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에서 보는 맞배지붕의 대적광전. 천상의 누각인 듯
눈길에 귀신사를 찾아가다
▲ 대적광전전북 김제시 금산면에 자리한 귀신사 대적광전 ⓒ 하주성
사람들은 흔히 국보나 보물이라고 하면, 아름다운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국보나 보물 중에는 상당히 많은 전각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소중한 문화재로 지정된 전각들은 거개가 절이나 궁궐, 능 등에 자리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은 역시 사찰에 있는 전각일 것이다.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귀신사는, 신라 문무왕 16년인 676년에 의상이 처음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 귀신사의 처음 명칭은 '국신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사적기 등이 전하지가 않아서 정확한 창건 년대나, 창건주를 알 수가 없다. 다만 신라 말에 도윤이 중창한 뒤, 귀신사라고 개칭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 편액대적광전 처마 밑에 걸린 현판 ⓒ 하주성
▲ 측면맞배지붕으로 지은 대적광전. 보물 제826호이다 ⓒ 하주성
보물 제826호 귀신사 대적광전
고려 때에는 원명국사가 중창을 한 귀신사는, 임진왜란 대 전화로 폐허가 된 것을 다시 복원하였다. 고종 10년인 1873년의 일이다. 귀신사에는 중심 건물인 대적광전이 있다. 대적광전은 귀신사의 본 건물로, 현재 보물 제826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귀신사 대적광전은 사찰의 대웅전 등에서 많이 보이는 팔작집이 아닌 맞배집이다.
2월 17일, 저녁 무렵에 갈음을 재촉한 귀신사. 2월 중순의 해는 짧다. 조금만 늦으면 해가 질 것 같은 길을 재촉해 귀신사에 들렸다. 겨울의 설원 속에 있는 대적광전을 보기 위함이다. 사찰은 여름과 겨울의 풍광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한 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한 곳을 사계절을 모두 둘러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 창호빗살무늬로 구성한 창호 ⓒ 하주성
▲ 다포계처마를 받치는 장식이 기둥 위에만 있지 않고 중간에도 구서을 하였다 ⓒ 하주성
귀신사의 대적광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이 된 것을, 고종 때 다시 복원하였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 뒤 1823년과 1934년에 중수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몇 번의 보수를 거치는 동안, 대적광전은 단청을 칠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처음부터 단청이 없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다.
맞배지붕의 멋을 느끼게 하는 건물
17세기에는 사찰의 불전이 맞배지붕으로 많이 지어졌다. 아마도 그 당시에 유풍일 것이다. 논산의 쌍계사 대웅전, 월성의 기림사 대적광전 등이 그 당시 지어진 맞배지붕의 전각이다. 귀신사 대작광전은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으로 두는 구조가, 기둥 위에 하나씩 있는 주심포계가 아니다. 중간에 장식을 더 넣은 다포계로 구성이 되었다.
대적광전을 한 바퀴 돌아본다. 눈이 하얗게 덮인 지붕이나, 하얀색을 칠한 담벼락이 하나가 된 듯 조화를 이룬다. 역시 겨울에 보는 정경은 남다른 멋을 풍긴다. 귀신사 대적광전의 벽에는 위에서 아래로 기둥을 내렸다. 죽죽 내려놓은 듯한 기둥의 간격이 일정하지 않아, 오히려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가 있다.
▲ 기둥사각으로 꾸민 기둥은 보수를 한 흔적이 보인다 ⓒ 하주성
▲ 후면대적광전의 후면. 중앙 하단부에도 문이 있다 ⓒ 하주성
창호도 색다르게 조성을 하였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지어진 대적광전은, 앞면의 세 칸에는 빗살무늬 창호를 달아냈다. 그리고 좌우의 퇴칸은 조금 좁게 구성해 빗살무늬 창호를 달았다. 양편 측면으로는 문을 달아내고, 뒷벽으로는 중앙 하단 부에 문을 달아냈다. 우측으로 돌아보니 뒤편에 까치구멍이 나 있다. 왜일까? 환기를 시키기 위한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흔히 보는 전각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사진촬영 하시면 안 돼요'
대적광전 안으로 들어가 먼저 향을 피우고 삼배를 한다. 답사를 다닐 때마다 늘 하는 차례이다. 천정을 올려다보니 대적광전은 원래 중층으로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보물제1516호로 지정되어 있는 삼존불은, 진리의 법신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에 모셨다. 그리고 협시불로는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모셨는데, 모두 소조불이다.
▲ 까치구멍대적광전 우측 뒤편에는 작은 까치구멍이 나 있다 ⓒ 하주성
▲ 삼존불대적광전에 모셔진 삼존불. 보물 제1516호이다 ⓒ 하주성
상당히 큰 규모의 삼존불을 불단에 모시기 위해서는 중층으로 건물을 들였을 것이다. <귀신사중수기>에도 법당이 중층이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눈에 발이 빠지는 것도 마다하고, 여기저기 눈밭을 뛰는 짐승처럼 빠르게 이동을 하며 돌아보고 있다. "사진촬영하시면 안돼요" 귀신사에서 일을 보고 계신분인가 보다. "예"라고 대답은 했지만, 이럴 경우 참 답답하다.
명색이 문화재를 답사하러 다니는데, 일일이 허락을 받기도 버겁다. 그러다가보면 시간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돌아 나오기는 했지만, 내내 아쉬움에 속이 아프다. 봄철이 돌아오면 다시 한 번 귀신사에 들려, 소조부처님들을 담아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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