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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자판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빼앗긴 봄'

3일 현재 본사 점거 농성 39일째... "열심히 일한 내가 무슨 잘못이냐"

등록|2011.03.04 20:42 수정|2011.03.05 14:55

▲ ▲ 대우자판 본사에 걸려 있는 현수막들. 청춘을 바친 직장에서 정리해고 웬말이냐라는 투박한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 한만송

최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회적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인천의 향토기업을 자처했던 대우자동차판매주식회사(이하 대우자판)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생존투쟁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으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3일 오전에 방문한 대우자판 본사에는 '정리해고 철회와 분할 매각 반대' 현수막 20여 장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정문을 지키는 경비원의 간단한 신원확인 후 들어선 본사 앞마당에는 전국금속노조 대우자동차판매지회 조합원 서너 명이 모닥불에 몸을 녹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조합원들이 39일째 농성하고 있는 본사 건물 1층 농성장에는 쌀과 식자재, 식기 등이 널려 있었고, 삼삼오오 모여 이이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와중에 청소용역 아주머니들은 주인(?)을 잃은 회사 곳곳을 청소하고 있었다.

금속노조 대우자판지회 조합원들은 지난 1월 24일부터 점거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설 명절에는 농성장에서 합동으로 차례를 지냈다.

"열심히 일한 내가 무슨 잘못이냐"

▲ 매서운 꽃샘추위에도 3일 진행된 투쟁문화제.<사진제공:대우자판지회> ⓒ 한만송


농성장에서 만난 강성필(44) 조합원은 "아내가 이번에는 후회 없이 끝까지 싸우다 돌아오라고 했다"며 투쟁 의지를 보였다.

강씨는 대학 졸업 후 1993년 8월 과거 '대우맨'으로 입사했다. 당시 대우그룹은 신입 사원 대부분을 대우차 판매 영업사원으로 훈련시켰다. 3년 동안 차량 90대를 판매한 후에야 대우의 자동차, 조선, 중공업, 무역 등으로 발령을 받았다. 강씨는 자신의 세일즈맨 소질을 발견하고 대우차 판매사원의 길을 걸었다. 고향인 제주도에서 옛 대우의 영광을 만들기도 했다.

"대우차가 잘 나갈 때는 제주도 시장의 40%까지 대우차가 차지했다. 지금은 6~7%로 추락했다. 제주 사회는 인맥이다. 그렇다 보니 대우차 브랜드보다 인간 강성필이 브랜드였다. 내가 친구에게 내 차 안 사면 '친구도 아니다'라고 그랬다. 열심히 일했는데, 회사는 일하는 우리들의 근로조건을 열악하게 만들더니 차 판매 전문회사가 차 팔 생각은 안 하고 건설에 투자해 망했다. 열심히 차 판 우리가 무슨 죄냐."

강씨는 설 명절 때 고향 풍습이 마음에 걸려 잠시 제주도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계속 농성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 부평 본사 옆 신축 공사 현장에 찾아갔다. 현장 소장님에게 잡부라도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생활비도 못 준 지 벌써 몇 개월이 됐다. 하루 일당이 5만 원인데, 절반은 조합에 내고 절반은 생활비로 쓸 생각이었다. 대장(=김진필 지회장)에게 허락받고 갔다 왔는데, (현장 소장 쪽에서) 답이 없다" 그는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강씨는 회사 입사 후 노조에 바로 가입하지는 않았다. 2001년 대우자판 경영진이 SR제도(=실적에 따른 변동급 중심 영업직, 고정급 30%+판매수당 70%)를 강요했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는 CM제도(=고정급 중심 영업직, 고정급 70%+판매수당 30%)였으나, 사측이 경영 효율성만을 따져 SR제도를 강요해 결국 노조에 가입했단다.

마지막으로 강씨는 '워크아웃 상태에서 정리해고 반대 투쟁이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아니냐는 물음에 "난 평조합원이다. 지도부를 믿고 쫓아가는 것이다. 사측은 불법 점거라며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매일 방송한다. 퇴직금도 들어오지 않고, 4대 보험은 어떻게 되는지 걱정이다"라고 말한 뒤 "산업은행은 영안모자에 물려있는 거 같고, 정치권도 로비 많이 받아서인지 대우자판 문제는 거론도 되지 않는다. 우리들이 언제 사람취급 제대로 받았냐?"고 하소연했다.

농성을 하고 있는 이들은 1년이 넘는 동안 임금 1500여만 원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최소한의 생활조차 영위하기 어려운 처지다. 특히 농성자 대부분이 40~50대라 학자금, 전세 대출금 등으로 지출이 막대해 가정경제가 파탄 나고 있는 실정이다.

"노조 말을 조금이라도 들었으면"

▲ 정리해고와 분할 매각을 반대한다는 대자보를 남겨 놓고, 청소 용역 아주머니 ⓒ 한만송

농성장에서 만난 김진필 지회장은 "자동차 판매라는 사업은 제조 회사에서 차량을 받아 일정 수수료를 받고 고객에게 판매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절대로 망할 수 없는 사업이다. 그런데 왜 회사가 망했겠냐. 이동호 전 사장과 현 경영진이 수천 명의 목숨을 끊어 놓은 것"이라고 전 현직 경영진에 대한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어 "경영진이 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해 대화했다면 이 같은 사태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우자판은 자본금 1500억 원, 자산 가치 1조5000억 원에 이르는 인천의 대표적 기업으로 성장해왔다. 회사 이름처럼 주력 사업은 GM대우(현 한국지엠) 차량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우자판 경영진들은 2005년 건설 산업이 호황을 보이자, 건설부문 사업을 확장했다.

반면, 차량 판매로 매년 수백억 원의 흑자 경영에도, 최대 3600여 명에 이르렀던 자동차 판매 영업사원을 700여 명으로 줄이고, 전국 300여 개가 넘던 영업소도 100여 개 수준으로 줄였다.

이런 과정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 경기가 내리막을 타자 세 차례의 부도 위기를 넘기며 지난해 4월 주채권은행과 워크아웃 약정을 맺었다. 그 힘들다던 IMF 시기에도 1000억 원에 가까운 흑자를 기록해 우량기업으로 성장했던 대우자판이 무리한 경영으로 힘없이 무너진 셈이다.

대우자판은 건설부문에서 유동성 자금이 묶이자 결국 GM대우에 차량 판매 대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못했고, 결국 GM대우와 결별하기에 이르렀다.

경영진의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경영

▲ 대우자판 지회 조합원들은 한 달 넘게 본사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음식도 직접 조리해 먹고 있다. ⓒ 한만송


대우자판은 차량 판매를 비롯해 대우버스, 캐피털, 정비사업소 등 알짜배기 회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하지만 대우버스는 유동성 위기로 인해 영안모자에 넘어갔고, 이제는 건설부문 등을 제외하고 회사 자체가 영안에 넘어갈 처지다.

한때 우량기업으로 평가받았던 대우자판이 왜 망했을까? 건설경기 침체와 더불어 전 경영진의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경영이 한몫 했다는 평가가 많다.

과거 대우자판은 대략 '8대 2'의 비율로 차량 판매와 건설부문으로 나눠져 있었다. 건설부문 확대가 건설경기 침체로 인해 유동성 자금이 묶이고, 이로 인해 차량 판매대금을 수차례 상환하지 못해 결국 차량 판매권도 상실하게 됐다. 결국 워크아웃 상황에 이르렀다.

특히 이동호 전 대표이사의 부도덕한 경영이 대우자판을 현 상태로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우자판지회에 따르면, 이 전 사장이 2000년 부임 초기 소유한 대우자판 주식은 2000주에 불과했다. 그러더니 2006년엔 60만 주가 됐고, 2008년엔 91만6000주를 가지고 있는 대주주가 됐다.

불법 대출 문제가 금융감독원 등에 적발될 시점인 2009년 1월에 이 전 사장은 350억 원 상당의 보유 주식(91만6032주) 전량을 사주조합에 무상 출연한다고 밝혔으나, 출연하지 않고 물러났다. 또한 이 전 사장은 안성 스테이트월셔 골프장 건설과 관련해 자본금이 5000만 원에 불과한 시행 회사에 2000억 원을 보증했다가 날리기도 했다.

대우자판지회 조합원 186명 모두가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들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25년 동안 청춘을 바친 회사에서 경영진의 책임을 대신 지고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다.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송원 사무처장은 "자동차를 팔아야 할 회사가 엉뚱하게 건설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다가 회사가 망하게 됐다. 본사를 인천에 옮겼지만 향토 기업으로 제 역할도 하지 못해 정치권, 시민사회 어디로부터도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무능한 경영진의 잘못으로 열심히 일 해온 평범한 직장인들만 거리에 내몰리게 됐지만,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책임을 지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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