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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내가 남기고 간 말 "OOO 괜찮아요"

[유경의 죽음 준비학교] 책, 죽음을 말하다(5) - <그날이 오기 전에>

등록|2011.02.15 10:57 수정|2011.02.15 12:35
"몰라야 행복하지 알면 만날 그날만 생각하며 살 텐데, 안 되지."
"그래도 아는 게, 준비도 좀 하고 낫지 않을까."
"나는 끝까지 모르고 살다가 가고 싶어."
"아니, 나는 정확하게 알고 주변 정리할 시간을 갖는 게 좋을 것 같아."

만일 자신이 시한부 인생이라면 그것을 아는 게 나을까? 모르는 게 나을까? 그동안 '어르신 죽음준비학교' 수업시간에 정말 많이도 묻고 또 많이도 답을 들었다. 어떤 때는 어르신들 사이에 의견이 팽팽하게 갈려서 오랜 시간 토론이 이어지기도 했다.

죽음 연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집 <그날이 오기 전에>에는 자신 혹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머지 않아 '그날'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슬픔과 아픔과 눈물과 괴로움과 외로움과 후회와 아쉬움과 원망을 온전하게,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걸고 겪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그날'에 대한 이야기

▲ 책 <그날이 오기 전에> 표지 ⓒ 이레

주인공들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초등학교 동창에 대해 기억해내고(비행기 구름), 남편과 사별하고 딸과 단둘이 살고 있는 중년의 교사는 '시작에서 도망치고는 싶고, 스스로 끝을 선택할 용기는 없는' 제자를 우연히 만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그 제자에게도 다시 한 번 삶의 의미를 가르쳐준다(아침 햇살이 비치는 집).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가장은 차마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을 꺼낼 수 없어 홀로 어린시절 잠시 살았던 바닷가 마을을 찾고(파도 소리), 조기 발견 단계는 지났으나 이미 늦은 것은 아니라는 선고를 받은 한부모 가정의 엄마는 아들에게 말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거리의 어린 가수에게 자신의 병세를 털어놓기도 한다(Here Comes The Sun).

또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선고를 받은 마흔 다섯 살 여성의 '그날'을 앞두고 본인은 본인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아파하며 발버둥치며 통곡하며 그러나 서로 어깨를 감싸며 그날을 향해 힘겹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자신이 떠나고 남을 세 가족을 위해 차근 차근 준비하는 아내, 곁에서 그 모든 과정을 함께 하는 남편(그날이 오기 전에). 아무리 막고 싶고 미루고 싶어도 한밤중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그날'은 찾아오고, 식구들은 차분하게 장례를 치른다(그날).

사람은 떠나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우편물은 계속 날아오고 그럴 때마다 남은 사람들은 가슴이 시리지만,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 '죽고 나서 3개월 뒤에 건네주라'고 아내가 간호사에게 남긴 편지 한 통이 남편에게 전해진다. 고맙다는 인사나 추억이 담겨있을 거라는 짐작과 달리 편지지에는 단 한 마디뿐이다. '잊어도 괜찮아요.'(그날이 지난 후에)

죽음 준비 강사인 나,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도 감정이입이었을 것이다. 어린 아이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중년 여성의 '그날' 이야기에서 많이 울었다. 저만치 자기 책상에 앉아 책을 읽던 아이들이 훌쩍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 콧물 닦으며 읽어내려갔다.

아무리 쉬지 않고 죽음을 이야기하는 '죽음준비교육 강사'라지만 실제로 다가올 '나의 그날'에 전혀 마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결코 그러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다만 최선을 다해 마음의 중심을 잡고 하나씩 마음의 결을 짚어나가려 노력할 거라는 각오만은 다지고 있다. 

그나저나 '그날'이 오기 전에 우린 정말 무얼 해야 하는 걸까? 책에서는 생명의 탄생이 굉장한 일인 것처럼 '불과 조금 전까지 살아 있던 사람이 한순간에 죽는 것도 굉장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시작하는 것도 끝내는 것도 굉장하지만, 살아 있는 것 역시 굉장하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그러니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열흘 전 쯤 집안 먼 친척 어르신께서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날, 휴대폰에는 후배의 첫아들 출산 소식이 찍혀있었다. 이렇게 누구는 병이 나고 또 누구는 세상에 태어난다. 이것이 인생이겠지.

그런데 소설 속 중년 아줌마는 남편에게 잊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세 식구가 그래도 가끔은 나를 기억하고 이야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 아줌마도 아마 씻은 듯이 잊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겠지. 남은 사람들 편안하게 해주고, 자신도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덧붙이는 글 <그날이 오기 전에>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레,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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