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권력 앞에서도 언론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지금이야 언론문화가 많이 바뀌었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메이저신문은 물론 재정적으로 넉넉지 못한 지방 신문사들에게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일부 메이저신문에서는 지방주재기자를 채용하면서 돈을 받기도 했는데, 보증금 형식으로 챙긴 돈이 1명당 많게는 수천만 원에 달했다. 지금도 사회적 문제로 남아 있는 기업의 채용비리가 언론사회에서도 공공연하게 이뤄진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사이비기자들이 생겨났는데, 돈을 주고 신분을 얻은 이들에게서 돈에 구속되지 않는 언론을 논한다는 자체가 무리였다. 메이저신문에 비해 재정적으로 열악했던 지방 신문사들은 이보다 더 심했다. 채용비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신문사를 꾸려가기 위해 스스로 돈 앞에 구속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까지도 언론사회의 갈등요인으로 남아 있는 경영과 편집권의 분리가 당시에는 더욱 요원했다. 때문에 인사권을 가진 경영주가 편집권을 좌지우지하면서 때론 권력에 빌붙었다가, 때론 검은 돈을 쫓는 일들이 일상화됐다.
1999년 여름, 울산의 모 일간지 사회부 기자로 근무할 때다. 당시 필자는 10여 개 안팎의 언론사 기자들과 함께 모 구청 출입기자로 있었는데, 여기에는 기자들 외에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출입하고 있었다. 바로 대기업의 홍보담당 직원들이다.
그중 H기업 직원들은 이틀에 한 번꼴로 기자실에 들러 홍보자료를 전해줬고, 또 매주 회식자리를 통해 기자들과 격의 없는 친분을 쌓아갔다. 특히 다른 기업들보다 '통 큰' 광고료를 안겨줬기 때문에 이 회사에서 나오는 홍보자료는 여과 없이 기사화됐고, 웬만한 문젯거리는 아예 눈감아주는 게 관례였다.
이처럼 지역 언론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온 이 기업에서 수년간 불법을 저질러 온 사실이 포착됐다. 필자가 현장을 단독 취재한 결과 15t 트럭 8천대 안팎의 산업폐기물이 하나의 산처럼 위장 처리돼 있었다.
특종이었다. 그러나 그런 희열도 잠시, 현실은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그동안 격의 없이 지내왔던 홍보직원들과의 관계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도 필자의 신문사에서 이 사실을 기사화해줄지가 고민거리였다.
잠시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개인적인 친분보단 기사를 선택했는데, 훗날 전해들은 이야기로 당시 이 회사 담당 직원들은 좌천되거나 옷을 벗었다고 한다.
이어 필자의 신문사가 사실관계를 은폐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방송매체엔 엠바고(보도유예)를 걸고, 단독 기사를 '풀기사'(기자단이 기사를 공유해 일제히 보도하는 것)로 돌렸다.
특종을 나눈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이렇게라도 사전장치를 마련해야만 그나마 보도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 이후 회사로 돌아와 기사를 송고했는데, 예상했던 우려가 현실로 돌아왔다. 어처구니없게도 마감시간 무렵 기사가 사라진 것이다.
이 회사는 사전협의가 여의치 않자 윗선에다 손을 썼고, 이로 인해 데스크와 경영진 쪽에서 필자는 물론 편집국장도 모르게 기사를 빼버린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최대 광고주와 싸움을 벌일 경우 신문사가 곤경에 처할 수 도 있다는 변명 뒤에 숨겨진 수천만 원의 검은 돈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참의 논란과 내부다툼이 벌어졌지만, 필자의 사전장치, 즉 풀기사가 힘을 받으면서 결국 액면 그대로 보도됐다.
그러나 다음날, 풀기사로 다룬 이 기사는 필자의 신문사에서만 보도됐고, 여타 언론매체에서는 기사화되지 않았다. 일부 매체에서는 이 회사에 대한 홍보성 기사를 실은 곳도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기사가 보도된 후에도 이 회사에서는 속보를 쓰지 않는 조건으로 또 다시 검은 돈을 내밀었고, 심지어 관할구청까지 내세워 "조용히 마무리 하자"며 회유와 협박을 반복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15t 트럭 8천대 분량(당시 폐기물 처리단가는 t당 2만원을 넘었다)의 산업폐기물을 처리하려만 막대한 비용이 든다. 거기다 이 회사는 십수년간 매년 1천억 안팎의 광고비 등을 쏟아 부으면서 기업 이미지를 포장해 왔는데, 그 콘셉트가 바로 '친환경기업'이다.
그렇게 얻어낸 기업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바닥을 치게 생겼으니, 이 회사가 관련기사의 은폐내지는 축소를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때문에 필자가 관련기사를 3번이나 속보로 내보내는 번거로움을 겪은 후에야 관할구청의 행정명령이 내려지게 됐고, 뒤이어 사법처리를 막기 위한 기업과 관의 공작(?)으로 또 2번의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결국 이 회사의 대표이사가 그해 폐기물관리법위반혐의로 형사 입건돼 공정(?)한 사법처리를 받으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리고 강산도 변한다는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와 비교하면 그동안 우리 언론은 대내외적으로 참 많이 성숙해졌는데, 경영과 편집권의 독립, 그리고 돈과 권력 앞에서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구태는 아직도 진행형이라니 씁쓸할 따름이다.
당시 일부 메이저신문에서는 지방주재기자를 채용하면서 돈을 받기도 했는데, 보증금 형식으로 챙긴 돈이 1명당 많게는 수천만 원에 달했다. 지금도 사회적 문제로 남아 있는 기업의 채용비리가 언론사회에서도 공공연하게 이뤄진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도 언론사회의 갈등요인으로 남아 있는 경영과 편집권의 분리가 당시에는 더욱 요원했다. 때문에 인사권을 가진 경영주가 편집권을 좌지우지하면서 때론 권력에 빌붙었다가, 때론 검은 돈을 쫓는 일들이 일상화됐다.
1999년 여름, 울산의 모 일간지 사회부 기자로 근무할 때다. 당시 필자는 10여 개 안팎의 언론사 기자들과 함께 모 구청 출입기자로 있었는데, 여기에는 기자들 외에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출입하고 있었다. 바로 대기업의 홍보담당 직원들이다.
그중 H기업 직원들은 이틀에 한 번꼴로 기자실에 들러 홍보자료를 전해줬고, 또 매주 회식자리를 통해 기자들과 격의 없는 친분을 쌓아갔다. 특히 다른 기업들보다 '통 큰' 광고료를 안겨줬기 때문에 이 회사에서 나오는 홍보자료는 여과 없이 기사화됐고, 웬만한 문젯거리는 아예 눈감아주는 게 관례였다.
이처럼 지역 언론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온 이 기업에서 수년간 불법을 저질러 온 사실이 포착됐다. 필자가 현장을 단독 취재한 결과 15t 트럭 8천대 안팎의 산업폐기물이 하나의 산처럼 위장 처리돼 있었다.
특종이었다. 그러나 그런 희열도 잠시, 현실은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그동안 격의 없이 지내왔던 홍보직원들과의 관계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도 필자의 신문사에서 이 사실을 기사화해줄지가 고민거리였다.
잠시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개인적인 친분보단 기사를 선택했는데, 훗날 전해들은 이야기로 당시 이 회사 담당 직원들은 좌천되거나 옷을 벗었다고 한다.
이어 필자의 신문사가 사실관계를 은폐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방송매체엔 엠바고(보도유예)를 걸고, 단독 기사를 '풀기사'(기자단이 기사를 공유해 일제히 보도하는 것)로 돌렸다.
특종을 나눈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이렇게라도 사전장치를 마련해야만 그나마 보도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 이후 회사로 돌아와 기사를 송고했는데, 예상했던 우려가 현실로 돌아왔다. 어처구니없게도 마감시간 무렵 기사가 사라진 것이다.
이 회사는 사전협의가 여의치 않자 윗선에다 손을 썼고, 이로 인해 데스크와 경영진 쪽에서 필자는 물론 편집국장도 모르게 기사를 빼버린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최대 광고주와 싸움을 벌일 경우 신문사가 곤경에 처할 수 도 있다는 변명 뒤에 숨겨진 수천만 원의 검은 돈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참의 논란과 내부다툼이 벌어졌지만, 필자의 사전장치, 즉 풀기사가 힘을 받으면서 결국 액면 그대로 보도됐다.
그러나 다음날, 풀기사로 다룬 이 기사는 필자의 신문사에서만 보도됐고, 여타 언론매체에서는 기사화되지 않았다. 일부 매체에서는 이 회사에 대한 홍보성 기사를 실은 곳도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기사가 보도된 후에도 이 회사에서는 속보를 쓰지 않는 조건으로 또 다시 검은 돈을 내밀었고, 심지어 관할구청까지 내세워 "조용히 마무리 하자"며 회유와 협박을 반복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15t 트럭 8천대 분량(당시 폐기물 처리단가는 t당 2만원을 넘었다)의 산업폐기물을 처리하려만 막대한 비용이 든다. 거기다 이 회사는 십수년간 매년 1천억 안팎의 광고비 등을 쏟아 부으면서 기업 이미지를 포장해 왔는데, 그 콘셉트가 바로 '친환경기업'이다.
그렇게 얻어낸 기업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바닥을 치게 생겼으니, 이 회사가 관련기사의 은폐내지는 축소를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때문에 필자가 관련기사를 3번이나 속보로 내보내는 번거로움을 겪은 후에야 관할구청의 행정명령이 내려지게 됐고, 뒤이어 사법처리를 막기 위한 기업과 관의 공작(?)으로 또 2번의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결국 이 회사의 대표이사가 그해 폐기물관리법위반혐의로 형사 입건돼 공정(?)한 사법처리를 받으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리고 강산도 변한다는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와 비교하면 그동안 우리 언론은 대내외적으로 참 많이 성숙해졌는데, 경영과 편집권의 독립, 그리고 돈과 권력 앞에서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구태는 아직도 진행형이라니 씁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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