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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일제고사'를 보지 않았습니다

일제고사 진단평가를 진단한다 1

등록|2011.03.12 15:26 수정|2011.03.12 15:34
지난 8일 전국의 초등학교 3, 4, 5학년 학생들이 똑같은 문제지로 똑같은 시간에 일제히 보는 진단평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16개 시도 중에서 10개 시도는 일제고사를 실시했고, 진보교육감 체제인 6개 시도는 갈 길을 달리했습니다. 6개 시도교육청 중 2개 시도교육청은 일제고사를 보지 않았고, 3개 시도는 자율로 실시했으며, 서울시 교육청은 과목 수를 줄이고 다른 평가계획서를 제출하면 진단평가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여전히 일제고사로 보는 진단평가를 반드시 꼭 봐야하고, 똑같이 보지 않으면 무슨 역적이나 된 듯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10개 시도는 일제고사 진단평가를 그대로 보도록 지시했지만, 보지 않아도 되는 시도교육청이 진보교육감 체제인 시도교육청이었기 때문에 일제고사 실시여부로 이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현장 교사가 보기에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아이들을 가장 잘 진단할 수 있는 때는 다같이 어울려 놀 때입니다. ⓒ 이부영


진단평가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일제고사 진단평가를 보고 안 보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보수언론이나 특정 교원단체에서 주장하듯 특정이념으로 결정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일제고사 진단평가 실시여부 결정은 오로지 우리 아이들에게 일제고사로 보는 진단평가가 적당하느냐 아니냐에 달렸다고 봅니다. 그러나 일제고사 진단평가 실시 여부에서 진단평가 내용은 고스란히 빠진 채 실시여부에만 관심이 몰려있는 것은 답답한 노릇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이번에 일제고사 진단평가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일제고사 진단평가를 실시하지 않은 첫째 이유는, 전국에서 똑같은 문제로 똑같은 시간에 보는 일제고사로 치루는 진단평가는 본래 진단평가가 갖고 있는 목적을 달성하기보다는 일제고사를 실시한 뒤에 나타나는 부작용이 더 많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진단하는 평가가 목적이어서 아이들의 등수를 매기지 않고 경쟁시키지 않는다고 하지만, 똑같은 문제로 보게 되면 점수가 나오고 등수는 자연스럽게 매기게 되어 있습니다. 학교에서 매기지 않아도 다음 날, 아이들 사이에서는 등수가 자연스럽게 매겨집니다. 일제고사 뒤에 교사들은 아이들 등수를 몰라도 학부모들은 아이들 전교 등수를 다 꿰고 있게 됩니다.

새로 만난 아이들과 즐겁게 노는 모습 새 학년에 올라오자마자 일제고사로 진단평가를 봐서 아이들을 점수로 구분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가혹합니다. ⓒ 최혜영


둘째 이유는, 일제고사 진단평가는 도시에 살고 있는 아이든, 시골에 살고 있는 아이든 주변환경과 사정이 다른 모든 아이들에게 같은 문제로 평가를 받는 것이 문제입니다. 실제로 그동안에 출제된 문제 유형을 보면 평가문항에 나오는 상황이 도시 중심의 그것도 중산층 아이들에게 유리하게 출제되어 있는 것이 많습니다. 이번 평가문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셋째는, 일제고사로 보는 진단평가는 전국에서 똑같은 문제로 평가를 하기 때문에 정답이 오직 하나로 몰아가서 지식의 내용을 획일화시킵니다. 창의성을 그 어느 때보다 강조하고 존중해서 말끝마다 창의 인성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일제고사는 창의성과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어디나 똑같은 문제로 똑같은 시간에 보는 일제고사 진단평가는 그나마 있던 창의성도 죽이는 방법입니다.

넷째, 사지선다형으로 되어있는 문제로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진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일제고사를 보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은 사지선다형 문제로 아이들 학습능력을 진단할 수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지만, 사지선다형 평가 문항으로 평가할 수 있는 학습 능력은 제한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각 교과의 다양한 영역 중에 극히 일부분만 평가가 가능합니다.

종합적인 실제 학습능력이 아닌 평가문항을 이해하는 능력을 평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을 보면 실제로는 할 수 있고 알고 있는데, 문제 자체를 이해할 수 없어서 평가에서 원하는 답을 고르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지선다형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실제 학습능력보다는 문제집을 많이 풀어서 사지선다형 평가문항에 답하는 방법을 따로 더 많이 공부해야 하는 웃지못할 일이 생깁니다.

다섯째는, 결국 시도교육청에서 주장하는 일제고사 진단평가의 본래 목적은 말이 학습능력을 진단한다고 하지만, '학습부진아 ○명 선발'에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마다 문제가 다르면 '부진아' 기준에 혼선이 되니 똑같은 문제로 진단평가를 봐야 몇 점 아래는 '부진아 ○명'을 '객관적으로' 선별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과연 그 누구도 단지 사지선다형 평가 한번으로 '너는 몇 점 아래이기 때문에 학습부진아'라고 '진단'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학습 부진아'를 선별하는 기준이 되는 일제고사 진단평가 문항이 아이들을 진단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평가문항일 때 가능한 일입니다.

여섯째, 일제고사 진단평가 문항은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진단할 수 있는 문항으로 적당할까요? 제가 그동안 일제고사 평가문항을 살펴본 결과 일제고사 평가문항은 우리 아이들을 평가하기에 적당하지 않았습니다. 일제고사용 평가문항이 왜 진단평가로 적당하지 않은 지는 다음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우리 학교는 '진단 평가'가 아닌 '진단 활동'을 합니다

우리 학교는 교사가 아이들을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결과 중심의 '진단평가'라는 말 대신에 교사와 아이들이 만나는 과정 중심의 '진단활동'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도 하루 날짜를 정해서 단한 번의 지필평가로 아이들을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첫날 처음 아이들을 만날 때부터 아이들과 만나는 과정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햇빛이 비추는 교실에서 그림자놀이를 하는 아이들 학년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평가'가 아니라 즐거운 '만남'입니다. 학년초에 교사들이 알아야할 것은 일제고사 진단평가로 하는 '우열'의 구분이 아니라, 만남 활동을 통해 나타나는 저마다 다른 '특징'입니다. ⓒ 최혜영


또한 진단이란 것이 교수-학습과 별개로 이루어져서는 안되고, 매시간 진단이 교수-학습과 함께 이루어져야하기 때문에 진단은 단 하루, 또는 3월 한 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 년내내 이루어져야 맞습니다.

그리고 우리 학교는 단지 사지선다형 지필평가 한번 평가한 것으로 그것도 '몇 점 아래'를 맞았다고 해서 아이들을 '부진아'로 낙인찍지 않습니다. 그 대신 만남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진단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특징과 개성을 발견하고 그에 맞는 교수-학습을 설계하면서 아이들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알아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단 한번의, 그것도 아이들을 진단하기에 부적당한 사지선다형 일제고사로 아이들을 '평가'해서 '부진아'로 낙인찍는 '일제고사 진단평가'는 없어져야 마땅합니다. 올해 별도의 계획서를 내면 일제고사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부분적인 선택권을 준 서울시 교육청도 내년에는 일제고사 진단평가를 실시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올해 서울시 교육청이 각 학교에 내려 보낸 공문에 따라 진단활동을 제대로 하는 계획서를 제출했는데도, 여러 곳 여러 사람에게서 진단평가를 볼 것을 강요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몇몇 학교에서는 공문에 따라 교사가 계획서를 제출하려는데 교장이 결재를 해 주지 않는 일도 있다고 했습니다.

내년에 서울시 교육청이 일제고사 진단평가를 실시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대단히 환영할 일입니다. 내년부터는 학교현장에서 단지 일제고사 실시여부로 나타나는 갈등은 저절로 사라지겠지요.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 3년 전 일제고사에서 선택권을 주었다고 해임된 7명의 서울시교육청 소속 교사들이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이 역시 이념이 아닌 진정한 교육의 자리에서 마땅한 결과입니다.
덧붙이는 글 일제고사 진단평가를 보지 않았다고 하면 진단평가를 하지 않은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단지 문제점이 많은 단 하루에 보는 일제고사로 보는 진단평가를 보지 않았을 뿐이지, 다양한 방법으로 진단활동을 계속 해 왔고, 계속 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일제고사 진단평가 문항을 분석해서 진단평가문항의 문제점을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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