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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자던 백마강, 4대강에 밟힌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 1년이면 바뀌더라

등록|2011.02.07 11:49 수정|2011.02.07 11:49
2010년 2월에 걸었던 부여보 인근 청양 왕진나루앞 저석습지와 청보리밭이 채 1년도 안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열달이 지난 후 다시 찾은 백마강(금강). 그러나 4대강 사업이 천년을 고이 자던 백마강을 이토록 함부로 깨워놨을 줄이야...

부여보로 인해 사라진 청남면 강변의 청보리밭2010년 2월, 언땅을 견디고 올아온 드넓은 청보리밭을 걸었던 금강트래킹. 그러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 최수경


부여군 규암면 호암리 천정대를 시작으로 호암리백사장, 낙화암을 마주하는 신리, 대제각, 수북정까지 4대강 사업이 만든 상흔을 찾아 떠난 금강트래킹.

백마강 트래킹 일정천정대에서부터 호암리백사장,신리갈대밭,왕흥사지,대제각, 수북정까지. ⓒ 최수경


신라에 화백제도가 있었다면, 백제에는 하늘을 숭배하고 회의를 통해 제상을 뽑던 천정대가 있었다. 부여는 백제의 옛도읍지 답게 걸출한 문화재가 많다보니 충청남도기념물 제49호인 천정대는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천정대는 역사적인 가치와 함께 금강을 조망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어 더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 건설 중인 부여보를 관망할 수 있는 곳이라서 더 특별하다.

천정대에서 본 부여보 건설현장청양 지천과의 합류점에 고운 백사장으로 이루어진 하중도를 품고 흘렀던 과거사진과는 대조적으로 가로로 획을 그은 콘크리트장막이 흉물스럽다. ⓒ 최수경

천정대에서 내려와 백마강섬교 아래 펼쳐진 호암리 백사장이 파괴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이곳은 부여 상수원보호구역으로 강모래의 가치가 수질정화에 탁월함을 인정받아 철저히 보호받아 왔었다. 때문에 이곳에선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는 물과 들의 최적의 가교역할을 했던 백사장의 이전 흔적을 찾기 쉬웠다. 또한 호암리 백사장은 금강의 몇 안되는 천연의 백사장으로 높은 생태경관적 가치를 지녔던 곳이다.

유린되고 있는 금강의 마지막백사장 호암리백사장부여의 상수원보호구역안에서 철저히 보호받던 호암리백사장도 광역상수원공급과 4대강사업으로인해 채취되고 있다. ⓒ 최수경



과거의 호암리백사장백사장 건너편이 부여상수원 취수장. 야생동물과 새들의 발자국이 천국을 이루던 호암리백사장. ⓒ 최수경


나복리에서 마을뒷산인 부산에 오른다. 부여에는 백제의 전성기에 산신이 살았다는 세 개의 산이 있는데 오산(烏山),일산(日山),부산(浮山)이 그것이다. 효종 때 영의정을 지냈던 백강 이경여가 왕으로부터 받은 글을 새긴 바위가 부산(浮山)에 있는데, '지통재심 일모도원'이라 하여, '호란의 치욕을 씻지 못하는 비통함이 남아 있는데 날은 저물고 길은 멀기만 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강건너 구드레공원이 보이는 대제각송시열선생의 글씨를 백강선생의 손자인 이이명이 숙종때 바위에 새기고 대재각이란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 최수경


대제각에서 보는 백마강 골재채취백제대전이 끝나자마자 백마강은 다시 골재채취용 모터소리와 포크레인 소리로 요란하다. ⓒ 최수경


백마강변의 많은 농경지가 철거되어 그 많던 비닐하우스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농토는 농지리모델링이라는 이름으로 시커먼 준설토로 드넓게 메워져있다. 신리 갈대밭이 있던 자리는 자전거도로에 내어주었고, 일대의 풍성하던 갈대와 모래는 깡그리 사라진 모습을 보며 내내 걸어왔다.

백제대전에서 선전한 꽃밭이 얼어죽었다.1회성 전시행정의 말로. 이렇게 전국의 4대강은 줄지어 꽃을 심고 또 심고.. ⓒ 최수경

지난가을, 백제대전에서 선전한 꽃밭신리 갈대밭을 뭉개고 만들어진 진입로와 꽃밭 ⓒ 최수경



낙화암을 마주하고 있는 신리갈대밭의 이전의 모습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발을 딛고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빼곡한 갈대림과 간혹 부분적으로 모래채취가 이루어졌던 곳에서 드러낸 갈대의 뿌리는 직경이 10cm 이상으로 2m 이상을 땅 속 깊이 파고들어가 있었다. 그 뿌리를 키워주던 질 좋은 모래는 가히 산을 이룰만큼 풍성하고 드넓어 갈대밭과 단무지밭이 광활하게 펼쳐져있기도 했다.  

과거의 신리 갈대밭 모습갈대밭은 파괴되고, 모래톱도 채취되어 사라졌다. ⓒ 최수경



낙화암이 바라다보이는 현재 신리갈대밭강 한가운데 풀이 난 자리까지가 신리 갈대밭이었으나 갈대밭과 모래톱은 모두 깎여나가고 그 자리를 강물이 들어와 있다. ⓒ 최수경

낙화암에서 본 현재의 신리백제대전을 치루느라 롯데리조트로 드는 도로가 확장되고, 갈대밭은 정비되었으며 모래밭은 깎여나갔다. ⓒ 최수경



낙화암에서 본 과거의 신리2008년 10월의 신리갈대밭 ⓒ 최수경


4대강사업은 고이 자던 백마강을 난데없이 흔들어 깨워 2년째 강바닥에 대못을 박고, 강길에 콘크리트를 바르고 있다. 천년역사가 한 순간 분칠로 다시 살아나리라고 여기지 않는다. 영겁의 세월동안 말없이 흐르며 선사와 천년 백제를 지나왔고, 송시열 선생의 뱃길을 채촉해왔던 금강. 금강이 흘러왔던 역사처럼 미래의 시간을 유유이 흘러가도록 우리가 할 일은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우리는 산하에 대못을 박아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던 일제의 만행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금강정비사업 반대1년 전 부여보 건설현장에서 금강트래킹 중.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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