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는 왜 '위안부 박물관' 건립 반대했나
[서평] <한홍구와 함께 걷다>
'위안'이라니, 도대체 누구한테 '위안'이었단 말인가? '위안부'라는 용어자체에 끔찍할 정도로 군국주의의 시각이 배어있다… 우리가 종군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는 종군기자, 종군작가, 종군화가 등과 같이 제 발로 군대를 따라간 사람들을 일컬을 때이다.… 그런데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들은 하나같이 강제로 끌려간 분들이다.- <한홍구와 함께 걷다> 중 '나눔의 집'에서
<한홍구와 함께 걷다>(한홍구 저, 검둥소 펴냄)는 한국현대사 전문가인 한홍구 교수가 경복궁, 나눔의 집, 국립서울현충원, 독립공원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국립4·19묘지, 남산과 명동성당, 광장, 차이나타운과 자유공원 등 10곳을 학생들과 답사하고 그에 대해 쓴 글을 엮은 책이다.
이들 장소들은 우리 근·현대사를 이야기 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곳들이다.
책 속 '나눔의 집' 부분에서 저자는 이처럼 반문한다. '나눔의 집'은 일본 제국주의 만행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오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께 삶의 터전을 마련해 드리고자 불교계를 중심으로 사회 각계에서 정성을 모아 마련한 집이다. 대지 850여 평에 전문요양시설과 수련관, 역사관 등이 있는 노인 주거 복지시설로, 현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7분이 모여 살고 있다.
…(역사관) 지하로 내려가면 '제2전시공간-체험의 장'이 나오는데, 이곳에는 실물크기로 재현된 '위안소의 방'이 있다. 담요가 덮인 나무침대에, 무심한 백열등이 흔들리고 있다. 이곳에서 열대여섯 살 어린 소녀는 바들바들 떨며 잘하지도 못하는 일본말로 "니혼진토 조센진과 덴노 헤이카가 오나지네(일본인과 조선인은 천황 폐하가 같지요)"를 외우며 옷고름을 풀어야 했다. 같이 간 일행 중 조금 짓궂은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한번 누워보라고 하자 대뜸 눈물이 핑 도는 눈치다. 이 방은 옛날 모습을 단지 재현해 놓은 공간임에도, 남자인 내가 침상에 살짝 걸터앉아 보는 것조차 힘이 들 정도였다.…또 당시 위안소에서 사용하던 군표, 삿쿠(콘돔) 등이 진열되어 있으며 조선, 만주, 중국 타이완, 동남아시아 각지에 설치되었던 '위안소'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방 한구석에 놓여있는 놋쇠 대야는 '위안소'의 고통스러운 일상을 말없이 전해준다.- <한홍구와 함께 걷다> 중 '나눔의 집'에서
나눔의 집에 있는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은 '잊혀져 가는 일본의 전쟁범죄 행위를 알리고,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그리고 새로운 세대를 위한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만들어진 곳이다. '성 노예'를 주제로 한 인권 박물관으로는 세계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총 140평 규모(지상 2층, 지하 1층)에 증언의 장, 체험의 장, 기록의 장, 고발의 장 등으로 전시공간을 구분, 위령의 장과 같은 세부적인 장으로 다시 나눠 전시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시민들의 자발적 성원에 힘입어 순수 민간 자원으로 설립되었기에 전시 방향과 내용에서 운동 주체의 독립성이 충분히 보장되어 있다.
"독립공원 내 위안부 할머니 박물관, 순국선열 '명예훼손'"
저자는 나눔의 집 구석구석을 길잡이 하는 틈틈이 '일본과 조선사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성과 남성의 문제이고, 국가와 시민 사이의 문제이고, 제국주의와 식민지 사이의 문제이고, 조선 여성 중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여성들만 끌려갔다는 점에서 계급문제 역시 포함하고 있는 아주 복합적인 문제'라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나눔의 집 건립에 얽힌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들려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서 '일본군 위안부 명예와 인권을 위한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의 건립을 추진 중이다. 오랜 논란 끝에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부지가 서대문 독립공원 내로 확정되었고 2009년 3월 8일에는 '착공식'이라는 이름의 행사가 거행되었다. 그런데 이 착공식은 여느 착공식과는 달랐다. 우리는 흔히 착공식을 할 때 "첫 삽을 떴다"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의 착공식은 이름은 착공식이지만 첫 삽을 뜨지 못했다.
광복회 등 독립운동 단체가 서대문 독립공원 내에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을 "격이 맞지 않다"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순국선열을 기리는 서대문 독립공원 내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난을 보여주는 박물관이 건립되는 것은 "독립운동가들과 독립운동을 폄하시키는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태도야말로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을 욕되게 하는 일이 아닐까? 저렇게 고통 받고 있는 동포들을 해방시킨 것보다 더 절절한 독립운동의 이유가 있었을까? 일본군 '위안부'를 아픔이 아니라 부끄러움으로 여기는 가부장적이고 몰 인권적인 태도야말로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 <한홍구와 함께 걷다> 중 '나눔의 집'에서
두번째 글 ''피해자'와 '역사'가 공존하는 공간-나눔의 집'은 이런 글로 마무리되고 있다. 솔직히 이 부분 참 씁쓸하게 읽었다. 이제는 안주하고 있지만, 나눔의 집 역시 건립 당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처럼 일부 사람들의 이와 같은 그릇된 사고방식과 편견, 역사 인식부재 등으로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사실을 앞에서 이미 읽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난 것은 1945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국에서 공론화 된 것은 그로부터 40년이나 지난 1980년대 후반이었다. 이후 20여 년이나 지났고 그간 정대협을 비롯, 수많은 사람들이 문제해결에 관심을 보이고 노력하고 있음에도 문제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사람들 때문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17년 동안 시위를 해오고 있다. 17년 동안 850회 이상 지속되고 있는 이 시위는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집시법에는 외국 대사관 100m 거리에서 시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일본대사관 앞만큼은 이를 뛰어넘어 세계에서 가장 끈질긴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꿈쩍도 않고 있는 일본 정부의 뻔뻔함이라니. 혹 일본은 이들 독립공원부지에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을 반대하는 광복회 등과 같은 독립운동단체들을 비웃는 한편 문제해결을 위한 시선을 회피하는 것은 아닐까? 일부 사람들의 이런 그릇된 애국심과 사고방식이 일본의 뻔뻔함을 변명하는 기회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지난 1월 2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인 박분이(91, 경북 영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현재 생존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는 75분.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이분들마저 세월 속에 영영 묻히기 전에 하루빨리 해결돼야 할 우리 역사의 숙제이다. 우리 모두의 좀 더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관심과 문제해결을 위한 참여가 필요할 것 같다.
전쟁기념관을 둘러싼 논란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역시 그 생뚱맞은 명칭이었다. 도대체 전쟁이 기념할 만한 일인가? 당시 한국국어교육학회 회장이었던 진태하 교수는 전쟁도 기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전쟁기념관 건립 추진자들의 무식을 풀어주려고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을 기념한다는 것은 마치 '부친 사망 기념'이라고 쓰는 것 같은 망발"이라고 깨우쳐 주었다. - <한홍구와 함께 걷다> 중 '전쟁기념관'에서
이 부분 역시 씁쓸하게 읽었다. 전쟁기념관과 나눔의 집뿐이랴. 저자는 나눔의 집이나 전쟁기념관 외에 조선왕조의 상징이자 근대 민족수난사의 비극적 상징인 경복궁과 근현대사의 아픔이 곳곳에 남아있는 강화도부터 최근 몇 년 나라를 뜨겁게 달군 촛불집회의 현장인 광장에 이르기까지 우리 근현대사, 그에 얽힌 질곡의 이야기들을 다소 격정적으로 들려준다.
일반적으로 답사에서 우선 강조되는 것은 유적이나 유물에 대한 설명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처럼 검색이나 여타의 책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유물유적 등에 대한 설명보다 각각의 장소에 담긴 우리의 근현대사에 더 치중, 그에 깃들인 역사적 배경과 역사적 의미 등을 제법 풍성하게 들려준다. 그런지라 여타의 책들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것들을 풍성하게 접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장점이다.
▲ <한홍구와 함께 걷다> 겉그림 ⓒ 검둥소(우리교육)
이들 장소들은 우리 근·현대사를 이야기 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곳들이다.
책 속 '나눔의 집' 부분에서 저자는 이처럼 반문한다. '나눔의 집'은 일본 제국주의 만행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오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께 삶의 터전을 마련해 드리고자 불교계를 중심으로 사회 각계에서 정성을 모아 마련한 집이다. 대지 850여 평에 전문요양시설과 수련관, 역사관 등이 있는 노인 주거 복지시설로, 현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7분이 모여 살고 있다.
…(역사관) 지하로 내려가면 '제2전시공간-체험의 장'이 나오는데, 이곳에는 실물크기로 재현된 '위안소의 방'이 있다. 담요가 덮인 나무침대에, 무심한 백열등이 흔들리고 있다. 이곳에서 열대여섯 살 어린 소녀는 바들바들 떨며 잘하지도 못하는 일본말로 "니혼진토 조센진과 덴노 헤이카가 오나지네(일본인과 조선인은 천황 폐하가 같지요)"를 외우며 옷고름을 풀어야 했다. 같이 간 일행 중 조금 짓궂은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한번 누워보라고 하자 대뜸 눈물이 핑 도는 눈치다. 이 방은 옛날 모습을 단지 재현해 놓은 공간임에도, 남자인 내가 침상에 살짝 걸터앉아 보는 것조차 힘이 들 정도였다.…또 당시 위안소에서 사용하던 군표, 삿쿠(콘돔) 등이 진열되어 있으며 조선, 만주, 중국 타이완, 동남아시아 각지에 설치되었던 '위안소'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방 한구석에 놓여있는 놋쇠 대야는 '위안소'의 고통스러운 일상을 말없이 전해준다.- <한홍구와 함께 걷다> 중 '나눔의 집'에서
나눔의 집에 있는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은 '잊혀져 가는 일본의 전쟁범죄 행위를 알리고,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그리고 새로운 세대를 위한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만들어진 곳이다. '성 노예'를 주제로 한 인권 박물관으로는 세계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총 140평 규모(지상 2층, 지하 1층)에 증언의 장, 체험의 장, 기록의 장, 고발의 장 등으로 전시공간을 구분, 위령의 장과 같은 세부적인 장으로 다시 나눠 전시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시민들의 자발적 성원에 힘입어 순수 민간 자원으로 설립되었기에 전시 방향과 내용에서 운동 주체의 독립성이 충분히 보장되어 있다.
"독립공원 내 위안부 할머니 박물관, 순국선열 '명예훼손'"
저자는 나눔의 집 구석구석을 길잡이 하는 틈틈이 '일본과 조선사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성과 남성의 문제이고, 국가와 시민 사이의 문제이고, 제국주의와 식민지 사이의 문제이고, 조선 여성 중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여성들만 끌려갔다는 점에서 계급문제 역시 포함하고 있는 아주 복합적인 문제'라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나눔의 집 건립에 얽힌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들려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서 '일본군 위안부 명예와 인권을 위한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의 건립을 추진 중이다. 오랜 논란 끝에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부지가 서대문 독립공원 내로 확정되었고 2009년 3월 8일에는 '착공식'이라는 이름의 행사가 거행되었다. 그런데 이 착공식은 여느 착공식과는 달랐다. 우리는 흔히 착공식을 할 때 "첫 삽을 떴다"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의 착공식은 이름은 착공식이지만 첫 삽을 뜨지 못했다.
광복회 등 독립운동 단체가 서대문 독립공원 내에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을 "격이 맞지 않다"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순국선열을 기리는 서대문 독립공원 내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난을 보여주는 박물관이 건립되는 것은 "독립운동가들과 독립운동을 폄하시키는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태도야말로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을 욕되게 하는 일이 아닐까? 저렇게 고통 받고 있는 동포들을 해방시킨 것보다 더 절절한 독립운동의 이유가 있었을까? 일본군 '위안부'를 아픔이 아니라 부끄러움으로 여기는 가부장적이고 몰 인권적인 태도야말로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 <한홍구와 함께 걷다> 중 '나눔의 집'에서
두번째 글 ''피해자'와 '역사'가 공존하는 공간-나눔의 집'은 이런 글로 마무리되고 있다. 솔직히 이 부분 참 씁쓸하게 읽었다. 이제는 안주하고 있지만, 나눔의 집 역시 건립 당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처럼 일부 사람들의 이와 같은 그릇된 사고방식과 편견, 역사 인식부재 등으로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사실을 앞에서 이미 읽었기 때문이다.
저자 한홍구는 |
1990년대 초반,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출간된 이래 이러저러한 답사기가 많이 나와 있다. 글쓴이의 독특한 시각과 체취가 배어 있는 좋은 책들이 많이 있지만, 답사란 것이 매우 주관적인 작업인 데다가, 평화운동을 하는 내 나름대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보니 기존에 나와 있는 답사 관련 서적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뭔가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보이는 것에 대한 설명은 충실했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 감춰진 것들의 의미를 불러오는 그런 답사 책이 아쉬웠다. 굴곡이 많았던 한국 근현대사를 지내다 보니 어느 곳이나 이러저러한 사연이 깃들지 않은 곳은 없다. 이 책에 소개한 답사지 열 곳은 서울 인근에 있는 장소 중에서 평화운동과 과거사 청산 운동을 해 온 나의 활동과 특히 연관이 있는 장소를 추린 것이다. 평화운동을 시작한 뒤에는 같은 장소를 가도 보이는 게 달랐다. 과거사 청산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에는 서대문형무소나 남산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늘 지나치던 곳이었지만 촛불은 광장 구석구석에 스민 의미를 되새길 기회를 제공했다. 독자 여러분도 자신의 삶의 맥락에서 역사의 현장과 새롭게 만나시길 기대해 본다.- 저자의 말 중에서 저자 한홍구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성공회대학교 교수이다. 국가정보원 과거사 민간위원을 지냈고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상임이사,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공동집행위원장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시민단체 '역사를 여는 사람들 기역(ㄱ)를 만들어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을 매입하여 보존과 복원하는 '역사신탁'운동을 펼치고 있다. <대한민국사>(1~4권)<한홍구의 현대사 다시 읽기>외 여러권의 책을 냈다.(프로필 참고 정리) |
우리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난 것은 1945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국에서 공론화 된 것은 그로부터 40년이나 지난 1980년대 후반이었다. 이후 20여 년이나 지났고 그간 정대협을 비롯, 수많은 사람들이 문제해결에 관심을 보이고 노력하고 있음에도 문제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사람들 때문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17년 동안 시위를 해오고 있다. 17년 동안 850회 이상 지속되고 있는 이 시위는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집시법에는 외국 대사관 100m 거리에서 시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일본대사관 앞만큼은 이를 뛰어넘어 세계에서 가장 끈질긴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꿈쩍도 않고 있는 일본 정부의 뻔뻔함이라니. 혹 일본은 이들 독립공원부지에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을 반대하는 광복회 등과 같은 독립운동단체들을 비웃는 한편 문제해결을 위한 시선을 회피하는 것은 아닐까? 일부 사람들의 이런 그릇된 애국심과 사고방식이 일본의 뻔뻔함을 변명하는 기회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지난 1월 2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인 박분이(91, 경북 영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현재 생존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는 75분.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이분들마저 세월 속에 영영 묻히기 전에 하루빨리 해결돼야 할 우리 역사의 숙제이다. 우리 모두의 좀 더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관심과 문제해결을 위한 참여가 필요할 것 같다.
전쟁기념관을 둘러싼 논란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역시 그 생뚱맞은 명칭이었다. 도대체 전쟁이 기념할 만한 일인가? 당시 한국국어교육학회 회장이었던 진태하 교수는 전쟁도 기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전쟁기념관 건립 추진자들의 무식을 풀어주려고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을 기념한다는 것은 마치 '부친 사망 기념'이라고 쓰는 것 같은 망발"이라고 깨우쳐 주었다. - <한홍구와 함께 걷다> 중 '전쟁기념관'에서
이 부분 역시 씁쓸하게 읽었다. 전쟁기념관과 나눔의 집뿐이랴. 저자는 나눔의 집이나 전쟁기념관 외에 조선왕조의 상징이자 근대 민족수난사의 비극적 상징인 경복궁과 근현대사의 아픔이 곳곳에 남아있는 강화도부터 최근 몇 년 나라를 뜨겁게 달군 촛불집회의 현장인 광장에 이르기까지 우리 근현대사, 그에 얽힌 질곡의 이야기들을 다소 격정적으로 들려준다.
일반적으로 답사에서 우선 강조되는 것은 유적이나 유물에 대한 설명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처럼 검색이나 여타의 책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유물유적 등에 대한 설명보다 각각의 장소에 담긴 우리의 근현대사에 더 치중, 그에 깃들인 역사적 배경과 역사적 의미 등을 제법 풍성하게 들려준다. 그런지라 여타의 책들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것들을 풍성하게 접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장점이다.
덧붙이는 글
<한홍구와 함께 걷다>|한홍구(지은이)|검둥소|2009-11-30|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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