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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한만호 진술번복' 미리 알고 있었다?

[7차 공판] 검찰 증인 "10월 검찰에 진술"... "특수부에서 도와 달라 했다"도 논란

등록|2011.02.21 20:28 수정|2011.02.21 21:21

▲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지난 1월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9억여 원 불법정치자금 수수 의혹 사건과 관련, 21일 검찰쪽 증인이 지난해 10월 초 직후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진술 번복 가능성을 검찰에 진술했다고 말해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열린 7차 공판에서 검찰쪽 증인으로 나온 김아무개씨는 "지난해 10월 6일 한 전 대표를 면회한 직후 수차례 검찰에 출두해 한 전 대표가 진술을 번복하려고 한다고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검찰은 지난해 12월 20일 한 전 대표가 "한명숙 전 총리에게 어떤 정치자금도 건넨 적이 없다"고 자신의 검찰진술을 뒤집기 전에 그의 진술 번복 가능성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진술을 번복할 당시 검찰조차 몹시 당황했다는 사실을 헤아리면 김씨 진술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김씨는 한 전 대표와 서울구치소에 함께 수감됐던 인물로 수감되기 전 한 전 대표와 안면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 10월 6일 김씨가 한 전 대표를 면회할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도와 달라고 한다"고 한 전 대표에게 말한 점도 확인돼 논란이 예상된다.

하지만 김씨는 이날 공판에서 "한 전 대표가 구치소에서 '한 전 총리에게 3억씩 세 번에 걸쳐 9억원을 건넸다'고 말했다"고 검찰쪽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6월 선거인데 왜 8월에 '당선-낙선 시나리오' 보여줬나? 

김씨의 미묘한 발언은 한 전 총리 측 변호인단 신문과정에서 나왔다. 변호인단이 "지난해 10월 6일 한 전 대표를 면회한 직후 검찰에 출두해 '한만호가 검찰에서 한 진술을 법정에서 뒤집겠다고 한다'고 진술했느냐?"고 추궁하자, 김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러한 김씨의 답변을 얻어낸 변호인단은 "이것은 검찰이 (지난해 12월 20일 이전에) 이미 한 전 대표가 자신의 진술을 번복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사기혐의로 1년 6개월 복역한 김씨는 지난해 9월 만기출소했다. 출소한 직후인 10월 6일 한 전 대표를 면회했고, 이후 "여러 번" 검찰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그는 검찰에서 조사받은 횟수와 관련해 "5번에서 10번 사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씨는 이날 법정에 나오기 전인 18일과 20일에도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변호인단은 김씨의 진술이 짜맞추어 진 것일 수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검찰쪽 신문을 유창하게 대처했던 김씨는 변호인단 신문에서는 앞뒤가 안 맞는 진술을 내놓았다. 일명 '한만호 시나리오 메모'가 대표적이다.

이날 김씨의 진술에 따르면, 한 전 대표는 지난해 8월에 김씨에게 그 시나리오를 보여줬다. '한만호 시나리오 메모'란 한 전 총리가 당선됐을 경우와 낙선됐을 경우 등을 상정해 자신의 상황을 예상한 내용이다.

하지만 변호인단은 "이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진술"이라고 지적했다. 한 전 총리가 서울시장에 도전했다가 낙선한 시기는 한 전 대표가 이 메모를 김씨에게 보여줬다는 8월보다 2개월이나 빠른 6월이기 때문이다. 한 전 총리가 이미 낙선한 상황에서 그러한 시나리오를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지적에 당황한 김씨는 "한 전 대표가 그 이전에 죽 써온 것을 8월에서야 보여준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한 전 대표가 광복절 가석방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 것은 (2010년) 6~7월이었다"는 진술도 그 신빙성을 의심받고 있다. 한 전 총리의 당선을 상정해 '가석방'을 기대한 것인데, 한 전 총리의 낙선은 지난해 6월 2~3일 결정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엊그제 특수부에 갔더니 도와 달라고 했다"

흥미로운 진술도 김씨의 입에서 나왔다. 이날 김씨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한 전 대표를 지난해 4월 1일 검찰에서 처음 만났다. 검찰이 한 전 대표를 처음 소환한 날이다.

김씨는 "내가 '무슨 사건으로 왔느냐?'고 물으니까 한 전 대표가 '뇌물을 준 게 문제가 된 것 같다'고 말해서 내가 '그러면 처벌받겠다'고 말해줬다"며 "그러자 한 전 대표가 '그러면 '정치자금법(과 관련된 사건)으로 돌려봐야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는 교회신축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로비자금으로 수억 원을 사용한 것 때문에 자신의 처지가 곤란해지자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넨 사건으로 바꿔치기를 했다는 얘기다. 자신의 어려워진 처지를 벗어나기 위해 검찰수사에 협조했다는 한 전 대표의 진술과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특히 이날 변호인단이 공개한 김씨와 한 전 대표의 구치소 접견기록(2010년 10월 6일)에 따르면, 김씨가 "엊그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갔더니 도와달라고 하기에 안 하겠다고 했다"고 말한 것으로 나온다.

이와 관련, 김씨는 처음에는 "특수부에 간 적이 없다"고 했다가, 변호인단의 추궁이 이어지자 "검사실 계장한테 인사하러 갔다"고 진술을 바꾸었다. 게다가 접견기록에 적힌 자신의 발언은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김씨는 "한 전 대표를 면회갔을 때 한 전 대표가 내게 쪽지를 건네주었다"며 "거기에 특수부 관련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나한테 그걸 읽으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변호인단은 "그렇다면 한 전 대표의 접견내용은 믿을 수 없거나 그것을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거냐?"고 추궁했고, 김씨는 "실제 의도와 다르다"고 답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월 5일 3차 공판에서 "제가 쓴 서신이나 접견한 내용은 다 검찰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는 용어로 구성된다"며 "검찰이 다 스크린(검사) 하기 때문에 그 스크린을 의식해서 편지를 쓰거나 접견했다"고 말한 바 있다.

"한 전 대표가 '한 총리와 누나 동생처럼 지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검찰쪽 신문과정에서는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3억 원씩 세 차례에 걸쳐 9억 원을 건넸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2007년) 3~4월엔가 한 전 총리 아파트 근처에서 돈을 줬고, 얼마 안 돼 또 달라고 해서 3억 원을 갖다 주는 등 세 차례 9억 원의 달러와 현금을 줬다고 말했다"며 "여행용 가방도 언급했고 손동작까지 하며 얘기해줬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구치소 안 '심리싸움'(재소자들간 토론을 일컫는 용어)에서도 한 전 대표는 '총리실에 아무나 가나, 나는 한 총리와 한 집안사람이고 누나(동생)처럼 지낸다'고 말했다"며 "한 전 총리 집에 몇 번 갔다고 하기에 집구조까지 물어봤는데 '공무원집처럼 준수하더라'고 답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한 전 대표는 돈을 준 다음에 프라임그룹의 회장을 만나 식사를 했다고 말하면서 '프라임그룹이 작은 곳이 아닌데 한 전 총리가 도와줬다'고 말했다"며 "'약발이 먹혔다'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씨는 "장부를 언급하면서 '거기에 돈 액수와 한이라고 써놨다'고 얘기했다"며 "'한' 표기와 관련해 '나도 한씨이기 때문에 나중에 내가 접대비로 썼다고 얘기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한 전 대표는 한 전 총리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며 "그렇게 돈을 줬으면 가석방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잘 돌봐주지도 않아서 서운해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씨는 "광복절 가석방과 관련해 검찰보다는 한 전 총리 쪽에 더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김씨의 진술대로 한 전 대표가 가석방과 관련해 한 전 총리에게 더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면, 선거 전인 지난해 4월 초에 '9억여 원의 정치자금을 한 전 총리에게 건넸다'는 진술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   

그런데 한 전 대표는 지난해 4월 1일 처음 소환조사를 받은 직후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넨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가, 며칠 뒤 이를 뒤집었다. 이후 검찰은 광복절보다 한 달 앞선 7월 20일 한 전 총리를 '9억여원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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