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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110회)

동경(銅鏡) <3>

등록|2011.02.08 09:46 수정|2011.02.08 09:46
관측대 위에 오른 여인의 주검은 여러 날 지난 탓에 사인을 밝히기 어려웠다. 지닌 물건 역시 예사로운 게 아니었다. 물에 잠겨서 얼굴과 눈이 부풀고 입과 입술이 뒤틀려 흉측하게 일그러진 상태였다.

'이 주검은 우물이나 강에서 죽은 익사체로 보이지만 온 몸의 피육이 푸르고 검은 것으로 보면 단순히 물에 빠진 죽음이 아니다. 그리고···.'

뚝도(纛島)에서 발견한 여인의 주검엔 심상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단순히 익사했다고만 볼 수 없는 미약하게 나타난 중독의 기미였다.

<술을 마실 때 상반되는 음식을 먹으면, 구토하고 피를 쏟아  쇠약해진다. 이런 경우, 피부는 약간 검어지나 파열되진 않고 입 안엔 피가 없으며 항문이 돌출되지 않는다.>

그런 것처럼 뚝도에서 발견된 주검도 이런 기미가 있고 보니 단순한 익사체로 보긴 어려웠다. 중독사의 기미가 있지만 반드시 그쪽으로 결론을 몰아갈 정황이 미약하다 보니 여인의 주검을 검험한 서과는 모호한 결론을 내놓았다.

<익사체로 보이나 피부에 나타난 여러 가지 정황으론 중독된 것으로 인정된다. 동(銅)비녀를 죽은 여인의 목에 넣고 뜨거운 초와 지게미를 아래에 덮어뒀다가 씻어내며 점점 위쪽으로 그 기운이 통하게 하자 흑색이 조금씩 나타났다.>

그러나 서과가 놓친 게 있었다. 뜨거운 초와 지게미를 사용할 때는 위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오면, 더운 열기가 독기를 눌러 중독사 여부를 확인할 수 없게 된다. 중독을 항문에서 확인할 때는 반대로 사용해야 하는 걸 깜빡 잊은 것이다.

<독을 먹은 지 오래 되면 그 독이 몸 안에 쌓여 시험을 해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 점을 놓친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얻은 건 있었다. 미약하나마 혀와 목에서 찾아낸 중독의 기미였다. 옷차림을 볼 때, 찢겨지고 헤어졌어도 궁에 있는 여인의 복식이니 무수리나 나인에 가깝다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판단을 내렸다.

'내명부에 있는 여인에게 독을 쓰는 건 중죄를 짓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이 여인은 조금씩 양을 더해 독을 마신 것으로 보인다. 고문을 받은 건가? 중죄를 지어 벌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데 그 이유는 뭔가?'

더구나 그녀의 몸엔 아도(啞陶)가 있었다. 이것은 들어가는 출입구만 있고 나오는 곳이 없는 '벙어리저금통'과 같은 형태다. 이것을 만든 이는 정도전으로 알려졌는데, 한양의 지세가 장차 농아자가 많이 나올 것이란 점에 대비해 만든 비방이었다.

'궁에 있는 무리가 나라를 열 때 비방으로 마련한 아도(啞陶)의 밑바닥에 태조대왕의 탄식을 쓴 건 요망한 일이 아닌가?'

막비천운(莫非天運)이란 글귀는 천명을 거스를 수 없는, 이태조의 탄식이었다. 강비(康妃)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리운 사랑하는 아들 방번과 방석 형제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은 태종에 대한 미움의 탄식이었다.

'그런 글귀가 왜 한양 백성들이 벙어리가 되는 걸 막는 아도(啞陶)의 밑바닥에 쓰였는가? 이걸 불손한 세력이 사용했다면 그들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재물인가?'

정약용은 주변을 서성거리며 시름에 젖어들었다. 과시가 열리는 시점에 여인의 주검이 발견되고, 전하의 명을 받은 윤창하가 규장각의 책임자로 도임 받았는데 살해됐다. 혹여 이 여인도 윤창하의 죽음과 관련있는 건 아닐까?

"나으리!"
서과가 몇 번을 불렀으나 기척이 없자 가까이 왔을 때야 정약용은 깊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내수사(內需司)에서 잡직으로 일하는 사내가 나으릴 찾아왔습니다."

그녀 뒤엔 잘 해야 스물 두엇으로 뵈는 사내가 서 있었다. 삼사의 서리가 쓰는 평전견을 쓰고 읊조리는 모양새로 보아 글을 만지는 냄새가 다분했다. 역시 그런 말들이 흘러나왔다.

"소인은 왕실의 재산을 관리하는 내수사 잡직에 있는 박씨 성의 서제(書題)이옵니다."

서제는 서리(書吏)다. 그러니까 이 젊은이는 왕실의 재산을 관리하는 내수사에 몸 담고 문서에 관한 일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으리가 아시다시피 저희들은 하는 일이 각기 다르옵니다. 내수사엔 저희같은 서제가 스무 명이나 근무하나 맡은 일이 달라 더욱 알 수 없지요."

어느 관청이나 그곳에서 하는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은 엄히 삼가고 있으나 내수사는 왕실재정을 맡아서 더욱 그러했다.

조선의 왕실 재산은 고려 왕실로부터 물려받은 것과 함경도 함흥지역을 중심으로 한 이성계 가문의 사유재산이 적지 않았다. 내수사는 그것들을 관리하려 설치된 것이므로 본궁(本宮)이라 불러왔었다.

"헌데, 이곳엔 어인 일인가?"
"저희 서제들은 그 동안 은밀히 계(契)를 해 왔는데···."

"무슨 계인가?"
"스무 명의 서제 중 혼기를 앞둔 스물다섯 이전의 사내가 아홉입니다. 그 가운데 둘은 지방으로 나가 참석지 못하고 일곱 사내만 모임을 이어오며, 한 달에 한 번 급료(給料)를 받은 다음날 '사발막걸리집'이나 '내외술집'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아마 다섯 달 전이었을 것입니다. 최씨 성을 쓰는 서제가 사월이란 무수리를 소인에게 소개해 줬는데 성격이 맑고 차분해 장차 부부가 되기로 언약하고 칠월칠석이 오기를 기다렸지요."

"흐음."
"하온데, 단오가 지나 사월이 모습을 볼 수 없더니 떠다니는 소문엔 그녀가 내사옥(內司獄)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이겠지만 소인은 마음이 조급해 얼굴을 아는 내관을 찾아가 사월이 소식을 수소문 했지요. 이틀이 지나 끔찍한 말을 들려주지 뭐겠습니까."

사내는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망연한 표정을 짓더니 뒷말을 가까스로 이어나갔다.
"글쎄, 사월이가 독물로 고문을 받는다지 않습니까. 너무 놀라 이유를 물었더니 나라에 죄를 얻어 벌 받는다는 말에 소인은 술로 세월을 보냈습니다만, 가만 생각해 보니 사월이는 나라에 죄를 얻은 게 아니라 대비전 무수리였으니 내사옥에서 벌 받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탓에 사월이의 한이라도 없게 하려는 생각에 나으릴 찾아온 것입니다."

내사옥은 내수사에 관련된 죄인을 수감하는 감옥이었다. 개국 초엔 '궁궐 내의 옥사'란 점에서 궁에서 죄를 지으면 누구나 그곳에 수감돼 치죄 받았다. 지난 숙종 때엔 장희빈이 혹독한 취조방법으로 궁인을 괴롭혔기에 수차례나 사헌부의 상소를 받아 폐지됐었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옥사가 벌어지는 것은 '왕실 재산을 관리하기 때문'이었고, 죄를 다스리는 이들이 모두 내관인 탓이었다. '왕의 사옥(私獄)'이지만 형조의 영역을 침범한 탓에 형옥(刑獄)의 일이 내시들 손에서 처리되어선 안 된다는 '혁파의 상소'를 대신들이 올렸었다.

정조 15년의 7월 중순인 이때엔, 내사옥이 폐지됐으나 왕실재산을 관리하는 내수사가 건재하다보니 내사옥에서 다룬 악습은 살아나고 있었다. 더군다나 사헌부를 찾아온 젊은이는 '독'을 사용해 죄인을 추궁한다는 섬뜩한 말을 하지 않는가.

서제(書題)일을 하는 사내가 돌아가고 난 뒤 정약용의 머릴 흔든 것은 윤창하의 죽음과 무수리 사월이의 죽음이 연관되었을 거라는 확신이 강하게 파고들었다. 규장각 직각에 도임을 앞둔 그 역시 독으로 목숨을 잃었고, 사월이도 죽임을 당했다.

윤창하는 서둘러 살해된 반면 사월이는 상당한 기간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정약용의 뇌리에 내관들의 혹독한 치죄의 장면이 섬뜩할 정도로 떠올라 있었다. 형틀 의자에 묶인 사월인 공포에 질려 내관들의 으름장에 절망했을 것이다.

"네 요년! 네 년이 살기 싫어 말을 않는 건 그렇다 치자. 하루 하루 고통 속에 보내는 것은 네 년의 사지육신을 온통 망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이곳 내사옥엔 독을 만지는 전문가들이 많이 있지. 선비들은 단숨에 명이 끊길 비상(砒霜)의 양을 높이지만 네 년과 같은 경운, 독성을 낮춰 하루 하루 고통으로 떨게 하지. 에헤헤, 이 나라 조선은 죄를 지은 자보다 충신들이 더 죽어나가지. 충신들의 혀(舌)는 천개의 입이니 흐르는 물처럼 거칠다고나 할까. 허면, 세상의 지탄을 받는 불알 없는 우린 어떤가? 충신을 자처한 자들이 말한 것(知)을 우린 입(口)으로 살(矢)을 날려 살상해 버리지. 아암, 그렇고말고.에헤헤, 우린 말 잘하는 선비들처럼 없는 게 있으나 그들에게 죽음을 내리니 저승사자가 따로 없지. 에헤헤헤!"

그렇게 보면 사월이는 뭔가를 숨긴 채 고통 속에 지냈을 것이다. 사월이가 숨긴 게 뭘까? 생각에 골몰하던 정약용은 운조루를 향해급히 자리를 떴다.

[주]
∎아도(啞陶) ; 한양 사람들이 귀머거리가 되는 것을 막는 비방
∎서제(書題) ; 서리
∎내사옥(內司獄) ; 내수사 직원들의 잘못을 다스리기 위한 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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