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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 아름다움'을 보려면 론다로 가라

[지중해와 대서양을 끼고 있는 세 나라 기행 ⑩] 절벽 위에 우뚝 솟은 마을 론다

등록|2011.01.31 14:46 수정|2011.02.01 12:01

▲ 안개 낀 세비야 ⓒ 이상기



세비야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하늘에 구름이 좀 끼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늘 날씨가 아침에 구름이 조금 끼지만 오후로 가면서 점점 좋아질 거라고 한다. 오늘의 일정 역시 빡빡하다. 론다 산악지역의 중심도시 론다를 보고, 에스파냐 최남단 타리파로 가서 페리를 타고 지브랄타 해안을 건너 모로코의 탕헤르까지 들어갈 예정이다. 론다는 이슬람의 문화전통이 많이 남아있을 뿐 아니라, 1785년 투우장이 처음 문을 연 곳이기도 하다.

세비야에서 론다로 가기 위해 우리는 세비야의 과달키비르강을 따라간다. 아침이라 그런지 강변으로 안개가 자욱하다. 과달키비르 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서 보니 강변으로 공장지대가 펼쳐져 있다. 세비야는 안달루시아 최대의 공업도시일 뿐만 아니라 에스파냐 전체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다. 엊그제 본 곳이 세비야의 구도심이라면 지금 지나가는 곳은 세비야의 공단지역이다.

▲ 절벽 위의 마을 론다 ⓒ 이상기



세비야 시내를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우트레라, 푸에르토 세라노를 거쳐 알고도날레스로 이어진다. 이 길은 세비야에서 코스타 델 솔(지중해변)의 마르베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해발 7m인 세비야에서 해발 723m인 론다까지 계속 고도를 높여간다. 론다로 가는 길에 1654m의 피나르산이 있고, 론다에서 마르베야로 넘어가는 길에 최고봉인 토레칠라산(1919m)이 있다.

론다 산악지역으로 들어가면서 보니 구릉 사이로 농장이 만들어져 있고 곳곳에 올리브나무도 보인다. 농가가 띄엄띄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인구밀도가 높지는 않은 것 같다. 이곳 론다 산악지역은 세비야, 코르도바, 말라가 사람들의 여름휴양지로 유명하다. 해발이 높아 여름에 날씨가 좋고 또 시원하기 때문이다. 특히 론다는 이슬람 문화가 아직도 남아있는 에스파냐 전통마을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우리도 그러한 전통과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론다로 가는 것이다. 

절벽 위에 우뚝 솟은 마을 '론다'

▲ 라 메르세드 교회 ⓒ 이상기



세비야에서 론다까지는 132㎞로 1시간 30분쯤 걸린다. 론다 시내로 접어드니 조금은 오르막인 길이 나타난다. 론다 시내가 언덕 위에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차를 론다 신시가지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세우고 걸어서 관광에 나선다. 해발이 높아서인지 공기가 차고 맑다. 우리는 처음 갈색 기둥에 흰 벽을 가진 예쁜 라 메르세드(La Merced) 교회를 만난다. 단정한 외관에 경건한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다.

이 교회를 지나 과달레빈 강쪽으로 가니 타호 공원(Alameda del Tajo)이 나타난다. 이 공원에는 다마 고예스카(Dama Goyesca)와 페드로 로메로(Pedro Romero: 1754-1839))의 동상이 있다. 다마 고예스카는 고야풍의 옷을 입은 여자라는 뜻으로, 투우장에 가는 화려한 여자복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페드로 로메로는 에스파냐 투우사의 전설적인 인물로, 투우의 기본을 완성한 마타도르인 프란시스코 로메로(1700-1763)의 손자다.

▲ 고야풍 옷을 입은 다마 고예스카 ⓒ 이상기



그는 1785년 이곳 론다 투우장 개장식에 참여했고 1831년까지 5000마리가 넘는 황소를 죽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또 투우경기에 붉은색 천인 물레타를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투우경기가 없을 때나 은퇴한 후에는 세비야의 투우학교에서 후진을 양성했다고 한다. 이곳 론다에 있는 그의 동상은 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1954년 세워졌다.

공원의 끝으로 가니 바로 아래로 100m 낭떠러지가 나타난다. 과달레빈강에 만들어진 단애로 사람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쇠울타리를 쳐 놓았다. 그래서 옛날 이곳 공원을 뛰어다니는 사람은 벌금을 물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보는 풍경은 정말 장관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낭만적인 여행자들의 뷰포인트(Mirador: Viewpoint)라고 부른다. 과달레빈강은 이곳 론다에서 협곡을 이루며 돌아 흐른다. 그리고 그 깎아지른 조르헤 협곡(El Tajo Gorge) 위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도시 이름도 영어의 라운드(Round)에 해당하는 론다이다.

▲ 론다 투우장 ⓒ 이상기



우리는 이곳 절벽 옆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투우장으로 간다. 투우장은 온통 흰색 벽을 하고 있고, 그 앞에 질주하는 황소 동상이 만들어져 있다. 투우장은 경기장과 투우사 연습장, 박물관과 갤러리로 이루어져 있다. 겨울에는 투우경기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투우장에 들어가지 않고 에스파냐 광장 밖 절벽 쪽으로 나 있는 헤밍웨이 길로 접어든다.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넘치는 절벽 풍경... '환상' 그 자체

▲ 헤밍웨이길 ⓒ 이상기

이 길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던 길로 깎아지른 절벽 위로 이어지기 때문에 전율과 쾌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헤밍웨이는 이 절벽의 형상과 그곳에서 느끼는 절박함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제10장 '벼랑에서 던져지는 파시스트' 에피소드에서 실감나게 표현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파시스트들에게 밀리는 공화주의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미국인 로버트 조단(Robert Jordan)이다. 대학에서 에스파냐어를 가르치던 조단은 불의를 참지 못하고 세고비아로 와 다리를 폭파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소설에서 보면 공화주의 게릴라 집단의 리더인 필라(Pilar)가 그녀의 고향에서 파시스트들이 사형되는 장면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것은 1936년 론다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 당시 시장이었던 돈 가르시아 등 500여 명의 파시스트 동조자들이 성난 군중들에 의해 조르헤 협곡 아래로 던져져 죽음을 당했다. 헤밍웨이는 1954년 그 이야기가 완전히 자신의 창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론다에 가본 사람이면 누구나 1936년 론다 사건이 이야기의 토대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론다 절벽의 아름다움 ⓒ 이상기


헤밍웨이 길에서는 우리가 지나온 신시가지 쪽의 절벽, 누에보 다리 건너 구시가지쪽 절벽과 누에보 다리의 웅장함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다. 신시가지쪽 절벽으로는 선인장과 들꽃들이 아름답고, 구시가지쪽 절벽 위로는 하얀 주택들이 아름답다. 또 절벽 아래 협곡으로는 물이 포말을 이루며 흘러가고 있다. 한마디로 환상이다. 이곳에도 사람들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쇠울타리를 만들어 놨다.

누에보 다리는 협곡 사이에 남북으로 놓여 있는데, 높이가 98m에 이르며 웅장하기 이를 데 없다. 다리 아래에는 아치형의 홍예가 세 개 있다. 가운데 홍예는 물이 지나갈 수 있도록 땅으로부터 둥글고 길게 만들었다. 양쪽 두 개의 홍예는 다리 위에서 내려갈 수 있도록 만들어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겸비하고 있다. 이 다리는 건축가 마르틴 데 알데우엘라에 의해 1787년에 완성되었다.

1787년에 완성된 누에보 다리의 이쪽과 저쪽

▲ 누에보 다리에서 바라 본 조르헤 협곡 ⓒ 이상기



론다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는 중세 때 만들어진 아라베(Arab) 다리다. 이 다리는 도심과 아라발레스 지역을 연결했다. 그리고 17세기 들어 아라베 다리를 보완하기 위해 비에호(Old) 다리가 만들어졌다. 이 다리로 인해 파드레 예수스 지역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늦게 세워진 누에보(New) 다리는 1735년에 만들어졌으나 6년 후 붕괴되었다. 그래서 1758년 다시 만들기 시작했고, 30년째인 1787년 9월 15일에 완성되기에 이른다.

이 다리로 인해 신시가지인 메르카디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현재 에스파냐 광장, 투우장, 카지노, 타호 공원 등이 있다. 누에보 다리는 현재 신시가지의 에스파냐 광장과 구시가지의 아르미냥 길을 연결한다. 누에보 다리에 접어들면 타호협곡의 동북쪽을 잘 볼 수 있다. 그곳이 신시가지 중에는 오래된 주택가인지라 절벽 위로 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협곡을 따라가면 단순한 모양의 비에호 다리를 만나게 된다.

다리 아래로 잠깐 내려가 보니 레스토랑이 있다. 절벽의 일부에 이어진 작은 공간을 이용, 마당을 만들고 그곳에 식탁과 의자를 마련해 놓았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면 타호 협곡을 앉아서 감상하는 꼴이 된다. 정말 부러운 광경이다. 그러나 점심을 시 외곽에 이미 예약을 해놓았기 때문에 여기서 먹을 수는 없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나는 누에보 다리를 건너 구시가지로 간다.

▲ 누에보 다리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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