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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부장판사의 비리, 광주는 왜 침묵하나

[주장] 비리를 둘러싼 지역사회 침묵의 카르텔 깨라

등록|2011.03.02 15:49 수정|2011.03.02 15:49

▲ '윤리의식 부재, 사법부 신뢰 회복'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윤민호 민노당 광주시당 위원장 ⓒ 윤민호


광주에서 '법정관리'를 전담하는 재판장이 친형과 친구를 자신이 재판하는 기업의 감사로 임명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친형과 친구를 감사직에서 해촉하는 일이 발생했다. 모 방송사에 따르면, 이 부장판사는 자신의 관용차 운전사까지 법정 관리인으로 파견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기업회생절차 업무를 감사해 법원에 보고하는 역할을 맡는 감사의 월급은 500만 원, 법정관리 회사 관리인은 연봉 3600만 원이라고 한다. 이 문제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비판이 거세지자 해당 재판장은 "법원이 신뢰할 수 있는 지인을 선임하는 게 관행이고 형이 전문가라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악의 평범함'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독일 출신의 정치 이론가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며 아이히만이 '너무나 평범하고 자상한 가장이며, 자기 임무에 충실하려고 애썼던 사람'이라는 데 놀랐고, 그래서 "행위의 결과가 가져올 악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비판 없이 현실에 순응하는 사람의 행위"를 '악의 평범함'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물론 해당 부장판사는 아이히만처럼 인류사에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이번에 문제가 된 부장판사의 '형님과 친구 취업'이 법조계의 오랜 관행이었다는 점에서 단순 비교에는 무리가 따를지도 모른다. 다만, 차기 광주지법원장 0순위로 지목되는, 광주 법조계의 '살아 있는 권력'이라 일컬어지는 수석 부장판사의 문제에 지역사회가 보여주는 침묵의 카르텔이 결과적으로 '악의 평범함'을 스며들게 하지 않을지 깊은 고민을 던져준다. 

수석 부장판사가 법정관리 기업에 친형과 친구를 감사로 임명한 것은 '법정관리' 재판 전담이라는 막강한 공적 권한을 이용해 사적인 이익을 추구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금융권 퇴직자들이 법정관리 기업의 관리인이나 감사에 선임되려고 재훈련 기관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부끄러운 지역언론의 '침묵의 카르텔'

이는 일반 국민들의 상식과 눈높이에도 거리가 있다. 일의 전문성과 효율성만큼 공정성과 투명한 절차는 소중한 가치이고, 고위 법관의 윤리의식은 사법부의 신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만약 해당 판사가 법원의 '넘버투'가 아니라면 문제가 달라지는 것일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스파이더맨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고위 법관이기 때문에 더욱더 엄격한 윤리의식이 필요하고 그에 따르는 가장 엄격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처럼 원칙적이고 상식적인 결론에 이르기까지 나 또한 나침반의 바늘처럼 무수한 불확실성 앞에 내면의 혼란, 갈등을 겪었음을 고백한다. 이번 일처럼 유무형의 압력(?)을 받아본 적도 없을뿐더러, 혹여 해당 부장판사의 용퇴를 촉구하는 일이 인간의 삶과 그간 해당 판사의 판결을 도매금으로 매장하는 것으로 비치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수석 부장판사는 20년 이상 지역 법조계에 몸 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시간 동안 무수한 판결을 하면서 학연·지연·혈연 등으로 얼마나 촘촘한 인간관계가 먹이사슬처럼 엮여 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한 번의 실수로 물러나는 건 좀 심하지 않냐, 잘못은 했지만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다, 호남의 인물을 지역이 키워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그러나 우리 안의 '평범한' 생각들이 행위의 결과에 대한 악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역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인간관계가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온정주의와 편협한 지역발전론에 갇히는 한, 건강한 견제와 감시는 싹틀 여지가 좁아진다. 특히 그 대상이 막강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권력'이 되면 더욱 그렇다. 공정함과 상식 대신 인간적인 관계 등 다른 잣대들이 자연스럽게 또아리를 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지역공동체는 과연 견제와 비판이 작동하는 건강한 공동체인가. 중앙언론과는 달리 지역 사법권력 앞에 유례없이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보도하지 않은 대다수 지역언론의 '침묵의 카르텔'이 그래서 부끄럽다. 성역 없는 비판, 공익을 우선하여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언론의 본성이라 했을 때 심각성마저 느낀다.

성역의 커튼을 거둬내고 오랜 관행을 개선하는 것은 감추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되는 것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환부를 도려낼 때 가능하다. 이번 사건은 성역의 유리성에 갇혀 있던 사법개혁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지금 이 순간 평범하게 보이는 악의 모습을 보고도 눈감아 버리거나, 그 악의 해악을 살피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윤민호님은 민주노동당 광주시당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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