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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복권 1등 당첨, 실상은 이렇다

[아는만큼 보이는 법 62] 복권 당첨금 민형사 소송 판례 

등록|2011.02.01 12:01 수정|2011.02.01 20:58

▲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한 장면. 극중 대통령인 이순재는 로또에 당첨되지만, "당첨이 되면 기부를 하겠다"는 말을 한 터라, 쉽사리 복권당첨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다. ⓒ 소란플레이먼트


설이 다가온다. 살기가 팍팍하니 새해 소망으로 한번쯤 '인생역전'을 꿈꿔보지는 않는가. 벼락 맞기보다 어렵다는 로또 1등 당첨. 수 억, 수십 억 원의 당첨금을 손에 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운을 타고 난 것일까.

그런데 막상 당첨된 사람들 상당수는 돈 때문에 크고 작은 분쟁에 시달려야 했다. 당첨 전보다 오히려 불행해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도 당첨 후에야 다가오는 행복한 고민 아니냐고?

복권을 둘러싼 암투와 진흙탕 싸움을 보면 마음이 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복권 당첨금을 놓고 한치의 양보 없이 치열하게 싸우는 법정 속으로 들어가 본다. 먼저 즉석복권 1등 당첨 사건이다.

[사례①] 이한량(가명)씨는 꽃다방의 단골이다. 어느날 그는 다방 주인인 김마담(가명)씨와 여종업원 A, B씨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심심하니 즉석복권을 긁어보자"고 제안했다. A씨는 이씨의 돈으로 5백 원짜리 복권 4장을 사왔다. 4명이 한 장씩 긁은 결과 A, B씨가 각각 1천 원에 당첨되었다. 그리하여 당첨금을 다시 복권 4장으로 교환한 후 한 장씩 골라잡았다.

2명에게 '대박'이 터졌다. 마담과 A씨가 2천만 원에 각각 당첨된 것이다. 기뻐서 어쩔줄 모르던 A씨는 손님이 오는 바람에 일단 탁자에 복권을 내려놓았다. 그사이 이씨는 당첨 복권 2장을 챙겨서 나와버렸다.

A씨가 돌려달라고 따지자 그는 "나중에 돈을 찾아서 주겠다"며 계속 미뤘다. 며칠 후 이씨는 은행에서 당첨금 전액을 지급받은 후 나머지 세사람에게 1백만 원씩만을 내놓았다. A씨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돈을 돌려준 후 이씨를 고소했다.

복권 당첨금은 누가 얼마나 가져가야 하나.
① 복권 구입 자금을 댄 이씨가 4천만 원.
② 당첨 복권을 긁은 마담과 A씨가 2천만 원씩.
③ 복권을 긁은 4명이 똑같이 1천만 원씩.

즉석복권 1등 주인은, 긁은 사람? 돈 낸 사람?

먼저 이씨의 항변이다. "애초에 내 돈으로 복권을 구입한만큼 복권도, 당첨금도 전부 내가 주인이지. 다른 사람들은 그냥 나 대신 긁어봤을 뿐이야. 백만원도 고맙게 생각해야지."

반면 A씨는 코웃음을 쳤다. "천만의 말씀. 복권은 한 장씩 나눠가진 거잖아. 그중에 내가 긁은 복권이 당첨된 거라고. 2천만 원은 당연히 내 돈이지."

법원도 심급마다 해석이 엇갈렸다. 1심은 이씨에게 유죄,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사연이 너무 기니 대법원의 결론만 보면 이렇다.

'4명은 평소 친한 사이이고 복권은 1장에 5백 원에 불과하며 4장이 한 장씩 골라서 긁었다. 따라서 이씨의 복권을 세 사람이 대신 긁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4명 사이에는 누가 당첨되더라도 당첨금을 공평하게 나누거나 공동 사용하기로 묵시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당첨금 전액은 4명의 공유이다.'

정답은 ③번. 똑같이 나눠가져야 한다. 법원은 "이씨는 A씨의 몫을 반환할 의무가 있는데도 거부하고 있다"며 횡령죄를 인정했다. 복권을 함께 긁어서 당첨되었다면 싸우지 말고 함께 나눠 가져야 한다. 그게 법원의 판단이자 인간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길이기도 하다.

[사례②] 조운수(가명·남)씨와 안재수(가명·여)씨는 사실혼 관계였다. 두 사람은 딸까지 낳았으나 경제적인 문제로 싸움이 잦아 결국 별거에 들어갔다. 조씨는 딸을 보기 위해 가끔 안씨를 찾아가거나 전화 연락을 하고 지낼 정도였다.

조씨에게도 인생 역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로또 1등 당첨! 당첨금은 27억 원(실수령액 약 18억 원). 조씨는 안씨에게 이 사실을 숨기다가 나흘만에 당첨사실을 알렸다. 두 사람은 모처럼 웃으며 당첨금을 찾으러 갔는데 조씨가 신분증을 가져가지 않아서 돈은 모두 안씨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그후 당첨금은 안씨가 보관하면서 조씨가 원하는 금액을 요청하면 안씨가 그 돈을 원하는 계좌에 보내는 방식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견물생심이었을까. 한달이 지날 무렵부터 안씨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조씨가 가족들에게 복권 당첨 사실을 알렸다는 이유를 들어 송금 협조를 거부했던 것이다. 화가 난 조씨가 당첨금을 전부 돌려달라고 하자 안씨는 급기야 "내 돈"이라고 맞섰다.  

조씨는 당첨금 반환청구 소송을 냄과 동시에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우선 민사부터 보자. 1심인 서울중앙지법은 두 사람이 동거하는 동안 안씨의 수입으로 생활했고, 별거 중에도 안씨가 경제적인 도움을 준 사실에 주목했다. 법원은 조씨가 당첨금 수령 당시 안씨를 믿고 통장에 예치한 점까지 감안하면 "당첨금은 부부 공동으로 사용할 의사로 맡겼다"고 판단했다.

이러 사정을 고려하여 18억 중 8억 원은 안씨의 몫이라고 결론내렸다. 그동안 경제적 대가와 자녀 양육비 명목으로 8억 정도는 조씨가 증여하려는 의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동거녀 통장에 맡겨 둔 로또 당첨금 안 돌려주면? 



조씨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1심 판결에서 당첨금을 '10억원 대 8억원'으로 분배한 근거부터가 명확하지 않았다. 게다가 '증여'라는 개념을 끌어들여 그동안 고생한 안씨를 보상하려는 듯한, 다소 온정적인 태도가 엿보였다.  

이 때문인지 항소심은 좀 더 선명하게 접근했다. 먼저 당첨금의 소유권에 대한 판단이다.

'조씨가 복권을 구입해서 당첨됐고 다만 신분증이 없어서 안씨 명의로 당첨금을 수령한 것뿐이다. 당첨자는 조씨다.'

1심의 증여 판단에 대해서는 "그동안 안씨가 경제적 도움을 준 것도 맞고 조씨가 재결합을 기대하면서 당첨금을 맡긴 것도 사실이나 이것만으로는 증여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부정했다. 당첨금을 맡긴 것은 증여가 아닌 임치(任置) 계약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민법 693조는 임치를 이렇게 정의한다.

"임치는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 대하여 금전이나 유가증권 기타 물건의 보관을 위탁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효력이 생긴다."  

2009년 항소심인 서울고법은 "안씨는 18억 원 전액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판결했고 사건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이런 판단은 형사 재판에도 영향을 미쳤다. 안씨는 당첨금 중 6억여 원만 받으라는 제안을 조씨가 받아들이지 않자 한푼도 주지 않고 자신이 보관하였다. 형사 법정은 이것이 "보관금의 반환을 거부한 횡령"이라고 밝혔다.

법원은 "자신의 계좌에 당첨금이 있다는 이유로 자신이 당첨자라고 주장하면서 거액의 당첨금 반환을 거부하는 안씨의 죄질이 불량하다"며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대법원까지 갔지만 달라질 건 없었다.

조씨와 안씨는 비록 혼인신고는 올리지 않았으나 결혼식을 올리고 자식까지 낳은 사이다. 돈이 없어서 사이가 벌어졌던 두 사람은 결국엔 돈이 너무 많아서 완전히 갈라서게 됐다. 돈이 있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라는 말이 맞긴 맞나 보다.

"복권 사다주면 당첨금 20% 주기로 했다고?"

[사례③] 토요일 오후 직장에서 일을 하던 김선배(가명)씨는 출장을 나가는 박후배(가명)씨에게 돌아오는 길에 로또 복권 2장을 사달라고 부탁하였다. 몇시간 후 박씨는 복권을 구매하여 건네주었다. 그날 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복권 중 1장이 1등에 당첨된 것이다. 당첨금은 무려 20억 원(세금 공제 후 14억 원).

당첨 장면을 지켜보던 박씨가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제가 복권을 건네 줄 때 선배가 당첨금 20%와 고급 승용차를 사준다고 했잖아요." 박씨의 이런 주장에 김씨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저었다.

법정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박씨는 내세울 만한 뚜렷한 서류 증거가 없었다. 증인밖에 없었는데 당시 복권을 건네주는 장면을 본 직원들은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하였다. 박씨에게 유리한 증언도 나왔으나 전해들은 이야기이거나 신빙성이 떨어지는 말뿐이었다. 법원은 "당첨금을 나눠준다는 약정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패소 판결했다.

박씨는 항소했다. 항소심 법원은 판결 대신 두 사람이 직장동료 사이인 점을 감안하여 타협안을 제시했다. 법원이 1500만 원 정도를 주고 받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고 양쪽이 모두 수긍하여 재판은 '화해권고' 수용으로 끝이 났다.

어쩌면 두 사람 사이에 당첨금 20%를 사주겠다는 구두 약속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증거가 없는 이상 법원으로서도 섣불리 박씨의 손을 들어줄 수는 없다. 자신에게 유리한 약속은 반드시 서류로 남겨라. 아니면 유리한 진술을 해줄 사람이라도 있어야 한다.

▲ 한국은행은 2007년 1월 22일 오전 본관 지하 현금수송장에서 새 1만원권과 1천원권 발행 개시식을 갖고 새 지폐를 각 금융기관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 권우성


[사례④] 박하라(가명)씨는 버젓한 직장을  두고도 카드 도박에 빠져 살았다. 박씨가 이용하는 도박장에선 판돈으로 매번 로또를 샀다. '1등에 당첨되면 당첨자가 절반을 갖고 나머지 절반은 똑같이 분배한다'는 게 그곳 도박꾼들의 규칙이었다. 그날 도박을 하던 7명도 복권을 2장씩 나눠가졌다.

도박을 마치고 집에 돌아간 박씨. 그의 손에 들려있던 복권이 '덜컥' 1층에 당첨되었다. 당첨금은 52억 원(실수령액 약 35억). 기쁨도 잠시, 문득 걱정이 생겼다. 도박과 생활비 등으로 진 은행빚(약 6억 원)이 떠올랐다. 또한 도박꾼들에게 당첨금의 절반(17억 5천만 원)을 나눠줘야 할 걸 생각하니 아까웠다. 고민 끝에 당첨사실을 숨기기로 했다. 당첨금은 친형 통장으로 받았다.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도박판에 발을 끊은 그의 소식을 궁금히 여기던 도박꾼들은 박씨가 회사도 그만 두고 외제차를 끌고 다닌다는 소문을 접하게 되었다. 결국 로또 당첨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고 은행도 그가 재산을 빼돌렸다며 수사를 의뢰하였다.

도박자금으로 산 복권이 1등에 당첨될 줄 누가 알았으랴. 도박꾼들은 박씨를 상대로 약정금 소송을 냈다. 법원은 "당첨금 분배 약정에 따라 당첨금의 절반을 나누어줄 의무가 있다"며 승소판결을 했다. 문서로 남기지 않았더라도 분명한 약속이 있었다면 지켜야 한다. 길고 길었던 민사소송은 의외로 단순한 결론으로 막을 내린다. 

도박꾼에게 찾아 온 로또 1등, 결과는?

그 다음으로 형사재판이 박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찰이 기소한 죄목은 횡령과 강제집행면탈.

횡령죄는 인정되지 않았다. 유사한 앞의 사례들과 다른 결과다. 왜일까. 법원은 ▲ 도박꾼들이 복권을 교부받아 각자 가지고 갔으며 ▲ 당첨여부도 각자 확인한 점 ▲ 당첨금은 소지자에게 지급되는 점을 들었다.

"로또 복권은 교부받은 자(박씨)의 단독소유에 속하게 되고 당첨금 역시 해당복권을 가진 사람의 단독소유이다. 다만 복권 소지자는 약정에 따라 복권이 당첨될 경우 당첨금을 분배할 의무를 부담하게 될 뿐이다."

횡령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저지르는 범죄인데 복권은 박씨의 소유였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당첨금 분배를 거부했다고 해서 민사상 손해배상 의무를 질지언정 횡령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재산을 빼돌린 행위에 대해선 강제집행면탈죄로 처벌을 받아 징역형을 받아야 했다.

게다가 수십 억 원에 달하는 돈을 주식투자, 생활비 등으로 거의 다 써버렸고 남은 돈은 빚을 갚느라 수중엔 한푼도 남지 않았다. 1등 당첨의 기쁨도 잠시, 일장춘몽에 불과했다.   

로또는 아무나 당첨시키지도 않지만 당첨되었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행운을 주지는 않는가보다. 그러니 벼락맞기보다 어렵다는 '로또 1등' 꿈은 마음속에서 버리고 그저 성실하게 재밌게 살자. 요행을 바라지 말지어다. 그래도 혹시 당첨된다면? 가족, 이웃과 나누고 아낌없이 베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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