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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인들 "여긴 이집트가 아닙니다"

[현지 취재 : 여기는 카이로] '쓰레기마을' 사람들이 바라는 새로운 이집트

등록|2011.02.20 13:04 수정|2011.02.20 15:58
<오마이뉴스>는 국제팀 김덕련 기자를 이집트 현지에 파견했습니다. 지난 11일 카이로에 도착한 김 기자는 무바라크 30년 철권통치를 끝낸 이집트의 분위기와 혁명 이후 새롭고 민주화된 미래를 준비하는 이집트 사람들의 열정을 생생하게 전해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 이집트 수도 카이로 남쪽 헬완의 쓰레기마을. ⓒ 김덕련


▲ 이집트 수도 카이로 남쪽 헬완의 쓰레기마을. ⓒ 김덕련


몸이 아래위로 출렁입니다. 어느새 비포장도로입니다. 차는 엉금엉금 기어갑니다. 옆에 가는 당나귀 수레보다 조금 빠른 수준입니다.

길 양옆에는 쓰레기를 태운 흔적이 연이어 보입니다. 차창 너머로 쓰레기봉지를 열어 쓸 만한 게 있는지 찾아보는 남자도 눈에 들어옵니다. 그 앞쪽에서는 개 3마리가 쓰레기를 뒤지고 있고, 길 한쪽에는 동물 사체가 놓여 있습니다.

17일(현지 시각) 저는 카이로 남쪽 헬완에 있는 쓰레기마을을 찾았습니다. 쓰레기마을은 카이로 인근의 대표적인 빈민촌으로 2000여 명이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30년 독재자를 몰아낸 후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이집트란, 이들에게 어떤 것인지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쓰레기마을엔 시장 취재 때 함께 다닌 현지인 사미씨와 동행했습니다.

저를 맞아준 건 땟국이 줄줄 흐르는 여자아이였습니다. 제 시선은 높이 쌓인 쓰레기더미보다 그 아이의 발로 먼저 향했습니다. 맨발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마을의 아이가 모두 맨발인 건 아닙니다. 차에서 내려 허름한 샤이(이집트 차) 가게로 가는 동안 제 눈에 띈 아이들 중 상당수는 낡긴 했지만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 이집트 수도 카이로 남쪽 헬완의 쓰레기마을. ⓒ 김덕련


"새로운 이집트? 물과 전기를 달라"

샤이 가게 안에는 4~5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안쪽에서 장기 비슷한 걸 하고 있던 두 남자는 저희 일행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희가 그곳을 떠날 때까지 이들은 눈도 마주치지 않더군요.

다른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저희에게 먼저 다가왔습니다. 오래지 않아 샤이 가게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여들어, 나중에는 아이들을 포함해 20명 정도가 저희를 빙 둘러쌌습니다.

쓰레기마을은 저 같은 기자를 비롯한 외국 사람들이 심심찮게 찾는 곳입니다. 그래서 외국인이 방문한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한동안 찾는 사람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마침 이들이 무료한 시간대에 제가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꽤나 저희에게 관심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의 요구 사항은 간단명료했습니다. "물과 전기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곳엔 상하수도 시설도, 외부에서 전기를 공급해주는 장치도 없습니다.

물은 높이 1m 정도의 드럼통 하나당 4~5이집트파운드(한화 약 800~1000원)를 내고 사서 써야 한답니다. 이들은 값도 올랐고(이집트 물가와 생활수준을 감안하면 싼 가격이 아니라고 입을 모읍니다) 물이 깨끗하지도 않다고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한 남자는 모자를 벗고, 제대로 씻지 못해 기름이 좔좔 흐르는 머리칼을 보여줬습니다. 마실 물도 넉넉지 않은데 씻을 물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겠느냐는 하소연이지요.

"여기는 이집트가 아니다"

▲ 정부로부터 전기와 물 공급을 받지 못하는 이집트 수도 카이로 남쪽 헬완의 쓰레기마을에서 만난 아브라미가 발전기 대용으로 쓰고 있는 자체 모터를 보여주고 있다. ⓒ 김덕련

이들은 전기 문제도 심각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마을에 전기 자체가 없는 건 아닙니다. 저를 둘러싼 사람들 중에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었으니까요(이곳에서 휴대전화로는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더군요).

그러나 정부에서는 이 마을에 전기를 공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이 사용하는 소량의 전기는 자체적으로 구입한 작은 모터를 발전기 삼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런 모터도 값이 만만치 않아 마을에 몇 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물과 마찬가지로 전기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주변의 공장 등에는 물과 전기가 충분히 공급되고 있다"며 "파이프만 연결하면 여기서도 물이 나올 텐데 정부에서 그걸 안 해준다"고 말했습니다.

"여기는 이집트가 아니다. 다른 나라다"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더군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말이었습니다.

이들은 제대로 공급만 해준다면 물·전기 사용료를 내겠다며 "무바라크든 새 정부든 물과 전기를 주는 게 좋은 정부"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전기가 공급되지 않으니 아이들이 학교에 갔다 와서 숙제를 하기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남자가 "여기에는 학교를 제대로 못 다니는 아이들이 많은데, 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학교에서 선풍기 2대나 카펫, 아니면 돈을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쓰레기에서 재활용품을 골라낸 다음 그걸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자신들로서는 그런 요구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이 남자는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 문제에 대해서도 "먹는 게 우선이고 신발은 나중"이라고 잘라 말하더군요.

이들은 경찰도 자신들을 괴롭힌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샤이 가게에서 일하는 아브라미는 오른쪽 팔뚝을 걷어붙이며 말했습니다. "여기 길게 긁힌 자국이 있다. 일하다가 유리에 베인 상처다. 그런데 경찰이 와서 '마약을 한 증거'라며 날 잡아간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도 경찰이 수시로 와서 뇌물을 받아갔다고 말했습니다.

▲ 이집트 수도 카이로 남쪽 헬완의 쓰레기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 김덕련


죽은 사람보다 대접 못 받는 사람들

▲ 이집트 수도 카이로 남쪽 헬완의 쓰레기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 김덕련

또한 몇몇 사람은 돼지 문제 때문에 사는 게 더 힘들어졌다고 말했습니다. 무슬림이 대부분인 이집트에서 돼지를 키우는 건 기독교를 믿는 자발린(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2009년 신종플루가 돼지 때문에만 생긴 병이라고 초기에 잘못 알려진 것을 계기로 이집트 정부는 30여만 마리의 돼지를 도살 처분했습니다. 쓰레기의 상당 부분을 처리하던 돼지를 한꺼번에 도살해 카이로에 쓰레기 문제가 심각했다고 하지요.

그 여파가 아직까지 미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브라미는 "정부가 예전에 돼지를 다 죽였다"며 가게 뒤편의 돼지우리로 저를 안내했습니다. 그곳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돼지 이야기를 하던 중 한 남자가 불쑥 말했습니다. "난 무슬림인데 돼지를 키웠었다." 의외였습니다. 무슬림이 돼지를 키우다니요?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지만 분명 자기는 무슬림이 맞답니다. 살기 어려워서 이 동네까지 왔고 그러다 보니 돼지를 키우게 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잘 믿기지 않았습니다만, 지금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 와서 술 마시는 무슬림도 만났으니까요. 식당 야외 테이블에서 캔맥주를 화장지로 감아 주변에 보이지 않게 한 다음 제 앞에서 한잔한 그 남자는 제게 무슬림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그 남자 홈페이지에 가봤는데 거기에는 "나는 알라를 경배한다"고 쓰여 있더군요. 무슬림이 다수인 다른 국가에 비해 이집트가 개방적이라는 이야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샤이 가게를 나서기 전, 물과 전기를 달라고 타흐리르 광장 같은 곳에 가서 시위할 생각을 한 적은 없었는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위험하다. 이번 시위 기간 중 감옥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많다. 우리에겐 가족이 있다."

가게 바깥으로 나오니 아이들이 사진 모델을 자청해왔습니다. 아이들과 작별한 후, 쓰레기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인근 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언덕에는 잘 가꿔진 무슬림 가족묘 단지가 있더군요. 저를 마을로 태우고 간 택시기사 왈리드(37)씨는 그 모습을 보며 "죽은 사람이 산 사람보다 대접을 더 잘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이집트 수도 카이로 남쪽 헬완의 쓰레기마을 전경. 오른쪽 언덕 위에 있는 것은 무슬림 가족묘 단지. ⓒ 김덕련


"내게 지난 한 달은 밤잠을 제대로 못 잔 시기"

쓰레기마을을 떠나 숙소로 돌아오기 전, 카이로 서쪽에 있는 사카라의 한 농촌에 들렀습니다. 도로 양옆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그 너머로 초록빛 농지가 펼쳐진 곳입니다.

거기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이들은 손님을 반긴다는 의미에서 좋은 자리를 내주고 샤이를 끓여주더군요. 쓰레기마을에서 본 것들이 생각나 이 마을에는 전기 등이 잘 공급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한 할아버지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왜 그런 걸 궁금해하는지 물으셨습니다. 쓰레기마을의 상황을 전하자 그 할아버지는 "물과 전기가 안 들어가는 그런 마을이 이집트에 있었냐?"고 제게 되물으시더군요. 글을 못 읽어 신문은 못 보신다는 할아버지는 텔레비전에서 그런 내용을 보신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할아버지를 만난 곳과 쓰레기마을은 차로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입니다.

또 할아버지는 "정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관심 없다"며 "우리 같은 사람과는 먼 얘기"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건 상관없다는 것이지요.

숙소 쪽으로 돌아오다가 메헤르 아저씨 가족을 만났습니다. 메헤르 아저씨는 소작농입니다. 전에는 카이로 동북쪽에 있는 해안 도시 포트사이드에 살았는데, 한 달간 일해도 300이집트파운드(한화 약 6만 원)도 벌기 힘들어 이곳으로 내려왔다고 합니다(이집트의 법정 최저임금은 1200이집트파운드입니다). 1년에 2000이집트파운드를 내고 땅을 빌렸다는 아저씨는 지난 한 달을 "밤잠을 제대로 못 잔 시기"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치안 상태가 나빠지면서 도둑이 늘었던 때가 있었다는군요.

다시 일하러 가는 아저씨와 작별하고 그곳을 떠난 저는 도로를 느릿느릿 걸어가는 물소들 옆을 지나 숙소로 향했습니다. 이날 만난 사람들이 무바라크 이후의 새로운 이집트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뤄질지 지켜볼 일입니다.

▲ 메헤르 아저씨 가족. 샤이를 마시고 있는 맨 왼쪽 사람이 메헤르 아저씨. ⓒ 김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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