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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동안 사귀어왔던 여친이 북한 간첩이라면?

[리뷰] 김상현 <킬러에게 키스를>

등록|2011.02.25 08:38 수정|2011.02.25 08:38

<킬러에게 키스를>겉표지 ⓒ 새파란 상상

2년 가까이 사귀어왔고 6개월 동안 동거했던 여자친구가 알고보니 북한의 간첩이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우선 여자친구한테 그동안 자신이 속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큰 상처를 받는다. 그것만으로도 힘들겠지만 국가정보원에서 자신을 그냥 두지 않는다. 간첩으로 밝혀진 여자친구에 관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 높은 강도의 심문을 할 가능성이 많다.

어쩌면 그 와중에 자신도 간첩으로 몰릴지 모른다. 친척 중에 월북한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가족이 간첩단으로 몰렸던 1982년의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처럼.

천신만고 끝에 간첩 혐의가 없다고 밝혀지더라도 주위의 시선은 곱지 못할 것이다. '쟤 여자친구가 간첩이었다는데...' 이런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남은 인생도 피곤해질 수 있다. 국가정보원이 어떤 곳인가. 예전에는 죄 없는 사람도 죄인이 되어서 죽어 나가던 곳 아닌가.

국가정보원에 끌려간 PC방 알바 직원

김상현의 최신 장편 <킬러에게 키스를>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 20대 후반의 주인공 김수동은 그럴듯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친구가 운영하는 PC방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테러로 추정되는 대형폭발사고가 발생한 다음 날,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김수동 앞에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강제로 김수동을 국가정보원 남산지부로 끌고 간다. 얼마 전에 헤어진 김수동의 연인 황민주가 북한의 고정간첩이며, 신도림역 테러사건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김수동은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었다. 키 크고 날씬한 여자들만을 위한 옷을 파는 쇼핑몰이었다. 피팅모델을 담당할 아르바이트 직원을 모집했는데 황민주가 그 자리에 뽑히고 얼마 안 있어 둘은 연인사이로 발전한다. 그런데 경영난으로 쇼핑몰이 문을 닫고나서 두사람도 헤어지게 된 것이다.

김수동은 이런 사실을 국가정보원 간부에게 털어놓으면서 과거를 돌아본다. 그제서야 자신이 황민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향도, 출신학교도, 원래 직업이 뭐였는지도 모른다. 은행 계좌번호를 안다면 그것을 통해서 행방을 추적할 수도 있겠지만, 황민주는 피팅모델을 하면서 항상 급여를 현금으로 요구했다.

이제부터 황민주 추적작전이 시작된다. 김수동은 혐의를 벗지만, 황민주의 얼굴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국가정보원 임시직원이 되어서 함께 추적작전에 나선다. 김수동은 추적 끝에 황민주를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가장 먼저 하고 싶을까?

남과 북 모두에게 버려진 북한 공작원들

작품의 설정에서 영화 <쉬리>가 떠오를 수도 있겠다. 설정은 비슷하지만 작품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폭탄테러와 잔인한 고문, 살인 등이 연달아서 발생하지만 작가가 묘사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가볍다. 김수동은 살벌한 국가정보원 심문실에서도 밥을 달라고 떼를 쓰고, 심문 도중에 황민주가 가슴성형수술을 했는지 의문을 갖는다.

만일 황민주가 가슴성형을 했다면 그것은 그녀가 간첩이라는 사실보다도 더한 충격으로 김수동에게 다가갈 것이다. 하긴 충격과 배신감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가벼운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반면에 북한에서 내려온 파괴공작원들의 모습은 무겁기만 하다. 황민주를 포함해서 남한에서 활동하는 고정간첩들은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한다. 몇십 년 동안 남한에서 활동하며 돈을 많이 번 간첩도 있고,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지만 북한으로 돌아간 뒤에 스파이 혐의를 받아서 처형당한 간첩도 있다.

남한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간첩들은 남과 북 모두를 경계해야 한다. 남한 당국에 체포되도 문제이지만, 북한으로 돌아가면 역시 숙청당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작품을 읽다보면 슬프면서 우스꽝스러운 주인공과 함께 간첩들의 운명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은 비극이지만,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작가들에게는 좋은 소재가 될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킬러에게 키스를> 김상현 지음. 새파란상상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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