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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돌산에선 이분이 가장 위대합니다

[내 엄마를 말하다 ②] 얼굴 한 번 보고 시집와서 60년 시금치 농사로 자식 키워

등록|2011.02.04 14:12 수정|2011.02.04 15:29
[아, 울엄마 ①] 어머니는 위대하다... 그중 내 어머니가 가장 위대하다

어머니의 결혼20살에 결혼하여 가부장적 농촌에서 어머니는 농사일은 똑같이 하고 집안일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힘든 세월을 보내오셨다. ⓒ 김대오


내 고향은 갓김치로 유명한 섬 돌산이다. 그리고 내 어머니도 이곳 돌산에서 나고 자랐다.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외할아버지가 나무하고 소만 키우면 시집갈 때 소 한 마리 준다는 말만 믿고, 어려운 가정형편에 학교도 못 다니면서 집에서 농사일 거들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1년 12월 25일, 21살 꽃다운 나이에 얼굴 딱 한 번 본 아버지에게 산 너머로 시집을 오셨다. 군복을 입은 아버지를 보고 결혼했는데, 아버지는 결혼 직후 입대를 하셨고 한다. 아버지가 군대에 간 사이 어머니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또 사촌 조카 셋을 키우며 집안을 꾸려가셨다.

해녀가 되어 우뭇가사리와 김, 파래, 청각 등을 채취하고, 또 나무를 해서 읍내에 내다 팔기도 하며 생계를 꾸려가셨단다. 또 베를 짜고 굴을 까고, 갓이나 시금치, 꽃, 토마토, 딸기 등 농사를 짓기도 했단다. 어머니는 돈 되는 일은 안 해본 것이 없다고 한다.

내 기억에도,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여수에 나갈 때면, 비닐하우스에서 수확한 딸기상자를 머리에 이고 양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도 청과조합까지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또렷이 떠오른다. 참으로 강인한 삶을 사셨다.

흔히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자신의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법인가 보다. 가난하고 거칠고 힘든 세월, 참 생활력 강하게 한시도 쉬지 않고 고된 농사일과 마주하며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오신 어머니는 나에게 역시 가장 위대한 스승이다.

[아, 울엄마 ②] 시금치 어머니, 이제 그만하셔도 될 텐데...

시금치 다 캐면 설이 빚어진다설 차례상에 쓸 제수 생선은 말라가고 어머니는 나물에 쓸 시금치를 다듬는다. ⓒ 김대오


부모님의 결혼 40주년 기념일이고 해서 크리스마스 때 고향에 갔더니, 그 추운 한겨울에도 시금치 농사가 한창이었다. 어머니는 꽁꽁 얼어붙은 밭이 해가 올라 녹기를 기다렸다가 밭에 나섰다. 하지만 매서운 겨울바람은 시금치 밭을 오가며 얼굴을 때렸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시금치 밭에 낮게 엎드려 시금치를 캐고 그것을 밤이 깊도록 다듬고 저울에 달아서 4kg씩 비닐봉지에 담고 담았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시금치를 다듬었다. 추위 속에도 손길을 멈추지 않는 어머니를 보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일을 한다'고 투덜댔더니, 당신은 60년 넘게 이 일을 해 오고 계신다며 웃는다.

죄송스런 마음에 "그럼 이제 시금치 농사 그만 하세요!" 했더니, "밭도 있고, 동네 사람들 다 하는데 밭을 그냥 놀리면 사람들이 욕한다"며 힘닿는 데까지는 하신단다. 그리고 "시금치 농사라도 지어야 설 지낼 돈, 손자들 세뱃돈이라도 직접 마련할 거 아니냐!" 하신다.

지금도 그 찬바람 지나다닐 추운 밭에 낮게 엎드려 계실 부모님을 생각하면 "참, 사는 게 뭔지…" 싶어진다. 앞에 놓인 일마다 정성을 다해, 어려움을 이겨내고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는 당신들의 몸짓인가보다 생각하며 하루하루 힘을 낸다.

[아, 울엄마 ③] 땔감나무 한 다발에도 부자 되시는 어머니



계단 아래 쌓아놓은 땔감 나무땔감나무에도 한 다발에도 마음이 부자가 되시는 어머니 ⓒ 김대오


밭에 있던 시금치가 다 사라지고 어머니가 읍내 수산물 어판장에 자주 다녀오실 때가 되면 설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설을 앞두고 시금치밭에 굴 껍데기를 넣고 경운기로 밭도 좀 갈아드리기 위해 또 고향에 갔더니, 어판장에서 차례상에 쓸 제수 생선들을 많이도 사다가 말려 놓으셨다. 자식들에게 싸줄 생각으로 넉넉히 장만해 놓으신 것이다.

특히 설 음식을 장만하려면 나무가 많이 필요하다. 장작이 없다기에 어머니와 함께 경운기를 타고 산으로 가는데, 문득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산에 나무하러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추운 겨울 어느 날이었다. 나와 어머니는 나무 하러 산에 올랐다. 그런데 그날 마침 동네에 산감(산림감독원)이 왔다는 말에 들려왔다. 나무하러 올라간 지 두 시간여를 떨면서 산감이 돌아가기만을 기다리며 숨어 있었다. 지금은 시골도 기름보일러로 난방을 하고 산에 벌목해 놓은 나무가 넘쳐나지만, 그때는 정말 땔감 나무가 귀했던 시절이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지금은 삼림욕 공원을 조성하며 벌목해 놓은 나무가 산에 많다. 이를 실어다가 장작을 패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가득 채워놓았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다며 좋아하신다. 어머니는 추위에 수도관이 얼어서 수돗물도, 따뜻한 물도 안 나와 샘에서 물을 길어와 아궁이에 물을 데워 쓰는데, 장작이 그나마 유용하게 쓰인다고 한다.

[아, 울엄마 ④] 우리의 설을 빚고 계시는 어머니...

▲ 방앗간 떡기계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가래가 나오고 있다.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위해 떡가래도 뽑고 갖가지 음식을 마련하시면서 설을 빚고 계신다. (위 사진은 #5505 엄지뉴스로 전송된 사진입니다.) ⓒ 엄지뉴스


어머니는 읍내에 가서 떡가래를 뽑아 떡을 썰어놓고 벌써부터 설을 빚고 계신다.

어느 해 설날은 당뇨로 눈이 안 좋으신 아버지가 모시는 경운기를 타고 떡을 하기 위해 읍내에 가다가 사고가 나서 어머니가 허리와 다리를 다치시기도 했다. 그때 그냥 좀 사서 드시라고 해도 어머니는 "예전에는 절구통에 다 직접 했는데 방앗간이라도 가서 해야지!" 하신다. 삶의 작은 일에도 늘 모든 정성을 다 하는 성격이니 다친 허리와 다리가 얼마나 더 버텨줄지 걱정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생선을 다듬고 나물을 무치고, 양갱, 수정과, 조청, 부각을 만드시며 우리의 설날을 어머니가 빚어 주신다.

이번 설은, 지난해 가을 어머니 칠순을 맞아 가족여행을 다녀온 후라 서울에 사는 누나들은 아마도 내려오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나라도 아이들과 함께 좀 일찍 내려가 할머니표 설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와야겠다.

그동안 인천에서 살면서 10년 넘게 10시간 넘는 귀성길을 달려 고향을 찾았는데, 이제는 광주로 이사를 해서 그 힘든 귀성길은 졸업을 했다. 그랬건만 어머니는 여전히 눈이 온다는데 조심히 내려오라고 걱정하신다.

자식의 귀가를 기다리는 어버이의 마음이 '나무(木) 위에 올라서서(立) 본다(見)'는 어버이 '친(親)'자가 만들었다는데, 어쩌면 그런 걱정과 살뜰한 보살핌이 있어서 내가 여기까지 건강하게 자라왔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가 지금도 변함없이 빚어내는 그 정성과 사랑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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