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반성'한 유시민, '진보대통합' 첫 걸음?

민주노동당과 '비정규직' 공동토론회 열어... 큰 틀에선 '통'했지만 온도차 아직 존재

등록|2011.01.27 21:13 수정|2011.01.27 21:16

▲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이 27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새세상연구소-참여정책연구원 공동주최로 열린 비정규직 문제 해법 토론회에서 노동정책에 관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 남소연


"참여정부는 노사관계 문제를 포기하고 있단 느낌을 집권 초기부터 받았다. 그래서 2004년 하반기 쯤 노무현 대통령에게 '내가 노동부 장관으로 가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나도 못하는데 당신이 장관된다고 할 수 있겠나'라고 답했다. 노 대통령이 부산·경남의 노동운동을 변호하고 지원했던 분인데도 그렇게 말했다. 당시 (노동문제에 대한)국가의 역할을 바라보는 집권세력의 관점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이 27일 오후 열린 '비정규직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참여정책연구원과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는 이날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공동 토론회를 주최했다.

유 원장은 "참여정부는 이미 상당히 악화된 노동시장 현실을 물려받았고 이 상황을 덧쌓았다"며 참여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을 '반성'했다.

또 "자유주의 성향이 강했던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국가가 민간의 거래·계약에 개입해선 안된다는 논리에 짓눌렸던 것 같다"면서 "자유주의 기조를 갖고 있었더라도 정의와 자유의 원칙을 침해하는 일이 있을 때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개입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국가 책임' 인식하는데 부족했다"

미리 발제한 토론문을 통해서도 구체적인 성찰이 이뤄졌다. 유 원장은 "정부의 시책을 통해 비정규직 고용의 불합리한 점을 시정하고, 노동시장의 차별을 줄이고, 정규직 확대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지만 입법 추진 과제에 휩쓸려 적극 추진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어, "특히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내용이 미흡하거나(2004년 5월의 1차 대책), 너무 늦어서(2006년 8월의 2차 대책)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선후를 따져 긴급한 정책과제부터 역량을 집중해 하나씩 성과를 냈어야 했다"고 반성했다.

비정규직 문제의 구체적 사례를 짚어가기도 했다. 그는 "최근까지 논란이 된 현대자동차·GM대우차 사내하청 문제, 이랜드 집단 계약해지 사건, KTX 여승무원 문제, 코스콤, 기륭전자 등의 문제 등 현안 사업장 문제 역시 대부분 참여정부 중·후반기에 시작됐으나 분쟁해결을 유도하지 못했다"며 "정부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도 그는 인천 부평 GM대우차 정문 아치 위에서 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
"국가 권력을 장악했으면 국가가 할 일을 똑바로 하게 해야 했는데 제대로 못한 것이 미안하고 면목없다"고 '사과'한 바 있다.

GM대우차 비정규직 노동자 농성 방문과 그의 토론회 발언을 이어보면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반성으로 평가된다. 특히 2011년 내 통합진보정당 건설을 목표로 '연석회의'를 꾸린 진보진영이 참여당의 합류 조건으로 참여정부 당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성과 '좌클릭'을 제시한 점을 감안할 때 이 같은 유 원장의 행보는 의미심장하다.

이날 토론회 역시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등을 돌렸던 민주노동당과 참여정부의 한 축이었던 국민참여당이 다시 얼굴을 마주하고 해법을 찾아보잔 의미가 강하다.

토론회를 준비한 최규엽 새세상연구소 소장은 "비정규직을 주제로 토론회를 하는 것은 우리가 어디까지 연대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줄 것"이라며 "이후 진보대통합이나 야권연대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순성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장은 축사를 통해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신뢰를 갖지 못했던 각 야당과 시민사회가 이런 정책토론회를 통해 신뢰를 쌓고 대중과도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는 축하인사가 아닌 일종의 연대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뼈있는 자성론, "노동계와 진보세력에도 일부 책임 있어"

그러나 유 원장이 이날 고개만 숙인 건 아니다. 그는 이날 토론문에서 "노동계와 소위 '진보진영'의 대응이 합리적이었는지도 함께 짚어봐야 하리라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노동계와 진보진영이 비정규직 보호법안 가운데 '사용사유 제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명문화 등 특정 조항을 넣는 것을 절대적 목표로 설정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지형을 왜곡했다는 비판이었다.

또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무모한 주장들, 예컨대 '비정규직 양산법',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부'라는 과장된 비난이 합리적인 토론과 타협을 봉쇄하지 않았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며 노동계와 진보진영이 참여정부의 '선의'를 '반대'로 답한 것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정책대응의 지연은 그러한 정책을 요구하는 세력의 대중적 참여 유발과 정책의제화의 실패, 전략적 오류의 결과이기도 하다"며 "(비정규직법 입법에 무조건적인 반대로 일관한)노동계와 진보세력에도 일부 책임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아울러 "이명박 정부 들어 참여정부가 세웠던 정당한 정책과제들마저 유실되고 노동시장 정책이 후퇴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역량의 결집을 위해 각자가 자기 몫의 실패를 아프게 새길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참여당 쪽의 일방적 반성이 아니라 진보진영의 반성 역시 담보돼야 한다는 얘기였다.

최 소장이 "80%가 넘는 지지율을 얻은 브라질의 룰라 전 대통령은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일부 수용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그렇지 못했다"고 비판했을 때도 유 원장은 "의지가 높다고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의 의지가 발휘되더라도 실제 정책이 수행되기 쉽지 않다. 민주당 등 야5당이 국회 다수 의석을 점유하더라도 대통령 말 잘 들어줄까? 그렇지 않다. 내가 보건복지부 장관 땐 시행령을 만들기도 힘들어서 장관 재량으로 가능한 시행규칙으로 일을 수행했다. 비정규직 문제도 작은 부분부터, 가지고 있는 권한을 갖고 눈에 보이게 해결해야 한다."

야4당 월례포럼 2월부터 본격화... 야권연대 기초 닦을 수 있나

큰 틀에서 양 쪽이 합의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미묘한 차이가 남아있는 셈이다. 이런 점은 비단 비정규직 문제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유 원장은 이날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한 인터뷰에서 "모든 문제를 가능한 한 국가의 책무로 돌리려는 태도도 바람직한 게 아니다"며 "각자와 국가가 자기 몫의 책임을 적극적으로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야권의 '보편적 복지'와 정부·여당의 '선별적 복지' 사이의 '균형론'을 들고 나온 셈.

그는 또 민주당의 '3+1(무상급식·무상보육·무상의료+반값 등록금)' 정책에 대해서도 "현재 세입만으로 재원 마련은 힘들 것"이라며 "소득이 높을소록 세금을 많이 내는 직접세의 비율을 높이되 소득에 과세할 것인지, 자산에 과세할 것인지는 토론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유 원장은 이러한 정책적 이견들을 토론을 통해 잘 풀어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함께 표했다.

그는 "지난 참여정부 시절을 돌아보면 비정규직 문제가 당시 참여정부와 민노당 사이에 굉장히 감정적인 골을 깊게 만들었던 갈등 사안"이라며 "이런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소할 때 야권연대도 힘 있게 되고 또 서로 간에 너무 의기투합이 잘 되서 당을 합치자는 얘기까지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새세상연구소와 참여정책연구원은 이날 토론회를 시작으로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과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등과도 함께 매월 정례포럼을 열 예정이다. 야4당 정책연구원은 오는 2월 월례포럼에서 당초 첫 주제로 얘기됐던 '한미FTA'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한미FTA에 대한 각 당의 이견 차가 적지 않은 만큼, '정책적 합의'에 이르는 데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