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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 준비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한 끼'

홍대 청소엄마와 함께 한 따뜻한 저녁식사

등록|2011.01.31 16:57 수정|2011.01.31 17:11

▲ 의사 가운을 입은 분은 대한 한의학청년회 소속 한의학과 대학생입니다. 모든 어르신들의 몸을 챙기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 오승주



지난 29일, 주말이라 늦잠을 자다 인천에서 부랴부랴 홍대행 버스를 탔습니다. 홍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이미 2시부터 온 여성분들이 주방에 옹기종기 모여서 음식장만을 하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밥 한 끼 먹자고 한 일간지에 광고까지 했는데도 홍익대학교 총장님은 반응이 없으시니 청소 아주머니들과 따뜻한 밥 한 끼 맛있게 먹어보자며 네티즌들이 모인 것입니다.

오늘의 메뉴는 두루치기와 미역국. 그리고 계란 장조림이 곁들여졌습니다. 장정이라고는 저 혼자뿐이어서 힘 쓰는 일과 잡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본관 사무처 공간을 쓰다 보니 취사공간이 없어 화장실에 줄기차게 왔다갔다 해야 했습니다. 양파도 씻고, 설거지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청소 아주머니들과 경비 아저씨들은 제가 일을 다 한 줄 압니다.

마침 그곳에서는 대한한의학청년회(전국 한의학과 학생회 모임인 듯합니다)의 학생들이 어르신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분들의 진맥을 짚고 건강을 체크하는 데 걸린 시간은 5시간 정도였습니다. 밥 하는 데 걸린 시간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그곳에서 '날라리 외부세력' 분들도 만나 전화번호도 땄습니다. 그분들은 고맙게도 '우당탕탕 바자회'가 끝난 뒤에도 줄기차게 드나들며 도움을 주고 계셨습니다.

취사환경 너무 멀고 급수도 어려워... 더운 음식은 꿈도 못꾸는 상황

▲ 홍대 주변에 사는 동료의 집에서 후라이판 2개를 급 조달해서 여러 번에 걸쳐서 두루치기를 만들었습니다. ⓒ 오승주


취사도구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여행용 버너에 여러 번 음식을 해야 했습니다. 프라이팬이 없어 홍대 주변에 사는 네티즌의 집에서 급히 조달하기도 했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동안 이야기꽃이 펼쳐졌습니다.

청소 아주머니들은 파업 전과 같이 따뜻한 음식은 잘 드시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음식을 준비하고 다 먹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이 채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국이나 찌개 같은 것은 염두도 못 내고 가져온 밑반찬을 나눠서 옹기종기 모여서 먹는 수준이었습니다. 한겨울에 바깥 활동을 자주 하시는데, 밥이라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면 건강이 상할까 그것이 더욱 걱정입니다.

그런데 두루치기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묵은지 때문에 두루치기가 짜게 된 것입니다. 급히 양파를 씻은 다음 두루치기에 넣었습니다. 다행히 양파의 단 맛이 묵은지를 달래주었습니다.

두루치기 다음으로 어려웠던 점은 다름 아닌 삶은 계란 껍질 벗기기였습니다. 벗겨보신 분들은 아실 테지만, 까칠까칠하게 안 벗겨져서 많이들 힘들어 했습니다. 차마 장조림에 보내지 못할 계란 여럿이 알게 모르게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미역을 씻고 중간중간 설거지를 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화장실 세면대라 물을 제대로 받을 수 없어서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한 끼 준비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벌써 한달 가까이 이런 생활을 하고 계신 어르신들을 생각하니 답답함이 밀려왔습니다.

옹기종기 모여서 '더운밥 먹기', 이렇게 힘들어서야...

▲ 잔반이 거의 없이 말 그대로 깨끗이 비웠습니다. 조개미역국이 가장 많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 오승주


▲ 두루치기가 짜서 남은 양파를 모두 동원해서 짠맛을 달랬습니다. 화장실이 먼 데다가 물 받기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운 음식 해먹기는 하늘의 별따기였습니다. ⓒ 오승주



밥을 다 차리니 오후 7시가 되었습니다. 애초에는 20~30분 정도가 드실 것으로 생각했는데, 저녁을 잡수시기 위해 일부러 돌아가지 않고 기다리신 분이 많아 만든 음식은 남김없이 사라졌습니다.

어르신들과 노조 관계자분들, 꼬마숙녀까지 옹기종기 모여서 따뜻한 고기반찬에 미역국을 먹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한 끼 제대로 드시고 나서 한결 따뜻해진 표정을 보니 벅찬 행복감이 밀려왔습니다. 홍대 문제는 바로 이 '밥 한 끼'에서 나왔습니다. 제대로 밥 한 끼 먹을 수 없게 된 처우를 살펴달라고 했을 뿐인데, 대량 해고라는 폭력이 되돌아왔습니다. 밥 한 끼 먹는 게 이렇게 힘들어서야 되겠습니까?

덧 : 주방(?)을 대충 정리하고 돌아가려는 데 현관에서 경비아저씨가 '누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줬는지 알고 싶다'고 여쭤보셨습니다. 여성시민광장이라는 모임의 회원들이 준비한 거라고 말씀해 드렸습니다.

▲ 이렇게 함께 모여서 먹으면 그만인 것인데, 이렇게 먹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이게 정말 어려워야만 하는 일인가요? ⓒ 오승주

덧붙이는 글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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