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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물, 화학, 전자쓰레기... 몸살앓는 예산군

충남 예산 '전자정보소재 희소금속 생태산업단지' 환경 오염 우려... 군 "추진된 것 없어"

등록|2011.02.28 22:41 수정|2011.03.01 16:22
"예산군에 추진하고 있는 전자정보소재 희소금속 생태산업단지가 뭔지 압니까?"

지난 21일 <무한정보>를 방문한 충남예산군 고덕면에 사는 주민 김아무개씨는 두툼한 자료뭉치를 내려 놓으며 기자에게 물었다. 그는 이어 분통을 터뜨렸다.

"주물공단이 신소재라고 근사하게 포장돼 상몽리로 들어오려 하고 있다. 그것 때문에 주민들이 난리가 났는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주물공단이 수류탄이면, 핵폭탄이라고 할 수 있는 전자쓰레기처리공단이 오추리 일원 100만 평의 부지 위에 들어 선다는 거다. 말로는 '전자정보분야 희소금속 생태산업단지'라고 근사한 포장을 하고 있는데 그 포장지를 벗겨보면 TV, 컴퓨터, 핸드폰, 냉장고 등 폐가전제품에서 희소금속을 빼내는 공장들이다.

이거 국가를 위해선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예산군을 위해서 과연 잘하는 건지 따져봐야 한다. 전국의 전자쓰레기들이 고덕으로 몰려 들어 올텐데, 희소금속 분리과정에서 어떤 독성 물질이 나올지도 모르고, 쓸 만한 걸 빼내고 난 쓰레기는 또 어찌할 것인지…. 이거야말로 환장할 노릇 아니냐."

예산군은 2010년부터 시작해 올해에도 특수시책사업으로 '충남 전자정보소재 희소금속 생태산업단지'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군은 고덕 오추리 일원 300만㎡를 산업단지 후보지로 추천했다.

충남 예산 90만 평에 조성될 '도시광산'

충남테크노파크 전략사업 기획단이 낸 '충남 희소금속산업 육성전략'에 따르면 단지면적 300만㎡ 가운데 재활용생산기술센터(희소금속연구 위한 클러스터)는 6600㎡에 불과하다. 나머지 299만3400㎡엔 전자정보소재(폐컴퓨터 및 핸드폰 등)를 비축하고 순환(재활용)하는 시설(공장)이 들어선다.

쉽게 말해 90여만 평에 TV, 컴퓨터, 핸드폰 등 폐전자페품을 쌓아놓고 희소금속을 추출하는 거대규모의 도시광산이 들어선다는 얘기다. 폐자원에서 금, 은, 리튬 등 희소금속을 추출하고 재활용해 에너지 자원을 절감하는 등 국가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첨단사업이라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주민 김씨는 "공무원과 전문가들은 '최첨단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환경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할 테지만, 고물상은 아무리 치장해도 고물상이다. 현재 국내의 전자폐기물 재활용업체 대부분이 영세한 수준이다. 전국에서 쏟아지는 TV, 컴퓨터, 냉장고 등이 산더미처럼 쌓일 텐데 최첨단 창고를 지어 보관하겠느냐. 이건 농촌에 들어올 시설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어 "고덕은 예산군과 충남의 식량창고이자 허파다. 농민들은 조상대대로 순박하게 농업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 왔는데, 왜 이 청정한 땅에 주물공단과 화학단지, 전자쓰레기처리공단을 지으려 하는지, 예산군 행정을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다"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전자정보소재 희소금속 생태산업단지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품은 지역주민들은 군 행정을 원망하며 반대운동을 위해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23일 오추1·2리에 사는 주민들은 세를 규합해 산업단지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오추1리 이승학 이장은 "지금 최첨단이란 말을 앞세워 들어 온 화학공장들이 악취를 뿜어내고 있다. 국가적으로 희소금속이 필요하면 전자쓰레기를 가장 많이 배출한 도시에 공장을 지어야 한다. 쓰레기는 쓰레기가 나온 곳에서 처리하는게 마땅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예산군청 경제과 관계공무원은 전자정보소재 희소금속 생태산업단지에 대해 "아직 추진된 게 없다. 국가적으로 진척이 되지 않아 업무에서 빼려고 하고 있다. 쉽게 추진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고 애매하게 답변했다. 그러나 이 사업에서 예산군이 발을 빼는 것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주민들 "독성 물질, 쓰레기 유출 우려"... 예산군청 "아직 추진된 것 없어"

이미 정부는 희소금속 확보와 전자쓰레기 처리를 위해 전국 3개 권역에 종합대책을 세웠다. 전자정보소재 희소금속분야는 충남 아산탕정권역으로 지정했고, 거기에 예산군이 유일하게 고덕 오추리를 후보지로 내놓았다.

지금은 정부가 추진속도를 내지 않는다 해도 곧 발등에 불이 떨어질 것이 자명하다. 우리나라가 2012년 12월 31일 디지털방송으로 전환하면서 전국적으로 폐기되는 브라운관형 아날로그 TV가 1000만 대나 쏟아져 나온다(KBS 환경스페셜 2011년 1월 26일 방영). 중국으로 보냈던 전자쓰레기 불법수출길도 곧 막힌다. TV 한 대엔 금, 은 등 귀중한 자원인 희소금속과 함께 수은, 납 등 엄청난 유해독소가 쏟아져 나오는데 브라운관의 납은 세계적으로도 처리기술이 개발되지 않았다.

한편 예산군이 전자정보분야 희소금속 생태산업단지 조성사업을 추진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지난 2009년 11월 17일 정부(지식경제부)는 녹색성장을 위한 대책으로 '희소금속소재산업 발전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리튬, 마그네슘 등 10대 희소금속 원천기술개발과 이를 통해 12%인 희소금속 자급률을 8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 또 25개 뿐인 희소금속전문 기업수도 100개를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충남 탕정권역, 전남 광양만권역에 희소금속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강원 충북권엔 마그네슘, 텅스텐 생산단지 조성계획을 내놓았다. 충남 탕정권 희소금속 클러스터엔 공주대학교가 연구대학으로 선정됐다. 그리고 예산군은 충남테크노파크와 공주대학교와 함께 탕정권역의 전자정보 희소금속 생태산업단지를 예산군으로 유치하기 위해 고덕 오추리 일원 300만㎡를 후보지로 내놓았던 것이다.

주민들 사이에서 전자정보소재 희소금속 생태산업단지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2010년 6월 임기내 전자정보소재 희소금속 생태산업단지 기반조성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던 최승우 예산군수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국민들이 사용하고 버리는 폐핸드폰 1대에 들어있는 금은 약 0.03g이다. 연간 폐기되는 1000만 대에서 금을 추출하면 300㎏(150억 원 상당)이나 된다. 산에서 캐내는 금광보다 70배 이상 부가가치가 높다. 금뿐만이 아닌 팔라듐, 로듐, 구리, 코발트 등 희소성이 있는 광물자원도 얻을 수 있다.

리사이클링(recycling)이라고도 불리는 도시광산산업은 새로운 자원의 확보와 환경을 보호하는 일석이조 사업이다. 우리가 흔히 버리는 못 쓰는 TV, 휴대폰, PC 같은 물건이 바로 도시광산산업의 귀한 광물이다. 땅을 파서 광물을 캐내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물건들 사이에서 귀한 금속들을 추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컴퓨터가 연간 300만 대, 휴대폰이 1000여 만 대, 냉장고나 에어컨이 몇 백만 대씩 폐기되고 있다.

만약 전자폐기물을 아무렇게나 버린다면 엄청난 오염이 발생할 것이다. 잘 알다시피 웬만한 휴대폰이나 컴퓨터에는 납이나 카드뮴 같은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무척 많다. 막대한 산업폐기물이 도시 광산업을 거쳐 자원으로 탈바꿈해서 재탄생하는 것이다.

PC, TV, 핸드폰 등 생활계 폐기물은 희소금속의 보물창고다. 지구촌은 지금 희토류(稀土類, Rare Earth Resources, 희소광물 일종)를 둘러싼 자원 전쟁이 한창이다.

우리나라는 2009년 코발트, 망간, 인듐, 몰리브덴, 리튬, 크롬, 텅스텐, 희토류, 마그네슘, 티타늄 같은 금속을 희소금속으로 발표했다. 도시광산화산업, 즉 생활폐기물이 갑자기 각광을 받는 것도 폐기된 전자기기들이 희소금속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작업을 어디서 하는가다. 무공해 희소금속 추출기술도 개발되지 않았을 뿐더러, 개발한다 하더라도 추출과정에서 발생하는 공해는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문제는 남는다. 또한 필요한 것을 빼내고 남는 플라스틱, 납 등 폐기물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정확한 대안이 없다. 지자체들이 이런 산업을 쉽사리 우리 지역에 오게 해달라고 주문하기 어려운 이유다.
덧붙이는 글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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