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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합격? 내 앞에 60명 대기중" 복지는 안 해주고 애 낳으라는 건 횡포

['잘'사는 것이란 ③] 대학입학보다 어려운 어린이집 입학, 이게 말이 됩니까

등록|2011.03.23 11:00 수정|2011.03.23 16:44

▲ 혼자 신발 벗어 신발장에 넣고 벨을 누릅니다. 어린이집에 무척 가고 싶어합니다. 들어가서 친구들과 어떻게 어울리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 윤태


[ 기사 수정 : 23일 오후 3시 50분 ]

올해 1월 초. 어린이집에 잘 다니던 막내 아이가 며칠 동안 가기 싫어해서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초등학생인 언니도 방학인데 자기도 언니하고 집에서 놀고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효주야. 아빠 엄마 회사 가고 언니도 조금 있다가 학원 가면 집에 아무도 없는데 너 혼자 집에 있을 수 있어?"

어린이집에 보낼 요량으로 해 본 말이지만 언니하고 집에 놀다가 학원에 따라가겠단다. 그것도 아니면 엄마가 회사에 가지 말란다. 며칠 동안 아이 고집에 지친 내가 아내에게 언니 방학 동안 막내를 어린이집에 안 보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특별한 사유 없이 그렇게 오래 안 보낼 수 없어요. 한 달이라도 쉬게 되면 다시 들어가기 힘들어요, 대기하고 있는 아이만 300명이 넘어요."

아내는 정색을 했고 아침마다 아이와 실랑이는 꽤나 힘들었다. 

사실 나는 운 좋게도 아이 셋을 어린이집에 보내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나마 어려웠던 적은 첫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였다. 아이가 세 살 때 구립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했으나 자리가 없어 대기자에 이름을 올려놓고 몇 달 동안 동네의 일반 가정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보냈다. 이때 몇 가지 어려움(먹을 쌀이나 간식도 가져가야 했고, 가정집이기에 그 집 가족들이 수시로 드나들었고, 마당에는 큰 개가 있었다)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운 좋게도 이내 자리가 나서 구립 어린이집으로 옮길 수 있었다.

둘째도 언니가 먼저 들어가 있어 우선순위를 배정받을 수 있었고, 셋째도 세 자녀 우선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어린이집 보내기가 대학 보내기보다 어렵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유명 사립 어린이집 일부의 문제인 줄 알았다.     

어린이집 보내기가 대학 보내기보다 어렵다?


그런데 내 주변에 어린아이를 키우고 새로 어린이집 보낼 고민을 하고 있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아이를 낳아 키우고 어린이집을 보내는 육아 문제가 얼마나 젊은 부부들에게 고통으로 다가오는지 새삼 느낀다. 출산율 세계 최저의 나라, 이런 낯부끄러운 기록들이 갱신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아이 키우며 살 환경이 갖춰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례 ①]
"아이 태어나자마자 예약해도 대기 순번 60"


끝도 없는 전세난에 전세 만기 석 달을 앞둔 지인은 2천만 원을 먼저 올려 달라는 주인의 요구에 두말하지 않고 그렇게 하겠노라 약속했단다. 그러면서 결혼하고 남편과 둘이 벌면 버는 대로 전셋값 올려 주기에 바빴다고···. 올려준 2천만 원을 벌려면 남편뿐만 아니라 자기도 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린이집에라도 보내지 그러느냐'는 말에, "애 태어나자마자 예약한 어린이집이 아직도 대기순번으로 앞에 60여 명가량 있"단다. 그리고 "어린이집 배정 우선순위(편모가정, 차상위 계층, 3자녀)에 밀리면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지인은 또 "조금이라도 평판이 좋은 육아시설은 대기인원이 정원의 몇 배를 초과하기 일쑤이고, 소규모 육아시설은 막상 찾아가보면 맡길 마음이 나지 않는다"며 "정 급한 일이 생기면 대형마트 문화센터에 아이를 맡기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다행스럽게 최근에 운 좋게 신설되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 수 있게 돼 한시름 덜었다며 둘째는 꿈도 꾸지 못하겠다"고 한다. 이런 젊은 부부에게 대통령과 장차관이 나서서 아이 하나 더 낳으라고 이야기해 본들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사례 ②] 낳자마자 어린이집 예약하는 엄마들... 육아 아닌 전쟁

유치원 추첨 입학제를 실시한 공립유치원의 경우 부모가 밤샘 줄서기를 하고 14대 1의 구슬 뽑기 경쟁한다는 소식이 지난해 11월 MBC 뉴스에서 보도된 적이 있다. 아나운서는 평균 10대 1의 경쟁률을 넘어서는 추첨 현장에서 "세 자녀를 가지면 유치원에 입학시켜 준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계획을 가지고 애를 한 명 더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또 떨어졌어요"라고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를 담았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밤새 줄을 서고 평균 10대 1 경쟁의 추첨을 하고, 세 자녀 입학 우선권을 위해 아이 한 명을 더 낳고, 또 어떤 이는 아이 이름을 짓자마자 어린이집에 달려가 대기자 순번에 올려놓고… 이건 육아가 아니라 차라리 전쟁에 가깝다.

▲ 서울시 보육포털 사이트에서 성동구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인수 현황(일부) ⓒ 서울시


서울특별시 보육포털서비스(http://iseoul.seoul.go.kr)에서 수치상으로 보면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 지인이 살고 있는 성동구에 있는 국공립 보육 시설을 검색해 보면 정원의 몇 배가 넘는 입소 대기 숫자가 기록되어 있다. 정원이 84명에 입소 대기 1566명인 어린이집이 있는가 하면 입소 대기자가 적은 어린이집도 정원의 평균 2배가 넘는다.

성동구 국공립 보육시설을 검색하여 통계를 내본 결과, 2596명이 정원인 32개 어린이집에 1만2125명의 대기자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원의 4배 인원이 어린이집에 가기 위해 이름을 올려 놓은 것이다.

물론 허수도 있을 수 있다. 이름을 올려놓고 다른 사립이나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다닐 수도 있겠고, 여러 곳에 중복해 올려놓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이 가진 부모와 이를 뒷받침해야 하는 공공기관의 복지 수준의 간극은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는다.

육아와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과도한 복지일까?

▲ 야3당, 여성 노동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지난해 10월 26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공동회견을 열고 정부의 저출산 대책에 대해 자율형 어린이집 도입 철회 및 비정규직 여성의 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 남소연


박양숙 민주당 시의원이 서울시에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에 거주하는 아동 10명 중 1명만 국공립 보육시설을 이용하고 있으며 8명 중 1명이 국공립 보육시설 입소를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성동구의 문제가 아니라 서울 전체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상황이 이러니 젊은 부모들은 5, 6세 아이들의 유치원(어린이집) 배정도 평준화하여 초등학교같이 지역 배정제로 하자는 의견도 있다. 또 의무 교육이나 다름없는 5, 6세 어린이들 보육을 초등학교와 같이 의무교육, 무상교육으로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태부족이고, 사설 어린이집은 비싸고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시설을 찾기도 현실. 이런 현실을 두고 그물형 복지를 이야기하는 서울시가 낯두껍다는 생각이 든다.

무상급식의 문제에서 출발했던 복지 논쟁이 사회 전반의 복지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과도한 복지는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고 국가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킨다는 게 정부와 여당, 보수 진영의 입장이다. 이에 반하여 빈부의 격차가 심화될수록 복지는 사회안전망 확충의 측면에서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야당이나 진보진영의 입장이다.

그런데 아이의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본다면 육아와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과도한 복지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육아와 교육은 절대적으로 부모의 책임이 되는 현실에서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길 보육 시설을 늘리고 의무교육 기관인 초등학교가 제대로 된 위상을 확립하도록 하자는 게 과도한 주장이라고 한다면, 저출산 문제는 영원한 난제일 수밖에 없다.   

서민들의 삶은 끝 간데없는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휘발윳값은 리터당 2천 원을 넘어가고 물가는 인상보다는 폭등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LPG 가스 한 통 값이 며칠 전 또 2천 원 올라 4만2천 원에 샀다는 단골 노점 아저씨는 "순대는 구제역 파동에 웃돈을 줘야만 도매시장에서 공급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뿐인가? 한 끼 4, 5천 원 하던 점심은 이제 6천 원 아래로는 찾아볼 수 없어졌고, 전셋값에 등록금,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는 서민들의 아우성이 뉴스에 넘쳐난다. 언제 환란에 가까운 이 혼란이 진정될지 판단도 쉽지 않다. 서민 살림살이를 책임져야 할 장관조차 두 손을 들어버린 물가. 서민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것 같다.

그물형 복지? 서민들 다 잡겠다... 아이 더 낳으란 것은 횡포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9년 11월 25일 서울 광진구 서울여성능력개발원에서 열린 미래기획위원회 제6차 보고회에 참석, 저출산 극복을 위한 대응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 청와대


정부가 시시각각으로 쏟아내는 '특단의 대책'은 약발이 듣지 않은 지 오래다. 오히려 내성만 키워 악순환만 반복된다는 지적도 있다. 더 이상 성장위주 정책으로는 나라의 부를 축적시키고 서민들의 빵을 키워 줄 수도 없다. 며칠 전 중국의 경제 정책이 성장에서 분배로 돌아섰다는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된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도 성장위주의 경제 정책을 중국 이상으로 강조해 왔다. 그리고 그 폐단은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래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에 대한 논의가 정부와 기업, 대학에서 진행되고 있다. 반도체· 신소재·환경 에너지·첨단 의약품 등 분야도 다양하다. 물론 이런 분야도 마땅히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 앞에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될 성장동력은 사람이다. 고령화 사회가 나라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럼 고령화 사회를 치유할 방법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렇게 단순화된 도식으로 놓고 보면 노인문제, 노동인구의 고령화 문제, 저출산 문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문제이며 해결책도 다르지 않다.

육아와 교육에 대해 정부는 먼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아이 낳자마자 육아 시설을 예약하고도 수년을 기다려야 하는 육아 현실을 방치하면서, 아이 더 낳으라는 출산을 장려하는 것은 국가 권력의 횡포에 불과하다.

아이 점심 한 끼 무상으로 주자는데 빨갱이로 치부해버리는 정부와 여당의 교육철학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과거 산아 제한 정책이 국민들에게 전폭적(?) 호응을 이끌어 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적게 낳아 잘 키워보자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지금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하는 것도 많이 낳으면 힘들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바로잡습니다
애초 기사에 서울시 홍보비가 5천억원이라는 내용은 사실과 달라 바로잡습니다. 서울시는 해외홍보비 120억 제외한 서울시 시정홍보비는 179억이라고 밝혀왔습니다.
어렵다. 물가 폭등·전세난·구제역·국제 유가와 원자재 폭등 등 사회 전반적 여건이 어렵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때 복지 타령이나 하고 있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니 오히려 태어나자마자 어린이집을 예약해야 하는 현실을 두고 '그물형 복지' 운운하지 않았으면 한다.

여성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서울시장.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어린이집 신축 예산은 46억. 홍보비와 서해뱃길사업, 디자인서울, 한강예술섬, 서남권지역문화체육콤플렉스 건립 등 전시성예산을 다 합치면 5천억이라는데… 그물형 복지가 서민들 잡을까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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