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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혹스러운 군, '석 선장 탄환' 정말 몰랐나?

뒤늦게 입장 바꾼 국방부 비판 쏟아져... 대원 헬멧 무선전송 영상 공개 안해

등록|2011.02.08 10:02 수정|2011.02.08 15:04

▲ 석해균 선장 부상 부위. ⓒ 아주대병원 제공


군이 곤혹스럽다. 석해균 선장의 몸에서 제거된 탄환 중 1발이 우리 해군의 유탄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수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당초 군은 구출작전이 성공한 직후 석 선장은 우리 군의 오발이 아닌 해적이 쏜 소총탄에 맞았다고 밝혔다. 지난달 21일 브리핑에서 기자들이 석 선장이 아군의 총탄에 부상을 입었을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자, 이성호 합동참모본부 군사지원본부장은 "석 선장은 작전팀이 진입과 동시에 교전상황이 벌어지면서 인질범으로부터 총상을 입은 것으로 식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후에도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석 선장은 해적의 총이 아닌 우리 UDT 대원의 총에 맞은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되자, 군은 이것을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치부했다.

한 누리꾼이 지난달 31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석해균 선장 몸속에서 빼낸 총알 공개합니다'라는 글에서 오만 현지에서 한국 의료진이 공개한 탄환의 모습을 근거로 석 선장의 몸에서 나온 탄환이 해적이 발사한 AK 소총탄이 아니라 해군 UDT 대원이 쏜 MP5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자 국방부는 바로 다음날 해당 게시판에 반박 글을 올렸다.

'석 선장의 몸에서 꺼낸 총알 관련 사실관계를 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국방부는 "석 선상의 총상은 해적이 쏜 총에 의한 것"이라며 "당시 석 선장이 인질로 잡혀 있던 장소에선 교전이 일어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해경 "1발은 우리 해군 사용하는..." - 국방부 "국과수 최종 감식결과 나와야..."

하지만 이 같은 국방부의 입장은 7일 오전 소말리아 해적 사건을 수사 중인 남해해양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결과 발표가 나오면서 달라졌다. 이날 김충규 특별수사본부장은 "석해균 선장의 몸에서 나온 탄환 4발 중 3발을 인수했고, 이 가운데 1발은 우리 해군이 사용하는 권총탄이나 MP5탄, MP5 소음탄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논란이 확산되자 이날 오후 입장자료를 내고 "해경에서 발표한 UDT 작전팀의 권총 탄환으로 추정된다는 1발은 교전간 발생한 유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한발 뒤로 빼는 듯한 입장을 보였다. "정확한 것은 현재 조사 중인 국과수 최종 감식결과가 나와야 확인될 수 있을 것"이라는 여지는 남겨두었지만 석 선장이 아군의 총탄에 맞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최초 입장에서는 변화한 것이다.

구출작전 당시 해군 UDT/SEAL 작전팀은 갑판에서 1명, 선교 어귀에서 4명, 선교와 계단 사이에서 2명, 쓰러진 석 선장 옆 선교에서 1명 등 모두 8명의 해적을 사살했다. 석 선장 바로 옆에서 1명의 해적이 사살된 것을 감안한다면 석 선장도 작전팀의 총탄에 맞았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군은 누리꾼들이 제기한 합리적 의혹에 대해 유언비어나 음모론으로 몰고 갔다. 그렇다면 군 당국은 석 선장이 아군의 총탄에 맞았을 가능성에 대해 한 점 의심도 없었을까?

육군 특수전사령부 소속으로 10여 년 간 대테러 임무를 수행했던 한 전역자는 7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그럴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단언했다. 이 전역자는 "특수타격과 대테러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전 부대의 성격상 훈련이든 실전이든 임무가 종료되면 바로 디브리핑(작전 수행 결과 분석)을 하게 되어있다"며 "특히 이번 구출작전에 참가한 대원들의 헬멧에는 작전상황을 실시간으로 무선 전송하는 '카이샷(KAISHOT)'도 장착되어 있었다는 감안하면 석 선장 피격 상황을 전혀 몰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구출작전 성공 후 언론에는 작전상황이 담긴 동영상 일부를 공개했지만 정작 해적사건 수사를 벌였던 해경에는 작전기밀 유지를 명분으로 카이샷 동영상을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만 현지에서 분실된 총탄 1발 실체 규명에도 관심 쏠려

▲ 설날인 3일 오전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치료중인 석해균 선장이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뒤 "왜 웃으시냐"는 유희석 병원장의 질문에 "좋아서"라며 깨어나서 첫 마디를 하고 있다. ⓒ 아주대병원 제공


이와 함께 오만 현지에서 분실된 것으로 알려진 총탄 1발의 실체 규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해경은 당초 오만 현지 수술 때 석 선장 몸에서 제거한 탄환 2발과 국내 이송 후 수술에서 뺀 탄환 2발 등 4발을 증거물로 넘겨받을 예정이었으나 3발만 넘겨받았다. 이에 대해 해경은 석 선장의 주치의인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로부터 '오만 현지 병원에서 수술 후 탄환 2발을 보관해왔는데 옷가지 등이 담겨 있던 짐을 잃어버리면서 탄환도 함께 분실했다'는 내용의 경위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경이 "석 선장 몸에서 제거해 증거로 확보하고 있는 탄환 3발 중 1발이 우리 해군의 유탄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발표하면서 분실한 것으로 알려진 탄환의 실체와 함께 '정말 잃어버린 게 맞나'는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분실했다고 한 탄환도 우리 해군의 유탄 아니냐'며 누군가 고의로 없앴거나 은폐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여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사실 이번 논란은 군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당초 석 선장의 몸에서 나온 총탄이 유탄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여지를 두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했더라면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알려진 대로 인질구출작전은 군사작전 중에서도 성공 가능성이 가장 낮은 까다롭고 어려운 작전이다. 적을 무력화 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인질의 안전까지 담보해야한다는 점 때문이다. 사실 어느 정도의 인명 피해를 감수하지 않고 벌일 수 있는 구출작전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세기의 인질구출작전으로 평가되는 엔테베 공항 구출작전에서도 인질 세 명이 이스라엘 특수부대와 테러범과의 교전과정에서 희생됐다. 이 때문에 한국 해군이 벌인 '아덴만의 여명'은 인화물질로 가득 찬 선박 위에서 해적 13명과 인질 21명이 뒤엉켜 있는 상황에서 벌인 성공적인 작전으로 평가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자신과 전우들의 생명을 담보로 인질들의 목숨까지 책임져야 했던 해군 작전요원들이 비난받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하지만 뒤늦게 발견된 유탄의 존재는 이런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구출작전 성공 소식이 전해진 직후 대국민 특별 담화를 발표하고 이번 작전이 "완벽한 작전"이었음을 강조했다. 대통령이 스스로 완벽한 작전이라고 평가를 내린 상황에서 군이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을 감히 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이 나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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