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 충실한 드라마, 은근 볼만한데?
[TV리뷰] 매력적인 캐릭터와 짜임새 있는 이야기로 포문 연 <짝패>
▲ MBC 새 월화드라마 <짝패>의 주연배우들. 왼쪽부터 천정명(천둥 역), 한지혜(동녀 역), 서현진(달이 역), 이승윤(귀동 역). ⓒ MBC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는 어느 날 우연히 왕궁에 숨어든 거지소년 톰과 왕자 에드워드가 서로 옷을 바꿔 입는 데서 출발한다. 생김새가 똑같았기에 옷을 바꿔 입는 순간 둘의 신분은 바뀌게 되고, 사람들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톰을 왕자로, 에드워드를 거지로 믿게 된다. 그리하여 거지소년 톰은 호화로운 왕자의 삶을, 왕자 에드워드는 거칠고 힘든 거지의 삶을 살아나가게 된다.
거지가 된 왕자 에드워드가 왕궁 밖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느낀 백성들의 삶은 고난 그 자체였다. 권력자의 횡포에 백성들은 신음했고, 궁핍한 삶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다정했던 아버지 헨리 8세가 백성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사실은 궁 안에서 곱게만 자란 에드워드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하여 훗날 궁으로 돌아가 왕이 된 에드워드는 지난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선군이 되겠다 다짐한다.
등장인물들이 눈길 사로잡은 <짝패>
▲ 막순을 비롯해 <짝패>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 MBC 화면캡쳐
때는 풍양 조씨가 득세하고 있는 조선 말엽. 면천을 위해 주인집 대감과 동침했다가 그의 아이를 가진 막순(윤유선 분)은 마님의 위협에 평소 그를 연모하던 노비 쇠돌(정인기 분)과 도망쳐 나온다. 힘들게 아들 천둥을 낳았지만 절망적인 현실에 한숨짓던 막순은 어느 날 우연히 고을의 권력자 김 진사(최종환 분)의 갓 태어난 아들 귀동의 유모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막순은 위험한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바로 천둥과 귀동을 바꿔치기 하는 것. 자신의 아들을 자신의 품에서 양반으로 키워내기 위해 막순은 천둥을 귀동으로, 귀동을 천둥으로 만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운명의 장난으로 같은 날 태어난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신분을 갖고 자라나게 된다. 그리고 <짝패>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짝패>는 첫 회(7일 방송)에서 등장인물들을 시청자에게 선명하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욕망에 충실했다. 막순은 주인집 대감에게 몸을 팔아서라도 면천을 하고 싶어 했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다며 자신의 아들을 양반으로 키워내려 한다. 쇠돌은 막순과 함께 살고 싶은 욕망에 주인집에서 도망을 쳐 용마골까지 숨어들고, 15년을 넘게 그녀와 한양으로 도망갈 날만 기다린다.
용마골 거지패거리의 왕초 장꼭지(이문식 분)는 오로지 돈에만 목숨을 건 인물. 대감집 마님에 의해 '현상수배'된 막순을 쫓던 장꼭지는, 결국 막순의 거처를 알아내지만 김 진사와 거래를 하는 게 더 이득일 거라고 판단, 막순의 행방에 대해 입을 닫는다. 장꼭지의 첩 자근년(안연홍 분) 또한 장꼭지의 애정과 돈을 독차지하기 위한 탐욕을 숨기지 않는다.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것은 존귀한 양반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김 진사 역시 아들 귀동의 양육을 위해 억지로 막순을 자신의 집에 눌러 앉힌다.
이처럼 <짝패>의 첫 회는 김 진사부터 자근년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들이 저마다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그 욕망들이 서로 부딪히고 어우러져 새로운 사건을 잉태하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전달했다. 여기에 윤유선, 정인기, 이문식, 최종환 등 명품 연기자들의 맛깔 나는 연기가 더해지면서 시청자로 하여금 뒷이야기가 기대되게 만들었다. 36부작이라는 긴 드라마의 포문을 여는 첫 회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 것이다.
부패한 양반과 민초들의 삶을 그려 이야기 전개에 발판 마련
▲ <짝패>는 단 한 장면을 통해 매관매직이 성행하는 조선 후기의 상황을 그려냈다. ⓒ MBC 화면캡쳐
그리고 이어진 2회에서 <짝패>는 민초들의 삶에 한 발자국 다가가며 본격적인 이야기 전개를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동냥으로 반 이상 썩은 감자를 얻은 천둥이 새로 부임한 현감의 행차길에 실수로 감자를 흘렸다가 나졸들에게 끌려가 죽지 않을 만큼 맞는 장면은 기존의 사극에서 여러 차례 다뤄진 빤한 장면이었지만, 양반과 천민의 계급차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새로 부임한 현감은 김 진사가 들인 후처의 동생으로, 그는 부임하자마자 자신의 벼슬길을 열어준 자형 김 진사에게 인사를 온다. 김 진사는 처남에게 현감 자리를 얻은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조참의 김 대감에게 인사치레로 2만냥을 갖다 바칠 것을 요구하고, 김 진사의 후처는 전임 현감이 작년에만 2만냥 이상을 '빼먹었다'며 한 3년 바라보고 현감 자리에 있을 것이면 절대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고 옆에서 거든다.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돈으로 산 자리에 들어와 본전 이상을 빼먹으려 하는 현감들의 수탈이 극에 달한 장면은 곧바로 민초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신임 현감의 부임 소식에 소 한 마리 값을 겨우 쥐어짜내서 만든 백정들의 모습이나 현청의 육방 아전들에게 새 신발을 만들어주고도 돈을 받지 못했다는 황 노인(임현식 분)의 모습에서 <짝패>는 날로 피폐해져가는 조선 말엽 민초들의 삶을 그린다.
그리고 극의 말미에 등장한 성 초시(강신일 분)의 이야기는 앞으로 펼쳐질 커다란 사건의 서두를 장식하며 극에 흥미를 더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극의 중심인 천둥과 귀동의 서사는 차곡차곡 쌓여갔다. 행색은 거지꼴이어도 타고난 양반의 천품은 숨기지 못하는 천둥과 양반으로 자랐지만 양반의 틀에 가둘 수 없을 만큼 자유분방한 귀동은 각자의 이야기를 내실 있게 만들어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회 만에 우려 불식시킨 감독과 작가... <짝패>가 기대되는 이유
출생의 비밀이란 닳고 닳은 소재인 <짝패>가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이러한 이야기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호연에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살아 펄떡거리고, 주인공의 서사와 사건의 진행이 따로 떨어지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촘촘하게 진행된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짜임새 있는 이야기야말로 <짝패>가 가진 힘이며, 시청자들이 기대를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초 <짝패>가 시작하기 전, 드라마의 연출과 극본을 맡은 임태우 감독과 김운경 작가가 사극 연출 및 집필 경험이 없다는 점, 그리고 주연배우 네 명 중 한지혜를 제외한 세 명이 사극 출연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짝패>는 사람들의 우려를 샀었다. 물론 아직까지 성인배역이 등장하기 전이라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선 언급하기 어렵다. 하지만 고작 2회 만으로, 감독과 작가는 연출과 극본에 대한 우려를 종식시켰다.
실로 오랜만에, 볼만 한 사극 한 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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