정|2011.01.28 19:49
오랜만에 길고 반가운 설날 연휴가 다가오고 있다. 한데 긴 연휴는 좋으나 날씨는 여전히 추워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움츠리게 한다. 따듯한 곳을 찾아 연휴때 해외여행을 떠난다며 TV 뉴스 화면에 나오는 팔자좋은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럴때 나같은 사람들을 따스하게 반겨주는 여행지가 있으니 바로 제주도다. 우리에게 제주도가 없었다면 그렇지 않아도 휴전선으로 막혀 섬이 되어 버린 이 땅에서 숨이 막혀 정말 우울할 뻔 했다.

설날 연휴에 피서가 아닌 피한을 위해서 그리고 겨울날의 섬 여행을 떠나보려고 인터넷과 도서관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책이 <제주도 자전거 여행>이다. 2010년 11월에 나온 신간 제주 여행 안내서로, 저자 김병훈님은 나도 구독하고 있는 자전거 잡지의 편집장이며 자전거 여행책을 주로 집필하고 있는 자전거 여행 도사다.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가슴이 탁 트이는 장관을 연출하는 사진이 반긴다. '제주도 자전거 여행'하면 섬의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며 해안도로를 따라 일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책은 해안도로 외에도 다랑쉬, 용눈이... 이름도 신비로운 오름들이 불거져 나온 독특한 들판, 황량한 들판을 가르는 호젓한 돌담길, 손흔들며 여행자를 반겨주는 파도같은 억새길 등을 알려주며 '제주도만의 풍경을 정녕 알고 싶다면 자전거로 도전해 보라'고 유혹하듯 손짓한다.  

▲ 김병훈 지음/터치아트 ⓒ 터치아트

가면 갈수록 더 커 보이는 섬

미국의 하와이나 인도네시아 발리 섬도 좋았지만, 사계절이 뚜렷해 겨울이면 눈이 쌓이는 섬은 만나기 힘들다. 같은 섬이라도 계절마다 다른 풍경과 정취를 보여주는 멋진 섬이다. 계절만큼 다채로우며 독자적인 매혹의 섬이 제주도다. - 본문 중  

정말 제주도는 계절에 따라 장소에 따라, 다른 얼굴을 내민다. 내가 주로 갔었던 여름과 가을만해도 제주의 풍광이 너무도 달라, 별개의 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선지 아직 겨울 제주도 여행을 가보지 못한 나는 제주도를 처음 가보는 것처럼 설렌다.

제주도의 경관은 보통 세군데로 나눈다고 한다. 한라산 정상 주변의 산악지대, 목장과 밭, 들판이 펼쳐진 중산간 지대 그리고 우도, 추자도 등의 새끼섬들을 포함한 해안지대다.

보통 섬의 바닷가 해안도로를 4~5일 걸려서 달리는 일주 여행을 몇 번 해본 사람들은 제주도의 지도를 보며 해안지대 외에 드넓은 내륙인 중산간 지대를 궁금해 하기 시작한다. 올레 걷기 코스들도 지나가는 길로 제주도의 또 다른 매력에 눈뜨게 되는 것이다.

제주도와 전혀 다른 느낌의 추자도, 제주도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비경 오름길, 고작 300m가 넘는 작은 키에도 압도적인 풍광을 보여주는 송악산과 영주산, 바람만이 허허롭게 헤맬 뿐인 넓은 황야의 들판길을 달리다보면 기존에 알고 있었던 제주도를 새롭게 느끼게 될 것 같다.

제주도를 여러 번 여행하게 되면서 섬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들은 아예 여기서 살아볼까하고 꿈을 꾸게 되고 실제로 그런 분들도 많다. 저자도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10년 전 쯤 서귀포 근처에 집까지 알아 보았다가 접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그렇게 눌러 앉아서 제주도가 주는 감흥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싶지 않아서란다. 아내일 때보다 연인일 때 한층 설레고 그리운 법이라나.

다양하기도 한 제주 자전거 여행 코스

'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뻥 뚫리는 해안도로', '자연 속에서 맛보는 산소 충전 들판, 숲, 산길', '제주도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비경 오름', '섬 속의 섬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청량감' 이렇게 4개 장으로 나누어 총 36개의 여행 코스를 소개한다 - 본문 중

저자가 엄선한, 제주도를 구석구석 누비는 36개 코스는 누구나 자전거 타기를 즐기면서 제주도의 숨은 비경까지 감상할 수 있는 곳들이다. 자전거가 달려갈 코스가 화살표로 그려져 있는 지도는 물론, 자전거 여행의 복병 언덕길이 표시된 고도표도 있어서 자전거 여행을 즐기는 저자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해안도로 중에서는 모슬포에서 송악산 가는 길이 가장 끌리고 좋다는 저자. 구좌읍의 생태명소인 비자림에서 오름들 사이를 돌아오는, 15킬로미터의 바람부는 들판 길과 고요한 목장들 사이에 말들이 뛰노는 초원 언덕을 달리다보면 말그대로 자전거 탄 황야의 방랑자가 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겨울이라 찬바람도 불어올 텐데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부록에 제주 올레길을 자전거로 달릴 때의 요령과 주의점들이 나오는데, 책속에 나오는 코스의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면 올레길을 만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걷기와 자전거 여행은 다른 듯 닮아있는 것 같다. 어차피 인생은 홀로 가는 것이구나 체감하게 하는게 둘의 닮은 점이라면, 페달을 밟으며 땀을 흘리며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맘속의 108가지 번뇌를 비우는 것이 자전거 여행만의 묘미가 아닌가 한다.

해안도로, 들판, 숲, 산길, 오름, 섬의 길들이 한 곳도 놓치고 싶지 않다. 책속의 사진만 봐도 장관이다. 자동차로 달리며 감상하기에는 아쉽고, 걸으며 감상하기에는 시간이 조급하다면, 때로는 달리고 때로는 멈춰서서 감상하기 좋은 자전거가 명답일 수 있겠다.

인천에서 제주항까지 운항하는 배편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는데, 13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몇 년 전, 중국을 여행할 때도 인천에서 배편을 이용한 적이 있는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번 설연휴 땐 인천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서해 바다로 지는 일몰과 다음 날 아침 남해의 수평선에서 솟는 일출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제주도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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