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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모든 것 걸지 마라, 크게 다친다!

신화학자 김원익, 신화에세이 <신화 인간을 말하다> 펴내

등록|2011.02.14 18:44 수정|2011.02.14 18:46

▲ 신화학자 김원익(51)이 두 번째 신화 에세이 <신화, 인간을 말하다>(바다출판사)를 펴냈다. ⓒ 이종찬


"왜 루벤스를 비롯한 수많은 미술가들이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을 즐겨 그렸겠는가? 왜 프로이트를 비롯한 유명한 심리학자들이 신화로 인간 심리를 설명했겠는가? 왜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들이 신화를 소재로 한 글을 즐겨 썼겠는가? 그 이유는 바로 신화가 인간의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김원익

신화에 포옥 빠져 사는 사람이 있다. 그리스와 로마신화뿐만이 아니다. 그는 우리나라 신화도 놓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신화는 "인생의 모든 이야기가 집약되어 있는 저수지"와 같다. 그는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울고, 웃고, 싸우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그 모든 감정도 신화와 이어져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가 신화학자 김원익이다. 그가 지닌 눈빛은 면도날처럼 날카롭다. 신화 속에 나오는 여러 신들과 영웅들 속내를 단칼에 베고 말겠다는 투다. 신화를 모르는 사람과는 아예 말조차 섞고 싶지 않다는 투다. 그와 나는 인사동에 있는 남도음식주점 '시인'에서 자주 만난다. 딱히 약속을 해서 만나는 것도 아니다.

그 집에 가면 늘 그가 있다. 그가 없는 날, 홀로 막걸리를 마시며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 즈음이면 어김없이 그가 나타난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1960년생이며 나는 1959년생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나를 만날 때마다 형님이라 부른다. 그냥 벗으로 지내자고 해도 막무가내다. '겨우 나이 한 살 차이일 뿐인데도 말이다.

나는 그런 그가 부담스러우면서도 몹시 살갑다. 그가 말하는 신화 속에서 아등바등 몸부림치는 이 세상 속내를 단숨에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막걸리를 마시며 '신화=현재=미래'라고 말한다. 그는 신화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살이가 '숨바꼭질'과 '술래잡기'로 겹쳐져 있음을 꼬집어낸다.  

"신화는 인류의 어린 시절이다"

"세상은 바야흐로 이야기에 목말라 있다. 날마다 여기저기서 갖가지 이야기가 쏟아진다. TV 예능 프로그램의 초대 손님들도 입담이 뛰어나야 인기가 있다. 자고 나면 그들이 경쟁적으로 토해낸 이야기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다... 하나의 나무줄기에서 수많은 가지가 뻗어 나오듯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결국 그 원류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바로 신화이다."-'들어가는 말' 몇 토막

지난 2009년 <신화, 세상에 답하다>를 펴낸 신화학자 김원익(51)이 두 번째 신화 에세이 <신화, 인간을 말하다>(바다출판사)를 펴냈다. 지난번에 펴낸 책이 신화와 세상을 저울질한 것이라면 이번에 펴낸 책은 신화와 인간을 '원시=욕망'이란 현미경을 들고 살펴본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자갈등을 시작으로 라이벌, 사랑, 분노, 광기, 모험 등 사람이 부딪치는 19가지 '갈등의 뿌리'를 신화에 빗대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19가지 갈등은 부자갈등, 라이벌, 부부의 사랑, 적과의 사랑, 동성애, 정신적 스승, 분노, 광기, 모험, 구출, 탈출, 추격, 전쟁, 괴물, 거짓말과 속임수, 숫자3, 지하세계 방문, 갈림길, 이상향이다. 한 가지 특징은 19가지 제목마다 그 갈등을 문장 하나로 쥐어짠 듯한 작은 제목들이 길라잡이처럼 매달려 있다는 점이다. "적과의 사랑-모두를 거는 사랑은 위험하다"처럼 말이다.

김원익은 14일 낮 전화통화에서 "신화는 이 세상 모든 이야기의 고갱이(풀이나 나무줄기 한가운데에 있는 연한 심)이자 원형이요, 본"이라고 말한다. 그는 "신화는 인류의 어린 시절"이라며 "신화에는 인류가 풀어낼 수 있는 모든 이야기의 씨앗들이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에 인간은 선천적으로 신화에 익숙해 있다"고 쐐기를 박는다.

그는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마다 수강생들로부터 빠지지 않고 받는 질문이 하나 있다"고 귀띔한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나 사람들 이름을 쉽게 외우는 비법이 뭐냐는 거다. 그는 이에 대해 "신화에서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려운 이름일수록 초등학교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철수나 영희 쯤으로 생각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핵심은 그 신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사랑 지키려면 사랑하되 모두 주지 마라

▲ 이번에 펴낸 책은 신화와 인간을 '원시=욕망'이란 현미경을 들고 살펴본 것이라 할 수 있다. ⓒ 바다출판사

"사랑은 무어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것이다. 잡으려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다가와 도무지 그 속내를 종잡을 수 없다.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의 신 에로스가 다루기 힘든 변덕스러운 장난꾸러기로 묘사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또 사랑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다. 어떤 때는 아름다운 결말을 맺지만, 다른 때는 가끔 일간신문을 장식하는 치정 살인극처럼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한다"-'사랑을 지키려면 사랑하되 모두 주지는 마라' 몇 토막

김원익은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이야기를 통해 '적과의 사랑'이 남긴 상처를 드러낸다. 그는 "금지된 사랑이지만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사랑은 금지를 넘어선다"며 "하지만 그 끝은 비참하다"고 되짚는다. 왜? 호동왕자는 결국 왕비 모함을 받아 숲속으로 들어가 칼을 거꾸로 세운 뒤 달려가 그 칼 위에 엎어져 자살함으로써 사랑도 잃고 목숨도 잃기 때문이다.

호동왕자 자살은 비단 왕비 모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아버지 대무신왕도 호동왕자에게 낙랑공주를 시켜 자명고를 찢게 했다. 이는 그들 사랑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낙랑을 삼켜 영토를 넓히기 위한 호동왕자 아버지 대무신왕 계책이었기 때문이다. 크레타 왕 미노스를 사랑한 메가라 공주 스킬레, 테세우스를 사랑한 미노스 딸 아리아드네, 이아손을 사랑한 콜키스 공주 메데이아도 그랬다.

이들은 모두 적이었던 영웅을 사랑했다. 스킬레는 사랑하는 미노스를 위해 아버지 황금머리칼을 잘랐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미로를 탈출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에게 황금양파에 깃든 비밀을 알렸다. 한 남자에게 모두를 바쳐 사랑한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배신이었다. 그들은 그 남자들에게 죽거나 섬에 버려졌다. 김원익이 "사랑을 지키려면 사랑하되 모두 주지는 마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대는 '광기의 주인'인가? '광기의 노예'인가?

"피그말리온은 독신으로 살기로 결심한 조각가이다. 여성에게는 결점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게 때문이다. 그 대신 그는 상아로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했다. 작품은 완벽했다. 살아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정교하고 생동감이 넘쳤다. 피그말리온은 날마다 아름다운 조각상을 보며 감탄하다가 그만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은 피그말리온' 몇 토막

김원익은 "광기는 창조적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못 박는다. 미쳐야 미친다는 것이다. 피그말리온이 스스로 만든 조각상을 너무나 사랑했고, 그 '미친 사랑'이란 '광기' 때문에 조각상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피그말리온이 오죽했으면 "여신이여, 바라건데 저 상아 처녀를 제 아내가 되게 하소서"라고 간절하게 기도까지 했겠는가.

괴테도 마찬가지다. 74세나 되는 늙은 괴테가 19세 울리케라는 소녀에게 포옥 빠진 마지막 사랑도 '창조적 광기'라 할 수 있다. 괴테는 결국 그 소녀와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시적 영감을 얻어 마침내 <마리엔바트 비가>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광기가 다 좋다는 뜻은 아니다. 이이러니 하지만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주인공 베르테르는 로테와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권총으로 자살하고 마니까.

김원익은 "광기의 주인이 되느냐, 노예가 되느냐에 따라 운명은 달라진다"고 되짚는다. 광기를 다스리지 못해 수많은 살인을 저지른 헤라클레스는 마침내 광기를 다스려 영웅이 되었다.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이름을 날렸던 영웅 아이아스는 '절친' 아킬레우스를 잃고 광기에 빠져 가축들을 마구 도살하다가 결국 '광기의 노예'가 되어 자살까지 하지 않는가.

▲ 그 19가지 갈등은 부자갈등, 라이벌, 부부의 사랑, 적과의 사랑, 동성애, 정신적 스승, 분노, 광기, 모험, 구출, 탈출, 추격, 전쟁, 괴물, 거짓말과 속임수, 숫자3, 지하세계 방문, 갈림길, 이상향이다. ⓒ 바다출판사


신화 통해 이 세상살이에 얽힌 오늘과 내일 파헤친다

"모든 것은 인간과 통한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신화도 결국 인간의 이야기다. 신화는 고대 인간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다. 그래서 캠벨은 이렇게 말한다. '신화는 나에게 절망의 위기 혹은 기쁨의 순간에, 실패 혹은 성공의 순간에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신회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가르쳐 줍니다'."-'나가는 말' 몇 토막

신화학자 김원익이 펴낸 <신화, 인간을 말하다>는 인간사 모든 것이 녹아있는 신화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얽히고설킨 이 세상살이, 그 뿌리를 파헤친다. 과거에 묻힌 신화, 그 속내를 더듬으며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를 엿본다. 지금 우리가 나아가는 세상살이 또한 "인간의 원시적인 욕망을 그대로 보여주는 신화"와 짝퉁이라는 그 말이다.  

신화학자 김원익은 대학에서 독문학을 배웠지만 신화란 매력에 포옥 빠져 10년째 신화에 매달리고 있다. 그는 "신화는 인간의 행동과 심리의 원형으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라고 여기고 있으며, 대학에서 '그리스 로마신화' '그리스 로마문화의 이해' '신화구조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신화, 세상에 답하다>, <그리스 로마신화와 서양문화>(공저)가 있다. 옮긴 책으로는 헤시오도스 <신통기>,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 <아르고호의 모험>이 있으며, 원본을 나름대로 고쳐 옮겨 쓴 책으로는 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오비디우스 <사랑의 기술> 등이 있다.
덧붙이는 글 <신화, 인간을 말하다> / 김원익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 1만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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