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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래봬도 할머니 팬들 많아요"

디자인과 교수, 시골체험마을 선봉장 되다

등록|2011.03.16 15:53 수정|2011.03.17 11:13
한경대학교 디자인과 교수이며 화가이기도 한 김종억씨. 흰돌리마을에 그가 나타난 것은 15년 전이다. 그는 이 마을에서 이른바 '외지인 1호'다. 이 마을에선 외지인으로서 최초로 집을 지어 이사 온 사람이라는 말이다.

김종억 위원장디자인과 교수이기도 한 김종억 위원장은 한눈에 봐도 시골사람이 다 되어 보인다. 마을에 이사 온 지 15년이 되었다. ⓒ 송상호


"이장님이 꼬여서(?) 시작했죠"

이런 그가 흰돌리체험마을 위원장이라니,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기자에게 "이장님이 날 꼬여서(?) 그만"이라며 웃음 폭탄을 터뜨린다.

그랬다. 농촌체험마을 한번 해보고 싶은 흰돌리마을 이장. 하지만 길을 몰라 평소 친분 있는 김 교수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테마마을 컨설팅 회사에 이장과 함께 찾아가 설명을 듣던 중 김 교수가 무릎을 쳤다.

"비싼 돈 들여 컨설팅 회사에 맡기지 말고, 우리가 직접 한번 해봅시다."

그의 평소 실력을 발휘 좀 했다. 체험마을 계획서를 아주 멋들어지게 만들어냈다. 체험마을 선정 심사위원들도 그의 브리핑에 박수를 보냈다. 어련할까. 명색이 디자인과 교수인데. 체험마을 디자인쯤이야. 이렇게 '체험마을'은 시작되고, 그는 마을 사람들과 같은 배를 타게 되었다.

수레타기다른 마을에 없는 흰돌리마을의 또 다른 자랑 수레타기다. 아이들이 정말 즐거워한다. ⓒ 송상호


하지만, 첫술에 배부르랴. 체험마을의 큰 그림은 그림으로는 참 좋았다. 실제로 실행단계에 오르니 마을 실정을 고려하지 않았던 게 드러났다. 체험마을 사업에 해당되는 땅을 마을 사람들이 순순히 기증해야 가능한 일들이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체험마을 사업으로 거액의 돈이 마을로 지원되니 마을 사람들도 머릿속이 바빠졌다. 처음에 체험마을 그림이 좋아 단순히 박수치던 때와 달랐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건축업자까지 끼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이런 현상들을 마음 아프게 바라보던 김 교수가 폭탄선언을 하고 나섰다. "당신네들끼리 잘 해보슈. 난 모르겠소." 이상과 현실의 괴리, 거기서 오는 아픔의 시간이었다.

김종억교수 작업실에서이 마을만의 또 다른 매력은 김종억 교수의 작업실에서 이루어지는 아이들과의 시간이다. 여기서 아이들은 창작의 세계에 빠져든다. ⓒ 흰돌리 체험마을


김 교수의 복귀, 체험마을 제2막이 열리다

마을 이장이 위원장이 되어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진척은 없고, 여러 가지 문제로 난항을 거듭했다. 이에 마을 주민들은 마을회의에서 김 교수의 복귀를 결정했다. 1년쯤 되는 그의 공백 기간은 마을 주민들에게 그의 빈자리를 확연하게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해서 지난해 10월, '녹색농촌체험 흰돌리마을호'는 다시 돛을 달았다.

이번엔 달랐다. 김교수는 그의 제자들과 지인들을 총동원해 마을을 뒤집어 놓았다. 지난해 8월엔 '제1회 흰돌리막걸리예술캠프'가 열렸다. 서울 홍익대 앞에서 공연하던 팀들과 일반인들이 어우러지는 한마당. 오신 손님도, 마을 사람도 모두 흥겹고. 축제에 음식으로 봉사한 마을 할머니들의 주머니도 두둑해지고. 이런 광경을 지켜보는 마을 주민들은 "역시"라는 칭찬을 내놓을 수밖에.

백련단지에서여느 체험마을에서 하는 고구마캐기, 농사체험, 떡메치기 등은 이 마을에서도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에 없는 백련밭체험은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다. ⓒ 흰돌리 체험마을


떡메치기아이들이 떡메치기를 하고 있다. ⓒ 흰돌리 체험마을


체험프로젝트의 핵심, '창의력농장'

"하고많은 농촌체험마을 중에 흰돌리마을에 가야 할 이유가 뭐죠?" 기자의 당돌한 질문에 바로 그는 말한다. "'창의력농장', 바로 그 때문이죠"라고.

이 마을에서도 여느 체험마을에서 하는 체험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시행한다. 하지만, '체험노트'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체험 아동들에게 체험노트가 주어지고, 끝나고 나면 피드백을 하게 한다. 그림과 글로 표현하는 시간도 있다. 단순한 체험에만 그치지 않고 아이들에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심어준다. 때론 예술적인 부분과 만나기도 한다.

이렇게 차별성 있는 프로그램이 가능한 이유가 뭘까. 그렇다. 바로 김 교수의 교육철학과 교육 노하우다. 오랜 시간 동안 대학 강단에서 교육을 해온 그. 일방적인 가르침은 지양되어야 하고 학생 스스로가 느끼고 감동받는 교육이 진짜배기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런 철학이 이 마을 체험 프로그램에도 녹아 있다.

창의력농장 프로그램이 마을 체험 프로그램의 핵심은 '창의력농장'에 있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아이들이 창의력농장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 ⓒ 흰돌리 체험마을


그는 체험마을의 성공 여부는 운영하는 주민들이 행복하냐 그렇지 못하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래야 단순한 체험이 아닌 '정과 감동'이 느껴질 거란다.

실제로 그는 할머니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데 주력했다. 행사 때 밥 팔고 남는 돈 전부를 마을 할머니들에게 돌려줬다. 할머니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야 할머니들의 자녀 손자들도 시골 마을에 자주 찾아오게 되고, 할머니들이 행복해야 체험마을도 장수한다는 것.

김 교수는 참 바쁜 사람이다. 대학 강의도 해야 하고 화가로서 지방 순회 전시도 해야 한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조용히 작업만 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 없다. 그런데도 그가 마을 디자인에 나선 것은 "공동체, 특히 농촌 공동체가 살아나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런 모범적인 모델을 흰돌리마을에서 실현하고 싶어서다. 그가 웃으면서 들려준 말이 이런 바람을 충분히 뒷받침해주리라.

"저 이래봬도 우리 마을 할머니 팬들이 많아요."

꽃밭체험흰돌리 마을에서는 꽃밭체험도 한다. 아이들의 행복한 얼굴이 바로 이 마을 주민들의 모습이며, 체험을 하러 온 사람들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 흰돌리 체험마을


덧붙이는 글 이 인터뷰는 지난 15일 흰돌리마을(경기 안성시 금광면)에서 이루어졌다.
홈페이지 http://www.hindol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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