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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카다피 협박에 유럽연합이 움찔한 이유

EU, 이주민 대거 유입 우려... 대응책 마련 서둘러

등록|2011.02.23 10:53 수정|2011.02.23 11:34

▲ 이집트 수도 카이로 남쪽 헬완의 쓰레기마을. ⓒ 김덕련



전 세계가 '아랍의 봄'을 고대하고 있는 가운데 27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유럽연합(EU)은 아랍 민주화의 불똥이 유럽에 튈 것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21~22일 양일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외무장관 회의에서는 아랍 세계의 정치적 변화와 관련된 장기적 대응책보다는 정치 불안이 계속될 경우 당장 직면할 수 있는 이주민 유입 문제가 논의의 초점이 됐다.

유럽연합 외무장관들은 리비아 정부의 시위대 유혈 진압을 비난하고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을 애통해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튀니지와 이집트에 이어 리비아의 정국불안이 가져올 북아프리카 이주민 유입을 우려했다. 특히 북아프리카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탈리아와 몰타는 상황의 긴급성을 강조했다.

"수십만 명이 유럽으로 몰려들 것이라는 예상이 결코 과장된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는 이미 수천 명의 튀니지 이주민을 수용하고 있다."

프랑코 프라티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최근 이탈리아의 람페두사 섬에 5천명 이상의 튀니지 이주민이 유입된 것을 언급하면서 리비아의 정국 불안이 상상할 수 없는 인구 이동을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북아프리카 사람들은 물론 리비아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유럽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우려는 그동안 리비아의 협력으로 아프리카 이주민 유입을 막을 수 있었던 상황을 생각한다면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탈리아와 리비아는 불법 이주자들이 지중해를 건너는 것을 막기 위해 협력해 왔으며 덕분에 이탈리아는 불법 이주자들을 태운 배를 리비아의 수용소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양국의 이런 협력 조치는 국제 인권단체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이 때문에 리비아에서 이탈리아로 오는 불법 이주자들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런 연유로 지난 주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유럽연합이 리비아의 반정부 시위자들을 지원한다면 불법 이주 문제에 대한 협력을 철회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폭력' 비판하면서도, 이주자 유입 우려해 거리 유지

유럽연합은 아랍 세계의 민주화 물결을 거스를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불법 이주자 유입을 우려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외무장관들은 유혈진압과 시민 사망이라는 폭력사태를 강한 어조로 비난하면서도 리비아의 국내 문제에 개입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리비아의 지도자를 바꾸는 것은 우리 일이 아니다"고 알레산더 스텁 핀란드 외무장관은 말했다.

"유럽연합은 리비아 국내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이탈리아의 프랑코 프라티니 외무장관도 말했다.

유럽연합 외무장관들은 아랍 민주화 물결과 관련해 장기적인 문제를 고민하기도 했다. 윌리암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유럽연합이 중요한 역사적 시험대에 서게 됐다고 강조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이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정치적 안정을 이루는 것에 기여할 수 있다면 유럽연합 확대 이후 최대의 성과가 될 것이다. 변화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유럽연합은 극도의 정치적 불안과 극단주의로 치닫는 나라들을 코앞에 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유럽연합은 북아프리카 사람들의 유입을 막고 이 지역 국가들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는 실질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성명을 통해 이를 약속했다. 그러나 정확한 지원 규모나 북아프리카 농작물 수입 규제 완화 여부 등 확실한 것은 언급하지 않았다. 유럽연합은 2007~2010년 사이 북아프리카 국가들에 45억 달러를 지원했다.   

북아프리카 이주민이 유럽연합 경제에 미치는 영향

▲ 리비아 반정부 시위 모습 ⓒ AP 연합뉴스



유럽연합이 지원을 하면서까지 아랍 국가들을 정치적으로 안정시키려고 하는 것은 불법 이주민 증가가 유럽의 정치 경제 문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과거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전통적인 관계 때문에 아프리카 사람들의 이주와 망명에 비교적 관대했던 유럽 국가들은 최근 10여 년 동안 이주민 문제로 정치적 도전을 받고 있다.

아프리카 이주 노동자들의 싼 노동력을 이용하면서도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외국인 혐오증이 확산되었고 특히 무슬림들에 대한 혐오증은 반이슬람 정서와 결합돼 정치적 충돌 요인이 되고 있다. 우파 정치인들은 이주민 문제와 반이슬람 정서를 이용하고 이주 억제 정책의 강화를 주장하면서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많은 유럽 사람들은 이방인에게 관대했던 전통이 무너지는 것을 애석해 하면서 때로 대규모 인종차별주의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유럽연합 입장에서는 경제적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지난주 <파이낸셜 타임스>는 유로 통화를 사용하는 17개 유럽 국가들을 일컫는 유로존의 청년 실업률이 금융대란이 발생하기 전인 2008년 초에는 14.6%였는데 현재는 20.4%로 급격히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청년 실업률은 유럽연합 전체에서는 둘 중의 한 명 정도로 훨씬 높으며 독일과 네덜란드만 10% 이하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아프리카 이주민의 증가는 당장 실업률 증가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심리적 불안으로 작용해 얼마든지 정치 현안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자신의 이익에 초점을 맞춘 대책이지만 지원을 통해 아랍 국가들의 정치적 안정에 기여하겠다는 유럽연합의 선택은 모두를 위해 상당히 바람직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북아프리카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외부의 실질적 지원이 정치적, 경제적 안정은 물론 두뇌 유출을 막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건 전쟁이 아닌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이주를 택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교육을 많이 받고 경제적으로도 최악의 상황은 아닌 비교적 안정된 사람들이다. 아랍 국가들의 상황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중산층을 형성해야 하는 이런 사람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게 되면 결국 이제 겨우 시작된 민주국가 수립의 여정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유럽연합을 비롯한 외부의 지원은 한계가 있을 것이고 당장 이뤄지지도 않을 것이므로 북아프리카 사람들의 유럽행은 점차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연합이 아랍 민주화를 원칙적으로는 지지하면서도 뒤로는 열심히 정치적 계산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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