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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도 줍고, 해변에서 홍차도 마시고, 행복한 겨울바다

[이란 여행기 54] 마르잔 비치

등록|2011.02.25 20:12 수정|2011.02.25 20:12

▲ 마르잔비치의 에메랄드 빛 바다에서 열심히 소라를 찾고 있는 아이들. ⓒ 김은주



▲ 겨울바다라 물속에는 우리 애들밖에 없다. 이란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추위를 더 많이 타는 편이라 바다에 들어갈 엄두를 못내는 것이다. ⓒ 김은주


맛있는 아침을 먹은 후 마르잔 비치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숙소에서 비치까지는 걸어 갈 수 있는 거리라고 했지만 처음 가는 길이라 호텔 앞에서 택시를 기다렸습니다. 마침 택시가 다가왔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이 만든 차였습니다. 그것도 우리 집 차와 같은 종류였습니다. 그런데 승차감은 달랐습니다.

우리 집에서 탈 때는 별로 좋은 차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이 날은 고급 차를 타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우리 눈높이가 낮아졌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이란 본토에서 우리가 탔던 택시들은 대부분 낡고 작은 차들이었습니다. 폐차 직전으로 보이는 초라한 차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택시는 문의 손잡이가 없어서 기사가 밖에서 열어줘야만 내릴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차들에 익숙해졌기에 우리가 탄 택시가 리무진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물론 기사도 본토 기사와는 달랐습니다. 본토 기사들이 자신들의 차처럼 다소 남루한 모양새라면 이곳 택시 기사는 차의 위용에 걸맞게 잘 차려 입고 있었습니다. 새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드라마에서 봤던 보디가드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주 거만했습니다. 우리가 택시에 올랐을 때 그는 마치 택시회사 사장 같은 포스로 우리를 맞았고, 그의 권위의식에 우린 주눅이 들어 말 한 마디 없이 마르잔 비치까지 갔던 것 같습니다.

물론 택시비도 더 비쌌습니다.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모범택시는 돈을 더 지불해야 하는데 고급형의 택시를 탔으니 돈을 더 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군말 않고 더 냈습니다. 키쉬섬에 오니 모든 게 화려해지고 더 많은 비용을 요구했습니다. 이런 택시까지도. 그러나 비싼 택시비에 속상하지 않게끔 바다는 아름다웠습니다.

마르잔 비치의 바닷물은 정말 맑았습니다. 에메랄드빛의 바다와 산호가 갈아져 만들어진 해변은 환상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해변에는 언덕이 있는데 언덕 위에는 야자수 잎으로 만든 원두막이 있어서 앉아서 쉬게끔 했고, 바다 위로는 보트가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이란 사람들은 방파제 위나 해변을 어슬렁거리며 다니고, 야자수 그늘 아래서 견과류를 사이좋게 나눠먹는 연인이나 가족들도 보였습니다.

우리 애들은 바다를 보자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들었습니다. 애들은 물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산에 가자고 하면 싫다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피했는데 바다는 언제나 좋아했었습니다. 산에서는 땀을 흘리고 고생이 많지만 바다에서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물을 훨씬 좋아했습니다.

우리 애들은 옷을 다 적시며 바다에서 소라와 산호 조각을 주워 모았습니다. 키쉬섬이 따뜻한 곳이지만 절기상으로는 겨울인지라 바닷물을 시원하게 즐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아직은 바닷물은 차가웠습니다. 바다에서 요트를 타는 사람은 가끔 있지만 대부분은 바닷가 해변을 거닐면서 바닷물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눈에 우리 애들은 정신 나간  애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물을 원체 좋아하고 소라와 산호 줍는 것에서 완전히 재미를 느낀 아이들은 바닷물의 차가움 같은 건 아랑곳 않고 즐겁게 자기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다가 더 추워지면 파란 입술로 온 몸을 덜덜 떨면서 밖으로 뛰어나와 햇볕에 몸을 말리다가 무엇에 이끌리듯 다시 바다로 뛰어갔습니다.

▲ 애들이 비치에서 소라를 줍는다고 했지만 그게 먹거리가 될까 의심을 했는데 요리에 관심이 많은 작은 애는 그렇게 주워온 소라를 직접 삶아 고추장에 맛있게 찍어먹고 있다. ⓒ 김은주



▲ 방파제에서 물고기에게 빵부스러기를 던져주고있는 이란사람들. 정말 바다에는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할 정도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물고기들이 많았다. ⓒ 김은주


활동적인 아이들과 달리 난 움직이는 것도, 차가운 바다에 뛰어드는 것도 전혀 흥미가 없어 원두막에 앉아서 아이들을 구경했습니다. 그때 내 옆으로 젊은 남자가 다가왔습니다. 그와 난 같은 원두막에 앉은 것입니다. 물론 시선은 각자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작은 원두막 안에 함께 있는 게 좀 불편했습니다.

그는 부끄럼이 많은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저 내 옆자리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습니다. 그게 더 신경 쓰였습니다. 뭐 묻고 싶은 게 있다면 얼른 묻고 가면 좋겠는데 한마디도 않고 같은 원두막에 우두커니 나란히 앉아있는 게 보통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난 그에게 신경 쓰지 않기 위해 수첩을 꺼내서 여행기를 정리했습니다. 내가 그러고 있는 사이 남자는 자리를 떴다가 한 눈에 봐도 좀 모자라는 남자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옷은 멀쩡하게 입었지만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건들거리는 품새가 신통찮았습니다. 역시 좀 전에 나와 나란히 앉아있던 남자가 이 사람은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뜻의 제스처를 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남자가 나와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나도 많은 이란 사람들을 찍었기에 찍히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젊은 남자는 카메라를 들고 앞으로 가고 좀 모자라는 남자와 난 신혼부부처럼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모자라는 남자와 한 번 찍고 젊은 남자와 다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러니까 젊은 남자가 내 옆에서 말없이 앉아있었던 건 다 사진을 찍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만큼이나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사진을 찍고 사라지고 나서 난 언덕 위 가게로 가서 차를 주문했습니다. 주문하고 내 자리로 오자 종업원이 쟁반에 뜨거운 홍차가 가득 담긴 주전자와 찻잔, 그리고 애플파이 스타일의 빵 한 접시를 갖고 나타났습니다. 차는 1인분에 1500토만 하는 데 세 잔정도 나왔습니다.

따뜻한 날씨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한겨울이라 따뜻한 차를 마시자 기분이 한결 좋아졌습니다. 바닷가에서 놀던 아이들도 떨리는 몸을 뜨거운 홍차로 녹였습니다. 그리고 애플파이를 한 입 베어 물고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행복은 별 거 아닙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자유로움이 있으면 사람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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