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수사의 원조, 손다이크 박사의 탄생
[리뷰] 오스틴 프리먼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겉표지 ⓒ 시공사
어설픈 범인이라면 선명한 지문이나 신용카드 영수증 같은 것을 남겨두었을 수도 있고, 깔끔한 범인이라면 추적이 어려운 미량 증거물들을 남겨두었을 것이다. 구두에 묻은 흙이나 옷에서 떨어진 섬유조각 등.
범인이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현장에 아무것도 안 남길 수는 없다. 누군가가 범행을 저지르고 나서 달아난다면 그곳에는 그 사람의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그것이 인간의 눈으로는 식별 불가능한 것일지라도.
과학수사가 발달하면서 미량 증거물들을 분석하고 추적해서 범인을 검거하는 사례도 더욱 많아진다. 이런 과학수사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탐정이 바로 영국작가 오스틴 프리먼이 창조한 손다이크 박사다.
손다이크 박사는 오스틴 프리먼의 1907년 작품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보통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시기를 '추리소설의 황금기'라고 부른다. 그 황금기가 오기도 전에 과학수사를 다룬 작품들을 발표했으니 오스틴 프리먼은 시대를 앞서가도 엄청나게 앞서간 것이다.
지문을 다룬 최초의 추리소설
제목처럼 이 작품은 지문을 소재로 한다. 범죄현장에서 지문이 발견된다면 그 지문의 주인공이 주요 용의자로 지목받을 것이다. 살인사건에 사용된 흉기에서 지문이 발견된다면 범인을 추적하는 것은 그만큼 쉬워진다. 요즘에는 지문에 대한 경계심이 많아서 범인들이 쉽게 지문을 남기는 일이 없지만, 손다이크 박사가 등장했던 백년 전에는 어땠을까.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에서는 대형 도난사건이 발생한다. 귀금속 거래업자인 존 혼비는 의뢰받은 다이아몬드 원석을 사무실 금고에 넣어둔다. 다음날 아침 혼비가 금고를 열어보니 다이아몬드는 사라졌고 금고 안에는 피 묻은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이 남아있다. 지문 감식결과, 그 지문은 혼비의 조카인 루벤의 것으로 밝혀진다.
루벤은 자신의 범행을 부인한다. 주위 사람들도 루벤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며 루벤의 편을 들어준다. 반면에 경찰들은 '이건 누가 봐도 결론이 확실한 사건'이라며 루벤을 기소한다.
궁지에 몰린 루벤은 손다이크 박사를 찾아간다. 손다이크 박사는 그동안 어려운 사건을 많이 해결해서 런던 경시청에서도 인정받은 민간 탐정이다. 손다이크 박사는 루벤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자신이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그 지문은 위조된 것이고 루벤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재판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그 재판에서 배심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지문이 위조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끌어모아야 한다. 손다이크 박사는 조수이자 작중 화자인 저비스와 함께 런던 경시청을 방문하고 지문의 확대사진을 찍는다. 관련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실험실에서 각종 실험을 하며 재판에서 이기기 위한 준비를 하나씩 해나간다.
의사이자 과학자인 손다이크 박사
지문도 지문이지만 작가가 묘사하는 손다이크 박사의 모습이 더욱 흥미롭다. 의사이자 법의학자인 손다이크 박사는 많은 탐정이 그렇듯이 독신이다. 손다이크 박사는 탐정이기 이전에 과학자이기 때문에 그의 수사방식도 과학수사로 흐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거리를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탐문하는 것보다는, 실험실에서 미량 증거물을 분석하는 것이 과학자에게 어울리는 모습 아닐까.
지금이야 각종 추리소설과 드라마 등을 통해서 '과학수사'라는 단어를 어렵지 않게 듣지만,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이 발표된 100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에서 고문이 사라진 것이 19세기 초라고 하니까 고문이 없어진 자리에 과학수사가 들어서기까지 100년 가량의 시간이 필요했던 셈이다.
실제로 영국에서 사건수사에 지문 감식이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1901년이다.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은 지문을 다룬 최초의 추리소설이라는 점, 과학수사의 원조로서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활약할 손다이크 박사가 데뷔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덧붙이는 글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오스틴 프리먼 지음 / 원은주 옮김. 시공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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